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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2015) - 루트비히 비트겐스타인 / 변영진
1914. 10. 15.
고요한 밤이다. 이제 열흘에 한 번 정도 자위를 한다. 실제 글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한다; 9시에 잠자리에 들고 6시에 기상한다. 지금 사령관과는 전에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온종일 산도미에Sandomierz 시에 있었다. 아마도 밤마다 여기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매우 많은 연구를 했지만 확신은 없다. 마치 정답 거의 바로 앞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14. 10. 19.
명제들에 의한 세계의 묘사는 오직 지칭된 것이 그 자신의 고유한 기호가 아니라는 사실에 의해 가능하다! 적용.
동어반복의 이론을 통해서 “어떻게 순수수학이 가능한가”라는 칸트의 질문에 대한 해명!
세계의 구조는 어떠한 이름의 명명함 없이도 기술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참조 5.526.]
1915. 1. 22.
나의 모든 과제는 명제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명제의 그림인 모든 사실들의 본질을 알리는 것이다.
모든 존재의 본질을 알리는 것(그리고 여기서 있음이란 존재를 말하지 않는다─만약 그렇다면 무의미해질 것이다).
1915. 6. 1.
내가 쓰고 있는 모든 것들을 둘러싼 큰 문제점은: 선험적인 세계의 질서가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 점은 무엇과 관계있는가?
안개 속을 들여다보면서 목표는 이미 가까워졌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안개는 흩어지고 목표는 여전히 시야에 나타나지 않는다!
1916. 5. 9.
연구를 위한 충분한 시간과 평온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연구는 꿈쩍도 안 하고 있다. 내 연구 주제는 나 자신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 죽음은 비로소 삶에 의지를 부여한다.
1916. 6. 11.
신과 삶의 목적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나는 이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마치 내 눈이 내 눈의 시야 속에 있듯 나는 세계에 있는 것을.
우리가 세계의 의미라 명명하는 무언가는 세계에서 문제적이라는 의미가 세계 안이 아니고 세계 밖에 있다는 것을. [참조. 6.41.]
삶이 세계라는 것을. [참조 5621.]
1917. 1. 10.
자살이 허락된다면 모든 것이 허락된다.
어떤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자살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것은 윤리학의 본질에 빛을 비추어준다. 왜냐하면 자살은 근본적인 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조사할 때 그것은 증기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수은 증기를 조사할 때와 같다.
자살은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닌 것인가?
This considerably revised second edition of Wittgenstein's 1914-16 notebooks contains a new appendix with photographs of Wittgenstein's original work, a new preface by Elizabeth Anscombe, and a useful index by E.D. Klemke. Corrections have been made throughout the text, and notes have been added, making this the definitive edition of the notebooks. The writings intersperse Wittgenstein's technical logical notations with his thoughts on the meaning of life, happiness, and death.
