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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의 신앙과 사상
제 1 강 : 감리교의 유래
1. 감리교회의 유래
올더스게이트 거리에 있는 한 교회의 명판에는 그의 이름과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다. “존 웨슬리, 그의 마음이 이상스럽게 따듯해짐을 느꼈다.(FELT HIS HEART STRANGELY WARMED) 이 은총의 경험은 감리교의 시작이었다. -미국 드류신학교, 1926년)
웨슬리의 신앙체험은 그가 감리교를 세우는데 힘찬 원동력이 되어졌다. 그가 링컨대학의 강사로 있으면서 조직된 신성클럽(HOLY CLUB)을 통해 발전된 그의 신앙 조직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성클럽의 지도자가 되어 성경연구와 종교적 성결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초기에는 주 1회 모이다가 후에는 매일 저녁에 기도와 희랍어 성경연구, 고전 문학 연구를 하고 검소한 식사로 마치곤 하였다. 또한 매주 1회의 성찬식과 한주에 두번의 금식을 하였다. 이러한 규칙적이고 신앙적인 활동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규칙쟁이라는 의미로 감리주의자(METHODIST)라고 불렀고 후에 이것이 우리 교회의 명칭이 되었다.
웨슬리의 신앙은 어려서부터 어머니 수잔 웨슬리에게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경험과 그의 폭넓은 독서(링컨대학 강사) -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희랍어와 라틴어, 수요일에는 논리와 윤리, 목요일에는 히브리어와 아랍어, 금요일에는 형이상학과 자연철학 그리고 토요일에는 웅변학과 시문학을 공부했다 - 와 회심 경험은 그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는 학생 때 과외로 공부할 것을 정해서 스스로 연구하곤 하였다.
먼저 제레미 타일러 감독(J. Tylor)의 거룩한 삶과 죽음,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 (T. A.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Immitatio Christi), 그리고 월리엄 로우(W. Law)의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하여 와 경건하고 거룩한 삶에의 부름이라는 명저들을 통해 그는 종교의 형식보다는 내면성을 중시하는 것과 목적의 단순성, 사랑의 순결성, 언행의 합일 및 자기 부정과 전적인 헌신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두번째로 그는 성서와 초대 교부의 문헌 연구를 통하여 성화의 개념을 명확히 하였는데 이는 신성클럽(Holy Club) 회원인 클레이톤의 도움으로 성화의 규범적 교리를 접하였고,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완전이며, 그것은 상태가 아닌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들은 이집트 성자 매커리어스(Macarius), 사이러스(E. Syrus)로써 이들에게서 완전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었으며, 익나시우스(Ignatius), 클레멘트(Clement) 등을 통해서는 참된 성결과 교리와 체험간의 긴밀한 관계성을 이해하였다. 웨슬리는 초대 교회와 동방 교회의 문헌을 통해 거룩함의 관념은 훈련된 사랑임을 깨달았고, 영국교회의 전통인 이상적 사랑을 종합하여 사랑의 관념을 완성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실천적 영향을 끼친 것은 2회에 걸친 회심사건과 야성회에서의 성령체험이었다. 그의 1차 회심으로 불리는 사건(1725년)에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겠다는 율법 아래서의 종의 신앙을 소유하였고, 1738년 5월 복음적인 2차 회심을 통해 은혜 아래 서있는 인간이 되어 아들의 신앙을 체험하였다. 그는 자신이 “그의 마음이 이상스럽게 따뜻해짐을 느낌”으로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특히 1738년 연말에 페터레인에서 모인 야성회(철야기도회)에서의 성령의 강한 임재는 그를 순수한 사랑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실천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것은 성령의 증거인 동시에 그의 경험이었다.
이러한 신앙적 경험을 가진 그는 1739년 4월부터는 야외에서 전도를 시작하고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영국교회는 그가 설교할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설교를 듣고 감화를 받은 이들이 영국교회에 들어가기를 원했으나 교회는 이들을 받아 주지 않았다. 결국 웨슬레는 신도회(SOCIETY)를 조직하고 그들을 직접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날이 발전한 이 신도회의 지도를 위해 작은 단위인 속회(CLASS)를 조직하고 속장제도를 두어 매주 화요일마다 상당한 교육과 훈련을 시켜 이들의 신앙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웨슬리가 마지막으로 브리스톨 연회에서 사회를 볼 때에는 감리회원 수가 영국과 북미 그리고 선교지에 거의 12만명에 이르렀다. 웨슬리 형제가 임종한후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명패를 새겼는데 그 명패에는 다음의 세가지 말들이 기록되어 있다.
