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은 운동선수와 마찬가지로 오래 쉬면 기량이 줄어든다"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총감독이자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68)가 한국에 왔다. 2년만이다. 원래는 지난해 11월 방한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사태로 무산됐다. "문화교류는 아무리 어려운 시기에도 중단해선 안 됩니다. 국가 간에 정치·경제 등 여러 이슈에도 불구하고 문화교류 덕분에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지휘 황제'(짜르)라고 불리는 게르기예프가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방한 신고(기자간담회)를 한 뒤 24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두차례(오후 2시, 8시) 공연을 갖는다. 현악기를 주축으로 구성된 앙상블(마린스키 스트라디바리-앙상블)에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목관악, 타악기 주자들이 대거 참여해 거침없는 러시아 정통 사운드를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코피에프 교향곡 1번 D장조 작품번호 25 '고전'을 비롯해 라벨, 그리그, 드뷔시,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 등 다채로운 선율을 들려줄 예정이다. 별도의 솔로 협연자는 없다.
기자회견하는 발레리 게르기예프/사진출처:인아츠프로덕션
두차례 연주는 각각 다른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게르기예프는 "오케스트라 총 인원은 40명 정도로, 러시아 음악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등 세계적인 음악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러시아가 매년 각국을 돌며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러시아 시즌’의 일환으로 열린다. 한국이 '러시아 시즌'의 대상국으로 지정된 올해, 러시아의 문화예술 공연이 숱하게 준비됐지만, 신종 코로나로 대거 축소됐다.
내한한 마린스키 스트라디바리(우스)-앙상블은 마린스키 극장의 오케스트라 현악 수석 단원을 주축으로 지난 2009년 창설됐다. 마린스키 극장은 ‘러시아 예술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곳.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단, 발레단 등을 전속단체로 거느리고 있다.
게르기예프는 지난해 11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일본 투어에 이어 한국에 올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로 방한이 취소됐다. 그는 “올해도 불과 2~3주 전에 한국 공연이 가능하다는 최종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게르기예프는 23살 때인 1977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듬해(78년) 마린스키극장 오페라 부지휘자로 발탁됐다. 88년에는 마린스키극장 오페라 및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이 됐고, 96년 총감독을 맡았다.
게르기예프 지휘 모습/사진출처:@게르기예프 인스타그램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로 불리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엔 마린스키 극장의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마린스키 극장은 확진자가 나온 적도 있지만, 꾸준히 공연을 이어왔다. 그는 “코로나로 러시아 문화예술계 역시 타격을 입었지만, 예술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며 "마린스키 극장에선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