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었어요. 두 번째 아프리카니까 ‘이번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하는 의욕도 넘쳤고,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는구나’하는 내면의 자신감도 있었죠.”
“그런데요?”
“그런데요-“ (웃음)
떨리는 마음으로 첫 아프리카를 만난지 꼭 1년. 배우 최강희는 ‘월드비전 홍보대사 최강희’가 되어 한껏 자신 있게 두 번째 아프리카로 향했다. 그런데 그 자신감은 금새 사라져버렸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의 두 번째 아프리카, 남수단 난민촌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느껴지지 않았어요
5년 째 내전 중인 남수단에 갔어요. 첫 날, 한 병원을 찾았는데 이상하게도 그곳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난민촌에 갔을 때도, 사람들이 슬퍼 보이지 않았고,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어요.
‘이 사람들의 아픔을 한국에 잘 전달해야 더 도움이 될텐데’하는 부담감이 얇은 막이 되어 제 마음과 눈을 가렸어요. ‘‘더 자극적인’ 이야기는 없나’하는 제 내면을 마주 했을 땐,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실망스럽고 밉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자신감은커녕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 했어요.
그냥 웃게 해주자
‘나에게 공감의 마음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통로가 될 수 있을까.’ 무거운 마음으로 뒤척이던 밤, 친구에게 문자가 왔어요.
‘잘 지내? 별일 없지?’
별거 아닌 말이었는데, 고마운 거에요. 누군가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것 만으로 힘이 나더라고요. 저는 ‘나만 잘하면 된다’고(웃음) 답장을 했는데, 친구의 대답이 이거였어요.
‘강희, 네가 할 수 있는 거 별거 없잖아~
그냥 아이들보면 웃게 해줘. 그러고 와’
그제서야 ‘내가 웃는 사람과 함께 웃지 못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지 못했구나’ 깨달았죠.
그 때부터 부담감을 내려 놓고 아이들을 대했어요.
‘잘 지내니?’
‘밥은 먹었어?’
‘아픈 데는 없고?’
진심을 담아 물었어요.
그들의 이름을 묻고,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맞추었어요.
그렇게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고맙게도 아이들이 웃어주더라고요.
아이들의 웃음이 웃음으로 보이기 시작 했고, 슬픔이 슬픔으로 보이기 시작 했어요. 경계와 무기력함이 묻어나던 아이들의 표정이 서서히 풀어지더니, 아이들의 이야기 보따리도 풀리기 시작 했어요.
아이들의 이유 있는 이야기
이 아이는 10살 아콧(Akot) 인데요.
내전으로 부모를 잃고 동생 3명을 돌보고 있어요.
“복수할까 봐 남자아이들은 모두 죽여요.
그래서 지난 5월 집을 떠나 동생들과 이곳으로 도망쳤어요.”
(아콧, 10살)
아콧은 외로워 보였어요. 이곳에서도 고향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니까, 작은 소일거리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팔에 난 큰 상처는 배가 고파 남의 밭에 떨어진 수수대를 주워 먹다 밭 주인의 아들에게 물린 거래요.
그 상처를 치료해준다고 제가 알콜솜으로 닦아 내는데, 이 아이가 숨소리도 내지 않는 거예요.
나중에 물어보니, ‘아프다고 하면 치료받을 기회를 놓칠까 봐’ 그랬다더라고요.
그때 아콧의 상처가 보였어요. 눈에 보이는 상처 말고, 내전으로 깊게 팬 마음의 상처요. 우리가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소리를 낼 수 없듯이, 이 아이들도 그런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상처를 꼭 보듬어 주는 것이었어요.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건.
아프리카의 마지막 날. 루알(Lual, 6), 아욕(Ayok, 4), 뎅(Deng, 3), 콘딕(Condic, 1), 4남매를 키우는 에족(Ajok)을 만났어요.
분쟁에 휘말린 남편을 고향에 두고, 4남매와 함께 낯선 땅으로 온 그녀. 본인의 몸에서는 30분마다기생충이 나오고, 아이들은 모두 아프고, 사는 집에서는 쫓겨날 처지였어요. 여기까지만 해도 너무 큰 고통인데, 에족이 그러는 거예요.
“강희, 사실 어제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죽으려고 했어요. 근데 당신이 나를 찾아온 거에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나에게, 당신이 물어준 거에요. 아픈 데는 없느냐고, 마음은 괜찮냐고, 아이들 학교는 다니느냐고.”
저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그저 찾아가서 안부를 물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뀔 수 있는 거구나.
사람들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겠다는 욕심으로 찾은 저의 두 번째 아프리카가 저에게 말했어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사실 ‘너와 함께 걷는 사람이 있어’를 느끼게 해주는 거라고. 그래서 네가 이곳에 온 거라고.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으면 우린 버틸 수 있잖아요. 누군가를 돕는 건 내가 그 한 사람임을 알려주는 것, 아닐까요?
‘잘 있냐고’, ‘괜찮냐고’, 안부를 묻는 것에서부터 희망이 시작될 거라 믿어요.
월드비전과 함께하는 <희망TVSBS>를 통해 더 많은 최강희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11월 17-18일(금-토), SBS
글. 배고은 커뮤니케이션팀
사진. 이용대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