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오리
텃밭 샛강에 여러 종류가 나타난다. 숭어가 떼 지어 오더니 붕어가 낚시에 올라온다. 장마 때 커다란 잉어가 설렁설렁 다니고 청둥오리가 겨울철 한때 찾아와 먹이가 부족하면 채소를 갈기갈기 밑동까지 찍어 먹는다. 우리 먹을 채소를 저들이 다 갉아먹는다. 이래저래 하다못해 얼금얼금한 그물을 덮어뒀더니 덜하다.
부리나 발로 젖히면 쉽게 맛볼 텐데 그렇게 하진 않았다 미안해선가. 커다란 왜가리 한 마리가 갈 때마다 놀라 갈대밭에서 급히 치솟아 끽끽거리며 날아간다. 왜 방해하느냐 눈을 부라리며 나무라듯 날갤 흔들어 댄다. 귀가 밝은가 위 자갈 밟는 소리를 듣자 후다닥 도망친다. 내 저를 잡으려 안 하거늘 그런다.
가운데 밭 부추밭에 막대기 두 개가 길게 고랑에 떨어져 있다. 주워내려 가까이 보니 뱀이다. 얼마나 섬찟했던지 소리 지를 뻔 놀라 기겁했다. 가다 오다 다니면서 풀 벤다고 낫을 들었는데 쉭 입바람 소리하니 꾸물꾸물 기어 왼쪽 둑 숲으로 오르지 않고 오른편 다니는 길에 나와 옹크린다. 엉성한 똬리를 틀고선 낫을 물려 입을 크게 벌린다. 어 이것 봐라.
혀를 날름날름하더니 슬며시 개울로 들어간다. 잘됐다 물에서 숨 막혀 고생 좀 해 봐라 했다. 오르지 못하게 휘휘 저어서 갈피를 못 잡도록 힘들게 했다. 웬걸 헤엄을 잘 친다. 구불텅구불텅하면서 이리저리 다닐 때 가까이 오지 말라 낫을 흔들어 쫓아냈다. 요것이 머리를 치켜들고 요리조리 헤엄치더니 발아래 가까이 다가왔다.
어이쿠 이게 덤비네. 둑으로 오르려다 발아래 바로 돌 틈 구멍 속을 쏙 들어간다. 거참 같잖아라. 늘 다니던 곳인가 거기 피할 곳을 어찌 알았나. 쾅쾅 밟아 소리 내도 요동이 없다. 너 그래 봐라 안 나간다. 용을 쓰고 들앉아 있다. 저쪽 그늘에서 나물 다듬는 아내가 이 사달을 알면 다시는 밭에 안 올 것이다. 뱀을 무서워하므로 정나미 떨어지는 일이다.
모른 척 같이 앉아 쉬는데 그래도 눈길이 간다. 저게 나오나 어쩌나 하면서 보게 된다. 고개를 조금 내밀고선 있나 없나 살피는 것 같다. 일 마친 아내가 집으로 가제서 그냥 자리를 떴다. 너 다음에 보자. 그때부터 단단한 몽둥이를 만들어 들고 다닌다. 꾹 눌러 꼼짝달싹 못하게 끝을 벌려 만들었다.
눈치 한번 빠르다. 고것이 그 뒤론 사라지고 흔적이 없다. 괜히 무거운 것을 들고 다니며 숲속을 살핀다. 소총을 매고 다니면 든든하듯이 막대기를 들었을 때 지팡이 삼아 편하기도 하다. 거미줄 걷고 풀도 후려쳐서 길을 틘다. 또 부추밭에 질펀하게 드러누우면 혼쭐을 낼 것이다. 아름다운 뱀 무늬만 봐도 그만 으스스 무섬이 돌며 실증이 생긴다.
길바닥에 스멀거리며 나타날 듯 자꾸 삼삼하게 눈에 밟힌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얼마간 그랬다. 대담하다 대들고 발밑으로 기어들다니 그걸 어찌 가만두나. 나타나기만 해 봐라 그땐 사정없이 두르려 팰 것이다. 어디라고 함부로 눕나 누워. 누굴 놀라 자빠지게 하려고.
