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바람에 가을이 깊었다. 오늘은 홀로 통영에서 팬션을 관리하는 옛 다이버의 일손을 돕기 위해 서울과 부산에서 두 부부가 모이기로 한 날이다. 우리의 그리움은 한 점에서 무수한 반지름을 그려나간다. 일손을 돕는 다는 말은 핑계일 뿐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지난 늦봄에 심었던 해바라기 대를 거두고 비닐하우스의 가지와 고추 대를 뽑아내며 올해 처음으로 열린 감과 사과를 거두는 날이다. 그리고는 정원에 널린 로즈힙스와 로즈마리를 비롯한 갖가지 허브 화분을 정리할 것이다. 사실은 일손을 돕는다기보다 우리의 속내는 만나서 지난 일을 플래시 백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지 모른다. 꿈은 항상 현실의 거울로 존재한다. 젊어서는 하나같이 개성을 지녀 거칠었다면 고희를 넘기고서는 잘 물든 낙엽 같은 황혼들이다. 풍화리는 우리가 찾을 때마다 넉넉한 편안함을 느끼는 황혼의 쉼터다.
지루한 투석치료가 끝나고 점심을 먹자마자 아내 엘사의 운전으로 풍화리를 향해 떠났다. 통영 풍화리로 가는 길은 부산의 신선대 지하차도와 부산항대교, 남항대교에 이어 낙동강 하구를 가로지르는 을숙도대교를 거쳐 거가대교로 들어서면 가덕도와 거제를 지나 곧장 통영으로 이어진다.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을 징검다리 삼아 바다 위를 시원하게 달린다. 풍화리는 두 시간 만에 가닿을 수 있는 조용한 갯마을이다. 조그만 무인도가 그림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다는 젊은 날의 추억이 퇴적된 곳이다. 지금은 바다 위에 떠있는 부표처럼 바람 부는 대로 파도치는 대로 몸을 맡기며 옛일을 회상할 뿐이다. 풍화리의 가을 바다에 서면 지난날의 감동이 밀려온다. 아침에 서울을 떠났다는 J부부가 먼저 와있었다. 시편 90장 10절에서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제 살만큼 살았다.
J부부는 통영 들머리의 ‘부산갈매기식당’에서 점심을 했단다. 뒤늦게 합류한 우리는 허브팬션에 짐을 내리고 회포를 풀었다. 모두가 그동안 건강관리에 열심히 한 만큼 아랫배가 들어가고 혈색들이 좋았다. 저녁은 연안여객터미널 건너편 통영식당에서 주모가 구워내는 전통적인 통영생선구이를 먹기로 했다. 통영 전통생선구이는 다도해에서 잡은 싱싱한 활어를 숯불에 구운 뒤 그 위에 양념장을 뿌려주는 생선구이다. 식사가 끝날 때쯤 나오는 누룽지숭늉이 구수해서 옛 입맛을 되살린다. 모두가 나의 건강을 걱정해서 무엇이든 우선적으로 나에게 메뉴선택권을 주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드는 만큼 늙어간다. 가을은 나뭇잎만 단풍이 드는가? 아니다. 우리의 우정도 눈부신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옛 다이버들을 만나면 나는 눈부신 계절이 되곤 한다.
저녁을 끝내고 어두움이 깔린 이순신공원에 올랐다. 이순신 장군은 그날도 긴 칼을 오른손에 든 채 부릅뜬 눈으로 남해를 지키며 치열했던 임진왜란 때의 해전을 들려준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접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장군이 남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의미를 다시 되새겼다. 정량동 망일봉에서 바라다보는 통영 밤바다는 환상적이다. 멀리 한가운데 한산도와 거북등대 불빛이 깜빡이고 크고 작은 배들이 물꼬리를 끌고 귀항하고 뱃고동소리 가득하다. 통영의 밤바다에 취한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좋은 해안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가까운 트레킹을 즐겼다. 우리가 만나 서로의 눈을 맞추는 순간이 기도가 되는 밤이다. 희망을 꿈꾸는 밤이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건강에 자상하게 신경 쓰는 신화씨가 정성들여 만들어온 무화과쨈을 나누고 바삭바삭하게 말려온 양파와 양파껍질을 달인 물을 마시며 풀벌레 울음 자욱한 숲속의 허브팬션에서 맑고 시원한 밤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옥외스피커에서는 주옥같은 오페라 아리아가 풍화리 계곡에 나직이 메아리쳤다. 불빛이 차단된 칠흑 같은 겹산 사이로 펼쳐진 밤하늘에는 드문드문 아기별들도 보였다. 우주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진 수많은 별들이 지구 위의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병들고 늙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꿈꾸는 소년이 되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에는 정든 벼개를 가져와서 잠자리가 편할 것 같다.
산 속에서 푹 자고 일어난 아침은 맑고 상쾌했다. 사과와 샐러드, 계란과 요거트로 아침을 먹은 우리는 마른 해바라기 대를 말끔히 걷어내고 비닐하우스 안의 가지와 고추 대도 뽑았다. 마지막 거둬들인 끝물의 가지와 고추를 박스에 담았다. 그리고는 올해 처음으로 열린 석류와 감, 그리고 사과를 땄다. 대봉감과 단감이 한 박스 가득했다. 무공해 유기농 과일은 크기는 작았지만 알찼다. 우리는 꼭대기에 달린 감과 사과는 겨울을 사는 산새가족의 몫으로 남겼다. 그것도 일이라고 허리가 뻐근하고 갈증이 났다. 한창 일을 하고 있을 때 이웃에 사는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간밤에 멧돼지 떼가 나타나서 고구마 밭을 파헤쳐 놓고 갔다고 전했다. 남은 시간에는 화분을 손질하며 떡잎을 따고 풀도 뽑았다. 그리고 커텐을 겨울 것으로 바꿔달았다. 일을 모두 끝내고 길목의 ‘통영애’에서 한방오리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마을회관 앞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서 올라왔다. 나락을 거둔 계단 논이 휑했다. 마음을 담은 갖가지 선물과 손수 만든 무화과쨈과 무김치를 나누고 고향집 같은 풍화리를 떠나 귀갓길에 올랐다.
첫댓글 힘든 투석치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강의와
현장 체험학습까지 안내해주시는
선생님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합니다.
그 힘이 모두 옛친구와 풍화리에서 나오는 듯합니다.
선생님께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멋진 삶을 엮어가시는 선생님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삶의 원동력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우정에 눈부신 단풍이 들어 너무 아름답습니다.
하루하루 건강과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