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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랑 여행 스크랩 이 미스터리한 할아버지의 정체는?!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71 14.08.13 06:05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안녕하세요~! 제6기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단 황이새입니다.

 

여러분은 ‘제주도’하면 어떠한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푸른 파다? 높게 자란 야자수? 노랗게 익은 감귤?

 

 

제 질문에 여러분은 과거에 방문했던 제주도를 떠올리며 제주를 상기하고 계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였냐고요? 그것은 바로 제가 소개해 드릴 소재와 제주도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주에는 ‘신라의 미소’가 있다면 제주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무엇인가요?

혹시 패스트푸드 가게 앞에 있는 할아버지 인형처럼,

온화한 미소를 띠며 자신의 배를 넉넉히 쓰다듬고 있는 ‘그 것’ 아닌가요?

는 오늘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그 것’,

바로 ‘돌하르방(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주국제공항 출입구를 나오면 볼 수 있는 2기의 돌하르방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20년 이상 살아온 제주도 토박이입니다.

지금 잠시 ‘유학’하며 육지에 올라와있는데요,

제주도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자라왔기에 그간 저는 나름대로 제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도 편을 읽고

제주에 대해 몰랐던 것이 참 많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새롭게 알게 된 제주에 대한 것은 바로 ‘돌하르방’이었습니다.



기념품으로 귀엽게 제작되어 판매되고 있는 돌하르방. 친숙함을 준다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도 만날 수 있었고, 집 안 장식품으로 책장 위에도 놓여있는 돌하르방.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동안 이 돌로 만든 할아버지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민에게 친숙한 돌하르방.

하지만 그동안 정체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던 돌하르방.

저는 이 돌하르방을 '미스터리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호기심이 생기니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으십니까?

이 '미스터리한 할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함께 파헤쳐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함께 돌하르방의 정체에 대해 하나하나씩 순서대로 파헤쳐봅시다!

 


 

1. 하르방~ 무사 ‘돌하르방’ 마씸? (할아버지~ 왜 ‘돌하르방’이십니까?)

 

먼저 돌하르방의 명칭에 대해 먼저 알아봅시다.

 

‘돌로 만든 할아버지’라는 뜻의 돌하르방.

그 역사가 굉장히 길 것으로 보이는 ‘돌하르방’이라는 명칭은 실은 약 40여 년 전에 정해진 명칭이라고 합니다.

즉 40여 년 전까지 ‘돌하르방’은 정식명칭이 아니었다는 것인데 그럼 돌하르방은 ‘무엇’이었을까요?

 

돌하르방은 과거 제주시(제주도 북쪽)에서는 ‘우석목’, 서귀포시 성읍리(제주도 동남쪽)에서는 ‘벅수머리’ ‘무석목’,

서귀포시 대정읍(제주도 서남쪽)에서는 ‘무석목’이라고 했으며, 문헌에는 ‘옹중석’(翁仲石)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이 중 ‘우석목’이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쓰였다고 하는데,

우석목은 ‘우석(偶石. 석상)+목(木. 제주 전통 가옥 대문-정낭-의 기둥)’의 합성어이며

쉽게 뜻을 풀어서 설명해드리면 ‘제주도 전통 대문 기둥의 역할을 하는 석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주도 전통 가옥의 대문인 정낭

 

 

이렇게 어려운 이름으로 불렸던 돌하르방.

우석목이라 계속 불렸다면 어렵게만 느껴졌을 것 같은 돌하르방이 그럼 어떻게 ‘돌하르방’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1971년 제주도에서 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석상을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면서 붙여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명칭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겠지요?

여러 명칭 후보를 가지고 고심하던 제주도 공무원들은 친숙하고 부르기 쉬운 단어를 채택하고자 했고,

그리하여 오래 전부터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돌로 만든 할아버지’라는 뜻의 ‘돌하르방’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돌하르방은 예전부터 돌하르방이었을 것 같은데, ‘돌하르방’이라는 이름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었다니!

혹시 여러분은 알고 계셨나요? 조금씩 미스터리한 돌하르방의 정체가 벗겨지기 시작합니다.

