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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주는 영존하시겠고
설교본문 : 시편 102:12~103:22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8년 10월 21일
서 론 :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노래(102, 103편)
여러분이 결혼하기 전 20대로 돌아갔다고 가정해봅시다. 여러분은 최근에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그 사람이 없으면 허전할 것이고, 반대로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그 사람만 있으면 기쁘고 행복할 것입니다.
시편 102편과 103편이 바로 그런 사랑의 노래입니다. 다만 이 시인들이 사랑하는 이가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의 어려움이 와도 능히 이기는 자가 됩니다.
오늘은 시편 102편과 103편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감격을 가진 사람들의 노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다윗(103편)
1.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감격을 잃어버린 이유
1) 신앙의 감격이 없는 이유 :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
신앙생활을 꽤 오래 한 분들 중에도 하나님께서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자기 마음에는 별로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감격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나를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까지 달리셨다는데 그것을 알고도 “그게 뭐 어쨌다고?”라고 말할 정도로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제까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 사람이라도 사랑을 잃었다면 곁에 있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고 어색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사랑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과 경배와 예배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색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해도 기쁨이 없으니 마지못해 억지로 하게 됩니다. 그러니 작은 일에도 쉽게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2) 신앙의 감격이 없는 이유 : 하나님이 누구진지,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 큰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름대로 꽤 신실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자기를 용서해주실 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흉악한 죄인인지 모르니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나는 영락없이 멸망을 당할 자라는 것을 모르니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간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용서받음의 기쁨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도 사랑도 없는 것입니다.
3)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다윗이 그 감사와 기쁨을 노래함(3절)
103편의 시인인 다윗도 그랬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을 묵상하다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서운 죄를 지은 자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를 수도 없이 지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흉악한 죄를 수도 없이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책하거나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지켜주시고 돌봐 주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기도를 합니다. 그 후에 시인(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체험하고 이 기도문을 기록했습니다.
● 묵상 :
혹시 신앙의 감격이 무엇인지 잘 모르신다면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실체를 바르게 깨닫기 전에는 신앙의 감격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2. 그때 다윗이 경험한 기쁨 :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 은혜
1)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 아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알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흉악한 자였는지를 깨닫게 된 순간, 그는 그 동안의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이 풍성한 분이 아니셨다면,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들처럼 쉽게 진노하시는 분이셨다면 자신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지금처럼 평안하게 사는 것은 자기가 잘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가 회개하기까지 기다려주신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날마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2) 용서받은 기쁨 : 청춘이 독수리 같이 새롭게 되는 기쁨으로 표현(3~5절)
그는 회개를 한 후에 하나님께 용서받음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가 흉악한 자였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의 충격이 컸던 만큼, 용서받음에 대한 기쁨도 컸습니다. 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 만해도 엄청난 은혜인데 그 후에 그의 고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3절).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사랑을 마치 면류관처럼 씌워주시는 것을 체험합니다.
다윗은 이 기쁨을 독수리가 새롭게 되어 하늘로 힘차게 올라가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된 순간 이처럼 엄청난 기운이
자신에게 솟구치는 것을 경험합니다.
-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해설 : 시편 103편 5절 본문해설 참조
3) 다윗이 깨달은 하나님의 은혜
다윗은 그때 깨달은 은혜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①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3, 9~12절)
주께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을 깨달은 것이 다윗이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회복한 첫 단계입니다.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지 못하면 그 다음에 있는 그 어떤 감사도 기쁨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먼저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하나님을 향한 감사도 기쁨도 사랑도 경험하게됩니다.
② 모든 질병을 고치시며(3절)
다윗은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만 고쳐주신 것이 아닌 것을 깨닫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치명적인 질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에서의 질병은 육체의 질병이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는 죄의 질병을 고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능력을 주셔서 죄와 맞서 싸우고, 죄를 이길 능력을 주셨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한 전처럼 그렇게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③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구원)하시며(4절)
다윗은 그동안 그가 겪었던 생명의 파멸에서 구원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셨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④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4, 8절)
다윗을 생명의 파멸에서 구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치장을 해주셨습니다. 다윗의 나라를 안전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다윗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⑤ 좋은 것으로 그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셔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며(5절)
5절은 이 모든 것을 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다윗의 소원을 만족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으로 하여금 청춘을 회복하여 새롭게 된 것이 독수리가 새롭게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올라간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4) 자신의 영혼과 모든 만민과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찬양하자고 외치는 다윗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체험한 시인(다윗)은 그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그는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외칩니다. 이어서 세상 만민은 물론 하늘의 천사들에게까지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외칩니다. 너무 좋으신 하나님을 알게 된 기쁨을 그는 목소리를 높여 외치는 것입니다.