“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써 생각한다.” -JOHN
“ 무엇보다도 귀중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다.” - JOHN
“ 하나님은 그 일꾼을 장사시키나 그 사업은 계속하신다.” - CHARLES
2. 감리교회의 전통
감리교회의 신앙과 신학은 다른 개신교회에 비하여 독특성을 갖는다. 이는 일반 개신교회가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분리되거나 개혁하여 발생하였으나 감리교회는 영국성공회에서 시작하고 그 전통은 개신교적이기 보다는 카톨릭 전통에 더욱 가깝다. 특별히 감리교 신앙은 웨슬리의 지도 노선에 따라 성서적인 기독교로 되돌아 가려는 노력이 가장 돋보이는 교단이라 할 수있다. 즉 그는 초대 교회의 전통과 고전 카톨릭 전통과 개혁교회 전통을 다양하게 수용하여 창의적으로 종합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초대 교회의 전통은 웨슬리가 신성클럽의 회원인 존 클레이톤의 도움을 받아 초대 기독교 교부를 연구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적 전통을 다시 되찾으려고 했다. 이는 주로 희랍교부들의 전통과 이집트의 성자인 마카리우스의 여러 문헌들을 읽으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사상과 사랑은 단지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훈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disciplined love,aspiring love) 뿐만 아니라 닛사의 그레고리의 저서를 통해 성령안에서의 완전과 역사,그리고 은사에 대해 깊이 상고하였다. 그리하여 웨슬레는 속회의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는데 3개월마다 한번신 신용증서와 같은 것을 발급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곤 하였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전통을 통해 기독교회의 표준적 규범을 세우게 되었다.
웨슬리는 카톨릭 전통에서 은총의 제도화된 수단(기도 성경읽기, 성례전 참여)을 강조하였고, 역사적인 3중 안수제도와 감독 제도를 긍정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연속성과 일치를 강조한 웨슬리는 침례교의 유아세례 불필요성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였고, 유아 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성직자의 역할을 그 성직자의 능력이나 부정에도 불구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신다고 믿었다. 또한 신비주의적 영향을 강하게 받던 카톨릭과 성공회의 영향하에서 웨슬리는 주관적 체험의 강조와 개인적 성화에 강조점을 둔 신비신학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종교이며, 공동체적인 성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개혁적이고 자유교회전통은 특히 모라비안 교도들에 의해 경건주의와 루터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근본적인 교리인 sola fide(오직 믿음으로)나 sola scriptura(오직 성서로)를 받아들이되 그것을 일차적인 것이라고 보았지 배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믿음은 사랑의 삶을 위한 수단이라고 보았다.(설교:믿음으로 세워진 율법Ⅱ) 그러나 신앙으로 말미암은 의는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의는 내적인 변화를 통해 성화의 삶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즉 신비적 정적주의에 빠진 신앙을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의 주권 사상을 용인하였으나 인간의 나약성을 강조한 나머지 예정설에 치우친 것을 비판하면서 자유의지를 강조하였다. 이 자유의지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해 주어지는 선재은총이며 이를 통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3. 감리교 운동
웨슬리는 그의 동료들과 더불어 신성클럽에서 하던 사업들을 계속해서 실행하였다. 그들은 회원인 월리엄 몰간의 권유로 정기적으로 가난한 이웃과 수감된 죄수들을 방문하고 무산 아동을 가르치는 일에 나섰고 후에는 탄광촌인 킹스우드에 학교를 세워 하류층으로 교육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전도자의 자녀를 교육시켰다. 이러한 일들은 계속해서 사회사업으로 연결되어 당시의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당시의 노동자를 위한 휴계소를 설치하고 빈민금고를 창설하고(1746), 고아원을 세웠으며(1742) 금주 운동을 벌여 술집이 문을 닫게 되었고, 노예폐지 운동을 협조하였다. 웨슬리는 말년에 노예해방운동가인 윌버포스에게 편지하기를 “계속하시오.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전능하신 권능안에서, 아메리카의 노예제도까지도 그 앞에서 사라지게 되기까지.”하고 격려하였다.
