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된 제자 전화에 울컥하다.
솔향 남상선 / 수필가
6월 중순이었다. 무료한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다.
“ 선생님, 저 한은순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
“ 응, 70년대 덕산고등학교 우리 반 한은순 아닌가? ”
전화 주인공은 그 당시 성실한 학생이었다. 공부도 잘했다. 일거수일투족이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었다. 좋은 생각으로 각인이 됐던 학생이었던지, 기억이 날 도와주었다. 지체 없이 바로 알아보았다. 꽤 좋아하는 음성이었다. 반가운 제자인지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통화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도 나누었다. 가족 관련 이야기며, 친구들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제자는 아들이 결혼해서 손주까지 있다 하였다. 내 건강 상태도 물어왔다.
그 동안 건강하게 살았는데, 최근에 전립선암 환자가 됐다고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과거 회상에 빠져들었다. 덕산고등학교는 내 평생 잊을 수 없다. 교사 첫 발령 학교인 데다가 결혼도 그 학교 있을 때 했기 때문이었다. 군 입대 영장도 거기서 받았다. 입영 1주일 전부터 온통 학교가 술렁였다. 환송을 해준다고 야단법석을 떨어서 학생들이 우리 집에 끊이질 않았다.
교사 첫 출발을 잘 하려고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학생들을 편애하지 않고 열정을 다하여 지도했다. 전화 통화를 한 제자는 그때 고3 여고생으로 내가 담임을 했다. 그 때 제자 나이 19살, 청순하고 예쁜 나이였다. 꽃으로 말하면 피어나기 직전 꽃망울처럼 탐스럽고 예쁜 때였다.
한 때는 그리 청순하고 예뻤던 소녀가 지금은 이순(耳順)이 훨씬 지난 할머니가 되었다. 세월이 사람의 모습을 바꿔 놓았어도, 마음은 어찌하지 못했나 보다.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냥 두었는가 보다. 날 보고파 하는 얼굴들이 많다며, 수다를 떨었다. 우리 반이었던 얼굴들 명단을 일일이 열거하는 거였다. 의식이, 필래, 숙자, 민자, 정희, 혜숙이, 이름까지 대는 거였다. 불원간 수일 내로 그 일당들이 대전으로 몰려올 예정이라고 했다.
며칠이 지났다. 방울토마토 한 박스가 택배로 왔다. 방울토마토가 전립선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전립선 암 환자를 위해 보낸 것임에 틀림없었다. 근 50년 세월 속에서도 잊지 않고 전화를 해준 것만도 고마운데 방울토마토까지 보내주다니 울컥하는 마음이었다.
‘ 할머니가 된 제자 전화에 울컥하다. ’
19살 한창 청순한 여고생 때 졸업으로 헤어져, 이순(耳順)의 나이가 훨씬 지났다.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됐지만 마냥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한 거였다. 옛날이 그리워서였다. 담임선생님 얼굴이 그냥 보고 싶었던 거였다. 그리운 얼굴이 떠올라서, 음성이라도 듣고 싶은 심정에 전화를 한 거였다.
옛날 담임선생님이지만 암 환자라는 사실에 걱정이 됐던 거 같았다.
그래서 전립선암에 좋다는 토마토를 보낸 것이었다. 6월에 보낸 방울토마토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9월말에 또 방울토마토를 2박스씩이나 택배로 보내왔다.
요즈음처럼 메마른 세태에는 졸업한 지 5,6년이면 은사도 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한은순 제자는 그게 아니었다. 50 개 성상을 뒤로 하며 할머니가 됐어도 선생님 안부를 물어오고, 옛 담임 병까지 걱정하는 지상의 천사가 되고 있었다.
나도 이 나이 되도록 많은 선생님들 모시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제대로 사람 노릇 못하고 살았다. 제자는 내가 실천하지 못한 것을 숱한 깨우침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깨우침을 주었으니, 제자는 나의 스승이 된 셈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그 무엇이겠는가? 제자가 스승보다 훌륭하게 살고, 칭송 받는 삶이라면, 그게 바로 참다운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아니겠는가!
탱글탱글 빨간 방울토마토,
그것은 할머니가 된 제자의
한 알 한 알이 사랑이요, 정성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가슴으로, 정성으로,
옛 스승 병 쾌차를 비는 소중한 기도, 애원을 담은 거였다.
아름다운 꽃도, 향기도
세월 지나면 사그라드는 것이련만
제자는 할머니가 됐어도 그 향은 그칠 줄을 몰랐다.
담임선생님 병을 고쳐주려는 측은지심에서였을까?
아니면, 숭고한 베풂의 사랑이었을까?
세상제일 아름다운 숭고의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사람 냄새 풍기는, 베풂의 삶을 즐기는 제자가 자랑스럽다.
아니, 그 따뜻한 온혈 가슴을 만 천하에 드러내어 기리고 싶다.
첫댓글 선생님의 제자사랑이 눈물겹게 와 닿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전립선 암으로 고생 하시다니...
찾아뵙지 못한 서용선은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오늘 카페에서 선생님 글을 읽을수있어서 저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선생님,
오래오래 건강 하셔야 됩니다,
필래친구들과 꼭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제자 서용선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