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부부의 상태를 알 수 있다지요?
부부가 같이 걸리면 사이가 좋은 것이고, 한 사람은 걸렸는데 다른 사람이 안 걸리면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작년 3월에 제가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 아내는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가 먼저 설레발을 쳤습니다. “우리 사이 안 좋은가 봐.”
두 주 전에 아내가 드디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여러 가지로 신경 써야 될 일로 심신이 허약해진 때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난을 떨며 방역을 한다고 각방을 쓰고 살균 99% 스프레이를 뿌리며 난리를 쳤는데 저도 결국은 걸렸습니다.
재감염입니다. 허허.
그런데 이게 관계가 좋아진 증거일까요?
증상이 심각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 중입니다.
그래도 매사에 자중해야 해서 집안에 콕 박혀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만히 있어도 할 일이 보이고, 읽을 책도 보입니다.
사실 매일이 격리된 삶과 다르지 않아서 그다지 새로운 경험은 아닙니다.
요즘 들어 종종 관계 혹은 만남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5년 전에 관계를 맺은 사람과 나의 지금 관계를 생각해보라고요.
그토록 마음을 터놓았고 모든 것을 믿고 말해주고 변치 않을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것이 5년 후인 지금에도 지속되는지 보라고요.
때로 ‘너무 많이 내 속을 드러내 보여준 것이 아닌가’이런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요, 진짜는 수가 적습니다.
많은 말이 관계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많은 말이 관계를 증명한다면 주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마 6:7 새번역)”고 말씀하지 않으셨겠지요.
항상 입 안의 혀처럼 군다고 해서 그것이 관계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가끔이나 연락되고, 멀리 있어 마음만 가고 있는 경우가 더 깊은 관계에 들어가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전에 이렇게 썼습니다.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만나는 것입니다.
육신의 교류는 한계가 있습니다.
진정한 만남은 그의 가르침을 살아내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보기보다 듣기’ 중에서)
설날이 다가오니 여러 만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명절은 즐기는 날일 텐데, 관계를 고민해보자 이런 말을 했네요.
건강하십시오.
첫댓글 건강하세요 ^^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