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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의 깨진 유리창 / 한서노회
깨진 유리창 이론
1969년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매우 흥미 있는 실험을 실행했다.
우선 치안이 비교적 허술한 골목을 고르고, 거기에 보존 상태가 동일한 두 대의 자동차를 보닛을 열어놓은 채로 1주일간 방치해 두었다. 다만 그 중 한대는 보닛만 열어놓고, 다른 한 대는 고의적으로 창문을 조금 깬 상태로 놓았다.
보닛만 열어둔 자동차는 1주일간 특별히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보닛을 열어놓고 차의 유리창을 깬 상태로 놓아둔 자동차는 그 상태로 방치된 지 겨우 10분 만에 배터리가 없어지고 연이어 타이어도 전부 없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낙서나 투기, 파괴가 일어났고 1주일 후에는 완전히 고철 상태가 될 정도로 파손되고 말았던 것이다.
단지 유리창을 조금 파손시켜 놓은 것뿐인데도, 그것이 없던 상태와 비교해서 약탈이 생기거나, 파괴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게다가 투기나 약탈, 파괴 활동은 단기간에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실험에서 사용된 ‘깨진 유리창’이라는 단어로 인해 ‘Broken Window’라는 새로운 법칙이 만들어 졌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더 큰 무질서와 범죄로 매우 빠르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나중에 세계 유수의 범죄 도시 뉴욕 시의 치안 대책에도 사용되었다.
에브라임이 조금 남겨 놓은 가나안 사람
오늘 본문에는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가나안 땅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분배받은 땅에서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다 쫓아내지 않았다. "그들이 게셀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오늘날까지 에브라임 가운데 거하며 사역하는 종이 되니라"(10). 에브라임이 쫓아내지 않고 남겨둔 이 가나안 사람들이 나중에 큰 문제를 야기한다.
왜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진멸하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의 가증한 행위들을 본받을까 염려하셨기 때문이다.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신20:16~18).
에브라임 땅에서 일어난 우상숭배의 확대
이후에 에브라임 지파의 지도자로 세워진 여로보암은 바로 그 땅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고 북쪽 열 개 지파의 사람들에게 그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도록 선동하였다. 이것이 바로 전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고 들어갔던 여로보암의 죄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하니라"(왕상14:15-16).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자신의 왕권 유지를 위해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각각 벧엘과 단에 두었다. 여기서 일할 제사장을 마음대로 선발하고 절기도 조정하여 철저히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였다. 또한 그는 아세라 상을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아세라를 섬기게 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깨어져 버리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열방 중에 흩어지고 말았다. 지도자 한사람의 잘못으로 전체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생각할 것이 있다. 어째서 여로보암은 이러한 우상숭배의 방법으로 왕권을 행사하려고 했을까? 그가 어디에서 우상숭배를 배웠을까? 그는 틀림없이 자신이 속한 에브라임 지파에서 그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 땅에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다 쫓아내지 않은 가나안 사람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숭배가 에브라임 지파에게로, 그리고 여로보암에 의해 전 이스라엘로 퍼저 나갔던 것이다.
오늘날의 가나안 전쟁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살 수 없고 과거 가나안 정복전처럼 종교전쟁을 벌여서도 안된다. 다만 이 세대의 문화를 본받지 않고 주 예수님을 따르도록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세대의 타락한 문화에 대하여 죽은 자로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을 모두 죽였듯이 세상은 우리에 대하여 죽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도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죽어야 전쟁이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죽은 자들임을 믿어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아니고 이미 까마득한 옛날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는 죽었다. 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오직 하나님을 대하여만 살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6:11).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만 교통할 수 있다. 그분이 살리시는 것들과만 상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1~5).
오늘날의 가나안은 이렇게 십자가를 통해서만 진멸할 수 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현대판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승리하도록 기도하자.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