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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5:23
성경은 '인물'보다는 '길'을 조명합니다. 그중에 유독 형제 이야기가 많습니다. 형제 이야기는 가장 가까운 조건인데도 방향 선택이 다르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지금의 만족을 선택하고 야곱은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두 길의 끝은 어떻게 될까? 마므레 석양볕에 이삭이 묻혔습니다. 아버지의 땅에 서있는 야곱의 어깨가 무거울 것입니다. 죽음이 삶의 또 다른 형태이듯, 삶은 야곱에게 치열한 자기 죽음이었습니다.
The Bible illuminates the path rather than the character. There are many stories of brothers among them. The story of brothers shows that life is different if the direction is different even though it is the closest condition. In , chose the current satisfaction and Jacob held on to his promise. What will happen to the end of the two paths? The sun was shining on Jacob's shoulders. Standing on his father's land, Jacob's shoulders must be heavy. Just as death is another form of life, life was a fierce self-death to Jac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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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비틀거리던 야곱이 우직한 아들로 설 때까지 생을 지탱하고 죽음을 버텨 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야곱은 이삭의 뒤를 이어 약속의 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야곱은 아버지 집으로, 이삭은, 열조에게로, 에서는 세일로 돌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죽어 막벨라 굴에 묻힐 때, 그의 장례에 야곱과 에서가 모두 참석하였습니다. 평생의 짐이던 두 아들 간의 갈등이 다 해소되는 것을 보고 죽은 이삭은 참으로 축복 받은 인생이 맞습니다. 그리고 잠시 함께 살던 야곱과 에서가 다시 헤어집니다.
Isaac thinks that Jacob, who was stumbling, would have supported his life and survived his death until he stood as the upright son. Jacob must now continue the line of promise after Isaac. Jacob went back to his father's house, Isaac to his nirvana, and Isaac to his nirvana. Jacob and Esau attended his funeral when Isaac son of Abraham died and was buried in the cave of Macbella. Isaac, who died when he saw the conflict between his two sons resolved, was truly blessed. Then Jacob and Isaac, who lived together for a while, parted ways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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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가 그의 모든 가족들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야곱을 떠납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두 삶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라(7)”고 기록합니다. 아버지란 존재가 가족들을 모이게 만들었다면 그들이 가진 소유가 그들을 다시 갈라놓은 것입니다. 우리집도 어릴 적엔 형제들이 한데 모이면 그렇게도 즐거웠는데 차츰 형제들 사이가 소원해지더니 육남매가 모두 출가를 해서 세끼들을 낳자 정이 제 자식들을 중심으로 쏠리게 되는 모양입니다.
Esau leaves Jacob with all his family and all the wealth he got from Canaan. The Bible notes the reason: "The possession of the two lives is abundant and they cannot live together (7)." If the existence of a father brought the family together, their possession separated them again. When I was young, my family used to enjoy it when my brothers got together, but gradually the brothers became estranged, and when all the six siblings joined the sangha and gave birth to three meals, I think Jung concentrated on my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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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돈 때문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저부터 내 새끼 하면 깜빡 죽습니다. 진화생물학자들에 의하면 결혼 전까지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길이 없기 때문에 그땐 동생들을 돌보아 주는 것으로 대신 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우애는 식고, 자기 새끼들만 끔찍하게 챙기게 된다나 봐요. 미국의 심리학자 프랭크설로웨이는 장남들이 차자들보다 마음이 훨씬 굳셀 수밖에 없는 것도 유전자적 요인이라고 합니다. 에서는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습니다.
It's a relief, not because of the money. My baby dies instantly when I start. Evolution biologists say that because there is no way to spread his or her genes until marriage, the younger siblings are taken care of as a substitute, and as we get older, the fraternity cools and only the babies are taken care of horribly. American psychologist Frank Suloway attributes genetic factors to the eldest sons being much stronger than their daughters. In , they marry Canaan women and have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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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아내는 헷족속 중 엘론의 딸 아다, 히위족속 중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 호홀리바마, 이스마엘의 딸 느비뇻의 누이 바스맛(1-3)입니다. 에서는 본래 세일 산에서 살고 있었는데(33;16)이제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에서는 약속의 땅으로부터 분리되어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30년 잔 밥을 먹어도 이 대목에서 갈등은 여전히 있습니다.
His wife was Ada, daughter of Elon among the Hets, Hoholibama of Shivon, and Basmat (1-3), sister of Nubignot, daughter of Ishmael. She originally lived in Mount Seil (33;16), but has now returned to her original place. She separated from the promised land and became the ancestor of the Edom tribe. Even after 30 years of drinking, there is still conflict in this 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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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세상방식에 앞서가는 에서가 왕정체제를 빨리 수립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누구든 돌아갈 본향을 잊으면 결국 에서처럼, 데마처럼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딤후4:10). 주께서 내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요6:67).”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출발인가, 삶의 방향인가?
