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인격을 수반한 문학이라면 당연히 격이 있을 것이고, 여기에는 조건이 붙게 마련이다. 윤오영 선생은 글을 쓰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즉, 문선(文仙)과 문사(文士), 문치(文稚), 문충(文蟲)이 있다. 또한 문적(文賊), 문간(文奸), 문노(文奴), 문기(文妓)가 있다는 것이다.
선생은 ‘양잠설’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누에고치를 예로 들어서 누에가 단계별로 잠을 자고 나서 마침내 생산되는 고치를 특등, 1등, 2등, 3등, 등외품으로 구분할 수 있단다.
선생의 말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수필에 접근하는 과정은, 누구나 처음 한때 문학 소년기를 거치면서 왕성한 독서열을 보이며 글을 쓰고 사색에 잠기게 된다. 그러한 과정은 마치 누에가 최면기에 들어 차츰 허물을 벗듯이, 한 단계 한 단계씩 올라가게 된다.
그러다가 쇠약기로 접어들어 반항과 고민과 기벽을 부리게 되는데, 이때 요사(夭死)한 천재도 생기게 되며 다시 글을 탐독하며 2령에 접어든다. 몇 차례 고비를 거듭하는 속에서 탈피하여 마침내 누에가 고치를 짓고 들어앉듯 한 작가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써낸 작품이 결국은 후세에 1등품, 2등품. 3등품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다시 말해, “그 사람 재주는 비상한데 밑천이 없어서.”라면, 이때는 뽕잎(독서)을 덜먹었다는 말이며, “그 사람 아는 것은 많은데 재주가 모자라.” 하면, 이는 잠을 덜 잤다(사색의 부족과 비판 정신 부족)는 상황에 해당한다. “그 사람 읽기는 많이 읽었는데 어딘가 부족해.”하면, 이는 뽕을 한 번만 먹었다(독서기가 일 회에 그침)는 말이고, “학식과 재질이 다 충분한데 그릇이 작아.”하면, 이 경우는 4령기까지 다 가지 못했다는 말이라고 한다. 한편, “그 사람 아직 글때를 못 벗은 것 같아.”하면, 5령기를 못 채웠다는 말이고, “그 사람 참 꾸준한 노력이야. 대 원로지. 그런데 별수 없을 것 같다.” 하면 집 못 짓는 쭈그렁밤송이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야 대가지. 훌륭한 문장인데 경지가 높지 못해.” 하면, 일가를 완성하지 못한 경우이다.
선생은 양잠가에게 문장론(文章論)을 배웠다고 적고 있다.
이는 매우 시사적이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좋은 고치를 짓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정림 선생이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 있다.
첫째, 주제가 있는 글일 것
누구나 글을 쓸 때는 쓰고자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주제라 한다면 그게 잘 나타나도록 써야 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냥 소재의 나열은 잡문이며 그것을 의미화(意味化) 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문장이 정확하고 꾸밈이 없을 것
유치한 독자일수록 미문(美文)을 선호하며, 이는 소녀적 문장이다. 문장은 정확하고 솔직 담백하게 써야 한다는 말이다.
셋째, 소재를 보는 시각이 신선할 것
소재는 얼마든지 생활 주변에 널려있는데, 이 중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소재에 접근해야 한다.
넷째, 작가 정신이 들어있는 글일 것
흔히 체험의 부족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간접 체험(독서 등)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이는 깨어있을 때만이 가능하고, 그런 한편으로 자기도취를 경계해야 한다.
-임병식의 [수필쓰기 핵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