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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샬 롬
빌라델비아 교회와 인내의 비밀 (계 3:7-13)
[역사적 배경]
빌라델비아는 사데 동남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원 도시로 포도 생산지로 유명하였습니다. 그곳은 서머나와 리디아 왕국으로부터 동방으로 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러야 하는 도시로 동방의 관문이라 일컬어지기도 했습니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상당한 부를 누렸으나 지진의 피해가 많았습니다. 또한 많은 신전과 종교적 행사가 있어 A.D.5세기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이교 신전과 종교 행사가 많고 2,3장에 나타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위치한 지역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B. C. 159-138) 아시아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짓밟힐 때 유일한 기독교의 보루(堡壘)로서 신앙적인 면에서 가장 칭찬을 받은 지역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형제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로에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암미아(Ammia)라는 여선지자가 이 교회를 관할하면서(A.D. 100-160) 큰 부흥을 이루었다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성장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개종하는 역사도 있었으나 반면에 교회를 가장 반대하는 자들 역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인내의 말씀과 그 결과 (계 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은 없고 칭찬만 받은 가장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듯이 성경은 곳곳에서 인내의 복됨을 말씀합니다. 인내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순간에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함을 기뻐하면서 끝까지 지키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삶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 인내로서 지키는 마음의 옥토 밭이 바로 인내입니다(눅8:15). 옥토만 되면 30배 60배 100배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말씀 + 인내 = 참 믿음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비밀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기도에서 승리한 자만이 삶에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위치한 카타케카우메네는 지진이 많던 활화산 지대로 모두 이주하고 미약한 사람들만 남았는데 그러나 마음의 옥토만은 간직하고 있었던 그들이 곧 빌라델비아 교인들입니다. 더구나 조직적인 사탄의 회가 있어서 심한 박해를 받았고, 교세는 심히 작았고, 그들을 지도하고 인도할 이렇다 할 목자나 능력이나 은사적 도움도 적었고, 가난했지만 그들은 낙심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자신들의 전부로 삼고 인내로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결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은혜를 받았고, 더 큰 약속을 주님으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눅8:15).
인내로서 말씀을 지킬 때 주시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1. 하늘 문을 열어 주십니다.
8절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여기 열린 문에 대해서 여러 견해가 있지만 먼저는 하늘의 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께도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마3:16-17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 문이 열릴 뿐 아니라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시고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면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하늘의 문은 천국의 문, 복의 문, 전도의 문도 다 포함되는 문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온갖 은혜와 복락과 부흥과 전도와 선교와 형통의 문까지도 열어 주십니다(신28:12).
2.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집니다.
9절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초대교회를 가장 핍박했던 집단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이름을 부르지만 실상은 사단의 회였습니다. 그들 중에 몇 사람이 교회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처럼 끝까지 말씀에 서서 믿음으로 나가면 꿈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에 굳게 서면 그것이 믿음의 은사가 되어 산을 옮기고 바다를 가릅니다(막11:22-23).
3. 사랑해 주십니다.
9절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이처럼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주심으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의 표현이란 점입니다. 주님의 기쁨이 된다면 자유통일도 세계 제일 가는 나라가 되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지켜나가는 것이 믿음의 은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산을 옮기고 바다를 가르고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정권을 바꿉니다(막11:22-23).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히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던 여인들이 갈 때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지키는 군병도 그렇고 누가 그 큰 돌문을 열어줄지 그러나 다가가 보니 군병들은 사라졌고 돌문도 열리고 예수님도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자의 기적입니다.
4. 시험을 면제하여 주십니다.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시험을 면제하시는 이유는 자원하여 훈련한 순종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큰 평안이 있고(시119:165), 환난까지도 면제해주십니다(시121:7). A.D.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 당할 때도 택하신 자들 위해 그 날을 감해 주셨고(마24:22), 예루살렘을 포위한 로마군이 잠시 로마로 돌아간 사이 사도들의 인도 아래 성을 빠져 나와 심판을 면제 받게 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시험의 때에 대해서 "장차"라는 낱말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종말에 있을 7년 대환난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다면 주후 1세기의 초대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와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이 시험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면제 받는 시험과도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장차 될 일"(계1:19)이란 "속히 일어날 일"(계1:1)이나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계22:6)과 같은 맥락으로 각인에게 구원의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암시하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차"는 "아직"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시제에서 이미와 아직은 구원을 설명하는 대단히 중요한 세제입니다. 아버지의 계획과 예수 공로로 보았을 때는 이미이지만, 우리 믿음으로 봤을 때는 이제 자라가는 아직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은 구원의 그 대상인 아직 육에 속한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시험할 때” 란 역사적 종말의 때를 연상시키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연단을 의미합니다. 계7:9-17의 흰 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가 큰 환난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성화신앙에 환난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자발적으로 순종하여 거룩에 이르렀으니 이 시험을 면제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빌라델비아 교회가 시험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서머나 교회와 같이 순교적인 고난이 없을 뿐, 그들은 이미 가난과 천대와 박해 가운데서 신앙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면제하신다는 시험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련하는 징계와 채찍과 같은 류의 시험을 면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 과정을 훌륭히 통과했거나 하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5. 큰 영광을 주십니다.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기서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면류관을 쓰고 있음을 봅니다. 아름다운 신앙이 그들이 면류관이었습니다. 여기 가진 것이라 하셨는데 빌라델비아 교인들이 가진 것이라곤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우직한 믿음 말고는 없었습니다. 다른 교회처럼 특별한 은사나 체험이나 다른 교회들처럼 위대한 담임목회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인내로서 말씀 지키는 그 자체가 면류관이요 보배입니다.
