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모습
김도현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 2008년 12월에 일어난 ‘조두순 사건’을 말이다. ‘조두순 사건’은 안산시 단원구에서 2008년 12월에 발생한 성폭행 사건으로, 범인 조두순이 8세 여아를 성폭행해 신체적·정신적으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끔찍한 사건이었다. 사건은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특히 범죄의 잔혹성 정도를 보아 죄질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범인의 형량이 12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법원의 판결에 반발하는 여론이 거셌다. 내가 판단하건대, 이것은 ‘악’, 또는 ‘악마’의 행위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악마’의 모습이 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모방범’에서, 나는 또 하나의 ‘악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추리스릴러 소설의 특성상 자세한 줄거리를 밝힐 수는 없지만, 간략한 이야기만으로도, 작가가 범인들을 통해 '악마'를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엔, 이 둘 중 한 명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살인을 숨기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지만,(여자들을 살해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을 넘어 그들은 순수한 '악'을 체현한다며 즐거워했다. 그들은 극작가이며, 여배우들과(여성 피해자들) 다른 여러 등장인물(피해자의 유족, 성범죄자)들을 통해 극을 완성하는 예술가였다. 그들은 또한 사람들이 체감하는 공포를 통해 희열을 느끼며, 피해자의 유족을 우롱하고, 세상이 그리는(예상하는) 잔혹한 연쇄살인마를 만들어낸다.(범행은 그들이 저지르고 성범죄자나 그럴듯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함.)
앞의 두 예시는, 정말로 '악', 또는 '악마' 그 자체이다. '악마'라는 것이 정말 있는지 확실히 모르겠으나, 만약 존재한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여기에서 내가 생각한 내용은 "악마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이다. 이 명제는 우리에게 때로는 당연한 듯이 다가오지만 사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내용이다. 그렇지 않은가? 조두순 범죄자도 겉으로는 인상 좋은 아저씨에 불과했고, 모방범의 두 범죄자 또한 외면적으로는 잘생긴 젊은이와 부잣집 도련님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8mm를 살펴보면, 더 잘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8mm라는 영화에서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개인녹화영화(ucc와 비슷한 개념이다)를 빌릴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대여점에 가서 비디오를 빌려보았는데,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이다. 비디오에는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영화의 연출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사실적인 것이었다. 주인공은 석연치 않음을 느끼고 그 비디오의 제작자를 추적했고, 실제로 살인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범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아니, 평범하다기보다는 선한 사람에 더 가까웠다. 주말이 되면 할머니와 교회를 나가고, 그에 대해 물어보면 주위사람들은 칭찬을 거듭했다. 결국에는 주인공과 그 범인이 대면하게 되고, 주인공에게 말하는 범인의 대사는 "내가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을 줄 알았지?"이다.
그렇다. 악마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악마는 때로는 인상 좋은 아저씨의, 때로는 잘생긴 젊은이의, 때로는 선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조두순이 악마의 모습을 한 것이 아니라, 악마가 조두순의 모습을 한 것이다. 이렇듯, 악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빌려 그의 악한 일들을 수행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악마의 ‘그릇’ 즉, 하수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가능성을 어느 누구에게서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악마의 모습이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이는 직접적 살인과 같은 것으로만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마의 모습은 직접적 살인, 그러니까 자신의 손으로 한 사람의 숨을 끊는 행위. 그것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모두에게서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의도적으로 쓰는 기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의 글로 인해 무고히 고통받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가? 그가 악마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누가 단정 지을 수 있겠는가. 인터넷 댓글은 또 어떤가? 웹환경속에 숨어서 악의적으로 사람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는 치명적인 글 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자살을 기도하게 된다는. 그런 글을 쓰는 자의 모양새 역시 악마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집단 따돌림, 이지매, 나아가 집단폭행 및 살인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보자. 그런 일들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옆집 아저씨, 동네 선배인 것이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는, 사람의 탈을 쓴 악마가, 아니 악마의 탈을 쓴 사람이 빈번히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악한 일들을 자행하지 않아도, 우리는 아주 쉽게 악마의 모습, 즉 악마의 하수인이 될 수 있다. 참 무서운 일이다.
이제 그렇다면, 우리는 악마의 하수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법과 국가, 교육과 종교로 우리는 악마의 모습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러한 노력들이 충분치 않은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첫댓글 글 너무 잘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