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감은 곧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서
― 김상혁 시세계
김보나
조금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2026 현대문학상 수상시집』을 펼쳤습니다. 아직 한 권의 시집으로 엮이지 않은 시들에 대한 평을 써보려 합니다. 총 8명의 시가 실린 이 책에서 제가 주목할 시인은 올해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김상혁 시인입니다.
수상작 5편을 나란히 불러봅니다. 「쥐의 시절」 「개구리 점프」 「퇴임사」 「부재중 종은」 「작은 폭탄」. 이 시들을 읽을 때 저는 신발 두 짝 벗어두고 어느 산길을 맨발로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울퉁불퉁하기도 하고, 살갗에 촉촉이 들러붙기도 하고, 가끔 돌 하나 잘못 밟으면 악! 소리도 나는 그런 길 아시지요. 한 편 한 편의 시에서 시인은 쥐, 개구리, 아이를 기르는 어른, 시간강사, 누군가의 친구 등으로 변화무쌍하게 변모합니다. 일상과 아주 맞닿은 언어라는 점에서 ‘맨발’ 같고, 존재의 양상을 다양하게 내보이는 시들에선 길 위를 걸으며 만난 생각 많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이 시들을 관통하는 단어로 ‘실망감’을 꼽으려 합니다. 가장 눈길이 간 시는 「퇴임사」입니다. 한창 사회활동을 해나갈 1979년생 시인이 퇴임사를 발표한 까닭이 궁금해집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11강 ‘모더니즘과 모더니티’ 교안 준비 중
교무팀 연락이네요. 봄학기로 강사
임용이 만료되며 재계약은 어렵다고요.
획 떠나지 말고 김 선생이 고르고 키운
학생들 보게 게시글 하나 남기라는 학과장님
권고사항입니다. 가르치는 나도 시가 잘
안 돼요. 열정이 떨어진 느낌? 데뷔하고 나서는
쓰고 송고하고 한참 뒤 파일 열면 거기에 들인
시간부터 떠올랐지요. 요즘은 나보다 늙은
선배가 아직 시간강사라는 사실 그러므로 내게
찬스가 있다는 생각을. 그러니 여러분 학생일 때
시 쓰기 바랍니다. 괜히 선생을 괴롭게 만들지
마세요. 자기소개는 Q&A 게시판에 말고
부탁합니다. 앱으로 알림 오고 내가 답변을
남겨야 해서요. 안녕하세요? 하면 안녕
하세요 답하는 순간이 매번 기쁨이었음
합니다. 시인은 고향이 없다는 말 기억
하지요? 수시모집 실기심사 2회 들어갔고
6년간 재밌었네요. 졸업생도 볼 수 있게
자유게시판에 쓰고 말 예정. 혹시 딴 선생께
다르게 배우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정답을
배웠다 믿기를요. 후회는 안 합니다. 하나
걸리는 거 날씨 좋아 야외수업 하자는 말들
외면했지요. 우리의 시간이었으나
그래도 되는지 방침을
내가 알 수가 없어서요.
6년간 근무한 학교에서 전화 한 통만으로 임용 만료를 고지한 상황입니다. 11강짜리 수업 교안까지 작성하던 차에 얼마나 난처한 상황인지요. 황당하게도 ‘획 떠나지 말고’ 학생들에게 인사까지 하고 떠나라는데요. ‘재계약은 어렵다’는 말이 남겼을 실망과 분노에 대해 생각하는데, 시인은 지금까지 만나 온 학생들에게 냅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가르치는 나도 시가 잘 안 돼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물었을까요? ‘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요?’ 그때마다 시인은 답했을 겁니다. ‘시집을 다양하게 읽어보세요, 필사를 하세요, 쓰고 소리 내어 낭독해 보세요…….’ 하나 그 무구한 눈빛 앞에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나도 시가 잘 안 된다’는 말이었을지 모릅니다. 꿀꺽 삼키고 있던 말이 튀어나오자 고백은 거침없어집니다. “나보다 늙은 선배가 아직 시간강사라는 사실 그러므로 내게 찬스가 있다”는 숨겨야 할 마음까지도 드러납니다.