웨슬리는 “힘껏 벌고, 힘껏 모으고, 힘껏 써라”고 강조하면서 “기회있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되 십분의 일, 십분의 삼, 십분의 오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께 갚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돈으로 굶주린 자를 먹이고, 헐벗은 자를 입히며, 나그네 된자를 돕고, 과부와 고아를 돌보며, 그리고 인류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웨슬리는 자본주의 원리와 부동산 상속의 권리를 반대하면서 경제적 분배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였다. 웨슬리의 이러한 사회적 성화운동은 영국전체를 변화시켰다. 그는 의료소를 개설하였고 극빈자를 도와주었으며, 섬유공장을 세워 노동할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였다. 또한 출판사업을 통해 신앙을 고취시켰으며, 설교와 찬송시를 출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과 소책자를 발행하여 계몽사업을 벌였다.
계속해서 연결된 선교사업은 미국과 캐나다 아일랜드 독일등을 선교지로 봉사하면서 해외선교를 강화하였고, 곳곳마다 신앙그룹을 형성하도록 고무하였다. 영국의 노동조합의 출발은 바로 감리교회의 속회조직을 본따 만든 것이며, 실제로 감리교인이 대부분이었다. 나아가 탄광과 교도소를 방문하도록 조직시켰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영국은 피의 혁명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제 2 강 : 감리교회의 신앙
1. 감리교회의 신앙적 표준
웨슬레는 영국교회의 신학적 표준인 성서,전통,이성에 경험을 넣어 4개의 신학적이며 신앙의 표준을 삼았다. 이러한 신학적 표준은 미국 감리교회와 한국감리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감리교회에서의 표준이 되어졌다.
(1) 성서
웨슬리는 고전적인 개신교전통에 입각한 성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성서의 영감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확신하였다. 그러나 성서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기록되어진 것으로는 보지 않고, 그들의 일반적 기억과 전승, 그리고 정확성 없이 성서를 인용하였다고 인정하였다.(신역성서주해 히브리 2:7, 마태1:1, 마태 2:6) 결국 정태적인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전통과 이성과 경험과 관련하여 성서를 해석하였다. 웨슬리는 최고의 권위를 성서에 둔것은 “성서 전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음을 확신했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유일하고 충분한 법칙임을 믿었다.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한 책 - 성서 - 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다.(HOMO UNIUS LIBRI) 그러나 그는 사고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하여 의학, 역사, 문학 등을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성서해석법은 다음과 같다.(W. 아네트)
1) 문자적의미는 애매하거나 상치되지 않는 한 강조한다. 애매한 본문은 선명하게 말해주는 본문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2) 전체적 맥락에서 본문을 해석한는 것이 중요하다.
3) 성서를 성서자체와 비교해서 해석되어야 한다. (서로 보충)
4) 성서는 경험으로 확증 되어야 한다.
5) 성서의 선포와 이해를 위해 이성이 사용되어야 한다.
6) 최후의 해석은 평범한 진리 이어야 하며, 사변과 불가해한 추리이어서는 안된다.
(2) 전통
웨슬리는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교부들의 권위를 최고의 전통으로 긍정하였으나 3중 안수제도나 교회의 예전과 같은 중요한 전통적 형식들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특히 기도서와 교훈, 초대 교부들의 문헌에 중용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성서는 바로 이러한 전통에 의해 읽혀질 때에 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새로운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 전통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내면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근본적인 목표를 재고하는 데 큰 힘을 제공한다.
