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시편 23:1~4
이번 주간이 이번 여름 피서의 가장 중요한 문깃점인 것 같습니다. 한자어로 피할 피, 자에 더울 서 자입니다. 그러므로 피서(避暑)라는 말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바닷가가 되었건, 강가가 되었건, 쉴만한 물이 있는 곳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곡이나 골짜기에 있는 쉴만한 물가를 찾습니다. 그러면서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쉴만한 물가에서 쉬고 돌아오면 그 여운이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어느 기관에서 발표한 조사 내용 중에 보니까 직장인 중 74%의 사람들이 휴가를 다녀온 후에 나타난 여러 가지 후유증 때문에 오히려 더 피곤하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 26%의 사람들만 휴가가 자기의 삶에 재충전의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처럼 우리 육신이 자기 스스로 쉴만한 물가로 찾아가서 쉬는 것으로 만족감이 얻는 것의 효과가 그리 크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두주간의 휴가철이 지나면 원래의 피곤하고 지친 상태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래서 또 다시 온 영혼과 마음이 힘들고 무겁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요즈음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쉴만한 물가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의 본문 2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에서 말하는 쉴만한 물가는 세상의 바다나, 강이나, 산이나 골짜기에 흐르는 물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흐르고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물가를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쉼을 주는 생수의 강물이 믿는 자의 배에서 흐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 흐르는 물가에서 안식의 쉼을 누립니다.
지난 얼마 전에도 하남시 요양원에서 매주 화요일마다 함께 예배드리는 이종관 장로님께서 저에게 말하기를 자기의 아들이 관리하는 평창에 있는 휴양시설에서 한 2~3일 정도 쉬었다 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골짜기, 물, 공기가 다 좋다고 말하면서 좀 쉬었다 오라는 것입니다. 그 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흐르는 그 어떤 시원한 물가보다, 저의 심령 속에 흐르는 예수 은혜의 물가에서 쉼을 얻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물론 앞으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런 곳에 가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올 여름에는 예배당에서 기도하면서 저의 심령 속에 흐르는 예수 생수의 강가에서 쉬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419장에서는 이렇게 찬송합니다.....주 날개 밑 내가 퍙안이 쉬네, 빔 깊고 비바람 불어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주시니 거기서 평안이 쉬리로다, 주 날개 밑 평안하다. 그 사랑 끊을 자 뉘뇨 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영원히 살리....
잘 아시다시피 우리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인생길의 영혼과 삶의 안전함과 쉼이 있는 곳으로 찾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마치 양이 자기 스스로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이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인간은 우리 인간을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무더위에 지금도 감옥에 들어가 있는 이명박 장로가 한 말이 저의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사람이 두달 동안 잠을 안자도 죽지 않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도 죽지 안은 줄 이제야 알았다,는 말입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서 따라같기 때문에 고통과 슬픔의 물가에서 고달픈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자주 언급한 말씀입니다. 매일매일의 삶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심정으로 살아가면 훗 날에 반드시 쉴만한 물가가 있는 삶으로 엮어집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거잘하고 자기가 선택한 길을 간다면 앞으로 언젠가 실패하고 고달픈 삶으로 엮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매 때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전해지는 교계 소식을 보니까 지나간 한동안 우리나라 기독교계를 크게 혼란하게 했던 신옥주 여목사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자기를 따르는 신도 400명을 설득해서지상 최후의 낙원이라고 말하면서 남태평양상의 피지 섬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곳에서 농장을 세우고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같은 신도들이 3명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공동체를 빠져나가려는 사람을 감금하고 폭행해서 부상을 입혔습니다. 그래서 이런 죄목으로 그 신옥주 목사가 감옥에 갔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상 일에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야할 사람이 오히려 고통하고 상처주는 물가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지난 과거에 우리 교회를 섬기던 몇몇 분들이 그쪽 줄기에 엮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이 처음 그 쪽에 이끌려갈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그 쪽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두고 보면 알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큰 낭패를 볼 날을 만날 것이다...
거짓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고,, 질실도 시간이 지나면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까 과연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찬송가 569장입니다.....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푸른 풀 밭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주소서... 선한 목자 구세주여 항상 인도 하소서,.. 선한 목자 구세주여 황상 인도하소서....
그래서 이 다윗은 오늘의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도(引導)라는 말을 한자어 뜻으로 말하면 당길 인, 자에 이끌 도,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당기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는 말씀이 신구약 성경에서 약 320회 정도 나옵니다. 이만큼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길 원하십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끌어 당기듯 인도하십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눈 먼 소경처럼 참된 구원의 길과 목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보다 더 복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교회의 이름 중에는 쉴만한 물가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그 교회의 이름을 보면서 이름이 괂찮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쉴만한 물가와 같은 교회의 이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곳은 세상에서 피곤하기 지친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과 쉼을 제공해주는 곳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세상살이에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안에서 영혼과 삶의 쉼을 얻을 뿐만 아니라 또한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쉴만한 물가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항상 하나님의 올바른 인도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올바르게 인도하신다 해도 중간에서 인도하는 지도자의 인도가 잘못되면 결국에는 쉴만한 물가로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아픔이 있는 물가로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인도자의 책임이 큽니다. 또한 여러분들은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인도자의 인도를 따르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기억하면서 저와 여러분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자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물가에 누리는 쉼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