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 16회 동기생
항상 봐도 즐겁고 얼굴에 웃음이 묻어나는 따뜻한 친구들. 오늘은 대구의
김 춘자와 부산의 홍 말남이 덕분에 갖는 즐거운 야유회 날이다.
우리가 학교 다닐때 소풍 가는 날을 기다리듯이 많은 친구들이 몇일전부터
밤잠을 설치면서 기다리든 오늘인 것이다.
이제는 모임이 있다는 엽서만 보낼 뿐이지 참석을 권유하는 전화를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서로가 얼굴을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것은 모두가
똑 같은 마음이며 못가는 친구들은 모두 그만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08:00의 대구 달성공원앞.
이제는 우리가 달성공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모이는 장소도 공원앞의
왼쪽 입구로 정해져 있다. 이른 아침의 그곳에는 이동식 커피점도 있고
콩국을 파는사람도 있으며 아침 일찍 공원에 산책나온 사람들과 온갖 물건을
파는 사람등 많은 사람들이 있다.
늦게 도착한 친구들이 일찍온 친구들에게 웃음띤 얼굴로 일일이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친구의 체온을 느껴 보는것도 큰 즐거움이다.
혹시라도 이병조나 서영희 같이 예상 외로 일찍 왔다면 서로 손을 잡고
공원안을 한바퀴 돌아보며 옛날 20 여년 전에 우리들 자녀들이 국민학교
다닐때 아이들 손을 잡고 같이 이곳에 와 본 추억을 더듬어 보는것도 좋다.
석우동에서 고향의 친구들을 싣고 07:20경에 출발한 버스는 08:00가
조금 넘어 대구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달성 공원 앞에 도착 하였다.
김삼진 동기가 운전하는 버스는 우리들의 마음이 편안하다.
버스 좌석의 뒷부분에는 중앙의 통로에 테이블을 놓고 양쪽 창문쪽으로
좌석을 배치하여 서로 마주 보고 앉을수 있도록 하였는데
대략 10 여명 정도가 같이 앉을수 있었다. 이런 좌석은 친구들끼리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좋을 뿐더러 서로 잔을 권하며
술을 마시기에도 좋았다.
빨리 출발하자고 재촉하던 이 명복이를 달래서 마지막으로 이해수와
장용호가 08:15 경에 도착 하였다.여학생 13명에 남학생 26명 이다.
40명 가까운 친구들과 한 차를 타고 10 여명의 친구들이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을 떠나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 일인가?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서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자
입이 심심한 친구들은 참지를 못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회장단에서도 특별한 술을 준비하였단다.
이름조차 처음듣는 “금술”이라고 했다.
군위의 하나로 농협에서 한병에 5천원 가까이 주었다니 소주의 5배에 가깝다.
노란 금빛을 띄는 술인데 자세히 보니까 술속에 노란빛이 반짝 반짲 빛나는
수많은 금가루가 떠다니고 있었다.
맛은 매실주와 비슷한데 그렇게 독하지 않고 순한 편이 였다.
춘자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서 우리 동기들이 이 값비싼 금술을 마시고
만수무강 하라는 바람으로 묵어동의 김준기가 안을 낸듯하였다.
안주로 갖고온 돼지고기는 신정호가 세벽에 일어나서 집에서 직접
삶은 것으로 아직도 뜨끈 뜨끈하였는데 입에서 살살 녹을 정도로 맛이 있었고
양대 고물을 묻힌 찰떡은 구미의 박진택이가 준비하였다고 했다.
그 외에 쓰레기 봉투용 비닐 봉지와 휴지 젓가락 컵등등 사소한것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하였다.
수백명이 참석한 모교 체육대회 행사를 주관한적이 있는 우리 16회 회장단이
40 여명이 야유회 가는데 준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 것이였다.
버스가 경산을 지나 평사 휴게소에 주차를 했다. 달성공원을 출발한지는
아직도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가란다.
오줌 누기 싫은 사람은 바람이라도 소이라나....
바쁠 것도 없이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버스가 평사 휴게소를 출발하자 이내 음악이 흘러 나왔다.
아직은 조금 이른 것 같은데....
그러나 흥이라는 것은 꼭 술이 취해야만 나는 것이 아니였다.