(3) 이성
웨슬리는 이성을 부인하는 것은 종교를 부인하는 것과 같으며 종교와 이성은 동반자이며, 모든 비합리적인 종교는 거짓종교라고 하였다. 이성은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아래 참종교의 기초를 수립하는 것과 상부구조를 수립하는 일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즉 논리적인 능력으로 게시의 증거를 정리하고 성서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에 방어하는 필요한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웨슬리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분적으로 밖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 성품의 본래적인 구조입니다. 그리고 조물주에 관해서든지 그 분의 피조물에 관하여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음 놀랍도록 지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현명해지기 위해서는 언잖기는 하나 필수적인 주제입니다. 그것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지혜와 사랑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여사 우리 자신의 무지를 분별하게 하시기를 빕니다.” 라고 하였다.
(4) 경험
웨슬리는 권위의 구조에 있어서 개인의 경험을 강조했는데 이는 그의 성령체험을 통해 강화되었다고 할 수있다. 이는 성서와 전통이라는 차원이 기독교를 형식종교로 만들고, 이성만의 강조는 논리적 종교로 전락시킬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나는 소위 감리교인이라는 사람들이 구라파나 미국에서 사라지는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아무런 능력이 없는 종교의 형식 곧 죽은 분파로 존재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만일 그들이 처음 출발할 때에 보인 교리와 정신과 훈련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바로 성서의 권위와 전통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주어졌다고 확인될 때에만 타당한 것이다. 바로 경험 종교로써의 기독교는 바로 성령의 내적 증거와 권위의 활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은 성서에 의해 확인되어야 한다.
2. 감리교회의 특색
(1) 은총의 낙관주의
웨슬리의 신학은 은총의 낙관주의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은총의 낙관주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참된 성장은 안정과 사랑의 상호관계 속에 있을 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확신은 미래를 보장하는 담보물은 아니며, 지속적인 복종과 충실만이 미래를 보장한다고 믿었다. 감리교회의 신앙의 내면은 바로 이러한 신앙이 낙관주의인데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양심을 주셨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것을 선재은총(prevenient Grace)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선재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신앙할 수 있으며,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은총가운데서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러한 은총에 의한 성장은 은총의 수단으로 더욱 고양되어질 수 있다. 1) 기도 - 이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며,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낙관하며, 더욱 깊은 확신에 차도록 고무시키는 것이다. 2) 성서연구 - 감리교는 성서적 기독교인이 되고자 했다. 늘 성서의 말씀을 전체로써 파악하고 그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데 깊은 관심을 가졌다. 감리교인은 스스로 “성서가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어떻게 하면 성서의 진리를 다른 사람의 선을 도모하는 것으로 만들수가 있는가?”하고 자문하도록 했다. 3) 성찬- 웨슬리는 가능하면 자주 성찬에 참석하도록 했고, 주님이 성찬 가운데 현존하시며, 회개시키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4) 금식- 웨슬리는 매주 수,금요일에 금식을 지켰다. 그리고 후에는 금요일을 지켰다. 이는 어떤 효력을 가지는 것 보다는 그 시간을 하나님과 영적 관심사에 바친다는데 있었다. 5) 친교- 웨슬리는 전도된 신도들을 반(속회,동성 4-8명), 조(남녀 지도자) , 회(40명의 기도회,매주모임,성서해설,찬송,간증,기도)단위로 묶어 그들의 신앙을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와 주었다.
(2) 보편적 정신
감리교인은 행동 관습 또는 중요하지 않은 문화적 상황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의견이나 특수한 관념에 동조되지 않고 오직 성서에 기록된 말씀이 기독교 신앙과 실천에 충분한 규범으로 확신하는 것이었다. 즉 기독교 사상의 일부 의견보다는 그 근본 핵심과 전체에 강조점을 둔다. 웨슬리의 이러한 보편적 정신은 다른 사상에 대해 강제하거나 무조건적인 수용 태도를 거부한다. 단지 근본적인 신앙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적합하다면 그는 관용의 태도를 취하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태도는 일치운동에 커다란 동력을 제공하였고, 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며, 무엇을 하든지 말과 행동에 있어서 모든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과을 도리는 것이다. 그는 “ 의견이나 말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파괴하지 말고 만민의 아버지 이신 하나님이 한 분 이듯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관용정신을 갖는다. 하나님은 만물위에 계시고, 만물을 통일하시며, 만물 안에 계신다. 그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가? 그러면 우정의 악수를 하자”고 하였다.
