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와불(臥佛)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오랜만에 운주사(雲住寺))를 찾았다. 친구의 초대를 받아 그의 고향에 있는 집안의 팔충사 제각을 둘러보러 가던 길이었다. 중간쯤에서 운주사로 들어가는 운주사 이정표가를 만났다. 그걸 보고서 당초에는 계획에 없던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갑자기 석불과 석탑을 보고 싶어서였다.
운주사는 신비에 싸여있는 절이다. 천불천탑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지고 30여 기의 석탑이 남아 있다. 그리고 불상들은 감실에 모셔진 것은 드물고 거의가 외벽에 기대인 채 서 있다. 대다수의 불상들은 세월이 많이 흐른 탓에 균형을 잃고 쓰려지듯 있거나 마모가 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 눈에 보아도 신비롭고 경외의 기운은 여전히 느끼게 해준다.
전해온 말로는 이 운주사는 고려 12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서편 산중턱에 놓여진 15톤이 넘는 일곱 개의 원반형 바윗돌이다. 이것은 북두칠성 별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두 와불이 있는데 이 부처가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바뀐다는 말이 전해온다.
우선 초입에 들어서니 신비감이 느껴졌다. 전에도 몇 번 와보았지만 여전히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더구나 이날은 희끄무레한 박무까지 나직이 끼어서 마치 휘장을 둘러친 듯한 느낌이 들어 새로웠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그간 내가 다녀 본 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 아닌가 한다. 이 밖에도 신비롭게 느낀 곳이 몇 곳이 있는데, 보성의 대원사의 오르막길과 하동 화개의 벚꽃 길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곳들은 경이롭기는 해도 이곳 만큼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차원을 달리하는 신비감과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민중들의 기원을 담은 기운이 서려 있어서 일까.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걸어 들어가면서 보니 경내에 도열한 석탑과 불상들은 여전히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친근감을 더해 주면서 더욱 신비감에 젖게 만든다.
내가 다시 들른 건 10년 만이다. 나는 처음 발걸음을 했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파격을 보이는 불상들이 끝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데 보는 것마다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간 내가 다녀본 여느 사찰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우선 불상과 불탑의 모양이 하나같이 소박하게 빚어 졌고 형상도 제각각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왜 이렇게, 소박하게 조성해 놓은 것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이번에는 전에 건성으로 보고 지나친 '불이문'이 유독 크게 눈에 들어왔다. 기둥에 가지런한 쓰여 진 주련 글씨가 시선을 당겼다.
千佛來會雲中住 (천불래회운중주)
千塔涌出遍滿山 (천탑용출편만산)
천 기의 불상은 구름 속에 들어있는데/ 천개의 불탑이 불쑥 솟아나 온 산 가득 펼쳐있네.
이 사찰에 꼭 들어맞는 글귀다. 나는 주련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글귀를 음미해 본다. 그런 다음에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해서 주변의 불탑과 불상도 차분히 살펴 보았다.
불교에서 ‘천(千)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천불천탑 이라고는 하는 모양인데, 실제로 보기에도 거기에는 못 미친 것 같다. 그렇더라도 여느 절에 비해서는 압도적인 많은 숫자다.
그런 불살들은 대부분이 한데 세워져서 . 비 맞고 눈 맞으며 풍한에 견딘 자취이 역력하다. 그 모습이 마치 당시 민중들의 고달픈 삶의 모습을 대면하는 것만 같다. 이 불상과 불탑이 조성된 고려말기는 잦은 전쟁과 질병으로 민초들이 질곡의 삶을 살아가던 때다. 그 만큼 뜨거운 염원을 키우고 살았을까.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면 좋은 세상에 오겠지.' 그러면서 빌고 또 빌지 않았을까. 이 사찰이 조성된 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갈래의 설화가 전해온다. 그렇지만 나는 고단한 백성들이 일편단심으로 미륵불을 오시기를 기다리며 그 염원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산정에 누워있는 불상은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불상을 깎아 날이 새기 전에 마고할멈이 일으켜 새우려다 동이 트는 바람에 그만 중단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와불은 너럭바위에서 미처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등이 엉겨 붙은 채로 누워있다.
나는 이날 산정에 올라 누운 와불을 보면서 민중들이 ‘이 불상이 일어서는 날, 반드시 오리라고 믿었던 미륵 세상을 그려 보았다. 얼마나 현실의 삶이 고달프고 힘 들었으면 불심에 의탁하려 했을까.
이날 나는 운주사를 빠져나오면서 탑신과 불상마다 얹어놓은 돌조각과 동전이 빼꼭한 것을 보고서 호주머니를 더듬었다. 그러고는 동전을 꺼내어 눈에 들어오는 불상과 불탑에다 동전을 하나씩 차례로 올려놓았다. 그냥 다녀갔다는 표시가 아니라 한 때의 고단한 삶을 살면서 소박한 염원을 안고 살다 간 옛 분들의 자취를 더듬고 위로하고 싶어서였다.
특히 이 날은 바로 소조기를 맞아 진도 동거차도 맹골수도에 3년째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를 건져 올린 지 삼년 째 되는 날이기도 해서 차가운 배 속에서 죽어간 어린 학생들을 떠올리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잠이 들어있는 와불은 언제 깨어날지는 모른다. 아니, 영원히 그런 자세로 그냥 있을 지고 모른다. 하지만 그런 미륵사상을 믿었던 발길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런 발길 중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 삼아 찾아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살면서 지치고 쌓인 근심을 털어내려고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노라니 누워있는 와불이 문득 잠에서 깨어나 민초들의 소망대로 밝은 세상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끝)
첫댓글 부부 와불은 길이 12m, 너비 10m 남녀가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이 신비하기만 합니다.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다 세우려 하였으나, 미처 세우지 못해서 누워 있다고 전하니
천개의 불상은 구름 속에 들어 있고, 천개의 불탑은 편만산에서 곧 솟아 날 것만 같으니,
보면 볼수록 신비하기만 한 운주사를 보면서 석공의 불심이 嘉祥합니다.
와불을 보면서 당시 민중들은 고달픈삶을 살면서 와불이 일어서는 날 미륵세상이 올졸 알았다가 얼마나
실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스쳤습니다.
千佛來會雲中住
千塔涌出遍滿山
천불이 오시어 구름 가운데 머무니
천탑이 솟아올라 온산에 가득하네
누구의 문장인지 그 내력을 알 수 없으나 운주사를 대표하는 글귀가 아닌가싶습니다.
와불은 미완성작품이라는 설이 우세하나 구름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천불상을 보기위해 저렇게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이 땅에 부처님 세상 극락이 오기를 염원하는 기도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극락세계가 오는 날
와불은 벌떡 일어나 하늘을 맞이하리라는 상상에 잠겨봅니다.
운주사는 와서 볼수록 신비합니다. 미륵의 세상은 언제올까요. 전반적으로 다시 개작을 했습니다.
2017년 푸른솔문학 여름호 발표
운주사 와불이 유명한가 보네요. 그리고 누구의 작품일까요. 인간의 염원은 참으로 다양하게 표출되는 거 같습니다.
어느 도인이 밤새 새겼으나 닭이 울고 날이새자 그만 멈추고 말았다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이것이 바로서는 날 미륵세상이 온다고 믿었답니다.
2023 한국작가 봄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