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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모래무지
김 정 한
학장실에서 돌아온 이 교수는 벌써 몇 개째의 담배를 태웠는지 자기도 미처 기억하지 못한다. 담배를 문질러 끈 왼편 엄지와 집게손가락 끝이 마치 알콜 불에 그을린 시험관 밑둥치처럼 구지레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그저 초라하다기보다 차라리 영양실조에 가깝다 할 만큼 노르께한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어떤 불안감마저 감도는 기색이었다. 그러니까 오십 세란 나이답잖게 껍데기뿐인 이마에 송알송알 내번지고 있는 땀방울도 한갓 그날의 무더위에서 오는 생리적인 현상만은 아닌 것 같았다.
원래 말이 적은 그인지라, 여느 때같이 수인사만 하고 실험실로 들어간 조교가 넘겨짚듯이, 그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마 그날 아침 학장실에서 있은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나라의 교수란 약한 존재였으니까.
“이 선생님, 딱한 일이 하나 생겼어요.”
이 교수를 닮아 역시 야위디야윈 엄 학장은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데요?”
이 교수는 며칠 전에 난 신문기사 관계로 얼핏 짚이는 데는 있었지만 그저 태연한 얼굴을 지어보였다. 그는 얼마 전 어떤 수산 관계 잡지에 해수오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일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어떤 일간지에서 소개하면서 어패류에 미치고 있는 영향 같은 것을 꽤 크게 다루었었다.
“문교부에서 이 교수의 논문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크게 보도된 데 대해 말썽이 된 것 같아요. 그 일에 관한 이 교수의 시말서를 받아 올리라는군요.”
“제 논문에 무슨 잘못이 있었다는 겁니까?”
“글세요…… 그보다 내 추측에는 아마 문교부의 허가없이 발표했다는 걸 문제삼는 것 같은데…….”
“학문하는 사람이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데 무슨 놈의 허가가 필요합니까? 그런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 또 있습니까? 신문이 학술 논문의 골자를 소개하는 건 신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일 테고…….”
이 교수는 대수롭잖게 받아넘겼던 것이다. 그 자리에선 오히려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자기 전공 분야에 관한 것 이외에는 극히 일반적인 상식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가령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무슨 식의 민주주의 같은 건 거의 모르고 지내온 위인이었다.
“그러나 명령인걸요. 그저 간단히 써내시지요. 사실대로.”
엄 학장은 동료로서의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못 쓰겠습니다. 차라리 학술지에 실린 저의 논문을 찢어 없애라시오!”
이 교수는 누가 다시 말 할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딱 잘라버리고 돌아섰다.
‘재수없이 출근 벽두부터 시말서라니·…·시말서를 안 내면? …….’
이런 찝질한 생각은, 학장실을 나와 자기 연구실에 올 때까지는 물론이고, 연구실에 들어선 뒤에도 내처 어떤 불길한 그림자처럼 그의 머리에서 가시지 않았다.
비좁은 연구실 창문들을 모조리 활짝 열어제치고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다행히 애들 노리개감 같은 조그만 선풍기가 책상 한 귀퉁이에서 제법 왱왱거린다. 자기 집에서 갗다둔 거다. 전기가 덜 소비되는 게 특색 이랄까. 그래도 고놈의 바람에 담배 연기가 숫제 맴을 돌면서 창 밖으로 솔솔 빠져 나갔다.
이 교수는 묵묵히 그 담배 연기를 쫓기라도 하듯 이날따라 시선을 내처 창 밖으로 떨구었다. 그의 멍청한 시선이 닿는 우중충한 바다 위에는 ㅌ철강에서 내뱉는 시꺼먼 매연이 계속 내려깔리고 있었다.
“죽음의 바다여…….”