● 묵상 :
이렇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 실체를 바르게 알고 나면
그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신앙의 감격은 이렇게 하나님과 자신에 대한 바른 깨달음을 갖게 되었을 때 나타납니다.
제 2 부 : 절망에 빠졌을 때 신앙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려면(102편)
주님을 믿는 자들도 때로 절망에 빠집니다. 믿는 자들 중에도 자살하는 사람도 있고, 좌절감에 빠져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103편의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기쁨을 경험한 자는 절망에 빠졌을 때의 상황이 다릅니다. 시편 102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난 기쁨을 아는 자가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게 됩니다.
3. 절망의 한 가운데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1)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이유 : 능력의 하나님이 계시므로(102:12~13절)
시편 102편은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 중의 어떤 사람이 지은 기도시입니다. 포로 된 백성이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같은 포로백성들 중에서도 더욱 고통에 빠져 있습니다. 시인은 죽을 때까지 이 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절망에 빠집니다. 위로도 아래로도 도무지 돌파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절망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엄청난 희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그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묵상하면서부터입니다.
① 하나님은 우주를 옷처럼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는 지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거대한 우주를 옷처럼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절망 속에서 갑자기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이 이런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리 절망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나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수 있으십니다.
②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 시인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인은 절망 속에서 엄청난 희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③ 왜냐하면 그 전능하신 하나님은
곤고한 자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시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주를 옷처럼 바꾸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 늘 내 곁에서 내가 기도하기만을 기다리고 게셨습니다. 그런데 시인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순간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기도를 한 순간 하나님의 명령으로 천국이 나를 위해 움직입니다.
2) 사고의 전환점 : 하나님을 바라봄, 하나님과 교제함
시인이 죽음까지 생각할 만큼 엄청난 고통 속에서 희망을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시인의 사고의 전환점은 그가 하나님을 묵상하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선명한 사진처럼 보이고 느껴집니다. 이것이 시인의 신앙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배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에게는 방법이 없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이라도 나를 도우시려는 마음을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시인이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와 사랑을 묵상한 순간
어두운 현실이 소망 가득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 묵상 :
①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간구하십시오.
지금 처한 문제만 보면 점점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질 뿐입니다. 아무리 기가 막힌 절망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도우실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망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께 당신의 아픔을 아뢰십시오. 나를 도우실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나를 기꺼이 도우시려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② 절망 속에 있었기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분명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절망 속에 있었기에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며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절망에 빠질 만큼 깊은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하나님과 가장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도 그렇게 미래의 위대한 꿈과 환상을 보다가도 현실의 문제를 보면 금방 깊은 절망과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대한 꿈과 환상을 보십시오.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때때로 절망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우울한 현실의 문제에만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면 당신도 놀라운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포함된 일련의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대한 꿈과 환상을 봅니다. 그들이 본 환상은 장차 영이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나타나서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 만민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본 것입니다.
제 3 부 :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4.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주는 영존하시겠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한 줄기의 희망도 보이지 않으나, 그 속에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노래하며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온 천하만물를 창조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1)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25~26절)
그 옛날 하나님께서 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고,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저 바다 깊은 곳도, 땅 속에 있는 저 뜨거운 용암도, 저 우주에 있는 수천억 개의 별들도 다 주께서 지으셨습니다.
2) 그것들은 다 옷처럼 낡아지리니 의복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26절)
시인을 포함한 바벨론에 포로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바벨론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시편 102편에서 바벨론을 하늘과 땅의 모든 두려운 것들과 저 우주의 수많은 별들에 비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아무리 무섭고 두려운 힘을 가졌을지라도 결국은 다 옷처럼 낡아지고 말 것들입니다. 마치 사람이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지고 말 것들입니다.
3)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24, 27절)
이 땅과 하늘, 저 우주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저 하늘에 있는 태양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지고 말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한결같으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 영원히 그의 백성을 안전하게 거하게 하실 능력을 가지진 분이십니다.