6. 신앙의 본질을 붙들었습니다.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그러나 우직한 믿음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는 그들의 최고의 은사요, 최고의 면류관이요,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신앙의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수많은 다른 은사가 있다 해도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말씀에 세우는 그런 역할을 하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요20:30-31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7. 크고 귀히 써주십니다.
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특별한 지적이 없는데 무엇을 이긴다는 걸까요? 앞 절에서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말씀에 힌트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투철한 믿음을 가졌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 하던 것을 게으르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자만과 거짓과 자기를 이기는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이 믿음을 계속해 나간다면 솔로몬 성전의 야긴과 보아스처럼, 초대교회의 기둥 같이 여기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처럼(갈2:9)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 같은 존재가 될 것이고, 이들의 영향력으로 예루살렘 교회와 같이 세계복음화의 주요기지요, 사탄의 세력을 공략하는 최고의 요새가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와 철야기도회를 살려내야 할 필요성이 거기에 있습니다.
8. 하나님께 인정과 은혜를 받게 됩니다.
12절 “이기는 자는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다른 약속으로 3가지의 이름을 기록하시겠다 하셨는데 여기서, 3은 완전한 은혜를, 이름은 그 본질을 의미하는 용어로 볼 때 그만큼 인정해주시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실 것을 시사합니다. 마치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처럼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시2:7) 하심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아버지의 사인은 너는 내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의미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너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신부구나, 그리고 예수님의 새 이름은 그동안 맛볼 수 없었던 예수 안의 놀랍고 새로운 은혜를 암시합니다. 예를 들면 다시는 떠나지 않으시고 항구적으로 온전히 임재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벧전4:12-14). 믿음을 지키다 고난 받은 순교자의 마음의 넘치는 평안과 얼굴에서 빛나는 광체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5:10-12) 하셨습니다.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이렇게 귀합니다. 말씀과 기도에 목숨을 거시기 바랍니다.
이 약속을 받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신실한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7절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거룩하고 진실하심은 믿음의 신실한 결과를 시사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거룩하고 진실하시기에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반드시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사22:15-25의 국고를 맡은 교만한 셉나 대신에 충성되고 겸손한 엘리야김이 다윗의 집 열쇠를 맡아 막강한 권세를 행하였던 것이 연상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더 큰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시기에 놀라운 새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정상을 달리는 정상적인 믿음을 위해서는 성경 묵상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책상 위에 성경을 열어놓고, 교회에서도 내 자리에 성경을 열어놓고 시간이 나는 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깊은 연구도 좋지만 발성으로 낭독하는 것도 우리 영성을 깨우는데 좋습니다. 기차가 레일을 달리는 동안은 안전하듯 성경을 읽음으로 마음이 하나님께 머물게 됩니다. 주를 향한 마음이 식을 기회를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식으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진리기에 실천하는 자에게 반드시 큰 결과로 나타나게 한다는 이 신실하고 가슴 부푼 약속은 거기에 우리 모든 것을 걸게 합니다.
2. 비전을 보아야 합니다.
8절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육신의 눈으로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신령한 눈으로 볼 때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는 희망이 넘칩니다.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함 있는 믿음에 비전이 큽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인내로서 순종하는 옥토밭은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합니다. 성경암송의 비전도 불을 토하는 부흥사를 만들어 낼 정도로 큽니다. 성경 말씀을 지킴에서 비전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11:28) 하셨고, 신28:1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하셨고, 12-13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하셨습니다.
3. 행함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빌라델비아 교회의 장점입니다. 그들은 받은 달란트가 적었지만 낙심하지 않고 말씀을 기초로 한 행함 있는 믿음을 가졌고, 그 믿음을 테스트하는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박해에서도 합격했습니다.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해드림과 아울러 주님을 생각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아1:13-14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한 술람미처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4. 헌신적인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성경 말씀은 인내 없이는 지킬 수 없습니다. 말씀과 행함과 인내가 합해져야 참 믿음입니다. 다니엘의 믿음이 참 믿음인 것은 어떤 순간에도 감사의 기도가 그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택할 그 탁월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죽는데도 함께 가겠다고 다짐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지만 주님이 잡히시자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의 이 실패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서 만회합니다. 오순절 성령을 받은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기도하는 자에게 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도들은 주님도 고난을 당하셨는데 우리야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며(마10:24-25), 예수의 이름 때문에 박해 당함을 합당하게 여겼습니다(행5:41). 이걸 볼 때 정상을 달리는 영적생활을 위해서는 헌신적인 기도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도 기도, 둘째도 기도, 셋째도 기도, 기도생활 없이 인내로서 말씀을 지키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집니다.
5. 그 믿음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가 이겨야 할 가장 큰 시험은 그 믿음이 게을러지거나 변질되거나 중단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한국교회 역시 그 희망이 새벽기도 철야기도 금식기도와 같은 투철한 기도운동에서 났는데 이제는 거의 무너지고 모양만 그럴듯한 종이호랑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공부에 머무는 제자훈련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말씀과 삶을 훈련시키는 참 제자훈련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최소한 하루 기도 3시간 이상씩 하면서 훈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삼손처럼 여우 꼬리에 불을 달아 다시 한 번 한국과 세계를 불지를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눅12:4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라델비아 교회는 가장 위험한 곳에서 가장 작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많은 천대와 박해를 받았지만 목숨 걸고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살았으니 가장 큰 믿음, 가장 큰 교회, 그리고 가장 큰 복을 받은 교회입니다. 이제 할 일은 그 믿음을 잃지 않고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가슴 부푼 비전을 가지고 말씀과 기도로 장성하여 하나님께 사랑 받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