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평택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썩어가는 자신의 발가락을 무덤덤하게 바라보아야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갓난아기 주먹보다 작은 주먹밥으로 허기를 때우는 우리나라 국민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갈증 난 목을 달래고자 폭우가 쏟아지기를 기다리며 메마른 입술을 벌리고 있는 사람,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있는 곳은 쌍용자동차 도장공장입니다. 도장공장 안은 이미 대한민국 땅이 아닙니다. 도장공장 안에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습니다. 물을 끊어 말라 죽여야 하고, 의료진을 막아 고통에 신음하다 죽임을 당해야 할 공격 대상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국가의 적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쌍용자동차는 일터입니다. 이들은 이곳의 노동자입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헌법이 보장한 자신의 권리인 파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경영권을 달라며 파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월급을 더 달라는 파업도 아닙니다. 복지를 증진해달라는 파업도 아닙니다. 단지 일하고 싶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당장 회사가 어려워 월급을 주기 힘들다면 급여를 받지 않고 휴직을 하겠다고 합니다. 이제껏 일해 온 일터의 직원으로 살아남게 해달라는 정말 미련스럽도록 순박하고 소박한 요구를 하며 자신의 몸을 공장에 옭아맨 채 발버둥치는 옥쇄파업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쌍용자동차의 위기는 노동자의 높은 월급 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닙니다. 일하지 않고 파업을 시도 때도 없이 해서 생긴 일도 아닙니다. 이미 상하이차 자본에 쌍용자동차를 매각하는 순간부터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신차개발에 투자는 하지 않고 기술만 빼돌린 상하이차 자본의 파렴치한 도둑질로 오늘의 위기가 발생한 겁니다. 이를 묵인한 것은 정부와 쌍용차의 경영진입니다. 상하이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도망치자 정부는 쌍용자동차 위기의 책임자인, 당시 재무, 회계, 기획을 총괄했던 상무인 박영태 씨를 법정관리인으로 앉혔습니다. 노동조합과 ‘끝장 협상’ 사흘 만에 협상 결렬을 선언한 사측 대표가 바로 박영태 관리인입니다. 쌍용자동차 직원의 절박한 요구를 ‘무리한 요구’라며 단호히 협상마저 팽개친 사람이 이번 사태의 공범이자 주범인 박영태 관리인입니다. 상하이차가 투자는 나 몰라라 하며 기술 도둑질 할 때 회사의 돈줄을 쥐고 자신의 영화를 누리던 사람이 노동자들의 마지막 숨통에 가차 없이 칼질을 하는 걸 보며, 대한민국이 연출한 위대한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 허탈할 뿐입니다.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는 회사 위기의 주범으로부터 ‘간택된 이(정리해고 명단에 들지 않은 사람을 살아남은 이들이라고 하는데, 정말 살아남은 사람들일까? 잠시 볼모로 간택을 된 것은 아닐까?)’들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서 있습니다. ‘간택된 이’들의 앞에는 생수통이 박스째 쌓여 있습니다. ‘간택’되지 못해 인간의 권리마저 봉쇄당한 노동자들에게 보내져야 할 물입니다. 최소한의 약을 넣어달라며 호소하는 흰옷 입은 약사들도 ‘간택’된 이들에게 가로막혀 도장공장을 안타깝게 쳐다보고 있습니다.
다수의 ‘간택된 이’들을 위해 소수는 희생해야 한다고 합니다. 간택된 사천 명의 직원을 위해 이천여 명의 밥줄은 희생되는 게 ‘민주주의의 원칙’인양 떠들고 있습니다. 다수당의 의원들이 대리투표를 하든 말든 과반수만 넘으면, 국민의 칠팔십 퍼센트가 반대하는 방송법이 통과되는 의회민주주의 아래에서는 통하는 원칙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말 다수가 쌍용자동차의 회생을 위해 ‘간택’되었을까요? 정규직이 간택될 때 흔적도 없이 잘려나간 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생명으로 치지 않는 걸까요? 이제껏 솎아낸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름들은 쌍용자동차의 호적에서 잉크 자국마저 지워져버렸단 말인가요? 동료들을 위해 먼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노동자들의 피눈물 젖은 서명은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단 말인가요? 수많은 협력업체에서 소리 소문 없이 밥줄을 잃은 사람들의 이름은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요?
지금 정부와 쌍용자동차가 말하는 회생이란 국가경제를 살리려는 방법도, 더 많은 이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방법도 아닙니다. 외국기업에 팔거나 알짜만을 챙겨 청산하고 싶은데 이미 상하이차 자본이 거덜 낸 공장이라 노심초사할 뿐입니다. 오늘의 쌍용자동차 사태의 책임이 있는 정부는 자신의 원죄를 감추려고 노사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물론 헬기를 동원하여 최루액을 뿌리고 밤마다 바닥에 방패를 두들기며 기회가 되면 농성자를 모조리 진압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노사갈등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또한 경영진은 ‘간택된 이’들을 볼모로 잡고, 살고 싶으면 어제의 동료들을 적으로 여기라며 의식화 교육을 하는 한편, 직접 동료들을 진압하라고 싸움을 추동 질하고 있습니다. 간택되었든 되지 않았든 노동자들은 ‘쌍용자동차 위기’의 총알받이가 되고 있습니다.