자, 이어서 돌하르방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 하르방~ 어디서 와수꽈? (할아버지,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럼 이제 돌하르방은 언제부터 제주도에서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이것에 대한 연구가 여러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돌하르방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은 관계로 추측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우선  효종 4년(1653)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옹중석(돌하르방)은 제주읍의 성 동·서·남 삼문 밖에 있었고,

영조 30년(1754) 김몽규가 세웠으나, 삼문이 헐림으로 인하여 2기는 관덕정 앞에, 2기는 삼성사 입구로 옮겼다”

 

 

이 기록을 통해 1754년 무렵 돌하르방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김몽규가 돌하르방을 새로 만들어 세웠는지

본래 있었던 것을 성문 앞으로 옮겨다 세운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주 운흥사터 장승 상원주장 / 나주 운흥사터 장승 하원당장 / 남원 실상사 대장군

 

 

돌장승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나주 운흥사터 장승이 1719년,

남원 실상사 장승이 각각 1725년과 1731년에 만들어졌으니,

돌하르방이 있었던 1754년은 현존하는 돌장승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품들이 만들어진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돌하르방은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돌장승 문화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겠습니다.

한 예로, 돌장승이 가장 많은 지리산 자락의 남원 호기리 장승은 돌하르방과 매우 닮아 있다고 하고요.



이스터섬 석상 / 훈촐로

 

 

여기까지는 돌하르방이 육지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추측인데,

이 외 돌하르방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남태평양에 널리 퍼진 거인숭배신앙(이스터 섬의 석상이 대표적이다)이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으로 보는 남방기원설,

돌하르방이 훈촐로라 불리는 석인상과 닮은 것으로 보아 제주가 몽골(원)의 지배받을 때

몽골로부터 영향 받은 것으로 추정하는 몽골기원설,  외 제주 자생설 등이 있습니다.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은 관계로 추측으로만 알 수 있는 돌하르방의 유래.

미스터리를 완벽히 풀지는 못해 아쉽지만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돌하르방의 외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 하르방~ 얼굴 좀 보쿠다양 (할아버지~ 얼굴 좀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돌하르방’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을 것입니다.

툭 튀어나온 동그란 두 눈, 굳게 다문 입, 벙거지 같은 모자를 쓰고 있는 머리,

구부정한 자세에 한쪽 어깨는 치켜 올리고 두 손으로는 배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터라 거칠거칠해 보이는 표면.

 

여러분은 돌하르방하면 위와 같은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주도 내 지역별로 돌하르방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제주는 조선시대 행정적으로 제주목(제주시. 지금의 제주도 북쪽), 대정현(서귀포시 대정읍. 지금의 제주도 서남쪽),

정의현(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지금의 제주도 동남쪽)으로 나뉘어 관리되었습니다.

 


제주도 지도

 

 

즉 세 지역은 각각 성을 쌓아 지역을 관리하였는데,

이러한 구분으로 인해 각 지역 사이에서는 문화적 차이가 발생했으며, 서로 다른 돌하르방을 만들어냈습니다.

세 지역별로 나누어 차례대로 알아보겠습니다.


 

(1) 제주시 (제주목)

제주시에는 제주대학교에 4기, 제주 KBS방송국에 2기, 제주시청에 2기, 삼성혈에 4기,



제주대학교 / 제주 KBS / 제주시청 / 삼성혈에 위치한 돌하르방

 

 

제주공항에 2기, 관덕정에 4기,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에 2기, 돌문화공원에 1기로 총 21기가 있는데, 


제주공항 / 관덕정 /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 / 돌문화공원

 

 

보시는 바와 같이 조금씩 다른 모양새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제주시의 돌하르방들은 다른 지역의 그것보다 몸집이 크고 근엄한 표정으로 권위를 앞세운 것이 특징입니다.

제주도 기념품으로 만들어져 우리 눈에 익은 돌하르방은 이곳 제주시의 돌하르방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2) 서귀포시 대정읍 (대정현)

대정의 돌하르방은 현재 추사적거지 앞에 2기, 동문터에 1기, 서문터에 1기, 서문쪽 담장 아래 1기,

남문터에 2기, 보성초등학교에 3기, 보성리사무소 앞에 2기로 총 12기가 있습니다. 



과거 대정현 지역 돌하르방

 

 

정의 돌하르방은 다른 지역 것보다 키가 작고 온순한 인상입니다.

눈은 쌍안경을 낀 듯 튀어나오거나 윤곽만 새겨져 있는데, 어떤 경우든 눈동자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코도 갸름하여 제주시 돌하르방들의 뭉툭한 주먹코와는 사뭇 다릅니다.

 

(3)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정의현)

정의의 돌하르방은 성읍민속마을 동·서·남문에 각각 4기씩 총 12기가 있는데,

대정의 것들보다 크고 제주시 것들보다 작은데 둥글넓적하고 단순합니다.



과거 정의현 지역 돌하르방

 

 

갸름하게 내리뻗은 코는 대정 것과 비슷하지만, 게슴츠레한 눈과 선 하나로 그어져 있는 입 모양은

그저 덤덤하거나 무뚝뚝해 보일 뿐입니다.