흥겨운 음악은 가만이 있는 엉덩이를 덜석이게하고
어께를 흔들게도 하는것이다.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는 나이지만 음악 만큼은 느린 것 보다는
빠른 템보가 좋다. 마디 마디 늘어지는 느린 음악은 피아노나
교향악단이 반주를 하며 성악가들이 부르는 가곡 같고
가야금 반주로 부르는 민요 같은 느낌이 드나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대중가요는 신이 나고 즐겁게 때문이다.
몸은 늙어 가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직도 20 대인 것이다.
부산으로 가는길에 경주 톨게이트에서 이상수가 탔다.
포항의 권순길이는 우리 친구들이 잘 놀다 오라고 천주님께 특별기도를
드려야 하기에 부득이 참석이 어렵다고 하였다.
연산동의 홍말남이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부산 시내의 금정구청 앞에서
버스를 세우고 구청 안에가서 모두가 같이 단체로 또 소변을 보았다.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집에 가면 화장실이 복잡할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10:30 이 넘어서 도착한 홍 말남이가 사는 연산동의 효성 아파트.
20층 정도 되는 높이인데 1층이였다. 아무리 넓은 집이라도 40 여명의
손님을 치르려면 적은일이 아니다. 미리 예약한 식당처럼 이방 저방에
깨끗하게 미리 차려진 음식상에 둘러앉아 아침을 겸한 점심 식사를 하란다.
집에서 정성껏 마련한 음식 맛은 식당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름 모르는 여러 가지 회와 많은 반찬들. 좀은 복잡하지만 그것도 재미 있다.
식당 보다도 마음이 푸근하고 부담이 없어서 좋았으나 친구들을 위해서
이렇게 준비한 말남이와 말남이의 남편에게 미안 했다.
우리 동기들 중에서 과연 누구가 40 명의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식사
준비를 할 친구들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말남이 외에는 없을것 같았다.
특히 음식을 장만하고 차리는 일도 힘드는 일이지만 어느 여학생의 남편이
그것을 이해 할것이며 어느 남학생의 부인이 그것을 이해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말남이 남편은 부인의 동기생들 앞에 차려진 음식상에 혹시라도
부족한 것이 없는지를 둘러보고 부족한 음식을 갖다주고 빈그릇을 치우고
배달하는 심부름꾼이 였다. 이렇게 서로 이해하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만약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노래가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생활일까?
예술이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매력이 있는것이다. 부산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낙동강 다리를 지나기도 전에 음악은 흘러나왔다.
불그스레한 친구들의 얼굴들이 보기에도 좋았으며 신나게 노는 친구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허물 없이 재미있게 노는데 맛을 들인
신입회원(?) 몇명도 이제는 약간씩 중독이 되가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노래방이 처음 생길때부터 몇 년동안 갈고 딲은
고참들의 실력에 비하면 아직도 새발의 피라고 할까?
수년동안 갈고 딲은 실력을 단 몇년만에 따라 간다는 것은 힘들고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16회 동기회가 발기되기 전부터 실력을 길러온 김숙기 김옥자 우금순
이분선 장연화 권운희의 솜씨를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금와서 이순덕이나 권철수가 아무리 연습을 한다해도 그들을 따라 간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일년에 한두번만 나오는 심정희나
전옥희 우화순이도 박수 부대로 편성되는 것이 맞다고 봐야한다.
그것은 중학교 다닐때부터 노래 연습을 한 홍말남이를 보면 알수 있다.
지금부터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을 하면 김영보 정도는 될지 모르지만
김영보가 홍말남이를 따라간다는 것은 앞으로 10년정도가 지나도 불가능하다.
차안에서 노는 것은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춤과 노래를 다잘하는 김옥자나 이분선이는 팔방 미인이지만
좀처럼 노래부르는 것을 본적이 없는 김숙기나 우금순 장연화를 보고
누가 잘 놀지 못한다고 할수 있나??
김숙기가 오늘 하루에만 땀에 젖은 옷을 다섯 번이나 갈아 입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것이다.
남해의 바다는 진한 초록색이 였다. 삼천포에서 남해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명물인 4개의 다리를 건넜다.
