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12, 2015
일본-국민과 정부
며칠전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일본을 방문하여 과거의 역사를
직시하고 책임을 지라며 위안부문제를 거론했다는 뉴스를 접하였습니다. 과묵한 그 녀가 아베 총리의 초청으로 방일하는 자리에서 외교적 결례가 될 수있는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은 용기있는 정치인이 아니면
할 수없는, 영원히 기억할만한 일입니다. 동서 냉전이 한창일때 미국의 케네디와 레이간 대통령이 베를린
장벽 앞에서 부르 짖었던 “ I’m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와 “Mr. Gorbachev, Tear down the Berlin wall (고바체프 수상,
베르린 장벽을 무너뜨리시요}” 보다 더 의미있는 일로 기억될 겁니다.
아베의 반응은 아직 없지만 지금 쯤 해답을 찾을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겁니다.
일본을 여행하여 본 많은 사람은 한번 더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관광 자체보다는 일본 국민들의 상냥하고 예의바른 행동때문입니다.
내가 경험한 바로도 그렇습니다.
료칸을 떠나는 날 아침 전 직원이 길 밖에 나와, 우리가 탄 버스가 코너를 돌아 안 보일 때까지 긴 시간동안 손을 흔들며 서 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 들을 안 좋아할 수가 없게 만듭니다.
한편 그 들의 정부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주 딴 판입니다. 국민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과거를 바라 보는 역사관은 교활하고 염치없고 무례할 뿐아니라
이제는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 갈려는 의욕까지 보입니다. 아베 정부가 더 심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역대 정부가 한 발짝 한 발짝씩 조금씩 움직여서 이루어 놓은 오랜 세월의 결과물로 생각합니다.
종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들의 지금 행동을 예측할
수있습니다.
전쟁의 책임을 히로히도 일왕에게는 묻지 않은 맥아더 점령
사령부, 애매 모호하고 두리뭉실하게 기술된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 협정, 졸속의 1965년의 한일 협정,
이 모두가 원인 제공을 했습니다.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진 겁니다.
몇 백년의 역사를 들춰내며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있다 하더라도 70-80년 밖에 안된 위안부 사건까지도 그 들은 부정하고
있습니다. 생존자가 엄연히 살아 있고 증언과 자료를 들이 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위안부가 강제로 끌려 간게 아니라 돈 벌려고 했던 자발적인 행동이었고
그 사업을 주도했던 것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니 정부가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합니다. 열 서너살 먹은 소녀가
돈벌려고 자발적으로 몸을 팔았다는 그들의 주장은 누구가 들어도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대답하다가 궁지에 몰리면 지난 한일 협정 때 일괄 타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있을 수없다고 했다가 형세가 더 불리해지면 사과하는 척합니다.
그리고 잠잠해지면 말을 바꾸고…
한국은 그 들의 말장난에 일희 일비합니다.
위안부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 들의 이상한 행동은 야스구니 신사 참배에서도 나타납니다.
2차 대전 전범의 위패를 신사 안에 놔두고 참배하기 시작한 것은 1958년이었지만 그 계획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협정을 조인할 때부터 이었습니다. 주위 피해 국가들의 비난을 미리 예견했던지
야스구니를 운영하는 단체를 민간이 주도하도록 하는 치밀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정부와는 아무 관계없는 일이라고
발뺌하나 위패 안치의 명령을 내린 것은 그들 정부이었습니다.
하나 더 간과해서는 안될 작태가 있습니다.
이거야 말로 용서할 수없는 교활함의 극치입니다.
미국까지 눈뜨고 당한 겁니다.
히로시마에는 1952년에 조성된 평화 기념 공원이 있습니다.
평화라는 명칭을 내 걸고 원폭 희생자를 기린다는 취지이지만
거기에는 일본의 간교가 숨어 있습니다.
