무령고개에서 육십령까지 능선 길을 걷다.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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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산행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우리네 산야(山野)는
우거진 신록 속에 하얗게 핀 밤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열매 맺는 꽃 중에서는 제일 늦게 꽃이 핀다는 밤꽃,
벌써 여름이 무르익어 가는 것일까?
“눈송이 같은 밤꽃 향기 물씬물씬 풍기더니
/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 수많은 별 같아라.”
동국여지승람에서 유학자 서거정은 5, 6월 전국의 산야를 하얗게 뒤덮은
밤꽃을 눈송이로 표현했었다.
밤꽃이 천지를 뒤덮으면 눈은 즐겁지만 코는 괴롭다.
바로 동물의 정액냄새를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야릇한 향기 때문이다.
꽃냄새 속에 동물정액 “스퍼미딘”, “스퍼 민”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비릿한 냄새 탓에 밤꽃 필 무렵이면 부녀자들이 바깥출입을 삼가고
과부들은 밤잠을 설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래도 밤 꿀맛은 씁쓸하지만 항산화, 향 균 효과가 일반 꿀에 비해
10배 정도 뛰어나다고 하니 몸보신을 위해 많이많이 드시길-
오늘산행은 장수 무령고개에서 함양의 육십령까지 가는 능선길이다.
산행기점인 무령고개(無領峙)는,
백두대간 6구간으로 전북 장수군 장수읍, 계남면, 번암면의 경계에 있는
장안山 고갯길이다.
무령고개(923m)에서 출발하면,
영취산(1076m), 덕운峰거리, 북 바위(977m), 민 령, 구시峰(1014m),
육십령(734m)까지 이어지는 능선이다.
동쪽은 소백산맥의 준령에 막혀 교통이 불편하지만,
북동쪽의 무령고개와 남쪽의 어치 재를 통해 경남 함양군의 산록,
계류지역과 연결이 되어있다.
서쪽 비탈면은 경사가 완만하며 장수읍의 낮은 분지로 이어진다.
고개란 보통 그 지역의 지명이나 전설과 관련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장 고개”와 같이 주민 생활과 직접 관련이 되어 이름이 붙여진 경우도
있지만 고개는 산을 넘어가는 능선부로 주요 교통로로 이용된다.
보통 고개라는 지명이 쓰이지만 이밖에 재, 현(峴), 치(峙), 영(嶺) 등
지명접미사(地名接尾辭)가 쓰이기도 한다.
고개는 그 지역 산지 중 가장 높은 곳을 통과하는 관문(官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이 33도가 넘는 극심한 무더위가 계속되고 17년 만에 찾아온
농촌 가뭄은 농민들의 가슴을 애타우고 있다.
알싸한 냉면도, 뜨끈한 삼계탕도 입맛을 돋우지 못하는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는 윤기 자르르 흐르는 엄마 표 쌀밥 생각이 간절하다.
어린 시절 흰 쌀밥 수북하게 담은 숟가락 위에 엄마가 등 다독여주며
살짝 올려 주던 새콤한 오이지 한 조각 생각나리라!,
장조림 한 조각에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웠던 추억도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래도 이따금 씩 창틈으로 산들산들 불어오는 밤바람은 시원했다.
하루 꼬박 냉장고에서 묵은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이 우리를 죽여준다.
시골집 뒤란 붉은 앵두 따서 꿀에 재웠다가 차가운 오미자 얼음물 타면
곧 앵두화채인데 오미자 냉차 한 잔에 더위가 싹 가시리라.
한잔 쭉! 들이켠 뒤,
부채바람 살랑살랑 부치며 한 세상 신선처럼 앉아 잊고 살아보면 어떨까!
산행 종점인 육십령(六十嶺)고개는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에 있는 험한 고개로
육십현(六十峴) 또는 육복치(六卜峙)라고도 한다.
높이 734m 고개로 소백산맥 중의 덕유산과 백운산사이에 있으며
신라 때부터 요충지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 이 고개는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로 전주-대구 간
국도가 지나간다.
영남 선비들의 본 고장 함양과 전라도의 오지인 장수를 이어주는 고개로
백두대간의 덕유산 남쪽에 있는 고갯길이다.
육십령은 그 굽이만큼 이나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는 고개다.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애타게 비를 기다리고 있다.
치솟는 수은주에 몸도 마음도 지쳐있다,
요즘은 부쩍 날씨 탓하는 일이 많아 졌다.
하지만 잠시 돌아보면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 소박한 재료들은
주위에 얼마 던지 넘쳐난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생각만 큼은 시원하다고 말해보자.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오후 3시경에 여기는 멀쩡한데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광주는 지금 비가 시작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산행은 못하더라도 비는 내려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우제를 지낼 때면 산꼭대기에 나무를 쌓아
큰 불을 피웠다.
불로 뜨거워진 공기는 하늘 높이 올라갔고 차가운 공기와 만나
소나기구름을 만들었다.
기우제에 숨어 있는 과학의 원리다,
갈라진 논바닥에 농심(農心)도 쩍쩍 갈라졌다.
오늘 오후 늦게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거라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부디 전국을 시원하게 적시는 단비가 내렸으면.
고개 이름을 육십령이라 하는 데는 여러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함안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가 육십里이고 장수 감영에서도 육십里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둘째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 크고 작은 육십 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으나,
널리 알려진 얘기로는,
산적의 화를 피하기 위해 육십 명이 모였다는 얘기다.