내처 다물고만 있던 이 교수의 입에서 별안간 이런 불길한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곁에서 듣는 이는 없었다. 갑자기 괄레스티나 부근의―생물이 서식하지 못한다는 ‘죽음의 바다’라는 함수호를 연상했음인지, 아니면 그가 봉직하고 있는 바로 대학 앞 바다를 두고 즉흥적으로 중얼거린 것인지 알 길이 없다. 그의 얄팍한 입술은 약간 안쪽으로 말려드는 듯하더니 다시 한일자로 굳어졌다. ㅌ철강에서 내뱉는 또 한 무더기의 매연이 마치 사진에서 보는 원자 구름처럼 바다 위를 뒤덮는다.
“제기랄…….”
이 교수는 그 무더기진 매연 자락이 마치 자기에게까지 미쳐올 것을 두려워라도 하듯 제법 육중한 의자 등에 상반신을 젖힌다. 그러나 몸이 워낙 홀쪽하기 때문인지 상체가 의자 등의 반도 채 채우지 못하는 꼴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뒤로 젖혀보아도 그의 육체에서 어떤 위엄을 느끼기는 어렵다.
“송 군! 그 탁도 그래프 좀 가져와봐.”
이 교수는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실험실 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보통 때보다 약간 언성이 높았다.
조교인 송 군은 곧 신문지 한 장만한 탁도 그래프를 들고 왔다. 스승을 닮아선지 그도 별로 표정을 지을 줄 모른다.
“어제 조사한 결과는 표시했을 테지?”
“예.”
하고 지적을 하려니까,
“좋아. 두고 가게.”
하였다.
조교가 돌아가자, 이 교수는 보나마나란 표정으로 탁도 그래프를 흘끗 보고는 이내 밀쳐버렸다.
“사십오 센티미터!”
투시도 실험에 의한 학교 앞 바다의 수질 조사 결과다. 벌써 45센티미터 밑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바닷물이 오염되어 있다는 거다. 지난달보다 20센티미터나 더 혼탁해진 셈이다. E철강이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 탓이리라.
“송 군!”
이 교수는 다시 조교를 불렀다. 여느때와는 달리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송 군이 나타나자,
“모래무지는 아직 살아 있지?”
“예.”
“가져 와보게.”
송 군은 실험실로 되돌아가더니 곧 엊그제 잡은 모래무지가 들어 있는 유리 어항을 들고 왔다. 모래무지란 놈은 원래 강이나 강물이 흘러들어가는 바다바닥에 착 붙어서 사는 놈이지만 허리뼈가 이상하게 굽어진 채 내처 물 위로 고개를 내밀려고 야단이다. 물론 공장들의 폐수로 인한 해수 오탁과 산소 부족이 원인이리라.
‘제에기 내 시말서 대신 이놈을 문교부에 보내랄 걸 그랬지!’
이 교수는 웃음이 피식 나왔다.
“강의는 셋째 시간이지? 인산염에 관한 걸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해 주게.”
조교가 돌아가자, 이 교수는 물 위로 자꾸만 고개를 치밀며 발딱거리는 곱사등이 모래무지의 아가리짬을 핀셋 끝으로 콕콕 건드려본다. 그저 장난치는 기분이 아니다.
“죽어라 죽어! 기업 제일이다. 경제 제일주의다!”
남이 싫다는 공해 산업을 마구 끌어들이든지 어쩌든지 간에 우선 기업만 잘되면 고기 아니라 사람들이 마구 병들고 죽어가도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대한 일종의 반발인 듯싶었다.
오 년 전만 해도? …….
이 교수는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매연이 덮치고 공장 폐수가 흘러드는 지금과는 달리 물이 깨끗한 아름다운 바다가 아니던가.