원폭으로 파괴된 건물 하나를 그대로 보존하고, 기념석에는 세계 최초의 원폭으로 죽은 사람과 고통받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전쟁의 악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전쟁의 주범은 명시하지 않고 원폭의 피해만 적어 넣었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자기들이 피해자이고 원폭을 투하한 국가가 가해자라는 뜻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있습니다. 또 그렇게 여론 몰이를 하여 미국 정부를 코너로 몰았던 적도 있습니다.
히로히도와 도조가 전범이 아니라 트루만 대통령과 맥아더
원수가 전범일 가능성을 열어둔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위안부 사건까지도 부정하는 그 들의 후안무치를 보면 100년쯤 후에는 분명히 그렇게 우길 만하고도 남습니다.
공원이 세워진 그 시기도 주목해야 합니다. 1952년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었던 때입니다. 일본없이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도울 수없다는 미국의 약점과 전쟁때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쓸 수없는 한국의 약점을 이용한 행동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반성하지 않고 원폭의 피해만 부각시키려는
그들의 술책이 한때 성공하는 듯하였으나, 원폭 투하는 트루만 대통령의
위대한 결정의 하나로 미국의 사가들은 자리 매김한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당시 비행기 주 조종사였던 폴 티벳쓰는
죽을 때까지 원폭 투하를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독일은 이런 일본과는 달랐습니다.
1950년대부터 나치의 만행에 부끄러움을 느껴 밖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나치에 대한 언급을 타부 시하여 왔습니다. 그 침묵을 깬 사건이 1960년대 초, 한 대학교 에서 일어 났습니다. 학생들이 자기네
대학이 나치때 어떤 수치스런 일을 했는가를 조사하자고 학교 측에 요구합니다. 그 운동이 전국의 대학으로 퍼졌고
결국에는 정부와 정치인들이 움직여 나치 전범 재판소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공소 시효를 두었으나 나중에는
그 것도 없애고 지금도 전범을 쫓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기업이 연대하여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나치에게
피해를 본 모든 사람들에게 배상해 줍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그 배상의 대상을 동구권으로
까지 확대합니다. 유태인 뿐만 아니라 나치 하에서 고통을 겪었던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속죄의 클라이막스는 1970년 12월 7일 비오는 날이었습니다. 빌리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에 있는 유태인 학살 기념 탑을 방문하여
그 탑 앞에서 우산도 없이 무릎을 꿇고 나치를 대신하여 용서를 비는 모습이 전세계에 알려 집니다. 세계가
감동했습니다. 그 후 지금의 메르켈 수상까지 모든 수상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나치 만행을 사죄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독일 국민과 독일 정부가 하나임을 알 수있습니다.
그들은 망각대신 속죄하였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세계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 개개인의 겸손과 그 들의 정부가 보이는 비양심은
어느 게 진짜 일본인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미운 짓을 하지 국민이 아니라고 합니다.
국민과 정부가 잘 연계가 되지 않지만 그런 정부를 뽑은
것은 국민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일본인의 겸손속에 다른 마음이 숨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독재 정권이라면 몰라도 국민과 정부는 일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콩심은 곳에 콩나고 팥 심은 곳에 팥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영국 국민을
보면 영국 정부가 떠 오르고 프랑스 국민을 보면 프랑스 정부가 떠 오르고 미국 국민을 보면 미국 정부가 떠 오르듯이 일본 정부도 일본 국민 자신입니다.
일제 강점시에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위에 군림하고 착취하고
문화재를 빼돌리고 관동 대지진 때는 수많은 동포를 학살했던 것을 보면 알 수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겸손하고 상냥하게 행동하는 그 들에게 “너 교활하지”라고 도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들의 겸손을 받아 들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오늘 이야기입니다.
시카고 특파원 일용이가
후기: 일본의 과거사가 해결 안되는 것은 한중일 전부에게 책임이 있다는 미 국무부의 어느 관리의 언급에 대한 한국
국민의 비난은 이해합니다.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의 패권을 저지할려는 미국으로서는 일본이 최우방 국가입니다.