어미 곁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다니는 물오리 새끼를 건졌다. 삐악삐악 소리치기에 아들이 얼른 떠 손아귀에 넣으니 포근히 안겼다. 참새 새끼를 둥지에서 내리면 바르르 떨며 설사하면서 불안에 떤다. 그런데 이놈은 그런 게 없이 잘 됐다 하는 눈치다. 아내가 버려둔 걸 다시 가져와 키워 보겠단다.
밤새 삐악거리고 찍찍 갈기면 어찌 감당하려는가. 그러다 죽으면 안 됐다. 곧 어미가 나타날 것이니 물에 넣어주라 일렀다. 제 어미 곁에 살아야지 키울 수 있나 그 번거로움을 무슨 수로 해내나. 큰 새와 물고기, 게, 뱀이 다니는데 가냘픈 게 견뎌낼까. 고양이까지 설치니 두고 온 것이 좀 미안하다.
한때 낚시에 미쳤다. 낚시한답시고 낙동강 하류 갈대 속을 뒤지는데 난데없이 쪼르르 지나는 물오리가 새끼들을 쭈르르 이끌고 다닌다. 귀엽게 생겨 한참을 눈 뗄 수 없었다. 볼수록 저리 정다울까. 어미 주위를 다퉈 맴돈다. 뭣이라 쫑쫑 지껄이며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봤다. 낚시는 무슨 또 돌아오나 봤어도 그 예쁜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몇 해 뒤 몽골 톨강에서 물오리 떼를 만났다. 그게 물오린지 알 수 없다. 물에 떠다니니 오리인가 싶어서이다. 물오리란 새가 있기나 하나. 오뉴월 눈이 녹고 파릇파릇 잎이 돋으면서 꽃을 피워댔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쉬는 날은 아내와 톨강에 나가 냉이와 쑥을 찾았다. 그런 건 없고 노란 꽃 피는 민들레와 하얀 꽃을 피우는 부추가 보인다. 고비사막 가운데 듬성듬성 난 부추는 써서 못 먹는다.
강엔 물고기가 안 보인다. 깊은 곳에 들앉았나. 아직 추워 얼씬하지 않는가. 노란 털이 송송 난 새끼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이 구석 저 골목으로 끌고 다니며 먹이를 찾는 것 같다. 한참을 넋 놓고 사라질 때까지 가물가물 쳐다봤다. 저 아래로 둥둥 떠내려가는 걸 보면서 조약돌을 던지며 물수제비를 떴다.
얼마 뒤 밭에 가니 어디서 나왔는지 물오리 떼가 지나간다. 보니 그 새끼들이다. 옳거니 저기에 같이 있겠지 하면서 따라 걸었다. 이것들이 놀라자빠졌다. 후다닥 내뺀다. 어미는 날개를 치며 새끼들을 빨리 도망가라 뒤따라간다. 저만치 숲속으로 금방 달아나버렸다. 건져달라고 애걸하던 놈도 같이 뛰었다.
그러면 되나, 포근히 감싸줬는데 모른 척 달아나긴.
첫댓글 좋은 글 두 편 연이어 올렸어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하구언 생태계를 관찰하는 것 같아요
요즘 민물에는 붕어도 잉어도 잘 보이지 않아요
그기에 나타나는 잉어가 너무 크면 겁이나 먹을 수도 없어요
눈 요기 하는 재미 한 번 가보고 싶어 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시골은 다 좋은데, 밤이면 스물스물기어나오는 지네,조금 우거진 수풀 걸어가다 만나는 뱀, 아침저녁 몰려드는 모기떼..
그리고 이른시간임에도 밀려오는 칠흙같은 어둠....막연히 동경되던 전원생활을 거두게 만드는 것 들입니다.
수필읽듯이 재밌게 읽긴하지만.....으이그 뱀은 절대 싫습니다.!!
온갖 게 다 나타납니다.
잉어가 아름드리입니다.
숲이 우거져 정글 속입니다.
들 앉아 있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ㅋㅋ쌤..
그기에 들앉아있을 이유가 있을래나요?
예전같으면 무장공비나 들가앉아있을래나?? (70년대 지나온 사람들만 아는 무장공비.ㅋㅋㅋ)
@성a도mom 바닷물과 강물이 들랑날랑하는 해안 숲 속 밭이어서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스합니다.
산딸기 따먹고 요즘은 매일 옥수수 토마토 오이 수박 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