형용사 같은 걸 싫어하는 이 교수였지만 명사십리란 말만은 과히 귀에 거슬리지 않게 들릴 정도로, 그가 곧잘 거닐던 그곳 모래밭은 정말 깨끗했었다. 그러니까 지금쯤이면 바다며 모래밭에 해수욕객 이 한참 득시글거린 무렵이다. 그는 일에 지칠 때는 곧잘 연구실에서 나와 그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돌아오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학교 건너편 바로 남천내 어귀에 철강이 들어서고부터는, 거기서 밤낯없이 내뿜는 매연과 폐수로 말미암아 바다와 모래밭이 온통 불그레한 구정물과 그을음 투성이로 변하고 말았다. 여느 때처럼 해수욕객들이 찾아들지 않는 더러워진 바다에는 기껏 철딱서니없는 변두리 애새끼들이 삼삼오오 오리새끼처럼 동동 떠 있을 정도로, 국민소득이 엄청나게 뛰어올랐다고 떠들어대도 물이 나간 갯벌에는 쇳내 기름내가 퀴퀴하게 배인 바지락조개 따위라도 줍지 않으면 그날그날의 끼니를 제대로 이어가기 어려운 가난한 아낙네들의 그림자가 흡사 판자집 울타리에 너절하게 걸려 있는 누더기처럼 여기저기 더러 눈에 뜨일 따름이다.
‘공장이 섬으로 해서 잘살게 된 사람들은?’
이 교수는 뒤퉁스럽게 이런 생각까지 해본다.
그러나 학교 실습장이 가까운 곳에 공해 산업이 되기 마련인 제철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던 오 년 전 일이 문득 생각났다. 교수들은 맥빠진 상통들을 하고 그저 슬슬 눈치만 살피는 쪽이었지만, 학생들은 연일 성토대회를 열고 반대 데모를 들이댔다. 주동인물로 지목된 학생들이 계속 경찰에 끌려갔다.
그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아직 종합대학에 속해 있었던 관계로 본교에서 나타난 총장은 몹시 화를 냈다. 수산 실습장을 없애버려도 좋다는 당국이나 제철 회사의 처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교육과 교육 환경을 파괴하는(이 교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국이나 공장 건립을 강행하려는 회사측의 태도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대해 도리어 불뚱이를 내었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학문을 연구하는 데여. 학생들의 본분은 공부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돼. 데모가 머여 데모가! 데모는 불순분자들이 조종하는 거여. 그걸 알고서 날뛰란 말여! 그러니까, 에 또, 내일의 번영을 위하여 지금 경제 제일주의를 택하고 있는 국가 정책을 무시하고 공장건설을 방해하려고 드는 것은…….”
바로 이적 행위라고 못박았다. 은근히 학생들의 동태를 방관하는 듯한 교수들까지 한데 묶어서 으르는 말눈치였다. 그의 흥분은 점점 더해갔다. 땀에 밀려서 내려오는 안경을 연신 밀어올리면서 볼멘 소리를 계속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국가가(그는 정부라고 해야 될 경우에도 꼭꼭 국가란 말을 즐겨 썼다.) 강력한 정책 수행을 하는데 있어서 반대하는 대학 하나쯤 폐쇄하는 건 그리 문제시되지 않는다는 걸 깊이 명심하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역시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 총장다운 말솜씨랄까. 그리고 어떤 분이 보면 매우 애국적이라 할 만큼 제법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까지 진정을 하러갔으리라고 들었는데 돌아와서 하는 소리가 기껏 저 꼴인가? 대학 총장이 아니라 철강 회사 앞잡이다!”
교정이 차게 모였던 학생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일부는 이미 스크럼을 짜고 교문을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무장 경찰기동대를 이겨낼 힘은 없었다. 무기와 맨주먹은 처음부터 얘기가 되지 않는다.
드디어 학교 바로 건너편에 거대한 모습의 공장은 서고, 예측한 대로 가동과 동시에 무덕지게 내뱉는 매연과 폐수로 바다는 여지없이 오염되어, 수산 방면에서는 유일을 자랑하는 대학의 유일한 실습 시설은 절로 못 쓰게 되어버렸다.
“망했다, 망했어!”