(3) 사랑의 역동성
웨슬리는 감리교인의 특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 웨슬리는 신약주해에서(1요한 4:18-19) “우리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 이 말씀은 모든 종교의 큰 강령이며, 그리스도교의 진정한 핵심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전적으로 거룩해지고, 이 사랑이 모든 성결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사랑은 외적인 행동 뿐만 아니라 내적인 성령의 인치심을 필요로 한다. 사랑의 능력은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사랑이며, 이 사회적 사랑은 자기 사랑과는 구별된다. 바로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란 타인 또한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랑은 생의 원동력이 되어지고 결합의 원리이며, 자연적인 긍정의 원리로써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은 기독교인은 자기 사랑을 넘어 타인에 대한 봉사와 희생으로 발전된다. 사랑없는 힘은 폭력이며, 힘없는 사랑은 무기력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역동성은 자신만을 위한 자율이나 타인에게 강제되는 타율도 아닌 하나님의 사랑의 힘에 사로 잡히어 뜨거운 열정과 확신 속에서 나누어지는 사랑이다. 웨슬리는 이 사랑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을 성화의 길로 인도하는 위대한 힘이며,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감리교인의 증거는 어떠한 교리나 신조에 대한 찬성보다는 그리스도의 형제의 입장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며, 서로의 짐을 져 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의 법을 성취하는 데 있었다.
(4) 창의적 종합
감리교 신앙은 어떠한 주의나 주장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변적인 확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감리교 신앙은 전세기에 나타난 모든 신학적 장점을 취하고 성서적 전통 속에서 다시 밝혀내어 이러한 교리의 정신과 그 훈련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2) 믿음으로 얻는 의와 성화의 삶
3) 카리스마와 제도(은혜의 수단과 내적 은총)
4) 교리와 체험
5) 현재적 구원과 미래적 구원
6) 만인구원론
3. 한국감리교회의 신앙
한국감리교회의 신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적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의 교리적 선언은 회심과 성화 그리고 성령에 의한 구원의 확신을 중점적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1930년 남북감리교회가 합동하면서 미국교회의 전권위원회의 감독인 H.웰취 감독이 한국신학자들과의 협의하에 제정한 것이다. 이는 미국연합감리교회에 한국인의 신조(Korean's creed)로 잘 알려져 있다.
교리적 선언
1) 우리는 만물의 창시자시요 섭리자시며 온 인류의 아버지시요 모든 선과 미와 애의 근원이 되시는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으며
2) 우리는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사 우리의 스승이 되시고 모범이 되시며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3)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사 우리의 지도와 위안과 힘이 되시는 성신을 믿으며
4) 우리는 사랑과 기도의 생활을 믿으며, 죄를 용서하심과 모든 요구에 넉넉한 은혜를 믿으며
5)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과 실행에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으며
6) 우리는 살아게신 주 안에서 하나가 된 모든 사람들이 예배와 봉사를 목적하여 단결한 교회를 믿으며
7)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됨을 믿으며
8)우리는 의의 최후승리와 영생을 믿노라.
한국감리교회는 이러한 감리교적 전통속에서 한국화를 꾀하는데 주력하였다. 특히 감리교의 주요인물은 감리교 신앙의 핵을 이루어 왔다. 즉 토착화 신학과 변증적 종교신학을 펼친 최병헌 목사, 또한 1930년대 부흥운동으로 맹렬한 위세를 떨치며 사랑의 신비주의를 강조했던 영성운동의 부흥사 이용도 목사,그리고 사회봉사와 민중의 해방을 향한 독립투쟁의 장을 마련해 주었던 전덕기 목사가 바로 한국감리교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바로 이러한 신학적, 영성적, 실천적 목회가 한국감리교회의 세주류를 이루워왔고, 이를 우리는 통전적으로 수용해야한다.
제 3 강 : 감리교회의 신학과 교육
1. 감리교회의 신학
(1) 선재은총과 자유의지
감리교 신앙의 독특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선재 은총을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믿기 이전부터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바로 선재은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장로교의 칼빈주의 5대교리에 의하면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되어졌으므로 하나님을 알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성서적인 관점에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전적으로 타락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나님을 알수 있는 힘을 부여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양심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며, 선과 사랑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 칼빈이나 믿음을 강조한 루터 사상을 비판하면서 성령의 역사를 더욱 중시한 성화의 신앙으로 종합하였다.