"When the first edition of this collection of remarks appeared in 1961 we were provided with a glimpse of the workings of Wittgenstein's mind during the period when the seminal ideas of the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were being worked out. This second edition provided the occasion to be struck anew by the breadth, rigor, and above all the restlessness of that mind."—T. Michael McNulty, S. J., The Modern Schoo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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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의 철학은 통상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 철학은 생전에 유일하게 출간된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로, 후기는 《철학적 탐구Logische Untersuchungen》로 대표된다.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적 탐구》의 개략적인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겠다. 그 유사점이란 무엇보다도 ‘철학은 과학과 다르다는 것’이다. 즉 철학은 어떤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며, 철학의 문제들은 언어에 대한 오해에서 연유하기 때문에 활동으로서의 진정한 철학은 ‘언어 비판’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차이점은 특히 상이한 언어관에서 발견된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를 단순, 정확하고 확정된 것에서 찾는다. 한마디로 언어를 ‘정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후기 때 ‘언어의 의미’는 애매하고 유연한 그 무엇이다. 다시 말해 언어를 ‘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는 그의 전기작 《논리-철학 논고》(이하 《논고》로 약칭함)와 연관된 중요한 기록이다. 이하에서 옮긴이는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설명을 제시하고 개인적인 의견 또한 덧붙일까 한다. 이를 통해 독자의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는 1914년 8월부터 1917년 초까지 비트겐슈타인의 기록인데, 우선 이것과 《논고》와의 연관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연구는 191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러셀B. Russell의 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당시 러셀의 주된 관심사였던) 논리 철학에 대한 매력과 호기심으로부터, 나아가 문제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얻고자 했다. 그 첫 번째 결과는 1913년 노르웨이 한 시골 마을에서 러셀과의 만남을 통해 나온 짧은 기록이다. 그리고 1914년 4월, 노르웨이로 비트겐슈타인을 방문한 무어G.E. Moore가 그의 구술을 받아쓴 기록이 두 번째 결과이다. 첫 번째 기록은 《논리 노트Notes on Logic》이고 두 번째 기록은 《무어가 받아쓴 노트Notes dictated to Moore》로 칭해진다. 이 두 기록 모두 원본은 영어이며, 그 내용은 부분적으로 《논고》에 그대로 반복되거나 유사하게 옮겨진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에서도 간헐적으로 재현된다. 1913년 초 대부호인 아버지가 사망하자 비트겐슈타인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는다. 유산 중 일부를 당시 불우하지만 가능성 있는 몇몇 예술가에게 기부했는데, 수혜자 중에는 시인 릴케R.M. Rilke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비트겐슈타인은 1914년 7월에 발발한 1차대전에 자원입대하여 조국 오스트리아를 위해 복무한다. 그는 참전 중 중위까지 진급도 하고, 1918년 이탈리아군에 포로가 되었다가 이듬해 석방되는 등 파란만장한 군 생활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개인적 참전 목적은 1918년 여름에 달성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는 전쟁에서의 공로에 대한 포상으로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며 연구의 결말을 맺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주저 《논고》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전장에서의 일기 기록은 전쟁 전 두 기록(《논리 노트》와 《무어가 받아쓴 노트》)과 비교할 때, 《논고》를 완성함에 있어서 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구 과정으로 봐야할 것이다. 전장에서의 일기 기록은 《논고》에서 많은 부분 그 자체로 옮겨지고 또 유사하게 변형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 참전을 선택한 이유는 조국을 지키려는 애국심보다는, 오히려 개인적 열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그는 수년에 걸친 자신의 연구를 전장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비로소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며, 그의 의도는 성취되었다. 1914년부터 1917년까지의 전장기록은 그러한 성취의 핵심적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서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가 비트겐슈타인의 유고 전 저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아보자. 