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교차로에서 정지선에 멈춰 섰다.
마침 시장 어귀라서 길가에 재어놓은 여러 가지 과일이나 옷가지 등 볼 게 많다. 그 한 귀퉁이에는 광복절을 며칠 앞 둔 때라서인지 태극기장수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살 것을 권유하고 있다. 잠깐 동안 주의 깊게 보니 행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물끄러미 보던 나는 우리 집에 있는 태극기가 탈색되고 낡았으니 마침 잘 되었다 생각하며 돌아갈 때 사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잊어버릴까봐 하루 종일 태극기 살 것을 되뇌다가 퇴근길에 사러 갔다.
“요즘 사람들 철철이 옷은 잘 사도 태극기는 생전 안 사요”
하며 인상이 순해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반겼다. 손바닥만한 태극기부터 크기별로 꺼내어 보여주며 사용법을 설명해주신다.
노랑색의 국기봉이 달린 깃대는 3단으로 접히는 것이고, 태극기를 아예 깃대에 달아놓았으니 길게 빼내어 베란다에 부착된 국기꽂이에 꽂기만 하면 되도록 해놓았다. 게다가 그 태극기와 원통모양의 파랑색 플라스틱 함까지 합쳐서 일만 원이라니 나는 횡재라도 한 듯 얼른 샀다.
통에는 ‘국기함’이라고 큼직하게 고딕체로 씌어 있고 국기에 대한 맹세문도 써져 있고 1년에 8번인 ‘국기 다는 날’까지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집에 돌아와서 펼쳐 보고 다시 돌돌 말아서 통 속에 집어넣고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며 광복절을 기다리기로 했다.
국경일 중에 으뜸은 광복절이다. 광복(光復)이란 말 그대로 국운과 민족의 희망을 되찾은 날이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그 날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날 하루만이라도 나라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우리말과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에 깊이 감사를 드려야 한다.
몇 해 전 여름에 독립기념관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선조들의 비참하고 굴욕적이었던 삶의 흔적을 보니 울분이 터졌다. 또한 갖은 탄압 속에서도 조국 광복을 위해 항일 투쟁을 벌인 그분들이 우러러보였고 역사로만 대하던 우리의 아픔을 실제로 알 것 같았다. 기념관 경내를 걸으면서 애국 선현들의 어록비와 시비(詩碑)를 대할 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애쓰신 분들의 수고가 얼마나 고귀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이라는 어록비 앞에서 한참 멈췄다.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는 우렁찬 외침이 들려오는 듯했다. 자주독립운동과 통일정부수립운동을 하신 후 흉탄에 맞아 순국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하셨을까. 수많은 선열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하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이 시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게 아닌가.
하지만 요즈음 주위를 둘러보면 애석하기 그지없다. 국민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국경일 국기 게양’조차도 집집이 잘 되지 않으니 이 일을 어쩌랴. 일제 말기에는 태극기를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해서 가슴이 뛰고 독립군이 된 것처럼 생각되었다던데, 광복절 아침에 국기를 게양하면서 아파트 베란다를 살펴보았더니 겨우 두세 집에만 태극기가 휘날릴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를 되찾고 해방된 그 기쁨이 반세기를 흐르는 사이에 극도로 변해버렸다.
고당 조만식 선생님은
‘우리가 조국에 돌아가게 되면 피차 고향을 묻지 말고 일하자. 인화와 단결이야말로 국권을 회복하는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나라가 독립을 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큰일 때마다 불거지는 지역감정이 웬 말인가.
또한 현대인들이 겉으로는 자유인 같지만 저마다의 올무에 얽매어 있는 것 같다. 카드 빚, 성형수술 후유증, 이념의 틀, 사랑 실패, 등등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을 속박하여 자유의 기쁨은커녕 도리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늘어나니 걱정스럽다. 따져보면 잘못 된 자유로움으로 인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리라.
옛날을 회상해 보면 조금 강제적인 것 같아도 국경일에는 일제히 국기를 게양했고 방학 중이지만 소집일로 정해서 기념식을 했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운동장에 모여서서 힘차게 부르던 광복절 노래,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자랑스럽던 그 날이 한없이 그리워진다.
첫댓글저도 오늘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긴 했지만 일어나자마자 태극기를 달았습니다. 몇 년 동안 달던 깃발이 낡아 지난 제헌절에 새것으로 갈았지요. 오늘 중국과 우리나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야스꾸니신사를 참배하는 고이즈미 일본 수상을 보면서 우리가 나라 사랑의 다짐을 더욱 굳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과 서로 이념이 다르지만 나라 사랑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지요.
첫댓글 저도 오늘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긴 했지만 일어나자마자 태극기를 달았습니다. 몇 년 동안 달던 깃발이 낡아 지난 제헌절에 새것으로 갈았지요. 오늘 중국과 우리나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야스꾸니신사를 참배하는 고이즈미 일본 수상을 보면서 우리가 나라 사랑의 다짐을 더욱 굳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과 서로 이념이 다르지만 나라 사랑의 마음은 하나가 되어야지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이런 글을 한번쯤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