옛날 공산국가의 팽창을 막을 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어느 나라를 더 우대하는지 알 수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나라에 파견되어 있는 대사의 급을 보면 압니다.
지금 일본 대사는 케네디 딸인 카롤린입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사람을 대사로 보냈습니다.
리퍼트 대사가 테러를 당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제일 먼저
안부 전화를 했다고 매스컴이 호들갑을 떨었다고 합니다. 자기 나라 대사가 테러를
당했는데도 대통령이 전화 한 통없었다는 건 상상도 할 수없습니다. 그 걸 그 대사에 대한 대통령의 친소관계로
연계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수준입니다.
후기: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범을 경배하는 일본과 달리 독일에서는 롬멜 장군이 소속되어 있었던 아프리카 탱크 부대의
재향군인회 외에는 나치 시대의 잔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후기: 한국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노무현을 꼽았다고 합니다. 박정희를
넘어 섰다고 합니다. 그의 정치보다는 탈권위적이고 국민과 친숙하게 다가가는 소탈한 그의 성품을 알아 주는
것같습니다 (노빠들을 칭찬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이제는 그런
성품을 가진 대통령이 필요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박정희의 공적이 훼손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공적은 역사에 제일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록될겁니다. 유신 독재가 좀 아쉽지만…
후기: 어느 일본학자가 일본 국민성을 평한적이 있습니다. 일본 국민은 양파와
같아서 벗기고 벗겨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껍질 하나 하나가 일본 문화와 외국 문화가 합성된 복합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나라 국민을 평하였으니 신빙성이 있을 겁니다.
후기: ISIS에게 참수당한 두 일본인의 아내와 부모는 국가가 그 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국민에게는 죄송하다는 믿기지 않는 말을 했습니다. 그 들의 이런
행동은 개인과 국가는 하나라는 생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같습니다. 때가 되면 언제든 제국주의로 환원될 수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무서운 국민입니다.
후기: 아래의 사진은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의 유태인 위령탑에서 무릎 꿇고 있는 사진과 일본의 평화 기념 공원 안에 있는 기념석 사진입니다. 확대하면 영어를 읽을 수있습니다.
첫댓글 세계사적 시대사적 민족사적 오장을 긁어 내고 ㅋ ㅋ 옘병 헐 일본 수상 아베씨 생각 좀 잘 해 잉 ! ㅋ ㅋ
메르켈의 발언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아주 궁금라다. 아쉬운 것은 한국과 중국신문에서만 떠들고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뉴욕 타임스에는 멕켈의 기사가 나왔는데 워시톤 포스트와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는 아직 기사를 못 봤다. 안 나왔는가? 나왔는데 내가 못 찾은 것인가 모르겠다.
2009년 일본 야스쿠니 신사 앞에서
콱 밟아버리고 싶은 심정의 포퍼먼스
~^-^~
그 표시 무슨 뜻이다냐? 형태가 뛰어 올랐다가 밟는 것 같은디...
몇시간 전에 야스쿠니 신사 앞의 사진을 올렸는데
사진이 어디로 가부러서 다시
올리네 ^-^ ???
꼭 일제 시대 군인의 제자리 걸음 같다 ㅎㅎㅎ
일본 가면 구경 잘하고 부러운 것도 많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나라 이다.
원폭의 피해만 부각시키려는 그들,히로시마 더 많은 걸 올려 놓았네!
http://www.tripadvisor.com/LocationPhotoDirectLink-g298561-d1165220-i103165211-Hiroshima_Peace_Memorial_Park-Hiroshima_Hiroshima_Prefecture_Chugoku.html
이 TripAdvisor 사이트에서 코리아는 안 보이네~
거기 기념석에 있는 글 다시 옮기마-a pledge on the behalf of all humanity never to repeat the evil of war. It express the spirit of Hiroshima. 간교한 놈들. 인류애를 부르짖고 히로시마의 정신을 언급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