이 교수는 그지 그렇게 중얼거렸을 뿐이다. 교육과 산업 어느 것을 희생시켜야 되는 것인지, 이 교수로서는 얼른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당국에서 말하는 소위 ‘산학 협동’이란 것도 무엇인지 그의 상식으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이 교수가 ‘해수 오염 이 어패류에 미치는 영향’이란 연구 과제를 택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거의 오 년간 강의 이외의 시간과 방학 기간마저 희생하고 심지어 자비까지 써서 전국 주요 항구 도시를 돌아다니듯 해가며 백 여 종류의 어패류를 채취 연구한 결과가 오늘에 와서 시말서를 내라는 꼬투리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는 짓들이 어찜 교수직을 박탈할는지도 모르지 ? ’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자 그는 다가오는 시간의 강의 준비보다 심심풀이로 읽다가 던져둔 소설책을 펴보았다. 어떤 외국의 여류작가가 공해를 소재로 해서 쓴 ‘복합오염’이란 소설이었다. 그러나 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외국에서는 불알 안 달린 여류 작가들조차 이런 걸 다루고 있는데 우린!’하는 생각이 자꾸만 앞질렀다. 웬일인지 속이 한 번씩 메스꺼위졌다.
공교롭게도 마침 그때 그의 방에 들른 것이 학생들로부터 갈피리란 별명을 받고 있는 학생과장 손이었다. 조교 송 군의 말에 의하면 윗사람에게 착착 잘 빌붙는 그의 성미가 여울을 잘 타고 놀아나는 갈피리 같은 데서 온 별명이라지만, 이 교수는 항상 반듯하게 갈라붙인 그의 머리털의 숱 많은 쪽이 갈피리란 물고기의 등지느러미처럼 불쑥 치솟은 것도 원인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건 어떻든, 그가 몇 년 전 데모 때 우산으로써 학생을 내려갈긴 게 공로로 인정되어 당장 학생과장의 보직을 받았다는 풍문도 있고 해서 이 교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안녕 하세요. 언제나 바쁘시군요?”
이런 말을 하며 가까이 오는 갈피리를 이 교수는 심상치 않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수업이 끝난 둬도 아니니까 더욱 그러했다.
아니나다를까, 갈피리는 바투 다가앉더니 뜻밖에 엉뚱한 소리를 했다.
“본교 총장님도 이 교수의 일을 무척 걱정하고 계시는 모양인데, 좋게 시말서를 써내시죠. 그걸로써 일은 끝날 것 같은 모양인데 괜히 버티다가 도리어 말썽이 될까 해서.”
딴은 이 교수를 위해서 하는 말눈치 같았다. 학장으로부터 무슨 말을 들은 모양일까.
“걱정을 해줘서 고맙소만 시말서는 안 내기로 결심을 했소. 낼 건덕지가 없잖아요? 내가 낸 논문에 무슨 잘못이 있었다면 모르거니와·…·그렇잖아요, 손 교수?”
학생과장이면 학생들의 동태나 열심히 살필 일이지 이런 일에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이 교수는 달갑잖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그렇지만.”
“아니 그보다 도대체 누가 무슨 고자질을 했기에 여태까지 가만있던 문교부가 갑자기 그러는 겁니까? 그 논문이 발표된 게 언젠데요? 손 교수는 그런 걸 잘 알아맞추는 편이니까 그거나 좀 알려주시오.”
이 교수는 갈피리의 말을 자르듯 하고 물었다.
“그걸 전들 어떻게 압니까? 얼핏 들리는 말로는 무슨 활선어 수출 단체라든가 하는 데서 수산청에 항의를 했다던가요. 이 교수의 논문 골자가 최근 신문에 소개된 이후라지만, 그 때문에 일본과 미국에 잘 나가던 생선묵의 수출에 큰 지장이 오게 됐다 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수산청에서 말썽거리가 되다가 잇달아 문교부에도 벼락이 떨어진 게 아닌가 짐작되더군요. 능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겠지요. 외화 획득에 지장을 주게 되니까요.”
듣고 보니 딴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정보에 민첨한 위인인지라 어디서 냄새를 제법 맡은 모양 같았다. 학장들보다 오히려 윗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깝다는 편이니까 그런 분들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유리한 정보라도 귀띔해준 듯이 그 납작한 얼굴에 자신 만만한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것을 보아서 그저 자기 나름대로의 추측이 아닐 것만은 짐작이 갔다. 눈이 다람쥐 눈처럼 반짝거리는 걸 보아서도.
