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넘게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되어 무척 답답함을 느꼈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국내 여행을 다니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이국적인 풍경을 좇아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해외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찾아 제주도, 강원도를 주로 여행하던 우리는 좀 더 색다른 곳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바로 500년 전부터 '꽃밭(花田)'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이 아름다운 보물섬, '남해'였다.
동쪽에는 통영시, 서쪽에는 한려수도를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의 광양시와 여수시를 이웃하고 있는 남해군은 다른 관광지에 비해 교통이 꽤 불편한 편이었다. KTX 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항이 가깝지도 않다. 차로 가려면 온전히 다섯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기분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이었다. 그렇지만 불편한 교통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때묻지 않은 자연과 독특한 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남해 또한 국내의 여느 지역처럼 이곳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있다. '남해 12경'을 보면 일주일 넘게 있어도 다 체험하지 못할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것을 알게 된다. 남해 금산과 보리암, 남해대교와 남해 충렬사, 상주은모래비치, 창선교와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 남해 가천 암수바위와 남면 해안... 여기에 본선 16개 코스와 지선 3개 코스로 구성되어 있는 231km 길이의 남해 바래길은 남해의 매력을 더욱 가까이 즐길 수 있게 한다.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는 남해의 매력은 점차 입소문을 타며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산에서 보는 남해의 아름다움
보리암과 금산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 준다'라는 뜻을 가진 보리암은 남해 12경 중 하나로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관광지로 꼽힌다. 인스타그램에서는 사찰에서 남해의 아름다움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인증 사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만큼 남해의 뛰어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이곳은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남해에서 꼭 가야 하는 곳으로 꼽히는 이곳은 우리나라 전국 3대 기도처이자 관음도량이기도 하다. 또한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항일암과 함께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을 가진 해수관음 성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면 그 어느 곳보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예로부터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만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기에 기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와 더불어 보리암이 있는 금산은 태조 이성계가 젊은 시절 백일기도 끝에 조선 왕조를 개국하게 되면서 소원을 이뤄주는 영세불망의 명산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성계는 감사의 뜻의 산의 이름을 금산으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이름은 비단 금(錦) 뫼 산(山)이 합쳐진 것으로 '온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보리암에서는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던 자리를 만나볼 수 있다.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산은 기묘한 바위와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있는 바다의 풍경이 묘하게 어울려 신비로움을 더한다.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보리암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금산 산장, 단군성전, 화엄봉을 거쳐 다시 보리암 주차장으로 회귀하는 '금산바래길'을 걷는 것을 추천한다. 험난한 길이지만 길을 걸으며 금산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몸으로 직접 체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리암만큼이나 인기 있는 관광 코스로 꼽힌다.
금산바래길을 걷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멋진 풍경도 좋지만, 잠시 쉬어갈 곳이 필요해진다. 산행에 지쳐가던 중에 만날 수 있는 금산 산장은 이미 금산의 맛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보리암을 찾아온 이들은 이곳에서 간단하게 컵라면을 먹고 인증 사진을 찍는 것으로 여행의 마무리를 찍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닐까 싶다.
선조들의 생활력을 느낄 수 있는 마을
다랭이마을
원래 이름은 '가천마을'이지만 '다랭이 마을'로 더 유명한 이곳은 설흘산과 응봉산 아래, 계단식 논이 바다까지 이어진 풍경이 유명하다. 100여 층의 곡선 형태의 계단식 논이 끊임없이 이어진 풍경은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산비탈을 깎고 석축을 쌓아 계단식 논을 만든 것이다. 그 덕분에 농기계가 들어오기 힘들어 현재까지도 농사일에 소와 쟁기가 필수인 마을이 되었다. 전통이 일상과 함께 살아 숨 쉬며 살아오고 있는 이 마을은 2005년 1월 3일에 명승 제15호로 지정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곳에 다다르면 먼저 바다로 빨려들 것같이 이어진 계단식 논이 눈을 사로잡는다. 이어 눈앞에 넓게 트인 바다와 암석이 두드러져 독특한 모습이 인상적인 산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 마음을 탁 트이게 한다. 차분히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즐기기에 그만이지만, 이곳에서는 '써레'라고 불리는, 갈아놓은 바닥을 고르는데 쓰는 농기구 체험, 전통방식으로 논을 갈아볼 수 있는 소쟁기질 체험과 더불어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후원으로 마을 해설사와 함께 가천마을안길과 해안산책로를 걸을 수 있는 '달빛걷기' 체험 등을 즐길 수 있다.