(2) 의화와 성화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화와 성화는 그의 신학과 실천에 있어서 중추적인 두 핵심이다. 의화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해 성령의 역사가운데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통해서 확신하는 은총을 받는 것이다.
의화와 더불어 신생(新生)함으로써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추구하며,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의화는 상대적인 변화이므로 실제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으며, 의식적인 변화만이 일어난다. 의화는 우리를 위한(for all) 하나님의 은총이며, 성화는 우리 안에서(in all)의 성령의 역사이다. 전자는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외적 관계를 의미하고, 후자는 우리의 내적 영혼을 변화시키므로 죄인이 의인되고 성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의화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이 형성되고 성화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화는 그리스도의 삶이 유일하고 지속적인 근거이므로 그리스도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나 성화는 그리스도의 구속적 역사에 대한 내적 타당성의 결과이므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변화되어 간다.
웨슬리는 이 과정을 구원과 관련시켜 구원을 세속적 의미의 지옥에서의 구출 또는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의 현재적 구원」,「신적 본성의 회복」,영혼을 원초의 건강으로 회복」,「영혼의 본래적인 순결성」,「우리의 영혼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과 정의와 자비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 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화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객관적 또는 율법적으로 보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결과로 우리가 죄책에서 용서를 받는 상태적인 변화를 말하며, 성화는 주관적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안에서 일하시는 결과로 우리 속에 있는 죄의 근원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실제적인 변화를 말한다. 본질적으로 의화와 성화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그것 나름대로 톡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구분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하나님 안에서의 윤리적인 삶, 도덕적인 삶이며 이로써 정치적, 자연적 형상을 되찾는 그리스도의 재연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순수한 사랑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영화
감리교의 완전성화 혹은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사실상 개인과 공동체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영역 속에둠으로써 단순한 개인구원이 아니라 통전적인 구원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스도안에서 의화되고, 성열의 역사로 성화되어가는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순수성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는 그 순수성을 이루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해지는 삶은 바로 늘 기도하며, 기뻐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진다.
웨슬리는 “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바로 모든 죄에서 구해주시는 바 하나님과 우리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이러한 사랑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 사랑은 한 순간에 즉시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죽음에서가 아니라 매순간 그 사랑을 기대하여야 한다. 지금이 받아들일 때이며, 구원의 날이다.”라고 하였다. (Ⅰ데살로니가 5:23-24)
예수님, 당신의 승리하시는 사랑이
나의 마음 전체를 차지합니다.
이제 나의 영혼은 방황하지 않으며
하나님 안에 평안히 거합니다.
정결케 하시는 불이 나의 마음에 들어와,
나의 영혼을 비추입니다.
주님의 생명을 나의 전 존재에 골고루 부여하시고
내 모든 것을 성화시켜 주옵소서.
------ 찰스 웨슬리
(4) 감리교회론
웨슬리는 교회론이란 논문에서,“교인 전원에게 생명력을 부어주시는 한 성령,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한 소망, 성도 전체를 주관하고 성도의 마음에 천국을 건설하시는 한 주님을 고백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산희망의 기초를 삼으려, 주님이 베푸시는 신령한 은혜의 외적 세례와 내적인 성만찬의은사가 있는 만유이 아버지시며, 양자의 영을 허락해주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한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두 세신자로 분산된 모든 공교회가 한 몸임을 고백하는 곳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교회란 하나님이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친교공동체라고 정의했다.
교회는 하나이다.- 한 주님을 고백한다. (una)
교회는 거룩하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며, 신자를 거룩하게 하신다.(sancta)
교회는 보편적이다.- 보편적 구원과 보편적인 규범 (catholica)
교회는 사도적이다.- 사도의 증거와 가르침, 정신의 계승(apostolica)
2. 감리교회의 교육
(1) 감리교 교육
기독교 교육의 역사적 기원은 18세기의 주일학교운동이나 20세기의 교회학교 운동도 아닌 이스라엘의 태동과 더불어 계속되어 장막공동체, 성전공동체, 회당공동체로 이어져 예배와 교육을 통해 초대교회에 까지 계속되어왔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은 그 신앙공동체를 이해하는데서 가능하며, 유기적 관계를 잘 포착할 때 그 의미를 찾을수 있다.