‘숨겨왔던 진실을 밝힐 때’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앞으로의 이야기가 하강 곡선을 그릴 거라 예상합니다. 그러나 꼭 감춰야 할 내막이나 마음만이 진실은 아닐 겁니다. 언젠가 시는 진실을 말하는 거라고 들었습니다. 이 시에는 다양한 진실이 나옵니다. “안녕하세요? 하면 안녕하세요 답하는 순간이 매번 기쁨이었음 합니다”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인사에 답할 때마다 기쁨이었으면 한다는 말은 일상을 일종의 기적으로 만듭니다. 매일매일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기쁘게 만드는 인사라는 것은, 사람이 만나는 일에 깃든 환대의 원리를 상기시킵니다. 이것은 「퇴임사」에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없다 해도, “우리의 시간”에 대한 고별을 남기는 일은 화자의 위치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시간강사’에서 ‘스승’으로 끌어올립니다. 함께한 추억과 그사이 오간 물음들이 살아납니다. 인사 한마디가 “졸업생”까지 불러와 ‘딴 선생’이 와도 교체될 수 없을 “6년”을 “우리의 시간”으로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평생직장이 없는 자본주의 아래, 인간의 고유성과 존엄성은 그저 한 통의 전화로 쉽게 부서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시간에 대해 인사한다면, 인간을 혼자가 아닌 ‘우리’로 남길 수 있습니다. 짜고 퍼석하고 어느 순간엔 따뜻한 삶의 단면들이, 페이스트리를 베어 물었을 때처럼 번져 나갑니다.
실망과 환멸을 먹는 쥐
길가를 걷다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발치를 쌩 지나가는 기척. 쥐였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쥐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고, 도시 쥐는 뭘 먹고 살아가려나 오지랖 넓은 걱정이 들기도 했지요.
김상혁 시인의 「쥐의 시절」에서는 쥐가 실망과 환멸을 먹고 살아가는 듯합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음식이 맛있던 시절
내가 쥐이던 시절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통창 같던 시절
인생이 눈앞이고 심박수 높았던
시절 도시는 저녁 지평선에 쾅 닫히고
발소리 하나같이 무섭고 어린애도 무섭고
용감한 꼬리는 밟혀 끊어지던 시절 아무리
먹어도 배고프던 시절 몸집 아무리 줄어도
쥐새끼였던 시절 나는 생각했다 없으면 지 새끼도
잡아먹는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 생각하다
날 밝아서 관뒀다 시끄럽고 날 밝으면 졸리던 시절
좀 있다가 지평선 다시 쾅 할 테고
눈앞의 인생과 빠른 심박수
반복하던 시절 모을 것도
모아둘 곳도 없던 시절 아랑곳없이 높아지는 빌딩들
안팎으로 발자국을 찍던 쥐의 시절에
오갔던 길을
이게 몇 년 만인가
차로 달려 주차장 진입했고 방문증 받았고
밟힐 꼬리도 없이 카페에 앉아서 듣고 있는
벽과 음식을 갉아대는 기척들
배고파? 맛있어? 용기 무너질 리 없어?
아무 답 없이 쾅 닫히는 옆자리들
도시에서,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가끔 쥐입니다. 도시 쥐에게 세상은 하나의 ‘통창’같습니다. 뻔히 보이는데 들어갈 수 없어 거리와 쓰레기통 주변을 바삐 헤매야 하지요. 인간들의 발을 피해 도망다니느라 심장은 늘 빠르게 뛰고, 도시와 세상은 눈앞에서 ‘쾅’ 닫힙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온다는데 ‘먹어도 배고프’고, ‘빠져나갈 구멍’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눈앞의 인생’이 나를 덮치고, 도시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존재할 때, 나날은 숨가쁘게 흘러갑니다. 가난은 곧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최소한의 수준을 영위하기 위한 노동과 ‘지 새끼’를 위한 돌봄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 우리는 ‘쥐’처럼 낮아집니다. ‘용기’와 같은 위엄은 짓밟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차차 삶에 허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손발톱을 쥐가 먹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하는 것이겠지요. 나를 둘로 만들어 내가 도망치고, 나의 외양을 한 다른 이에게 노동을 맡기기 위하여.