아픔은 여기에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문제가 끝난다 할지라도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생채기가 심하게 남을 겁니다.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상처투성이가 됩니다. 그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병 전달해줄 수 없는 야만스런 정권 아래에 놓인 국민들도,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의사들도, 의약품을 전달할 수 없는 약사들의 가슴에도 상처가 가득할 겁니다. 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인가라는 의문과 내게 국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자괴감에 치를 떨며 살아야 할 겁니다.
물이 못 들어가니까 이러다가 말라죽을까봐 지금은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물만 들어간다면 이렇게 조바심이 나지 않을 거예요.
경찰이 정문 앞만 지키고 있을 때는 그나마 정문으로 (남편) 얼굴도 봤고 아이도 정문 너머로 아빠한테 넘겨다 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일체 음식이며 의료진 들어가는 것도 방해해요. 가족들의 상처가 국가권력에만 있었을 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막은 뒤로는……. 회사 측 하는 짓들이 너무 악랄하고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이잖아요. 뭐 매일 매일 회사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입어요. 예를 들면 말로 폭력을 하는 거죠. 우리(가족) 앞을 지나가면서 ‘미친년’ 하며 욕을 하거나 ‘너희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다’, ‘저기(도장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천오백이 죽어야 되느냐’, ‘너희 때문에 파산하게 생겼다’, ‘잘 먹고 잘살아 봐라’, 말끝에 욕을 붙이고…….
여기는 거의 다 쌍용차 직원들이에요. 한 아파트에서 살며 지나가면서 만나고 식당에 가면 만나고 슈퍼가면 만나고 엘리베이터 타도 만나거든요. 여기 조합원 가족들은 (파업)결과가 어떻든 여기를 떠나겠대요. 평택을. 여기 못살겠대요. 직원들 얼굴 보면서 못살겠대요.
여기 참여했던 조합원들의 개개인에 남겨질 패배의식이 사회의 원망을 넘어선 것 (울먹이다) 저주, 아니면 한 가닥 희망조차도 얻지 못하게 했던 사태의 심각성, 뭐 이런 게 앞으로 전혀 치유가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그냥 지고 나오면. 아, 그러면 (남편이) 뭐라도 하고 나와야겠구나, 뭘 할 수 있지, 더 양보할 게 뭐가 있지? 그 고민으로 머리가 터지는 거 같았어요.
아이가 옆에 있어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소리 지르지도 못하고 그래서 가슴이며 배가 많이 딱딱해졌어요. 많이 아프고. 저도 치유해야 되지만 아이도 맨날 경잘 이야기밖에 안 하거든요. 경찰도 종류별로 다 구분하고, 경찰이 떠든 이야기며 진압할 때 집회 온 사람들 뛰어가면서 연행하는 장면들 보고, 제가 안고 있으면 아이 배가 제 배까지 닿을 정도로 이렇게 헉 헉, 너무 무서웠던 거예요. 두려웠던 거예요. 그날 저녁에는 어김없이 설사를 해요, 아이가. 처음 연행 장면을 봤을 때는 삼일을 배 아프고 설사를 하더라고요. 놀래서 그랬는데, 요번 토요일(연행 때)도 그렇게 설사를 하더라고요. 아이도 치유 받아야 되고, 저도 저 자신을 치유하고……. - 쌍용자동차 카이런 조립 3과 이창근 씨 부인 이자영 씨
이자영씨는 ‘남편이 체포되고 구속되는 것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단 마음속 구속기간은 삼 개월까지지만. 단지 ‘살아서 자신의 두발로만 걸어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네 살배기 아들 이주강은 ‘우리 아빠 경찰과 잘 싸우고 빨리 집에 오게 해주세요’하며 고사리 손을 모으며 기도합니다. 이 아이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 정문 앞에서 자전거를 타며 보이지 않는 아빠를 바라보는 주강이에게 너무도 미안합니다.
농성장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농성장에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고, 정리해고 명단에서 제외된 ‘간택’된 사람도 있습니다. 농성장에서는 서로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간택을 받든 받지 않았든, 그저 ‘다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도장공장 밖이 사람과 사람을 분열시켜 상처를 주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물이 끊기고 가스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식수가 많이 부족합니다. 의료진은 차단되었는데 다친 사람이 많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 도장공장 안에서 농성 중인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복거성 씨와 전화 통화
옥쇄파업은 팔십일이 되어가고, 농성장에 물이 끊긴지도 열흘이 넘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 전기마저 차단이 되어 농성장은 암흑이라고 합니다. 물론 공장 밖 세상도 암흑입니다. 아니 암울합니다. 2009년 여름 평택, 민족 간의 비극도 동족간의 전쟁도 아닌 동료 간의 대리전쟁을 국가라는 권력이 자본이라는 야만과 함께 부추기고 있습니다.
평택, 멀고도 험한 길 너머에 사람이 있습니다. 국가가 사라져 국민의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