1780년 로버트 레익스는 주일학교 운동을 벌였는데 이는 감리교인이었던 소피아 쿠우크가 레익스에게 제안함으로 일반 대중의 어린이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근로 청소년들, 길거리를 헤메이는 젊은이들에게 신앙과 삶의 기쁨을 나눠주는 평신도 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일학교운의 한계점은 일상생활과 계속되지 못했다는 관점에서 언제나 열린 교회로써 항상 기독교 교육을 시킨다는 입장에서 교회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레익스의 주일학교이전에 감리교회의 어머니인 수잔나 웨슬리의 기초적 교육훈련은 감리교회로 하여금 교육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수잔나는 두뇌가 명석하고 13세부터 교회론과 교리적 논문을 읽을 정도였고 가족간의 신학적 토론에도 참가하였다. 사무엘 웨슬리와 결혼한후 그녀는 스스로 자녀 교육을 위해 교과목을 정해 직접 가르쳤다. 교육방침의 첫째는 규율이었으며, 회초리를 무서워하게 하고, 소리내어 울지 못하도록 하였고, 고집을 부리지 못하제 하였으며, 자제력을 길러 주었다. 연장자에게는 경어를 쓰게 했고, 거짓말이나 상스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엄격하였으나 무리하게 억압하지 않았고, 말을 할줄 알면 아침 저녁으로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였고, 짧은 기도문과 교리문답, 성경의 명구를 외우게 하였다.
자녀들이 다섯돌이 되면 첫공과를 시작하였고, 철자법, 독법,서법등을 가르치고 그 후에 초급의 산수,문법,역사,지리를 순차로 가르쳤다. 교육법에 능숙한 수잔나는 자녀의 재질에 따라 교육시켰으며, 암송하는 것은 20회씩 되풀이 하여 완전히 외우게 하였다. 웨슬리의 가정학교는 대학과목과 교수법까지도 동원되었고, 이야기와 강의, 교과서로 가르치고, 논문과 숙제를 내주었다.
또한 함께 찬송과 노래를 부르며, 유쾌하게 노는 습관을 길러 주었고 친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이러한 수잔나의 교육은 존 웨슬리의 학문과정과 교육과정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여러가지 문법책들을 저술하였고, 교육에 큰 관심을 가졌다. 후에 킹스우드에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감리교의 속회제도는 바로 신앙 교육의 터전이었다. 감리교회는 본질적으로 교육과 훈련으로 가득하였고, 매주 철저한 신앙훈련과 연구없이는 감리교의 지도자나 교사가 될 수 없었다.
(2) 감리교 신앙교육의 방법론
현대의 감리교 신앙의 교육은 주로 이야기법을 통해서 전달될 수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들을 신앙과 회심 그리고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언어가 되어야 하며, 오늘날에는 즉홍극이나 역할극, 토론등을 통해서 극대화되어야 하며, 그 매체로써 상징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써는 세례의 물과 성찬의 포도주와 떡이다. 오늘날과 같이 대중매체가 발달된 사회에서는 영화, 환등 사진이나 비디오를 감상한후 의미를 나누는 영상반응토의나, 음악이나그림, 조각등을 감상한후 작품감상담화 그리고 실제적인 작업으로 그리기,모자이크,상징물 만들기등을 통한 학습이 필요하다. 또한 학습센타를 여러가지로 만들어 선택적으로 해보는 학습경험에로 유도가 필요하다. 감리교 교육은 이성과 경험을 사용하되 성서적이고 전통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만남과 대화와 참여라는 코이노니아적인 관계성을 설정하고 깊이있고 친밀한 교육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교육은 학생 개개인의 읜견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성장시키되 사랑과 선행에로의 길로 인도되도록 이끌어야 하며, 이러한 것은 감리교 신앙의 본질이다.