재미있는 건 쥐가 인간으로 변했을 때입니다. 옛이야기의 ‘변신담’ 모티프를 차용한 이 시는 어느새 어른으로 훌쩍 자란 ‘쥐-인간’의 독백을 들려줍니다. “이게 몇 년 만인가.” 이젠 차도 있고, 좋은 곳에서 커피 한잔할 여유도 생겼습니다. 돈을 모아 찾은 도시는 쥐-인간이 앉을 공간도 순순히 내어줍니다. 그제야 ‘옆자리’가 보입니다. 쥐-인간은 회한에 젖어 도시의 쥐들에게 묻습니다. “배고파? 맛있어? 용기 무너질 리 없어?” 그러나 옆자리에 앉았다 해도 쥐의 말투로 말한다면 인간이 아닌 쥐처럼 무시당합니다. ‘쥐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말을 ‘쾅’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쥐-인간은 ‘벽과 음식을 갉아대는 기척’을 느끼며 다시 도시로 돌아와 있습니다. 쥐-인간의 실망은 자신이 ‘쥐’와 같은 처지라는 데서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자신만이 쥐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 말을 걸지만, 그저 ‘쾅’ 닫히는 ‘옆자리’에 환멸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부재중이라는 것은 불러낼 수 있다는 것
「부재중 종은」에선 “우리나라 언어의 상상력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화자가 등장합니다. 이 미묘한 답답함은 김상혁 시인의 최근 시를 읽을 때 쉽게 감지되는 감정입니다. ‘종은아’, 화자는 탄식처럼 어릴 적 친구의 이름을 부릅니다. 여덟 살 때도 함께였고 30대가 되어서도 연락하는 사이죠. 화자는 종은이에게 계속 묻습니다. “요즘도 많이 걷니?” “아 죽일까? 콱 죽을까? 다들 쉽게 뱉는 농담에 요새도 질색하니? 진심, 말이 사람을 해코지한다고 느껴?” 같은 물음은 지금은 곁에 없는 것 같은 종은을 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짚어볼 것은, ‘종은은 정말로 부재중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앞서 읽은 「쥐의 시절」에서도 화자는 옆자리를 향해 묻습니다. 누군가를 부르고, 말을 걸고, 질문할 때 ‘옆자리’는 발생합니다. 부르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종은’을 부를 때, 시는 독백의 자리에서 대화의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대화 상대가 있을 때 “너에게 마음껏 말과 글 쏟아내”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는 「퇴임사」에서 발견한 ‘인사’의 원리와 상통합니다. 우리는 상대가 있을 때 현존합니다. “안녕하세요?” 하면 “안녕하세요” 하는 상대, “종은아” 하고 부르면 대답하는 “너”가 있을 때 시가 쓰일 수 있듯 말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종은의 정체라기보다 화자가 종은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종은은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자 “생일에 선물 대신 5만 원 봉투 주던 귀한 친구”로 묘사됩니다. 현금이 오가도 오해하지 않을 만큼 막역하다는 뜻이면서, 화자의 가난을 짐작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현금을 건네는 마음 씀씀이를 지닌 친구일 것이라 상상할 수 있죠.
하나 시의 말미에서 화자는 종은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관점에 따라 숭고하거나 버러지 같은 종은”. 여기서 우리는 상승과 하강의 시선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대상을 보는 관점에 따릅니다. 물음이나 부름으로 호명해 낸 ‘너’를 ‘늙은 선배’, ‘딴 선생’으로 부른다면 그것은 상대를 ‘버러지’로 환원합니다. 우리가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상대는 추락하며, 그것을 보는 우리 역시 시선의 하강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6년간 나를 고용한 학교나 내가 자란 도시에 실망한다면, 그것은 은연중에 품었던 기대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합니다. 그러나 김상혁 시의 힘은 쉽게 좌절되고 꺾이며 환멸할 수 있는 일상을 그저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있지 않습니다. ‘쥐’의 시선까지 내려간 시를 ‘숭고’로 끌어당기는 힘을 발견할 때 시는 더 재밌어집니다. 예컨대 허름해도 ‘옆자리’를 찾을 것,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도 ‘기척’을 느낄 것, 누군가의 없음을 없다고 말하는 대신 ‘부재중’이라 이름 붙이며 감각할 것. 그것이 우리를 ‘쥐’의 상태가 아닌 누군가의 ‘옆자리’에서 말을 거는 존재로 끌어올립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건네는 “안녕하세요?”에 무뎌져 있습니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이비,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구호단체 직원, 수없이 건네지는 광고지를 경계합니다. 그러나 김상혁의 시는 우리에게 “답하는 순간이 매번 기쁨”임을 상기시킵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일종의 ‘찬스’입니다. ‘매순간 나에게 찾아드는 세상을 버러지처럼 외면할 것인가, 숭고하게 바라볼 것인가’. 그러나 현대인은 상대와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 숱한 갈등을 느낍니다. 우리는 외면과 환대 사이에서 진동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김상혁의 시는 한번 더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배고파? 맛있어?” 이렇게 물어보라고요. “너는 아직도 섬이 좋니?”라고 물을 때, 상대는 우리에게 흔쾌히 “방문증”을 건넬 것입니다.
김보나 약력
202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나의 모험 만화』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