4) 주의 종들이 항상 안전히 서 있고 주의 앞에 굳게 서리이다(28절)
오직 하나님만이 여상하시고 그 연대가 무궁하신 분이시니, 주님을 믿고 따르는 주의 종들은 항상 안전히 서 있고, 그의 후손들은 언제나 주의 앞에 굳게 설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 된 백성으로 있으나, 조만간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기쁨과 평강이 그들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제 4 부 : 신앙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5.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
1)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의 허무함(103:15~16절)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체험하고 보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그가 아무리 세상에서 큰 부귀를 얻었다 할지라도 유대 땅의 우기에 잠깐 피었다가 지는 들풀과 같이 허무한 인생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게 하신다.”하고 노래하며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의 기쁨을 잃어버린 자의 위험 : 하나님을 떠난 자의 허무함에 빠지게 됨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체험했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잃어버리면 신앙의 감격도 사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사라진 자리에는 허무함만 가득합니다. 이때 마귀는 이전에 주님을 알지 못했던 때 가졌던 그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한 번 경험하면 그 경험이 계속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의 만남도 계속 되어야 하듯 하나님과 계속 친밀한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 묵상 :
① 혹시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는 공허함만 가득하다고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만일 신앙의 감격이 전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차가운 가슴만 남았다고 한다면, 하나님과의 교제에 어떤 문제가 없는지 살피십시오. 지나치게 바쁜 생활 속에서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② 믿는 자에게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과 만나는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
믿는 자에게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과 만나는 기쁨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찬양도, 말씀 묵상도, 기도도 전혀 즐겁지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같이 느껴질 때, 이때를 가장 위험한 때로 여겨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이때를 긴급 상황으로 여기고 빨리 대처합니다.
③ 기도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마십시오.
이런 때를 만났다면 먼저 하나님께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십시오. 내가 하나님과 만나는 기쁨을 잃어가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주변 성도들에게 자신의 영의 상태가 위험하다고 알리도 중보기도를 해줄 것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짧은 시간이라도 말씀 묵상과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에 힘쓰십시오. 기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영영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결 론 : 지금도 살아게신 하나님과 실제로 교제하고, 사랑하고, 만나십시오.
1) 많은 경우에 본문을 각 구절로 나누어 주제별로 묵상이나 설교를 합니다.
다시 시편 103~3~5을 보십시오. 이 부분을 묵상할 때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의 구절들을 각 주제로 나누어서 따로따로 봅니다. 예를 들면 『① 그가 우리의 죄악을 사하셨다 :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 ② 그가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파멸에서 구하셨다. ③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를 만족시켜 주시는 분이시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각 주제로 나누어 묵상을 하거나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지식으로 아는 데에는 도움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들에게는 이런 방식이 필요합니다.
2) 각자가 103편의 시인이 되어 그가 한 묵상을 따라가 보십시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을 만나기가 어려워집니다. 말씀에서 구절을 나누어 주제를 찾으려하지 말고,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려하십시오. 시인이 하나님을 묵상하는 그 과정을 따라서 그와 같이 묵상하는 자가 되어보십시오.
103편의 시인의 묵상은 처음에 ‘자기의 죄가 얼마나 큰지, 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자가의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파멸에서구원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 그 흐름을 따라가며 그가 만난 하나님을 나도 만나기를 간구하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묵상이 진행되는 동안 시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저리게 느낍니다. 진토에 불과한 자신을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무엇으로 보답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다 자기의 영혼은 물론 온 세상 만민을 불러내고, 심지어 하늘의 천사들까지 모두 나와서 하나님께 찬양하자고 외칩니다.
4) 신앙의 주제들을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영지주의에 빠지지 마십시오.
만일 아주 위험한 병에 걸린 사람이 병원에서 의사에게 치료에 관한 처방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그가 그 처방을 안다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처럼 신앙의 주제만 알고 그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 신앙의 내용만 알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지도 않고 그와 사귀지도 않는 자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바로 그분을 묵상하려 하십시오. 그분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그가 지금도 바로 당신 곁에 계십니다. 당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아까부터 당신 옆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 번 불러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뭐라고 나와 대화하려 이렇게도 기다리고 계십니까?” 한 번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기뻐하시는 그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나의 죄악의 실체를
바르게 알게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지속하여
늘 은혜의 기쁨 속에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주께서 주시는 그 은혜의 기쁨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