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로렌체티,
<성모님의 탄생>, 1333, 패널에 템페라,
이 탈리아 시에나 대성당 부속 미술관
성모님의 부친인 성 요아킴 과 모친 성 안나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 주부터는 성 모 마리아와 관련한 명화들 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모 마리아는 성미술의 꽃 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지 고 또 그려졌으며 주제는 탄생부터 승천에 이르기까 지 다양하다.
그 첫 번째로 성모님의 탄생이 있는데 예 수님의 탄생이 마굿간이라 는 초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모님의 탄생은 화가가 속한 당대의 아름답고 호화로운 저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에나 출신의 화가 피에트로 로렌체티가 그린 ‘성모님의 탄생’은 이 주제의 대표작에 속한 다.
시에나는 토스카나 주에 속한 아름다운 중세 도시로서 정치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14 세기에는 피렌체와 라이벌 관계를 이룰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바로 이 무렵 예술적으로 도 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배출하였는데 피에트로 로렌체티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피에트로의 대표작에 속하는 ‘성모님의 탄생’에 관하여는 1335년 11월에 기록된 한 문헌에 “성 사비노 그림을 위해 피에트로가 금화 30피오리노를 받았다”라는 문구가 남아있다.
즉 이 그림은 시에나의 대성당 안에 있는 성 사비노 제대에 모셔진 제단화로서 주문자는 세냐 디 리노라는 사람으로 시에나 주정부의 주요 인물이자 부유한 은행가였다.
이 작품이 제작된 14세기는 양식사적으로는 고딕 시대에 속한다.
고딕은 중세의 관념적인 성화에서 벗어나 화가들이 현실에 관심을 돌려 세속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시작했던 시기 이다.
그림은 세 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과 오른쪽은 성모님이 탄생한 방 안이며, 왼편 은 방과 붙어있는 대기실이다.
방 안의 전경을 보면 성모님의 어머니이신 성 안나가 몸을 막 풀고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원근법에 의해 깊이감이 느껴지도록 그려진 체크무늬의 침대보는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화가에게는 자신의 회화적 능력을 보여줄 절호의 모티프로 쓰인 듯이 보인다.
침대 아래에는 갓 태어난 아기를 씻기는 두 하녀가 보인다.
한 여인은 아기를 안고 대야의 물 온도를 조절하고 있고, 다른 여인은 물을 붓고 있다.
이들의 바로 뒤에는 붉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서 있는데 손에는 파리채 같은 것을 쥐고 있다.
재미 삼아 등장한 이 제3의 인물은 그 야말로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그림의 전개상 감초역할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뒤에 있는 깨끗한 수건과 필요한 물품이 들어있는 광주리를 들고 있는 여인들 역시 그림에 꼭 필요한 인 물은 아니지만
일종의 엑스트라로서 이런 인물들을 도입은 이 그림이 이전의 딱딱한 중세식 그림에서 탈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역시 그림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는 요소로서 화면 왼쪽에는 아내의 출산 중 방에는 들어오 지 못한 성 요아킴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한 아이로부터 아이의 출산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방, 가구, 세숫대야나 물동이와 같은 오브제,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의상은 정성껏 치장된 서 양 사극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성모님이 양갓집 규수였다는 점에서 착안된 ‘성모 마리아 의 탄생’이라는 주제가 이 화가에게는 그림의 장식미를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것 같다.
이후에 그려진 수많은 성모님의 탄생이 한결같이 이 같은 인물들로 구성된 것을 보면 이 한 점의 그림이 후대에 미친 영향이 놀랍기만 하다.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 (가톨릭 신문 2009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