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의 낭만… 을지로 ‘이모카세’를 아십니까
길거리 ‘가게 맥주’의 진화
“이모님, 배고파요. 어떤 메뉴 가능해요?”
“지금 계란말이랑 스팸 구이 가능하고. 밥 안 먹었으면 찌개 끓여서 밥이랑 줄까?”
가을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 수퍼 앞에 테이블을 펴고 소주 한 병을 딴다. “과자랑 술 마시면 속 다 버린다”며 이모님이 즉석에서 만들어 주시는 두툼한 계란말이. 서울 중구 을지로5가 '조일식품' 앞 풍경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중구 을지로 5가에 있는 두 평 남짓한 ‘조일식품’.
왼쪽에는 술과 음료수 가득한 냉장고, 오른쪽에는 골뱅이·참치 등 통조림과 과자들이 놓여 있다.
테이블은 길가에 나와있는 것까지 포함, 다섯 개. 손님들은 냉장고에서 소주를 직접 꺼내 테이블에 놓고 의자에 앉는다.
메뉴는 별도로 없다. 먹고 싶은 걸 말하면 만들어 내준다.
‘이모님’이라 불리는 사장님이 알아서 내주는 소위 ‘이모카세(이모+오마카세)’다.
◇가맥집의 진화 이모카세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을지로 가맥(가게 맥주)집이 최근엔 ‘이모카세 수퍼 식품점’으로 진화했다.
레트로 열풍으로 가맥집에 놀러 온 젊은이들이 과자와 쥐포에 술 마시는 걸 “속 다 버린다”며 안타까워한
가게 주인이 이것저것 만들어주던 게 시작이다.
조일 식품도 원래 일대 식당·술집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던 동네 수퍼였다. 그
런데 지난해 코로나가 터지고 술집과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수퍼 손님도 끊겼다.
“하루에 만원도 못 팔았어. 연금 받은 걸로 월세만 냈지.”
그 무렵 을지로 가맥집 유행이 확산하면서 조일식품에도 젊은이들이 술을 마시러 왔다. 계란말이 해달라고 하기에 부추와
당근을 잔뜩 넣고 통통하게 말아줬더니 ‘계란말이 맛집’으로 소문났다. 스팸으로 찌개도 끓여주고, 골뱅이로 무침도 해줬다.
요즘 인기 메뉴는 닭 돼지찌개다. “두 명이 술 마시는데 안주로 닭 한 마리는 양이 너무 많은 거야.
반 마리로 했더니 건져 먹을 고기가 없어. 돼지고기를 같이 넣었더니 궁합이 좋더라고.”
뻘건 국물의 달고 매운 찌개는 소주 안주로 제격이었다.
<문화부> 가맥집_이모카세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모카세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건, 소위 을지로 미싱 골목에 있는 ‘나드리식품’이다.
매일 오후 6시. 재봉틀 가게들이 문을 닫으면 나드리식품은 동네 수퍼에서 소위 ‘야장(夜場)집’으로 바뀐다.
앞마당에 판을 깔고 요리를 낸다. 추울 땐 비어 있는 주인장 허락을 받고 재봉틀 가게에도 들어가 먹는다.
가격은 1인당 4만원.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과메기부터 성게, 문어숙회까지 코스로 나온다. 이미 다음 달까지 예약이 다 찼다. 14년 전부터 이 자리에서 수퍼를 운영한 사장님은 2~3년 전부터 안주를 내기 시작했다.
“해달라는 대로 해주다 보니깐 메뉴가 많아졌어. 제철 메뉴를 잔뜩 내고 싶은 생각에 코스로 만들게 됐지.”
◇동네 수퍼가 주는 매력
이런 수퍼 술집이 유행하는 건 공간이 주는 특별한 매력 때문이다.
중년에게는 향수를, 젊은 층에는 독특함을 불러 일으킨다. 20대 김모씨는 “그냥 이런 분위기가 좋다.
소주는 이런 곳에서 마셔야 술맛이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부> 가맥집_이모카세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식품’과 중구 산림동 ‘백만불식품’은 아예 2층에 공간을 만들어 메뉴판을 붙여놓고
안주를 판매한다. 서울식품의 인기 메뉴는 부추전. 1층 수퍼에서 주인장이 쉬지 않고 부추전을 부친다.
<문화부> 가맥집_이모카세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문화부> 가맥집_이모카세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백만불식품은 근처에서 식당을 하던 주인이 수퍼 자리가 나자 수퍼 안으로 식당을 들고 들어왔다.
돼지갈비와 오겹살, 굴보쌈 등 고기류가 인기다. 식사로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짜파게티도 별미다.
서두르시길. 이제 곧 겨울. 을지로 골목에서 시원한 밤바람 맞으며 낭만을 즐길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첫댓글 가을 가기전에~~~
을지로 입구에서 길거리 맥주를 마셔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