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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과 빛
( 겔2:3-7, 마5:13-16 )
☞ 묵 도
다같이 묵도함으로 9월 첫째주 고등부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 예배로의 부름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9:17-18)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지겨우리만치 무더웠던 여름날을 우리에게서 거두어 가시고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계절을 선물로 주심을 감사합니다. 소리없이 익어 가는 열매처럼 겸허한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예배드리오니 기뻐 받아주시옵소서. 새로이 다가오는 감사의 마음을 받쳐 들고 말보다 깊은 기도로 주님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참회기도
오늘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끄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 거룩한 사랑을 믿고 이제도 주님 앞에 나와 참회의 기도를 드립니다. 주여,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탕자가 돌아올 때에 영접하신 것처럼, 그 많은 회개와 뉘우침으로 무거운 짐을 가지고 나올 때에 그를 벗겨주시고 자유하게 하신 것과 같이, 오늘 저희들을 영접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죄 가운데 살면서 죄인 인줄 모르고 행할 때가 많았고 불의의 길로 행하면서도 불의의 길인줄, 멸망의 길인줄을 모르고 행한 때가 많았습니다. 이 무의식 중에 행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알고 지은 죄가 많았습니다. 짐짓 죄의 길을 갔사옵고 죄송하게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피하고 핑계가 많았습니다. 불의한 길인줄 알면서도 불의의 길로 갔던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찮은 이득을 위하여 주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도 하며, 잠깐 있다 없어질 세상의 명예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길을 서슴치 않고 갔었습니다. 하나님, 용서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잘못의 원인이 나 자신에게 있건만 이 잘못을 남에게 돌리며, 하나님 앞에 욕되게 하고 불의로 행했던 일들을 겸손하게 자복하오니 주여, 용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성령이 말씀하실 때에 이것을 거역했고, 진리가 분명히 외치고 있건만 그 길을 따르지 아니한 죄를 용서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사랑을 받지 못한 자인 것처럼 스스로 절망하며 낙심했던 죄를 용서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가운데서 주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성실하게 살지 못했으며, 진실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한 죄를 주님 앞에 자복하오니 주여, 이 모든 악에서 건지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속량하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죄를 생각하며, 조용히 참회의 기도를 계속합니다.
☞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죄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아멘!
☞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시겠습니다. --- 전능하사 천지를--
서 론
이름은 헨리이고 은행원으로서 안경 없이는 전혀 앞을 보지 못 할만큼 눈이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두툼한 돋보기를 끼고 다닙니다. 헨리는 부인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부인의 말이면 꼼짝을 못합니다. 그의 소원은 부인이나 높은 사람들이 참견하지 않는 곳에서 마음놓고 독서하는 것입니다. 책읽기를 얼마나 좋아하던지 직장에서 집사이를 오가는 동안 간판이란 간판은 모조리 읽고 외워 버립니다. 저녁을 먹은 후 신문을 읽으려 하면 부인이 소리 소리 지르며 야단입니다. 책을 읽다가 은행장에게 들켜서 야단을 맞기도 합니다. 이런 헨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기다려 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곧 점심 때입니다. 그날도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언제나 처럼 점심을 싼 보자기와 신문 그리고 매일 읽는 책들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지하실로 갔습니다. 지하실에는 비어있는 커다란 철제 금고가 하나 있습니다. 그는 금고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아무도 간섭할 이가 없는 자기만의 세계를 얻은 것입니다. 우선 점심을 먹은 후 마음 놓고 편히 앉아 신문도 읽고 책도 읽었습니다. 이때입니다. 굉장한 폭음이 들리고 온통 지하실이 뒤흔들렸습니다. 헨리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더듬어서 안경을 찾아 쓰고 금고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수소폭탄이 떨어진 것입니다. 세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그 혼자 지하실의 금고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그토록 잔소리하던 은행장도 죽어 있습니다. 집으로 뛰어 갔습니다. 무섭게 굴던 아내도 집도 흔적조차 없어졌습니다. 그만 넋이 없어졌습니다. 얼마 후에 정신을 차려 살펴보니 주위에는 얼마든지 오래 먹을 수 있는 양식들이 온통 흩어져 있습니다. 이제 그는 그렇게 자유롭고 싶었던 그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먹을 것이 충분합니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없는 고독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가 실망에 가득차서 걷고 있을 때에 책 한 권이 그의 발길에 채였습니다. 눈을 들어 죄우를 보니 그가 서있는 자리는 시립도서관이 있었던 곳입니다. 건물은 파괴 되었지만 책들이 길과 층계 위에 흩어져 있습니다. 그는 너무 기뻤습니다. 어쩔줄 몰랐습니다. 책들을 한곳으로 모았습니다. 