“이런 사람들 말입니까? 불을 지른 양반들이?”
이 교수는 보다가 던져두었던 그날의 신문을 밀어주었다. ‘전 현직 공무원 밀수 관련 혐의’란 주먹 같은 타이틀 아래 뻔지르르한 직함을 가진 양반들이, 자기들의 책임인 밀수 방지를 하긴커녕 도리어 일본 이즈하라를 근거지로 한 밀수 특공대들과 짜고선 활선어 수출선을 이용해서 엄청난 밀수행위를 해오다가 꼬리를 잡힌 기사가 능글능글한 사진들과 함께 사회면 톱을 장식하고 있었다.
학생과장 손 교수는 안 볼 걸 보기나 한 듯이 타이틀만 힐끗 훑어볼 뿐, 내용은 읽어보려고도 않고서,
“역시 이 교수님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하며 신문을 이 교수에게 도로 밀어주었다. 어천만사에 대해 야불야불 잘 지껄이는 성미이면서 그런 일들, 가령 소위 거물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부정행위라든가 사회적 부조리 같은 것엔 거의 흥미를 갖기를 꺼리는 편이다. 그러니까 이 교수가 그에게 신문을 밀어준 것은 결과적으로는 응당 무슨 냄새를 맡으러 왔을는지도 모르는 갈피리의 입을 용케 막은 셈이 되었다. ‘역시 ’란 말의 서두가 약간 아니꼽기는 했었지만, 이 교수는 그저 웃는 얼굴로써,
“자, 갑시다. 나 지금 강의 시간이 돼서…….”
하고 의자에서 일어셨다.
“일부러 와주셔서 고맙소.”
이 교수는 이런 수인사까지 덧붙이며 숫제 상대방의 등에 손을 덴 채 연구실을 나섰다. 그러한 사람은 그렇게 다루어야 된다는 듯이.
골마루 끝에서 손 교수와 헤어진 뒤 이 교수는 약간 슬퍼졌다.
‘아직 나이도 젊은 사람인데…….’
그날 오후에도 이 교수는 내처 자기 연구에만 꾹 처박혀 있었다. 점심도 식당에 가기가 싫어서 시켜다 먹었다. 시말서 운운하는 얘기를 들은 몇몇 동료 교수가 위로 겸 찾아와서 술이라도 한 잔 하자고 권유를 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혼자서 조용히 생각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시말서를 안 내면?…….’
아무래도 귀추를 판단할 도리가 없었다. 시말서를 요구하는 그 자체부터가 벌써 상식 밖의 일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
지금 와서 새삼스레 동기가 불순했다고 고자질을 하거나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 교수가 해수 오염이 어패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게 된 것은 순수한 학자적인 양심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그는 우선 가까운 학교 앞 바다의 수질 검사부터 시작했다. 매연과 공장 폐수로 말미암아 바닷물이 어느 정도 오염 되었나? 어패류의 서식에 지장을 주는 카드뭄, 수은, 동, 납 같은 중금속 성분이 얼마나 용해되어 있거나 혼합되어 있는가? 시일이 흐름에 따라 어느 정도 오탁도가 심해가는가를 직접 투명도에 넣어서 측정해보았다.
그의 연구실에 비치된 분액 깔대기에는 노상 우중충한 바닷물이 채워져 있었다. 강의가 끝나면 수시로 거기에 갖가지 유기 용매량 시약을 넣어서 실험을 해보았다. 그 분액 깔대기의 침전물을 다시 셀로 옮기고는 분광 광도계에 걸어서 흡광도를 잰 다음 그 농도에 따라 함유된 물질량을 계산했다. 그 결과, 예측한 대로 중금속 성분이 상당히 많이 검출되었다.
한편 뼈가 휘어서 곱사등이가 된 모래무지를 비롯해서 다른 어패류도 전기로에 집어넣어 재로 만든 다음, 같은 방법으로써 중금속 성분의 함유 여부를 세밀히 조사해보았다. 물론 다른 지방에서 채취해온 어패류에 대해서도 같은 실험을 했다.