육십령고개에는 산적들이 많아서 이 고개를 넘기 위해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육십 명의 장정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근처에는 당시 장정들이 모인 주막이 있던 곳이라는 장군동이 있고,
산적들을 피해서 살다가 이룬 마을인 “피적래”란 마을이 지금도 남아 있다.
기분 좋은 아침 이었다.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가 있었지만 오후 늦게부터 내린 다는 것이다.
비 소식과는 다르게 하늘은 맑고 청명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양동매씨들이 산행버스 뒷좌석을 점거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협조해 준다는 언약을 해주었다.
총무에게 회원 수를 물어보니 만석에서 2%가 부족하다 했다.
차내를 둘러보니 담소하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도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두 번씩이나 산악회에 금전적, 물질적인 큰 도움을 준 김정래 회원에게
감사의 뜻으로 “어머님의 은유”라는 이어령작 에세이집 한 권을 선물했다.
기분 좋은 아침 산행버스도 전북 장수 룰 향해 기분 좋게 출발했다.
사람이 걸어 올라가야 할 900여 미터를 산행버스가 덜덜대면서 가파른
산간(山間)길을 이리저리 비집고 올라 무령고개에서 산행1팀을 내려주었다.
산행2팀은 산행1팀의 하산지점인 육십령으로 가 역코스산행을 하기로 했다.
무령고개에서 영취산까지는 160여 미터의 가파른 산길이었지만 데크계단과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힘은 들었어도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영취산 표지石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부터는 백두대간의 6구간코스로 능선 길을 따라 종주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우리민족의 고유지리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이다.
능선 길은 대체로 좋았다.
숲이 우거져 있어 햇살을 가려주었고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상쾌했다.
굴곡지거나 경사가 높은 가파른 길도 별로 없었다.
숲에 가려 조망이 답답하다고 생각 할 때쯤이면 바위봉우리가 나왔고
답답한 시야를 확 트이게 해준다.
이름 모를 산들이 서로 부등 켜 안고 거대한 산맥을 이루며 푸른 숲이
우거져 녹색카펫처럼 부드럽게 보인다.
산행 길은 잡목 숲으로 시작되더니 끝없이 이어지는 산죽 길이 되었다.
길가의 관중처럼 옷깃을 스칠 때 마다 웅성거리고 “싸악”하며 환호한다.
산죽나무 뒤로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참나무군락이 호위하고 경호한다.
덕운峰 거리를 지나니,
전라도와 경상도를 경계 짓는 마루금의 북 바위가 나왔다.
삼국시대 신라, 백제의 영토 분쟁지역으로 승리하는 쪽이 이곳에서 북을
쳤다는 바위인데 바위모양이 타악기의 북처럼 생겼다.
숲길에 12간지를 뜻하는 가지가 열두 개인 소나무가 있었는데 열둘을
만들려고 그랬는지 가지 한 개를 잘라버린 흔적이 있었다.
여러 개의 줄기로 자란 소나무가 몇 개가 더 있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제법 철학적 질문을 던져 봤더니
“무령에서 육십령으로 가는 거 아니냐고 한다.
뜨는 해에서 지는 해까지가 하루살이 삶인데 뭘 고민하는가?”
민령도 지났다.
깃대峰에 올랐는데 지금은 구시峰(1,014m)이라 부른다.
표지석도 구시峰으로 되어있어 여성회원 3명이 깃대峰을 찾는다고
길도 없는 수풀을 헤매다 되돌아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육십령이 가까워질수록 잡목들이 사람 키보다 높게 가지를 치고 있었고,
억새풀은 우거지고 산행 로가 보이지 않아 감으로 길을 찾아 헤쳐 나갔다.
크고 작은 육십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고갯길 하산 길도 역시다.
얼마를 돌고 돌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깃대峰 샘터에 도착했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사랑하나 풀어 던진 약수 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시원한 약수 한잔을 마셨다.
약수터에서도 얼마를 더 내려오니 육십령(734m) 고갯길이 나왔다.
고갯길로 잘린 백두대간을 잇는 다리공사를 하고 있고 휴게소에는
산행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휴게소식당이 있는데 오후 5시부터 영업한다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산행2팀들이 이층 팔각정과 나무그늘 밑에서 쉬고 있고 팔각정 밑에서는
하산 주를 준비하고 있다.
오늘 하산酒는 이상섭부회장이 거금 15만원을 들여 닭죽과 수박,
백아산동동주, 막걸리, 소주 일체를 부담해 주었다.
여성회원들이 손수 만들어 온 음식물과 다과가 끝이 없이 제공된다.
금광은 산악회가 아니라 한 가족모임이다.
최근 몇 주 동안 금광이 몰라보게 젊어졌다고 칭찬을 해준다.
다음 주에는 이상설 산행이사가 오리 탕을 한다고 예고를 했다.
(2012년 6월 29일)
첫댓글 "오늘 나는 누구의 지혜를 만날까?"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질문을 무령에서 육십령 능선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육십령길 너무 좋았어요.올려주신 산행후기 너~엄 감명깊네요^*^~~~.감솨해요~용
하산주 때 준 흰밥과 익은 김치가 맛이 너무 좋았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