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에 꽃피우기
김정순
자꾸만 몸이 아프다. 어디라고 말할 수 없어도 여기저기 결리고 쑤신다. 앉았다 일어서면 무릎이 삐걱거리고, 누웠다 일어나려면 골반이 고통스럽다. 나이 탓이려니 생각해도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수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방학시즌이라 초급반의 수강생은 거의가 대학생들이었다. 그들과는 사십 여 년의 나이차이가 난다. 나이 많은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거울 앞에서 수영복 입은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상체비만에 허리는 북통같다. 어찌 엉덩이 둘레보다 허리둘레가 더 크다. 배는 아홉 달 된 임산부의 모습이다. 내가 보아도 영 볼품이 없다. 부끄러워 배에 힘을 주어 안으로 집어넣으려하나, 별 소용이 없다.
아가씨들의 몸매는 내가 보아도 아름답다. 훤칠한 키에 유연한 장구통허리, 다리도 길고 미끈하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부러움이 일었다. 살아온 세월이 눈앞에 달려왔다. 아름다운 몸매도 아이들 낳느라 망가지고, 틀어졌다. 가족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치우다 보니 지금의 모양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수영을 배우자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호흡도 가쁘고 팔다리 움직임도 둔하다. 아무리 팔다리를 허우적거려도 몸은 물속으로 자꾸만 가라앉는다. 물속에 얼굴을 박고 열심히 발버둥을 쳐보지만, 얼마를 가지 못하고 숨이 가빠 일어나야 한다. 아가씨들은 폐활량도 좋고 다리 힘도 좋아 물을 박차고 잘도 헤어간다. 마치 물고기가 유연하게 유영하는 모습이다. 나는 겨우 그들의 반도 헤엄치지 못한다. 자세 또한 어설프기 그지없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휴일도 자유 수영으로 꾸준하게 연습한다.
이주일이 지나자 어깨관절에 문제가 발생했다. 어깨가 아파 잠을 잘 수도 없다. 팔을 어깨높이로 올릴 수도 없다.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수영을 쉬라고 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어렵게 시작한 일을 그만두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병행하면서 고집스레 수영을 계속했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젊은이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일 것 같아 참았다.
수영선생은 하면 된다며 나를 위로한다. 때로는 잘한다며 칭찬도 한다. 이 나이에도 칭찬의 소리는 듣기 좋다. 어깨의 통증도 참을 수 있는 선생의 격려, 그게 큰 힘이 되었다. 한 달이 지나자 제법 물위에 뜨는 요령을 배울 수 있었다. 재미가 어깨의 아픔을 보상하고 있었다. 선생의 격려와 고집스런 내 인내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자유형도 배우고 배영도 배우고 평형도 익혀 나갔다.
수영을 시작할 때, 체중을 줄여보겠다는 각오를 했다. 계획대로 몸은 말을 잘 들어 주었다. 첫 달에는 1kg, 두 번째 달에 1kg, 이렇게 시작한 몸무게는 여섯 달 후에는 5kg이나 감량이 되었다. 9개월 후에는 8kg, 몸무게가 54kg이 되었다. 이젠 그만 줄어도 되는데 가속도가 붙었는지 자고나면 줄어들었다. 끝내는 기운마저 없어 수영에 지장을 주었다. 몸무게를 늘리기 위해 음식물의 섭취를 늘렸다. 섭취량을 늘려도 소용이 없다. 몸무게는 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덜컥, 겁이 났다. 몸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게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수영하기 전의 음식섭취를 계속하니 체중이 조금씩 늘었다. 겨우 55kg에 올려놓고야 안도를 했다. 여기서만 멈추어준다면 몸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전과 비교하면 몸이 가볍다. 옷을 입으면 맵시가 난다고 딸은 너스레를 떤다.
내가 보아도 허리가 생겼다. 북통허리에서 장구허리로 돌아가고 있다. 어깨의 선이 들어나며 쇄골이 보인다. 굽었던 등이 곧게 펴졌다. 허벅지의 살도 적당히 단단해 졌다. 비가 오면 예보를 하던 몸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틀어진 관절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팔팔 사이즈를 입어도 꽉 조이던 옷이 육육 사이즈를 입어도 충분하다. 청바지를 입은 뒷모습이 아가씨 같단다. 고목에도 정성을 들이면 꽃이 피듯이, 노년의 몸도 정성을 쏟으면 조금은 옛날로 되돌릴 수 있나보다.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아 행복하다.
고목에 꽃을 피우기란 여간 힘이 들지 않을 것이다. 늙은 뿌리로 영양분과 수분을 길어 올리는 일은 어린나무에 비해 몇 곱의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나도 내 몸을 되살리기 위해 젊은이들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을 했다. 매끼 식사도 전과는 다르게 신경을 썼다. 어느 일에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남모르는 아픔과 노력이 있어야하지 않았던가. 어린 나무들이야 그냥 두어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지만, 고목에 핀 꽃에 감탄하는 것은 그 노력이 가상해서 일 것이다.
내가 만든 내 몸이 자랑스럽다. 건강한 몸을 만든 내 인내력에 칭찬도하고 싶다. 예쁜 옷도 입혀주고 싶다.
이제 마음의 차례다. 비만이 된 내 마음을 예쁘게 만들고 싶다. 감히 비운다고는 말하지 않으련다. 목새에 파놓은 모래 샘처럼 비웠다고 생각하고 돌아서보면 자꾸만 채워졌다. 덜어낸 자리에 욕심이 차오르지 못하게 노력해야겠다. 그러다보면 마음에도 향기의 꽃이 피어날 날이 오겠지.
첫댓글 세상에나~
역시나 입니다.
따라하기 쉽지 않은 정순선생님의 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