귤, 꼬막 등이 떼죽음을 했다는 무슨 공업단지 근해의 어패류에선 수은, 카드뮴, 구리, 납 같은 중금속 성분이 더욱 뚜렷이 검출되었다.
이러노라고 자비를 써가며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먹지도 않을 생선들을 사오는 이 교수를 볼 때 조교 송 군은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다.
“선생님, 그렇게까지 하시잖아도 되잖겠어요? 한두어 군데 것만 해도 될 텐데요…….”
“안 돼! 확증을 잡지 않고 했다가 용왕님에게 혼나게?”
이 교수는 좋은 재료를 가져온 듯이 회심의 미소를 보이면서 이런 농담까지 했었다.
“용왕님이라구요?”
송 군도 마주보고 웃었다.
“못 하는 일이 없는 용왕님도 몰라? 빨리 저놈들을 건조기에 집어넣으라구.”
이 교수는 행동이 조금 느린 송 군을 재촉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거의 오 년간 연구한 결과가 엉뚱한 곳에서 말썽이 된 것이 그의 논문 내용이었다.
이 교수는 기업과 활선어 수출 사업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는 애당초 요만큼도 가지지 않았었다. 그의 연구 목적은 차라리 현대의 기술 사회, 산업사회의 공해 속에서 생물과 인간이 억울하게 입고 있는 피해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데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판단일 것이다. 그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선의로 이루어진 그의 연구 논문이 발표된 지 몇 달이 지난 뒤에야 괘꽝스럽게 학자의 양심에 상처를 주는 시말서 감이 되다니? 이 교수는 아무리 고쳐 생각해보아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출 부진의 말썽 속에서 오비이락 격으로 파생된 일인 것만 같았다.
학장이 재차 불러서 권했을 때도,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시말서는 못 내겠어요. 학장도 과학도가 아닙니까? 진리를 거부하는 것이 학자의 양심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어용 교수는 되기가 싫습니다.”
오히려 학장의 태도를 공박하는 듯한 말까지 했다. 몇몇 활선어 수출업자들의 농간질에 학자가 시말서를 써 바쳐야 된다는 것은 희극치고도 구역질나는 희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이 교수의 그와 같은 고집을 묵인하지는 않았다. 할 리가 만무했다.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교수 따윈 곱사등이 모래무지처럼 만드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셈이랄까, 결국 이 교수로부터 시말서를 받아올리지 못한 엄 학장은 학장직 사표를 내게 되고, 당자인 이 교수는 ‘교육 공무원 특별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었다. 동시에 교수들을 겁주기 위해선지 그러한 소식이 각 일간 신문에 일제히 크게 보도되고, 뒤미처 이 교수에게는 징계 위원회 출두 명령서가 전달되었다.
학장으로부터 징계 위윈회 출두 명령서를 받은 이 교수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사표까지 내셨다지요?”
“괜찮습니다. 그까짓 학장직쯤이야·…·그보다 서울 가실 땐 진술서나 잘 만들어 가십시오. 간대도 파면은 못 시킬 겝니다.”
엄 학장은 학장직을 그만둔 데 대해서는 오히려 한시름 놓은 듯한 담담한 태도로서, 이 교수를 격려하는 말눈치만 보였다. 이 교수는 그러한 엄 학장의 태도에서 제법 흐뭇한 학자적인 동료애를 느끼기까지 했다.
자기의 연구실로 돌아온 이 교수는 행여 진술서의 참고자료가 될까 싶어 자기가 만든 해수의 탁도 그래프와 기형어 표본들을 몇 개 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이 꼴을 눈으로 보고서도?…….’
징계 위원이란 사람들은 뭐라고 할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정작 서울행 급행열차를 탈 때는 별안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공무 출장이 아니고 벌을 받기 위해 징계 위원회에 호출을 당해간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일까? 그것도 자기가 데리고 있는 조교 송 군의 어두운 얼굴을 대하고부터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때 같으면 대학 교수의 국내 여행 땐 개미 한 마리도 배웅을 나오지 않는 법이니까.)