시집, 소설책, 그리고 논문집들, 그는 수십년 걸려서도 다 읽을 수 없을만큼의 책들을 얻은 것입니다. 책도 넉넉합니다. 자유도 시간도 모두 나의 것입니다. 그가 소원하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만족과 기쁨의 포만감이 가슴 속에 너무 뿌뜻하여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때에 그는 층계에 굴러있는 또 다른 책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다가 그가 끼고 있던 안경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돋보기 알이 산산히 부셔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절망에 찬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서 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그 모든 것의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참으로 필요했던 것은 그 조그맣고 보잘것 없는 돋보기 안경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은 때로는 보잘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것들입니다. 공기가 그렇고 물이 그렇고, 부모님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볼 소금과 빛이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 하십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너희는 소금이 되어야되고, 빛이 되어야 된다고 미래적으로 소망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현재, 바로 소금이고 빛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가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금과 빛은 흔하디 흔한 것입니다. 너무도 많이 듣고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의미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깊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역할이고, 우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중심되는 의미는 믿는 사람이 세상을 향해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가? 혹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1. 소금의 사명과 특징
그러면, 먼저 소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3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오늘 우리가 지금 알아볼 소금에 대해서는 여러분은 아마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소금을 직접 손으로 만지며 맛을 보면서 느껴야 하는데 여러분은 직접 요리를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소금의 소중함을 잘 모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주부들이라 하더라도 인스턴트 식품을 그냥 데워서 먹는 정도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소금의 진가를 모릅니다. 식당에 가면 소금대신에 간장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간장도 사실을 소금이 들어 있기에 나는 맛입니다. 이 소금은 온 세계의 어느 식탁에도 소금이 없는 식탁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당시로 돌아가 그 당시의 소금의 역할과 값어치, 그리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소금은 흔하디 흔하고 값싼 것
팔복에 대하여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십니다. 지상에서 가장 염분이 많은 사해를 옆에 두고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소금이란 너무도 흔하고 값싼 것에 불과 합니다. 사해는 염분기가 너무 많아서 사람이 들어 가서 헤엄을 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둥둥 뜹니다. 그런 염기를 가득 머금은 바다이기 때문에 가장자리에는 소금덩어리가 떠다닙니다. 사람들은 소금을 만들기 위하여 조제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데서나 한 바가지 떠다가 쓰면 충분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은 웃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을 그렇게도 흔하고 흔해빠진 값싼 소금에 비유하셨으니 말입니다.
2) 저장하고 맛을 내는 것
한편 소금은 고기를 썩지 않도록 저장하는데 사용합니다. 태고적부터 사람들은 이 방법을 터득하였고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은 대부분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잡은 고기를 오랫동안 갈무리 하기 위하여 생선을 저리는 방법을 잘 아는 어부들이기도 합니다. 갈릴리에서 절인 생선은 로마 제국 전체에서도 유명했습니다. 이들은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를 쉽게 이해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소금은 사해바다가 아니더라도 지천이었습니다. 조그만 늪에서도 생산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한 바가지 푹 퍼다가 쓰고 남은 것은 아무데나 두기 마련입니다. 다른 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햇빛이나 공기 중에 오래 노출되면 짠 맛이 다 없어집니다. 결국 다시 쓸 수 없게 됩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짜게 하리요"하신 말씀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렸습니다. 우리 소금은 맛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소금은 맛을 잃어버리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지역은 불순물이 많이섞인 소금이 흔했던 것입니다. 또한 암염이라는 것이 있어 바위에 소금이 붙어 있어 양들이 소금을 섭취할 때 먹을 수 있도록 한 쪽에 놓아두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소금을 다 핱아먹고는 바위만 남아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던져 버려집니다. 이런 의미입니다.