에수님도 12명의 공동체를 형성하시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3명의 제자에게 더 큰 관심을 기울인 것 처럼 공동체적인 관계성도 필요하다. 이러한 인격대 인격의 만남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령의 역할을 겸허히 수용하고 토의되어지고 배운 말씀을 이 세계와 인간들에게 증언하는 선교 공동체로써 사랑으로 긴밀한 관계를 나눌 때 아름다운 교육이 이루어진다.
(3) 감리교 교육의 현장
특별히 감리교 신앙의 성서적 기초는 바로 하나님과 사람간의 올바른 관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간단히 “영성과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감리교인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듯이 영성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게성을 설정하는 것이며, 이 세계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떠나서 종교의 역할이 제한 된다면 종교는 타계적이 된다. 감리교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종교이다. 사회와 격리되어서는 안된다. 타락과 무질서의 온상이었던 영국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 감리교회의 운동이라면, 분명히 감리교회는 사회적 정의에 뛰어들도록 고무시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특별히 교회에서는 신앙의 내면을 정화시키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굳센 믿음의 자녀로 결의를 다지는 터전이며,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은 그들의 삶이 구제척으로 일어나는 현장으로서 믿음의 용기를 더해주고 깊은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위안과 새힘을 얻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들이 속한 학교는 작은 선교의 지역으로 사회와 연결되는 선교지이다. 이 세계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드러나는 현장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교육을 통해 변화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으로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생각했던 웨슬리의 사상이 우리를 통해 연속되어진 것이다. 이는 교육사업, 의료사업, 사회봉사및 정의를 이루어 나가는 구체적인 사랑과 봉사의 삶이 되어져야 할 것이다.
제 4 강 : 감리교회의 미래와 결론
이제 감리교회의 미래는 우리의 신앙과 삶의 방식에 달려있다.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 처럼 사셔야 한다.”(Ⅰ요한 2:6) 고 말하는 감리교인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첫째로 감리교회의 본질이 성서적이라는 것이다. 철저하게 성서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지고자 했다는 사실은 어떠한 의견이나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신앙 정신에 있다. 감리교회의 신앙은 율법주의를 배격하지만 율법은 사랑을 통해 완성해야 할 우리의 과제라고 믿는다. 특별히 성서의 강조점인 사랑에 의한 역동적인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둘째로 감리교회의 영성과 실천을 잘 조화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감리교회는 여러가지 사상을 잘 조화시키며, 장점과 올바른 것을 취해 하나의 보편적 영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교리로는 누구도 시험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자기 것으로 긍정하는 사람 어느 기독교인들과도 손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기 위해 파견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우리의 열린 영성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이 땅에 하나님의 해방을 선포하고, 사랑과 정의를 이루는 실천적 신앙이 되어져야 한다. 웨슬리는 말년에 감리교회가 그 정신과 훈련을 상실하고 형식적인 조직체만 남지 않을까 두려워했다는 것을 그의 글을 통해 알수 있다. 감리교회는 실천적인 신앙이어야 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영성이 점차 약해지고, 개인주의적이고 비신앙적인 행위를 서습치 않는다는데에 오늘날 신앙교육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신앙은 인격이다. 우리 안에 계신 이의 인격을 따르지 않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다.
세째로 사회적 현실에 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별히 생태계의 묵시적 죽음앞에 놓여진 인류를 위한 봉사가 필요하다고 본다. 서구의 지각있는 신학자들은 이미 3-40년전 부터 핵의 위험을 강조하고, 군축의 필요성과 정치적 상호 협조를 통해 지구윤리의 새로운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는 이제 지구촌 시대이다. 개인의 불의가 전 세계적인 불의가 되어질수 있다. 생태계의 파괴는 자신의 목을 조이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생태계 파괴의 현실을 도외시 한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계를 다스리고 관리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응하는 반신앙적인 행위가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인간성을 스스로 무시하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타인의 목숨을 경시하는 이기주의적 태도로써 이웃사랑이라는 신앙의 본질을 퇴색시키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이다. 끊임없는 기도는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의 신앙을 더욱 돈독하도록 이끌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며,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행할때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감리교 신앙은 어제의 유산이지만 오늘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계속되는 복음의 증거이다.
조병철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