“잘 다녀오세요.”
하는 송 군의 말이, 무사히 다녀오기 어려운 것을 미리 염려하고 있는 수인사 같게만 들렸다.
아무튼 이 교수가 징계 위원회에 출두하는 날은 아침부터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 아내의 얼굴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조교 송 군의 표정도 어둡기만 했거니와 그가 자리를 잡은 열차 안이 공교롭게도 또 일본인 여행객들이 많은 칸이었다. 그저 관광객인지 아니면 이 땅에 투자를 하기 위해 찾아든 사람들인지는 모르되 숫제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걸 보게 되자, 이 교수의 마음은 더욱더 어두워지기만 했다. 일제 때 학병에 끌려가 고생하던 일이 생각나서만이 아니었다. 그들만 보면 이내 산업공해의 으뜸이란 ‘6가 크름’을 연상하게 마련인 이 교수였던 것이다.
‘육가 크름, 육가 크름!’
이 교수는 몇 번인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공공연하게 ‘기아 임금’이란 말로써 표현되고 있는 한국 노동자들의 값싼 품삯을 기화로 삼아, 전체 외국인 투자의 70퍼센트에 가까운 공해 산업을 이미 이 땅에 들여왔고, 최근 몇 달 동안 출원된 공업 소유권만 해도 한국인의 세 배나 된다는 일본인들이고 보면, 그러한 산업 공해 가운데에 가장 무섭다는 ‘6가 크름’을 연상하는 것도 이 교수로서는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산업 공해를 막기 위한 연구 논문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징계의 대상이 되어 불려가고 있다는 아이러니컬한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이 교수는 그들 일인들 앞에 얼굴을 쳐들기조차 쑥스러웠디. 왜 우린 이런 저자세를 감수하지 않으면 아니되는가?
‘지지리 못난 것들!’
이 교수는 다시 자학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물 밑 모래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서만 사는 모래무지 같은 느낌이 절로 들었다. 한시바삐 그 따위 차칸에서 빠져나갔으면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징계 위원회가 소집되고 있는 중앙청 출입구에서도 또 한 번 어리둥절했다. 집에서 총총히 떠나오느라고 공무원증을 깜빡 잊어먹었던 것이다.
“쳇, 이러니까 남들이 얼뜨기라고 하지!”
그는 얼굴이 약간 붉어질 정도로 당황했다. 공무원증을 못 가진 사람들은 중앙청 출입이 조금 까다롭게 되어 있다. 회의 시작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었다.
교수 생활 십여 년에 중앙청 출입이라고는 처음인 이 교수는 우선 그 웅장 거대한 건물에 기가 질렸거니와 출입 수속을 취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안내원이 가리켜주는 곳으로 찾아갔더니,
“어느 부처에 가실 건데요?”
안에서 이상한 눈으로 내다보았다.
“문교붐니다.”
“용건이 무엇 입니까?”
별걸 다 묻는다 싶어서,
“이겁니다.”
하고 뒤퉁스럽게 징계 위원회 출두 명령서를 꺼내보였다. 그는 이런 데서 흔히 쓰이는 ‘적당히’란 방법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런 촌뜨기 짓을 해가며 겨우 수속을 마치고서 받은 출입증을 앞가슴에 달았을 땐 가벼운 한숨까지 나왔다. 마치 나일론 끈에 팔목이 묶여 어느 외국으로 떠나가는 고아 같은 느낌이 문득 들기도 했다.
어떤 판결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문교부 차관실은 그 맘모스 빌딩의 훨씬 위쪽에 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도 얼른 모르겠고 해서 그는 걸어가기로 했다. 진술을 하랄 때 내보일 참고문이 든 가방과 대견스럽게 가져온 탁도 그래프를 두 손에 나눠든 채, 하나하나 열심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이 교수의 뒷모습은 마치 공해로 말미암아 등뼈가 굽어진 모래무지같이 보이기도 했다.
ㅡ 1976년
2016년 12월 2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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