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7편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1.본문배경
이 시편은 지혜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시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호소나 탄원이나 애원이 없고 오직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해야 된다.", "이렇게 함이 바른 길이다." 하는 식의 문장으로 진리와 윤리에 대한 지혜로운 의견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시는 9편, 25편, 34편에서 보듯이 다분히 교훈적이며 서술적인 문장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형식의 시이다.
저자는 응보사상의 현실적 모순으로 고민하는 의인과 그와 뜻을 같이하는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3~4절이 그 교훈의 핵심이다. 여기 '의지신앙'을 제일 먼저 권고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시편의 저자들은 억울한 수난을 당해도 의지의 신앙을 권고하고, 원수나 병으로 인하여 생명의 위기를 당해도 의지의 신앙으로 그 해결책을 삼았다. 또한 인생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아도 의지의 신앙을 말하고 있음은 히브리인의 신앙과 경건이 얼마나 이 '의지신앙'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가를 보여 준다. 다음으로 저자가 권고하는 것은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아무리 악으로 기울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자기 주변 사람들을 보지 말고 인간의 본분으로써 해야 할 선행을 단념하지 말고 계속하라고 권한다.
2.본문 주요내용
이 시편은 목회적인 시편이다. 신앙의 공동체에 속한 자들은 무엇을 보고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악한 자들이 번영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섭리인가?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현실적인 압력과 미래의 약속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신앙과 불신앙 중에서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이 시편이 담고 있는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 시편은 종종 악은 심판 받고, 선은 어찌하든 분명하고 단순하게 보상 받는다는 도덕적인 교훈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했다. 이 시편의 본문 중에는 그 자체로만 본다면 그렇게 이해할 만한 구절들이 있다.
이 시편은 하나의 구체적인 영적 위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편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내용의 연속이 아니며, 신앙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 시편의 서두에 등장하는 명령문들은 본문의 저자와 같은 의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 명령문들의 대상자들은 좌절 속에서 투기하고 심지어는 파괴적인 분노의 유혹에 직면한 사람들이다(1, 7-8절). 이 시편의 기자는 의인들이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시편기자는 그의 권고를 통해서 그들을 경고하고 다른 길로 인도하고 있으며, 의인과 악인을 대하시는 주의 방법을 묘사하면서 그 의인들이 다른 길을 택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3.오늘의 기도와 관상
"주님,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자주 조급증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내가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일에 대해서 오해하고 때로는 조롱거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그러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의뢰하며 선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의는 우리 하나님께 있으니 주께서 이를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옳다고 하는 일을 주장하지 말고, 실천하게 하옵소서. 옳다고 믿는 바가 속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지 말고, 주님께서 이 일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지를 조용히 바라보며 인내하게 하옵소서. 결국 의로움은 주님께 속한 것이기에 그 의를 정오의 빛같이 드러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