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화엄경] <12> 광명각품(光明覺品)
광명을 비추니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다
중생 교화하는 ‘무한한 방편’
10가지 능력·대비실천력으로
부처님 안목 가질 수 있게 해
제9품인 광명각품(光明覺品)은 광명을 놓아 모든 이들을 깨닫게 하는 품이다. 지혜의 광명으로 어리석은 우리들의 삶을 환히 밝혀주시는 부처님에 관한 내용이다. 광명 속에서 부처님을 만나면 불행이 사라지고 행복을 만날 수 있다는 말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깊은 뜻은 바로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함이니 이것은 부처님의 의무다(意業-意密). 그렇게 부처님은 광명을 통해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는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때 세존이 두 발바닥에서 백억 광명을 놓아 지상의 삼천대천세계를 골고루 비추시었다. 이 세계에서 백억의 보살의 탄생과 출가와 정각을 이룸과 법륜을 굴리고 열반에 드시는 것을 비추셨다. 그리고 천상의 모든 것들이 다 환하게 드러나니 깨달음의 광명(光明覺)이 보리도량에 모인 모든 보살들과 천신들을 다 깨달음의 안목으로 보게 만들었다.
문수보살이 찬란한 광명을 바라보자 저절로 부처님의 지혜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블랙홀로 들어가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할 정도로 세상 모든 물질들이 그 광명 속에서 낱낱이 분해되고, 알 수 없었던 모든 일들이 샅샅이 드러나고 있었다. 문수는 한 순간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사방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모든 관계가, 그물처럼 얽혀져 흐르는 것이 큰 폭포처럼, 강물처럼 흘러 인연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었다. 문수는 거기서 어머니도 보고, 그리운 사람들과의 인연도 보고, 나를 길러준 스승들도 보이고, 가슴 아프게 한 이들도, 문수의 삶에서 함께 했던 수많은 인연들이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어둡고 먼 공간속까지 부처님의 광명이 비추면 그곳에서 수많은 인연들의 관계가 다 보였다. 문수는 이 아름다운 광명을 보면서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곁으로 부처님과의 인연의 강이 또 흘러가고 있었다.
부처님이 탄생하고, 성장하며, 출가하고, 정각을 이루며, 법륜을 굴려 중생을 제도하고, 열반에 드시는 일생이 영화처럼 순식간에 펼쳐지고 있었다. 총명한 문수는 번쩍 드는 생각이 있어서 눈을 돌려 사방을 둘러보니 한 부처님의 일생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수백억의 부처님들 일생이 허공을 가득히 펼쳐지고 있었다. 문수는 이 찬란한 광명 속에서 깊고 넓은 부처님의 세계를 보며 부처님을 향한 믿음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행복을 느꼈다.
“아! 부처님이 한 분이 아니시구나, 모든 이들이 부처님이로구나.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랬구나.” 그때 시방에서 온 모든 보살들이 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수는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해, 부처님의 위대한 신통력에 대해, 법성(法性)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부처님의 광명이 문수보살을 환히 비추니 예전엔 볼 수 없었던 거룩하고 고요한 평온이 얼굴에 피어올랐다. 바로 부처님의 모든 위신력을 이해하고 깨달음에 대해 알게 된 이의 모습이었다. 문수보살이 대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게송을 노래 부르자 온 세상, 만물들이 다 같이 평온해졌다.
중생에게는 늘 타오르는 목마름 같은 병이 있으니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은 바로 3가지를 다스리는 일이다. 마음을 다스리라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받자마자 모두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이 평온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집착한 중생을 구하고, 지옥, 아귀, 축생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구하고, 삿된 견해에 빠진 이들을 구하는 큰 가르침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문수보살은 이들을 향해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무한한 방편의 힘과 10가지 위대한 능력과 대비의 실천력의 세계를 보여주며 중생의 안목을 버리면 바로 부처님의 안목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생은 지혜가 없어서 애착의 가시에 항상 상처를 입나니, 그들을 안타까이 여기시어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이치를 보여 스스로 알게 하여, 고통을 여의고 행복한 삶을 만들도록 하심은 세상의 모든 부처님들이 하시는 일이다.”
[불교신문338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