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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1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대림절 제 4주일 설교
제목 : <12월 설교 시리즈 – ‘제사(Sacrifice)’>3. 화목제(Peace offering)
본문 : 요한일서 4장 10절(7~12절)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새번역>
여러분은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작사 작곡하신 프레데릭 레만 목사님을 알고 계십니까? 프레드릭 레만 목사는 평생을 시골 목회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다른 어떠한 목회자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기에 지금은 꽤 보편적으로 바뀐 인식이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힘들었을 이중직 목사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1917년 어느 날 그는 이전과 다름없이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치즈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그의 부인이 한 장의 메모지가 들어있는 도시락을 가져다 주었다고 합니다. 메모지의 내용은 "바다가 먹물이고 하늘이 두루마리인들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다 적으랴" 라는 11세기 무렵의 랍비, 요셉 마르쿠스가 쓴 시의 일부였습니다. 이것을 읽는 순간 레만 목사는 자신이 처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이 겹쳐지며, 자신이 있는 이 낮고 낮은 곳에도 변함없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것에 대한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점심 먹을 생각도 잊어버린 채 펜을 들어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먼저 가사가 완성되었고, 얼마 후에 하나님의 사랑(The Love of God)이라는 곡을 작곡하여 이 찬송을 탄생시켰다고 합니다.
이 찬송가의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레만 목사는 이 1절을 작사하면서 아마 베들레헴 어느 허름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마주했을 것 같습니다. 온 우주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천하디 천한 인간을 위해 낮고 낮은 구유에 태어나신 것을 보면서, 동시에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 속에서도 주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례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왠지 나는 하나님이 조금 덜 사랑하는 것 같고, 하나님은 저 크고 화려한 도시의 교회에만 임재 하시는 것 같이 느껴질 때 하나님은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이 미천한 나를 위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위하여, 독생자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은 레만 목사에게나 저에게나 형용할 수 없는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사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물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저는 레만 목사가 그 순간 본인이 쓴 가사를 쓰고 견딜 수 없는 눈물바다를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죄 범한 영혼을 구하려, 그 아들을 보내시고, 화목제물을 삼으시고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논리와 설명으로도 그 어떤 무엇으로도 설득하거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성도여 찬양하자고 독려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예수님은 죄 범한 영혼을 구하려 이 땅에 화목제물로 오셨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위대하지만, 인간의 입장으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결론을 알고 오셨습니다. 바로, 죽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마가복음 10장 45절, 새번역>
인간의 몸값을 치르기 위하여, 즉 죄와 죽음에 팔아넘길 값이 아닌 살릴 값으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영화를 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누군가가 인질로 잡히게된 상황이었습니다. 긴장감이 가득한 장면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누구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당장 얼마를 입금하라고 독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갑자기 코미디 영화로 바뀌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인질범이 요구한 금액이 잡힌 인질이 생각할 때 너무도 터무니 없는 금액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몇 억에서 몇 십억은 요구할 줄 알았는데 단돈 오백만 원을 자신의 목숨 값으로 부르는 인질범을 향해 오히려 인질이 화가 나서 소리를 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내 목숨값이 고작 오백만원 밖에 안 되냐고, 더 부르라고, 최소한 1억이라도 부르라고, 정말 자존심 상하게 너무한 거 아니냐’ 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치가 겨우 오백만 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여러분의 몸값이, 여러분의 목숨값이 겨우 오백만원에 거래 되어진다고 하면 왠지 찝찝하고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은 분명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겨우 오백만 원짜리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으로 몸값을 치른 ‘예수님짜리’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자 하나님, 창조의 근원, 빛이 되신 분, 메시아,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신 분의 몸값이 바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 드려진 화목제물의 제물로서의 값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다시 이루기 위하여, 다시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를 누리기 위하여,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레위기 그 날의 명령처럼 소와 양과 염소가 되어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전에 여러분은 악한 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분의 육신의 몸으로 여러분과 화해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내세우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20~22절, 새번역>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인간과 화해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화해’ 라는 말은 동등한 위치에서나 사용되는 말이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입장에서 어떻게든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어떤 방법이든 찾아서 노력해도 모자란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화목제사를 하나님이 먼저 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얼마든지 나와 화해하려고 한다면 화해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너희가 바라는 화목을 허락하겠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라 사실로 만들기 위하여 영원한 화목제물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예 우리 가운데 보내주신 것입니다. 언제나 그 이름을 힘입어, 그 은혜로 말미암아, 그 보혈의 공로로, 그 보혈을 지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목제는 사실 화목제라는 말보다 ‘감사제’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도무지 이 상황에서 고백할 수 있는 것은 ‘감사’밖에 없습니다. 무엇으로도, 어떤 말과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 없어서 그저 감사의 고백만이 터져 나올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독생자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허락하는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감사드립니다.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래서 화목제는 진실로 우리 중심의 감사를 올려드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매일 드려지고 있는 제사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한 화목제인 감사제는 언제든 반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는 제사입니다.
재 대신에 화관을 씌워 주시며, 슬픔 대신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시며, 괴로운 마음 대신에 찬송이 마음에 가득 차게 하셨다. <이사야 61장 3절, 새번역>
이 화목제, 감사제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감사를 받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제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에는 모든 것이 회복된 상태로 귀가하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 그 뜨거운 첫사랑으로 돌아가, 너무도 큰 은혜와 사랑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만 매일의 삶 속에서 자원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됨으로 삶 속에서의 신앙을 성장시켜 주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화목제는 제사에게 제사를 더하게 되는, 즉 예배에 예배를 더하게 되고, 말씀에 말씀을 더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하나님의 기쁨을 더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이웃 사랑을 더하게 되는 예배자로서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제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목제를 ‘낙헌제’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낙헌제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여 자발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그리고 이 낙헌제를 오늘 우리가 쓰는 말로 바꾼다면 바로 ‘삶의 예배’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베풀어주신 화목제가 감사를 고백하는 감사제를 통해 매일 드려지는 낙헌제가 되어 이제 우리가 매일 매일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 삶의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화목제를 통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과 하나됨’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1~23절, 새번역>
이 말씀을 한 글자로 줄이면 ‘동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목제사를 드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동행을 다시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혼자, 내 멋대로, 나만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위해 펼쳐진 생명길을 걸어가는 삶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초라하고, 외롭고, 의미 없는 삶을 화목제를 통하여 레드카펫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얼마나 의미 있는 인생이 되는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예배자 여러분! 대림절이 끝나고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에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3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죄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은 오직 하나, 우리와의 ‘화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세상에 결코 통용되지 못하는 엄청난 값을 지불 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동행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 하나님이 베푸신 화목제에 믿음으로 참석하여 감사제를 올려 드리고, 이제 그 감사가 낙헌제가 되어 매일 매일의 감사 예배가 됨으로, 매일의 삶이 하나님과의 함께 걷는 발걸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이름을 이렇게 지어주신 것이 아닐까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장 23절, 개역개정>
그렇다면 이번 성탄절은 독생자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께 드리는 감사제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성탄절의 절기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낙헌제가 되어, 삶의 예배가 되어, 언제나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짜리 여러분! 먼저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 다 함께 목소리 높여 찬양합시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할렐루야!
결단 찬양 – 하나님의 그늘 아래 + 그 사랑이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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