This is because Westerners, who are ahead of the way of the world, quickly establish a monarchy. What is clear is that if anyone forgets his or her home, he will eventually return to the world like Esau and Dema. The LORD asks me, "Are you going to go, too?" Is it a departure or a direction of life that determines one's f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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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족보와 이삭의 죽음(23-29)
에서의 족보와 야곱의 분리(1-8)
a.에서의 족보:1-5
b.야곱과의 분리: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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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의 소생은(23a)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23b)
그 다음 시므온과(23c)
레위와(23d)
유다와(23e)
잇사갈과(23f)
스불론이요(2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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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의 소생은(24a)
요셉과(24b)
베냐민이며(2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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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의 여종(25a)
빌하의 소생은(25b)
단과 납달리요(2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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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의 여종(26a)
실바의 소생은(26b)
갓과 아셀이니(26c)
이들은(26d)
야곱의 아들들이요(26e)
밧단아람에서(26f)
그에게 낳은 자더라(2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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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27a)
기럇아르바의(27b)
마므레로 가서(27c)
그 아비 이삭에게(27d)
이르렀으니(27e)
기럇아르바는(27f)
곧 아브라함과(27g)
이삭의 우거하던(27h)
헤브론이더라(2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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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나이(28a)
일백 80세라(2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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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이(29a)
나이 많고 늙어(29b)
기운이 진하매(29c)
죽어929d)
자기 열조에게로(29e)
돌아가니(29f)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29g)
그를 장사하였더라(2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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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1a)
곧 에돔의(1b)
대략이 이러하니라(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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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2a)
헷 족속 중(2b)
엘론의 딸 아다와(2c)
히위 족속 중(2d)
시브온의 딸 아나의 소생(2e)
오홀리바마를(2f)
자기 아내로 취하고(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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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스마엘의 딸(3a)
느바욧의 누이(3b)
바스맛을 취하였더니(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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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는(4a)
엘리바스를(4b)
에서에게 낳았고(4c)
바스맛은(4d)
르우엘을 낳았고(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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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홀리바마는(5a)
여우스와 얄람과(5b)
고라를 낳았으니(5c)
이들은 에서의 아들이요(5d)
가나안 땅에서(5e)
그에게 낳은 자더라(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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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가(6a)
자기 아내들과(6b)
자기 자녀들과(6c)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6d)
자기의 가축과(6e)
자기 모든 짐승과(6f)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6g)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6h)
그 동생 야곱을 떠나(6i)
타처로 갔으니(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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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소유가(7a)
풍부하여(7b)
함께 거할 수 없음 이러라(7c)
그들의 우거한 땅이(7d)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7e)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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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에서(8a)
곧 에돔이(8b)
세일 산에 거하니라(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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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하나님의 통치_ the reign of the mystical God
화해를 가져온 죽음_ a reconciliation of death
복을 저버린 에서_ Esau out of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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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믿음의 계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계승되고 성취되는 것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보고 있나이다. 인생 끝까지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삶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이 역사 앞에 책임 있게 반응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기억할 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God, the master of history, is it seen through Abraham, Isaac and Jacob that God's promise is succeeded and fulfilled through the genealogy of faith? May God be in charge until the end of his life, and may we who believe in God react responsibly before this history. So remember God and let him be a man of God to remember.
2026.5.5.tue.Clay
신학 비평//
하나님은 왜 함께 두지 않으시는가? 인생을 가르는 것은 출발인가, 끝까지 유지된 ‘방향’인가? 성경은 ‘인물’이 아니라 ‘길’을 기록합니다. 창세기 35:23은 단순한 족보가 아닙니다. 누가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누가 어디로 갔는가?
1) 야곱 vs 에서: 선택의 순간이 아니라 ‘지속된 방향’
* 에서 → 지금, 소유, 현실
* 야곱 → 약속, 기다림, 미래
인생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지속된 방향의 총합
2) 죽음의 역할
죽음은 화해를 완성하지만 관계를 유지하진 않습니다. 이삭의 죽음은 형제의 갈등을 봉합합니다. 그러나 다시 분리됩니다. 죽음은 관계를 화해시키지만 삶의 방향까지 같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 문제는 돈이 아니라 방향이 다른 삶은 함께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3) 신학적 핵심
에서는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는 다른 길을 간 사람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은 ‘선택받은 방향’에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모든 길을 약속으로 사용하시지는 않는다" “형제 이야기 = 방향 이야기”, "죽음 = 화해의 장치”, “소유 = 분리의 계기” “에서는 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약속의 방향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지금 같은 자리에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이미 떠난 상태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