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브리서의 저자는 바울인가?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히브리서에는 바울이란 이름이 없을뿐만아니라, 편지의 형식과 어투와 사용한 단어들이 전혀 다르다. 따라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 아니라는 것이 신학계의 정설이다.
2. 히브리서가 쓰여진 배경이 서기 64년7월19일에 일어난 로마대화재때 발생한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인 대박해라고 하는데 그것에 대한 증거는 없지 않은가?
3. 출애굽 1세대와 출애굽 2세대의 구분방법을 애굽에서 태어났는가 광야에서 태어났는가로 구별하는데, 그게 아니라, 시내산에서 이스라엘백성을 계수할때 20세 이상인 남자가 기준이다. 비록 애굽에서 태어나서 출애굽을 하였더라도 시내산에서 계수할때 20세미만의 남자라면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민수기 14장28절~30절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4. 삼위일체에 대해서, 부흥강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 이해할수 없는 말이고, 설명하려고 하면 반드시 이단에 빠지므로 그대로 놔두는것이 좋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삼위일체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그의 양심이 자인하는 것이다. 다만, 그렇게 말했다가는 뒷감당이 안되니까 침묵하거나 딴소리를 하는것이다.
5. 노아의 대홍수 이전에는 이 땅에 비가 내린 적이 없었고, 다만 지표면에서 수증기가 올라왔다는 거짓말을 했다. 왜 그런 말을 하냐면, 무지개가 대홍수 이후에 다시는 물이 인류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않게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증표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창세기 9장15절~16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그러나 창세기 6장17절에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고 하였고, 7장4절에는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하신 말씀인데, 노아가 비와 홍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아는 하나님께 "비가 무엇입니까? 홍수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본 후에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또한 노아는 방주에서 나온 후 포도농사를 지었다고 했는데, 이는 대홍수 이전부터 인간들이 농사를 지을수 있도록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지개는 18세기 과학의 시대를 맞아, 비가 온 뒤에 햇빛이 공기 중에 있는 물방울에 굴절되면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물론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현상을 인간이 과학적으로 설명하게 된 것이지만, 인간의 실수로 잘못 기술한 창세기의 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노아 이전에는 비가 내린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위한 거짓말이다. 창세기 4장2절에는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짓는 자였더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늘에서 비가 안 왔으면 가인이 어떻게 농사를 지어, 그 소출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는 말인가?
6. 예수님은 100% 신성과 100% 인성을 지니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100% 인성을 지니고 오신 분이다. 다만,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시면서 행하신 기적들이 문제인데, 그것은 예수님은 남자의 씨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고, 창세전에 낳은 하나님의 피조물인데(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성령의 힘(하나님의 능력)으로 마리아의 몸을 빌어 태어나셨다는 것에서 힌트를 구해야 할 것 같다.
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히브리서 2장9절~18절에 나와있는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이 죽음을 맛보아(경험하여)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죽음에 얽매여 종 노릇 하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데, 그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므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도 죽음이 무엇인지 잘 아신다. 하나님을 전능하다고 말하면서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천지창조에 참여하신 분이다. 마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창제에 공을 세운 거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세종대왕은 성부 하나님이고, 집현전 학자들은 성령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고, 성령과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 순종하는 관계이다. 빌립보서 2장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브리서 5장8절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마태복음 26장39절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8. 레위기 1장1절~9절까지 나오는 번제에서, 여성도 속죄제의 주체가 되었다는 말은 증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여성은 사회생활의 주체로 인정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예루살렘성전의 제사의식에서 여자가 제사의 주체자로서 참여했다는 말은 들어본적도 성경에서 읽어본적도 없다.
9. 죄를 지은 사람이 직접 흠없는 소나 양을 회막문에 가져와 안수를 하고 가죽을 벗겼다는 말은, 율법에 나와있는 말일뿐이고 실제로 율법에 써있는 대로 진행되었는지? 다르게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형제였던 의인 야고보(성경 야고보서의 저자)는 AD62년에 성전의 측면에서 밀려 떨어져 축융업자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는데, 여기서 축융업자라 하면 제사에 사용된 동물을 취급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이다. 특히 동물의 가죽을 벗기는 일은 전문가의 일이어서 성전의 제사장들과 연계되어 수행하였을 것이다. 예루살렘성전에는 많은 이권이 개입되어 있었고,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분노하였다는 기록이 성경에 있다.
10. 인간의 인식문제에서 이해보다 믿음이 먼저라는 말은 잘못이다. 성경 로마서10장17절에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했다. 즉 믿음은 복음을 들어서(이해해서) 생긴다는 뜻이다. 로마서 10장15절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1. 예레미야 7장22절~ 23절 "사실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령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내가 명령한 모든 길로 걸어가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결론: 마태복음 13장24절~30절에는 '곡식과 가라지'라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이 나온다. 그 비유에 의하면 성경책이란 밭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다. 즉 하나님 말씀과 사탄의 말이 섞여 있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베드로후서 3장16절 말씀처럼,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이단이 되거나, 짜맞추다가 어쩔수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