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4.주일낮예배 설교
*본문; 사 43:1~3
*제목;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3) 서두르지도 포기하지도 마라!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사 43:1~3)
1.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2) 광야보다 더 힘든 가나안의 삶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을 세워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힘이 듭니다. 그러니 바른 믿음을 세워가기가 광야보다 더욱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가나안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광야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지만, 가나안에서는 믿음을 위해, 그리고 지정하신 땅의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광야에서보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못하다면, 다시 광야학교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하실 것입니다.
광야에서와 가나안에서의 하나님의 경험(하나님의 역사)는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하고 동일한 것은 그곳이 어디든지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광야는 그저 통과하는 곳이 아니다!
광야는 그냥 통과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빨리 통과해야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 광야에서 “가나안의 삶”을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광야로 쫓겨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의 광야를 만날 때, 그를 통해 “가나안의 삶”을 바로 준비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된 후에, 교만하여 지고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좇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광야의 삶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수년간의 광야생활(사울의 칼에 쫓겨다니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하며, “여호와를 목자 삼는 신앙”을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울과는 다른 위대한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고,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는 우리 인생과 믿음에 어쩌면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그는 애굽왕자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훈련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를 진정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만든 것은 광야에서의 40년 생활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이스라엘 200만이 넘는 인구들 통솔하며, 하나님과 그 광야를 통과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민 14:8’에 보면 광야를 가장 빨리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민 14:8)
여호와가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바로 “가나안”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잘 모르기에 광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명령을 좇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광야의 실제 거리는 2년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이스라엘은 40년이 걸립니다. 광야에서의 바른 삶(날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삶=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은 광야에서조차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가나안에서 그 족속들의 우상에 빠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결국 40년 광야생활이 끝나고 다시 더 긴 70년 바벨론포로기 광야를 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광야는 빨리 끝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 광야시기를 지나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바벨론 광야는 출애굽 광야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회당을 세웁니다. 성전은 이미 다 무너지고, 고향 땅에서 떠나왔기에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을 세워 오늘날 예배와 비슷한 형태의 영적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말씀생활이 회복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구전되어 오던 모든 성경을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이 구약성서는 이 시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이후 이들은 다시 가나안에 복귀하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다시 살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광야를 너무나 잘 보낸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 힘들 때, 영적 부흥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자녀들에게 광야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광야에 있다고 생각될 때,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포기하지도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할 지를 생각하고 준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가나안을 열어 가실 것입니다.
‘사 49:14~15’입니다.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49:14~15)
우리가 이렇게 광야를 지나고, 가나안을 준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우리를 잊지 아니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아멘!
케서린 마샬이 쓴 “기도의 모험”이란 책에 보면 한 성도가 등장합니다.
그는 너무도 많은 인생의 문제로 인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응답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응답이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죽을 만큼 힘든 상황인데도, 하나님은 그냥 태연하게 기다리라고 하시니 답답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잠잠히 기다립니다.’
결국 3일이 지난 후에, 모든 복잡한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되어지는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그는 이 때, 예수님의 무덤의 3일이 부활하신 사건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감사하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무덤의 시간 3일을 기다렸더니, 부활과 같은 은혜의 응답을 주셨다!” 아멘입니다.
믿고 맡기고, 3일만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광야 중에 가장 힘든 광야는 “사람 광야”입니다. 사람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이 가장 힘이 듭니다.
임동수 선교사의 “녹슬지 않고 닳아 없어지길 원합니다”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파라과이에서는 가축들을 거의 완전한 방목으로 키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낮에는 거의 모든 가축들이 집이 없는 것처럼 떠돌아다닌다고 합니다. 하지만 밤만 되면 기가 막히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못 돌아가는 짐승이 있습니다. 바로 “양”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교사가 보니 아주 특이한 동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염소”입니다. 나뭇잎을 먹기만 할 뿐 아니라, 이 염소들을 나무의 밑둥까지 갈아먹고, 나무를 올라타고 해서 결국 나무를 죽인다고 합니다. 양들에게도 자꾸 들이받아 양들이 흩어지게 합니다. ‘사람 광야’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는 이 염소(사람광야)가 아닌가?’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염소 때문에 한 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양들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초지로 옮겨 새로운 풀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사람 광야를 허락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를 통해 나를 성찰하고, 나를 바로 더 세워 가면, 염소(사람 광야)로 인해 더 주님 뜻을 알게 되고, 주님과 더욱 더 가까이 가게 될 것입니다.
광야를 만날 때, 서두르거나 조급해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가나안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간을 주신 이유입니다. 이를 통해 더 큰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광야이든 사람광야이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스스로 성찰하고, 나를 바로 더 세워 가서 더 주님 뜻을 알고, 주님과 더욱 더 가까이 하게 하시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야를 만날 때, 서두르거나 조급해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가나안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간을 주신 이유입니다. 이를 통해 더 큰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