소금은 평범한 것이지만 사람에게는 혈액과 같아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프면 링게르 주사를 맞습니다. 여기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소금이 몇 %들어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 몸에 있어서도 소금은 중요합니다. 금식을 하는 분들이 다른 것은 먹지 않아도 소금은 먹습니다. 또한 음식은 소금이라야 간을 맞춥니다. 커피를 탈 때도 소금을 넣으면 맛이 한결 더 나아집니다. 카페에서 먹는 커피맛은 집에서 먹는 커피맛과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조미료를 넣는다고도 하지만 알아보면 소금을 조금씩 넣어 판답니다. 직접 집에서 소금을 조금씩 넣어보면 맛이 훨씬 나아지는 것을 알겁니다. 아무리 고급스럽고 맛이 있는 음식이라도 간이 맞아야지 싱겁거나 짜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금은 맛의 근본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산악이 많아서 교통이 불편하고 물물의 교환이 어려웠습니다. 소금을 만들 재간이 없는 산간에서는 소금이 금보다 더 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소금이 귀한 줄만 압니다. 예수님이 사신 팔레스타인은 가장 흔한 것이 소금이며 가장 평범한 것이 소금이었습니다. 이렇게 평범하지만 꼭 필요한 소금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뜻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의 매력은 평범한 가운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평범하지만 귀한 삶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특수 인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강박 관념 때문에 예수 믿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무엇인가 잘못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일부러 자신의 삶을 다르게 살려고 애써서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평범하게 사십시오. 그러나 가장 소금답게 사십시오.
월말이 되면 월급을 받습니다. 월급 때마다 그 감격이 얼마나 큽니까? 월급을 영어로 "샐러리"라고 합니다. 샐러리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솔트머니(Salt Money) 곧 "소금 돈"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 삶을 통해서 소금처럼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소금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소금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가운데 귀한 사명을 다하는 삶입니다. 썩을 것을 썩지 않게 하면서도 소위 티내지 않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삶,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매력을 주어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그런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소금은 제물로 드려지는 것
그 당시에는 제사 의식에서 소제와 번제물에 소금을 뿌려 제사를 드렸으며 향을 쓸때에도 소금과 향을 함께 사용했습니다. 부정한 것을 정하게 하는데에 있어서 쓰여지는 것이 두가지 있었는데 그 하나는 피요, 또하나는 바로 소금이었습니다. 소금은 부정을 몰아내고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귀신을 몰아내고 잡귀를 쫓아낼때에 소금을 썼습니다. 아침부터 재수없다고 소금을 뿌리는 것도 이러한 의미입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소금물로 목욕을 시켰는데 이것은 위생적인 면도 있지만 잡귀로부터 손을 못대게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피비린내가 나면 한쪽에서는 향내를 피워 피비린내를 제거하고 한쪽에서는 소금을 길에다 뿌립니다.
이상의 소금의 성질을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여러분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소금이어야만 합니다. 소금이 되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우리는 녹아져야 합니다. 만약 소금이 녹아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녹아서 자기는 없어지고 침투되어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소금의 역할입니다. 이렇게 녹아질 때 비로소 소금의 소금의 구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녹지 않는 소금은 절대로 자기의 구실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녹아 자기는 없어져야 합니다.
2. 빛의 사명과 특징
14절과 1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신 주님은 곧 이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요 8:12)"-(The Light)]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름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십니다.
1) 발광체와 반사체
우리에게 빛을 주는 것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낮의 태양이요 또 하나는 밤의 달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요, 하나는 빛을 반사해주는 반사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태양이고 우리는 달입니다. 달빛의 빛은 자신의 빛이 아닙니다. 오로지 태양의 빛을 받아 그것을 반사할 뿐입니다. 어두운 밤에는 그 달빛만 가지고도 길을 갈 수 있을 만큼 제법 밝습니다마는 달은 결코 자체의 빛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빛」은 자기의 빛을 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그 빛을 반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추석이 되면 뜨게 될 보름달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충만한 빛을 발하는 사람도 있고, 초생달과 같이 태양빛을 조금만 받아서 희미하게 빛을 내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보름달이 되고, 집이나 학원, 학교에 가면 초생달이 되는 여러분이지는 않습니까?
2) 어두움속의 빛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습니다. "말"이란 유대인의 집에서는 어디에나 있는 매우 흔한 양을 재는 큰 통입니다. 열되가 들어가는 통입니다. 등불을 켜서 말 아래 감추지 않습니다. 등불은 밝히기 위하여 켜는 것이지 감추기 위하여 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다운 행실을 보이지 못하고 감춰진 생활을 한다면 우스운 일입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 둡니다. 그래야 집안 모든 사람이 그 불빛 아래에서 활동하게 됩니다. 그 당시의 등은 둥그란 접시 위에 올리브 기름을 부어 비벼서 만든 심지로 불을 켰습니다. 촛불은 아직 발명되지 못한 때입니다. 주님이 "빛"을 말씀하신 것은 빛 자체를 역설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역할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이 "세상의 부패"를 전제하듯이 "세상의 빛"은 "세상의 어두움"을 전제합니다. 빛은 스스로 자신을 태워야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녹아야 하듯이 빛이 되려면 타야만 합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소금이 되고 빛이 됩니다. 소금이 부패한 곳에 있어야 하듯이 빛은 어두운 곳에 있어야 합니다. 어두움에 동화 되어서도 안되고 타협해서도 안됩니다.