그 다리를 개통할쯤 어느 신문에서는 그 삼천포 대교 사진과 함께
"삼천포 바닷가에서 3개의 섬을 거치는 4개의 다리는 모두 모양이 달라서
다리 전시를 하는것 같다"고 하드니만 우리는 그 다리들을 건너 갔다.
첫째 다리인 현수교는 초록색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걸어서 건너갔다. 운전하는 삼진이 친구가 우리 동기생들에게
특별하게 배려하여 그렇게 걸어서 건너가 보라고 했다.
멀리 희고 빨갛게 보이는 몇 개의 커다란 굴뚝은 삼천포 화력 발전소 란다.
조그맣고 커다란 배들이 저마다 하얗고 길다란 물 꼬리를 달고
바쁘게 가고 있었다.둘째와 넷째의 빨간 다리는 모양이
비슷한 아취형 교량이고 셋째는 일반 콘크리트 교량이었다.
남해의 바닷가에는 벌써 파란 보리가 고랑을 이루었고
길가의 밭에는 다마네기가 들판을 이루고 있어서
아마 올해도 다마네기가 풍년이 들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임진 왜란때 이순신장군이 전사했다는 노량진 해안가의 이순신 장군
유허지에는 석류꽃 같이 붉은 동백꽃들이 진하게 피어 있었다.
끝내 상사병으로 숨져 전생에 풀지 못한 짝사랑의 한이 서린듯
반짝이는 진록색의 잎속에 핏빛으로 붉게 핀 동백꽃은 뭔가는
말못할 깊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려서 지리산 뒤쪽의 산청 휴게소를 지나서
거창휴게소까지 왔다. 거창휴게소..거창 어디서 많이 들어 본듯한 지명이었다.
88고속도로상의 휴게소 거창. 앞으로 고령을 지나 한시간 남짓가면
우리는 또 헤어져야 한다는 뜻이였다.
우리는 이렇게 하루종일 즐겁게 놀았지만 또 다른 만남을 기다리며
아침에 출발한 달성 공원으로 돌아왔다. 어둠이 짓께 깔린 늦은 저녁 시간에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굳빠이하며 내민 손........ 그 손들을 잡아 보면서...
손을 흔드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버스는 다시 시골로 떠나가고....
2004/3/16 이 성진
동희야. 우리는 월남의 너를 기다린다. 사무실에서나 퇴근후에 집에서도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해라. 디카를 갖고 가서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리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테이프나 cd 부터 구해 봐라. 그리고 우리 16회 동기회에서 관광버스 구입 할려고 하는데 그때 찬조 좀 해라.
첫댓글 ☞자~알한다 16회! 자~알 논다 16회! 거~언강하라 16회! 여~영원하라 16회!...참석못해 배가아파 복통으로 들어누운 동기 한명이 한양에 있다는 사실을 그대는 아시는가?????
야 정말 대단하다. 1녀 2남 x 13 이면 전학년의 3분지 1은 참석하지 않았는가? 학교 졸업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40명이 모인다는건 다른데서는 도저히 흉내도 못낼거다.... 언젠가 한번 참석할끼다.
동희야. 우리는 월남의 너를 기다린다. 사무실에서나 퇴근후에 집에서도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해라. 디카를 갖고 가서 사진을 찍어 카페에 올리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테이프나 cd 부터 구해 봐라. 그리고 우리 16회 동기회에서 관광버스 구입 할려고 하는데 그때 찬조 좀 해라.
아이구 배 아파 죽겠네..... 사정상 못갔지만 마음만은 그 차안에 있었다네. 열기 가득한 분위기가 안봐도 눈에 선하네 그려... 전국의 동창 카페 중에 이 보다 더 재미 있는 팀 있으면 나와 보라구......정말 정말 재미 있는 친구들이야..........
삼진이 관광버스는 무쇠로만든 탱크다이어 인가?40*60k=24ton .참이슬 3box각종음료2box.아침겸 점심먹은근대가 1인당2kg,금술1box,떡2말.2되들이 오줌통 각1개씩,비상금,기타등등..총 근대계산 못하겠다.거기에다 뽕짝할때 힘주고 뛰었으니 아이고 골이야 !못가바서 약만 오른다카이.16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