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큰 산수경석입니다. 아랫자리는 절단석입니다. 가파르고 묵직한 단봉 앞으로 큰 패임이 있습니다. 호수입니다.
출근을 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어항의 필터망을 갈아주는 일입니다.
그리곤 서랍장 위에 앉아 저를 맞이하는 돌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듯 물을 뿌리죠.
꽃에 물을 주듯 돌에 물을 주는 순간, 나는 단순히 물을 주는 행위를 넘어 돌과 교감하게 됩니다.
세수를 할 때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용모를 가다듬듯이, 돌 또한 물을 머금고 변화를 시작합니다.
물을 먹은 돌은 표정을 바꾸며, 마치 저를 응시하듯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돌과 나 사이에는 묵묵한 교감의 시간이 흐릅니다.
물은 돌을 자라게 합니다.
돌은 그 형과 질, 색으로 스스로를 정리하며 새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속에서 수십, 수백, 수천만 년 동안 물의 흐름에 의해 다듬어진 돌의 골과 굴곡은 저를 늘 가슴뛰게 합니다.
100년에 1mm씩 작아지는 과정에서도 돌은 흐르는 물과 함께 자라갑니다.
물과 공기, 흙과 햇빛을 받아 돌은 양석(養石)의 과정을 거쳐 성숙해지고, 그 존재감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돌은 단순히 무생물이 아닙니다.
들숨과 날숨이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을 통해 생명력 있는 존재로 거듭납니다.
크고 작은 돌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우리와 소통합니다.
큰 돌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그 웅장함을 이해할 수 있지만, 작은 돌은 가까이 다가가야만 그 세부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돌의 크기는 돌과 사람 사이의 거리와 관계를 결정합니다.
가까이에서 돌을 살펴보면, 돌의 피부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체온과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돌은 마치 그만의 언어로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그러나 돌을 이해하려 할수록 그 경계는 사라집니다.
돌은 결코 객관적인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이해하려는 순간 돌은 그저 ‘존재’로 남습니다.
그것은 삶의 자초지종과도 같습니다.
나를 통해 돌을 보고, 돌을 통해 나를 봅니다.
수석(壽石)의 세계에서 돌은 자연의 경치를 담은 산수경석(山水景石),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을 닮은 물형석(物形石), 자연스레 무늬가 새겨진 무늬석, 빛깔이 아름다운 색채석, 그리고 추상적인 형상을 가진 추상석 등으로 구분됩니다.(그중에서 저는 경석, 변화석을 좀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구분이 돌의 본질을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돌은 그 자체로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존재입니다.
돌의 주름은 마치 치마자락이 접히듯 고요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돌에는 수천만 년의 시간이 순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돌은 단순히 시간을 보존한 미이라가 아닙니다.
돌은 자신을 증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대신, 그 시간 속에 담긴 순간들을 지금 우리 앞에 고요히 펼쳐 보입니다.
방 안에 진열된 돌 하나하나가, 그 안에 품은 몇 천만 년의 시간이 나를 호위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60여 년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내가 경험했던 시간과 기억이 돌 위를 떠돌다가 돌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라고.
어제는 사라지고 지금이 남는 이 순간, 돌은 분명 어제보다 조금 더 도톰해졌으리라 믿습니다.
돌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자라고 변화합니다.
진북과 자북 사이의 편각만큼 미묘하게 벌어진 거리를 상기하며, 우리는 돌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배웁니다.
돌을 바라보는 눈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존재를 이해하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밤길에서 마주한 혼불처럼, 돌은 그 안에 수정처럼 맑은 물의 뼈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돌의 매끈한 표면 속에는 수많은 주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물의 흐름과 시간의 씻김이 만들어낸 이 주름들은, 그 자체로 돌의 역사이자 이야기입니다.
주름은 흔히 접힌 아름다움 속에서 발견됩니다.
커튼과 꽃잎, 프릴과 아코디언, 사막의 모래 물결, 샤페이 강아지의 주름, 기다림을 꼽는 손가락처럼.
그러나 돌의 주름은 그 무엇과도 다른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파임과 트임, 그리고 물씻김이 만들어낸 돌의 주름은 구도자와 같은 경건함을 드러냅니다.
돌은 그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돌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의 삶과 교감하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겨울왕국의 돌요정 트롤처럼 돌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넵니다.
그 이야기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 돌과 나, 그리고 세상을 연결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돌 앞에서 나는 시간을 이해하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돌의 피부를 어루만지고 주름을 바라보며, 나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그렇게 돌은, 그저 돌 이상으로, 우리의 동반자가 됩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돌을 바라봅니다.
물을 머금은 돌은 여전히 자라고 있습니다.
물과 햇빛, 흙과 바람, 그리고 우리의 체온과 숨결 속에서 돌은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돌이 담은 시간과 공간, 그 모든 것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저는 돌을 통해 존재와 시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배워갑니다.
돌은 단순히 무언가를 상징하거나 보존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돌은 그 자체로 완전하며,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돌은 우리에게 세월의 깊이를 가르치고, 삶의 고요함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돌과 함께 시간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