결 론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소금과 빛을 비교해 보십시다. 소금이라고 하는 것은 녹아져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즉 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빛은 외적인 것입니다. 또한 소금이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빛은 사회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가지의 기능이 우리에게는 똑같이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16절 중반절부터 보십시오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 모든 것의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금이나 빛은 말이 없습니다. 이들 둘은 적은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소금은 조용히 녹아 없어지고 빛은 계속 타오르며 비춰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이런 것입니다. 세상속에서 조용히 묵묵히 행하는 것,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 세상에 굳게 서십시오. 이 세상을 도피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의 온당한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동안 참으로 주님의 소금과 빛으로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학원에서 도서관에서 소금과 빛으로 남에게 조용히 선행을 베풀고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일원이 되길 진정 주님은 바라시고 계십니다.
치유 기도 / 봉헌 기도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 모습, 이대로를 주님 앞에 내려놓길 원하십니다. 세상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너무도 많은 모습속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것을 고백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든 삶들은 오히려 주님의 영광을 가리우기만 했던 것을 시인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들이 철저히 녹아지는 삶, 어두움을 비추는 삶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남이 먼저 녹아져 세상이 변하기를 기대했고, 남이 먼저 빛을 비추어 나는 편하게 그 빛에 의지해 살아가고자 했던 모습들이었음을 바라봅니다. 이런 나약하고 주님앞에 도저히 얼굴을 들 수조차 없는 저희들이지만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그 넓으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나약함을 강건함으로 바꾸시며, 우리의 비겁함을 담대함으로 변화시키시는 주님께서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의 상처입고 억눌리고 답답했던 마음과 몸을 빛과 소금이 되셔서 우리의 모범이 되신 그 주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진정한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정한 소금과 빛이 되길 기대하십니다. 참된 소금과 빛되신 주님을 온 마음과 몸을 다해 섬기며 따르기를 원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은 두 손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두 손을 높이 드는 것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겠다는 헌신의 표시입니다. 두 손을 높이 드시기 바랍니다. 두 손을 높이 든 채로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참된 소금과 빛으로 삼으신 주님! 우리의 모든 삶이 주님께 철저히 헌신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하여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들을 나타내시길 원합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녹아지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실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두움의 세상권세를 깨고 빛으로 환하게 밝게 빛나게 하실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으로는 도저히 이 일들을 감당할수 없사오니 주의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시며, 심령 깊숙한 곳에서부터 완전히 변화시켜 주실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기대하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평생에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의 분명한 사명과 역할을 기억하게 하시며, 2학기를 보내면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학원에서 기타 우리가 처한 모든 환경과 상황속에서 참으로 주님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주님의 제자된 직분을 감당하게 하실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특별히 바라옵기는
아직도 우리의 예배 처소가 많이 비어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하면서도 주님의 사랑과 위로를 나의 친구들과 함께 나누지 못하고 있음을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헌신과 결단을 내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한갖 세상적인 편안함과 안일함을 좇지 않고, 참되신 주님께 향한 열심을 가지고 충성 봉사하게 하옵소서. 남보다 내가 먼저 움직이게 하시며, 남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갈수 있게 하옵소서. 특히나 우리는 공부하는 학생들입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하시길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상황속에서 암기력과 기억력이 우선적으로 향상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뛰어난 암기력과 기억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공부하는 모든 시간속에서도 주님을 최우선으로 인정하고 나가며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이게 하옵시며 우리의 이러한 모습들을 통하여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 늘어가게 하옵소서.
특별히 추석을 앞두고 마음이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주님을 따르며 섬기게 하시고, 모든 삶속에서 늘 화목할 수 있는 넉넉함으로 인도하시길 원합니다. 오늘도 함께 하지 못한 우리의 사랑하는 지체들에게도 동일한 사랑과 은혜로 채우시길 원하며, 언제 어디서든 주님을 기억하며 이곳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자들로 인도하옵소서. 우리의 드리는 물질위에 함께 하시고, 영적인 것과 물질것인 것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드리며 나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 전체가 늘 주님께 바쳐지는 삶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며,
☞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로 우리의 예배를 마칩니다 ---- 하늘에 계신------
☞ 다함께 인사합시다. ------ 당신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