귀는 작으며 손은 윤곽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고, 옷의 형체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대정과 정의에 있는 돌하르방들은 평균 신장이 각각 136.2㎝, 141.4㎝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제주시의 돌하르방들이 181.6㎝인 데 견준다면 꽤 작은 셈입니다.

 

또한 대정과 정의의 돌하르방들은 얼굴에 비해 몸집이 작아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지만

조신하고 편안한 인상이어서 제주시 돌하르방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인간미와 소박함이 풍겨집니다.

제주시 돌하르방이 지배층의 권위를 표상한다면,

대정과 정의의 돌하르방은 제주 옛사람의 순박한 모습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하나의 모습만 알고 있었던 돌하르방이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몰랐던 두 명의 돌하르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는데요,

이제 존재를 알았으니 제주도 구석구석을 구경할 때 서귀포에 계신 두 할아버지에게도 반갑게 아는 척 해 주도록 합시다.

 


 

4. 하르방~ 뭔 일을 경 햄수꽈? (할아버지~ 무슨 일을 그렇게 하시나요?)

 

자, 지금까지 돌하르방에 대한 여러 가지 사항들을 알아보았는데요, 정작 중요한 것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바로 왜 제주 사람들은 돌하르방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즉 제주인들은 돌하르방이 어떠한 역할을 하여 주기를 바랐을까요?

 

제주 속 돌하르방은 성곽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아까 돌하르방이 제주대학교, 제주시청, 제주 KBS방송국, 제주공항 등 각지에 흩어져 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럼 원래 어디에 있었느냐.

돌하르방은 원래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읍성 주위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습니다. 주변 마을에서는 발견되지 않고요.

 

이로 미루어 돌하르방이 성문 앞에 서서 성안 관아의 위용을 보이고,

성문 앞이라는 경계표지로서 사용된 석상이었다고 짐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읍성 수호신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전통 대문으로 ‘정낭’이라는 것이 있지요?

위에서 제가 잠시 돌하르방이 우석목으로 불렸었다고 말씀 드렸었는데,

언급했던 우석목의 말뜻처럼, 돌하르방은 제주도 전통 가옥 대문인 ‘정낭’의 기둥처럼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있다고 합니다.

 


돌하르방 기석(基石)에 위치한 구멍

 


즉,  돌하르방은 주로 읍성 출입문 옆에 위치해 있었기에 읍성의 대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문이라고 한다면 그 높이가 사람 키에는 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돌하르방에 있는 그 구멍의 높이는 성인 남성의 무릎 높이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문이라고 하기에는 턱 없이 낮은 높이라 할 수 있고, 소위 장난 같은 높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냥 읍성의 대문 역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실제적인 외부 침입 방지보다는 통금을 상징하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외부의 사악함을 방지하고자 하는 역할을 하는 수호신으로 사용되지 않았나 하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어디에서나 우리를 맞이해주는 돌하르방.

하지만 생각해보니 어딘가 미스터리한 존재였던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알면 알수록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고,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베일에 쌓여있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름이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인지, 유래가 어떠한지,

외형은 지역별로 어떻게 다른지, 제주도 사람들에게 있어 어떠한 역할이 기대되는 존재였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에서부터, 형태에서부터, 역할에서부터 제주만의 독특함을 담고 있는 돌하르방.

 

제주에는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참 많지만

렇게 제주도민들이 만들어 지켜나간 소중한 문화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참 즐거운 즐길거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스터리했던 ‘돌하르방’의 정체를 풀어나가며 알게 된 ‘제주의 독특한 문화’.

여러분, 이 문화에도 관심을 가져 주실 수 있나요?

 

마지막으로 제주 방언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제주는 하영 재미있는 곳 마씸!

지금처럼 제주 사랑해주고 또 제주 문화도 사랑해줍써양.

(제주는 아주 재미있는 곳 입니다! 지금처럼 제주 사랑해주시고 또 제주 문화도 사랑해주세요.)

 

 

 

▲제6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황이새 기자(dlto0909@naver.com)>

 

 

 

*출처

-참고문헌

국립민속박물관, 2009,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편)』, 국립민속박물관

유홍준, 2012,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창비

한국문화유산답사회, 2008, 한려수도와 제주도』, 돌베게

인터넷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돌하르방 검색

 

-사진

  문화재청

  기념품 돌하르방 : http://photo.naver.com/view/2011050100155550834

  정낭 : 두산백과
  이스터섬 석상 : http://nownforever.co.kr/xe/index.php?mid=angelo_desk&page=7&listStyle=webzine&document_srl=30055
  훈촐로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4zV0&articleno=254&categoryId=0®dt=20130428152705
  제주 지도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7183&cid=85&categoryId=2644

  나머지 사진은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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