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시골집에 수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고서 걱정이 많았다. 구순의 어머니가 시골집에 홀로 계시는데 물이 나오지 않아 옆집에 사는 친척이 서너 양동이 길어다 주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하루 정도 지나고 날씨 풀려서 녹을 듯했다. 이틀 정도 어머니가 불편하게 지내고 계셨다. 주말 아침에 일찍 음식을 마련해서 어머니께 갔다. 가는 도중에 수돗물이 나온다는 연락을 받으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물이 나오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아는 까닭에 속이 상했다. 설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엇하러 오냐고 하시지만, 마음은 얼마나 좋으시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 오는데 말이다.
연세가 있으니까 음식을 잘 드시지 못해서 사골탕과 육개장을 가지고 갔다. 밥을 국물에 말아서 드시니까 저번에 해놓은 반찬이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음식도 잘 잡수시고 씩씩하시던 어머님도 이제는 드시는 것도 그렇고 마음이 아프다. 점심을 준비해서 밥상을 펴고 둘러앉아 먹으니 어머니는 그 자체로 행복하시다. 주방과 집안은 시누들이 돌아가면서 청소를 해놓고 반찬도 해놓고 하니까 항상 깔끔하다. 주방과 냉장고를 정리했다. 집안을 대청소해놓고 안방에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텔레비전을 보았다. 전원일기에나 나오는 장면이다. 건너편에 방 하나가 더 있지만 불을 넣지 않아서 냉골이다. 잠시 있다가 가는데 어머니랑 함께 지내다가 가려고 안방에서 아들과 어머니는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며느리인 나는 벽에 기대서 절절 끓는 방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편하게 누워서 보라고, 따뜻한 방에서 쉬고 가라고, 자꾸 끌어당기지만 며느리는 며느리다. 친정엄마라면 상황이 달라졌겠지만,
방에 오래 앉아 있으니 허리도 아프고 몸이 꼬이는 듯해서 잠시 나가서 산책했다. 봄날처럼 따사롭다. 시골집 화장실은 재래식이다. 예전에는 외양간이었던 자리에 화장실을 만든 것이다. 변기만 양변기고 자유낙하식이다. 조금 불편하지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라 즐겁게 지내다 온다. 전원일기 촬영한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해 걸음에 나오려고 했는데 어머님이 저녁을 일찍 먹고 가라고 잡으신다. 혼자 먹으면 입맛이 없는데 같이 먹으면 조금 먹을 것 같다고 하셨다. 얼른 저녁상을 준비했다. 점심을 늦게 먹은 탓에 배고픔이 없어서 우리는 라면을 먹고 어머님은 사골 국물을 데워서 드렸다. 한 그릇을 다 잡수시는 것을 보니 마음이 좋았다. 노모를 홀로 남겨놓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무겁다. 추운데 우리 집에 가자고 하니 싫다고 하신다.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고 하시면서 설날에 오신다고 하신다.
이제는 방안에서 우리를 배웅하신다. 언제나 동네 어귀까지 나오셔서 손을 흔들어주셨는데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계셨다. 방문 앞에서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모습”이라며 나를 안아주시는데 가슴이 저민다. 눈빛이 깊은 우물 속 같다. 어둑해진 길을 달리면서 그리 많은 말을 안 했다. 반백의 아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첫댓글 지난번 추위에 물이 나오지 않아서 수도꼭지에 물을 끓여 부었더니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노모를 모시고 계신분의 따듯한 마음에사 잔잔한 감동을 느낍니다. 노모께서 부디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