마을의 90% 이상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마을이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서 옛 마을 생활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숨어있다. 허름해 보이지만 그 나름의 역사를 느낄 수 있어 푸근하다.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풍경을 감상하다가 지치면 남해 특산물인 멸치쌈밥과 이 마을에서 진미로 꼽히는 갈치조림 등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기다리고 있다. 독특한 풍경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과 정겨운 음식까지, 다랭이 마을에서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은 다양하다.
이국적인 풍경과 어울리는 마을
독일마을과 미국마을
남해 관광지라고 하면 보리암, 다랭이 마을 다음으로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독일마을'이다. 1960년대 산업 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갔던 독일 거주 교포들이 고국으로 다시 들어와 정착할 수 있도록 2001년 남해군이 조성한 마을이다.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와 동천리, 봉화리 일대 약 100,000 제곱미터의 부지에 걸쳐 조성되어 있는 이 마을은 독일 교포들이 직접 독일에서 건축 부재를 수입하여 전통적인 독일 양식 주택을 건립한 것이 특징이다. 교포들의 주거지 겸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는 이곳은 유명해지면서 관광객을 위한 민박, 레스토랑, 카페 등이 조성되었다.
탁 트인 바다와 함께 주황빛 지붕과 하얀 벽면으로 이루어진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유럽의 한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이 일게 한다. 독일 마을이라는 이름답게 이곳에서는 제대로 된 슈니첼과 소시지, 맥주를 맛볼 수 있다. 해외에 나갈 수 없는 이 시국에 유럽의 정취를 느끼며 유럽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중이다. 독일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정한 높이의 활엽수가 모여있는 숲인 방조어부림은 은모래비치와 더불어 남해의 아름다운 해안가로 알려져 있다.
독일마을에 비해 비교적 덜 유명하지만 남해에는 '미국마을'도 있다. 입구에 작은 자유의 여신상이 눈길을 끄는 이곳은 독일마을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살던 교포들이 정착하면서 이루어진 마을이다. 남해군 이동면 용소리 호구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2000년 대 중반부터 조성되었다고 한다. 독일마을에 비해 비교적 수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메타세쿼이아 길과 미국 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남해 휴식의 모든 것
아난티 남해
남해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유는 이국적인 풍경과 다채로운 볼거리도 있지만 역시 아난티 남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남해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담으면서도 세련된 휴양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꾸며져 남해 여행을 완성하는 공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국내로 신혼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 기억에 남는 가족 여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휴식을 즐기도록 꾸며진 이 리조트에서 꼭 즐겨야 할 것은 '노을을 구경하는 것'이다. 빨갛게 물든 하늘과 리조트의 풍경은 마치 동남아의 휴양지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이곳은 최상의 그린 컨디션과 더불어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골프 코스가 있어 우아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하늘과 바다, 나무가 어우러진 해변 산책로는 곳곳에 정자와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독서와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한적한 풍경을 벗 삼아 여유로운 휴식과 더불어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리조트의 모습은 남해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떠날 때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힘들기만 할 거라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예상과 달리, 남해를 다니면서 느꼈던 감동의 여운은 꽤 깊었다. 국내의 다른 여행지와 차별화된 매력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었다. 잔잔한 바다, 굴곡이 아름다운 산, 소박한 마을의 분위기... 왜 사람들이 남해에 빠지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수와 해저터널로 연결될 것이라는 소식이 반가운 이유는, 여수와 남해 모두 여행하기 편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들어서였다. 같은 남쪽에 있지만 여수와 남해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고, 각각 매력이 넘쳐흐른다. 앞으로 종종 남해로 떠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