비트겐슈타인은 철학 연구를 시작하면서 평생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분량의 손글씨 기록과 타자 기록은 모두 기록 습관의 결과물이다. 손글씨 기록을 수정하면서 그것을 타자 원고로 최종적으로 옮기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일반적인 작업 방식이었다. 1951년 그가 암으로 사망했을 때 그가 남겨놓은 기록은 이미 상당한 분량이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1952년 여름 오스트리아 그문덴Gmunden에 위치한 그의 누이 스톤보로우M. Stonborough의 집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새로운 유고가 발견되었다. 발견은 비트겐슈타인의 문헌관리인이자 그의 케임브리지대학 후임 교수인 폰 브릭트G.H. von Wright에 의해 수행되었다. 거기서 몇몇 타자 원고와 손글씨 원고가 발견된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 이 책에서 소개하려는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전장에서 작성된 세 권의 노트가 포함된다. 그 후에 현전하는 많은 유고가 비트겐슈타인의 가족과 지인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그의 유고는 (물론 그 형태는 저마다 다르지만) 무려 3만여 페이지에 달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유고 기록들은 폰 브릭트에 의해 분류, 작업된 형태로 접할 수 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유고들을 크게 세 부류로 구분했는데, 손글씨 원고, 타자 원고 그리고 구술 기록이 그것이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손글씨 원고는 101부터 시작에서 182까지, 187개의 글들로 구성했다. 번호는 비트겐슈타인이 작업한 시간 순서이다.—그것은 타자 기록과 구술 기록의 편집 순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1914-1917년의 세 권 노트는 손글씨 기록들 중 가장 앞선 101, 102 그리고 103의 부분에 해당한다. 첫 번째 노트 101은 1914년 8월 9일에서 10월 30일까지, 두 번째 노트 102는 1914년 10월 30일에 시작해서 1915년 6월 22일까지, 그리고 세 번째 노트 103은 1916년 3월 29일부터 1917년 1월 10일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타자 원고는 201에서 245까지 총 45편의 글인데 손글씨 원고들을 정리하여 쓴 경우가 많다. 《논리 노트》는 201의 글에 해당하며, 202, 203 그리고 204는 《논고》의 서로 다른 버전의 글에 해당한다. 구술 기록은 러셀, 무어, 슐릭M. Schlick 등이 받아쓴 301부터 311까지의 내용으로 총 11편이다. 앞서 소개한 《무어가 받아쓴 노트》가 301에 해당한다. 폰 브릭트의 작업에 기초하여 모든 유고는 《비트겐슈타인의 유고》라는 씨디롬으로 발간되었다(Wittgenstein’s Nachlass: Text and Facsimile Version: The Bergen Electronic Edition: The Completed Edition on CD-Ro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그리고 옮긴이는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의 내용에 대한 대략의 설명을 덧붙이고자 하는데, 우선은 그 내용이 두 가지로 구분됨을 밝힌다. 비트겐슈타인이 25세이던 1914년에서 28세이던 1917년까지 기록한 세 권의 노트 기록(101, 102, 103)은 내용상 철학적인 부분과 비철학적인 부분, 다시 말해 일상적인 기록으로 구분된다. 유고 편찬자들은 이 두 부분 가운데 철학적인 부분을 추려 1960년에 독일의 주어캄프Suhrkamp 출판사에서 최초로 발간했다. 그 후 1979년에 영국의 바질블랙웰Basil Blackwell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는데, 학계에서는 통상 이 판본에 의거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전자의 책 제목은 《일기 1914-1916Tagebücher 1914-1916》이고 후자는 《노트 1914-1916Notebooks 1914-1916》이다. 비철학적인 부분의 기록은 그 분량에 있어서는 철학적인 부분의 기록과 대등하지만 중요도에 있어서는 뒤쳐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장에서 비트겐슈타인 개인이 본 당시의 상황, 그곳에서 그가 관계하는 인물들 그리고 그에 따르는 일상의 전개가 내용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단상이 일기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옮긴이는 이 책의 제목을 ‘철학일기’로 했다. 모든 내용은 《비트겐슈타인의 유고》에 근거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유고》와 단행본, 즉 《노트 1914-1916》은 같은 내용을 다루면서도 기록 날짜가 다른 경우가 몇몇 있었는데, 옮긴이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전자(《비트겐슈타인의 유고》)를 따랐다. 그리고 옮긴이는 이 책의 제목에서, 비트겐슈타인의 ‘1914년부터 1916년까지’가 아닌 ‘1914년부터 1917년까지’의 철학일기임을 밝혔다. 그의 세 번째 전장노트 103은—비록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엄연히 1917년 초까지의 기록을 담고 있다. 그리고 위에서 소개한 두 가지—주어캄프와 바질 블랙웰 출판사의—단행본들 역시 1917년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1917년이 아니라 굳이 1916년까지의 기록이라고 제목을 붙일 타당한 근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 위 (바질 블랙웰 출판사의) 판본에 있는 모든 내용을 충실히 번역하여 소개했다. 또한 그 판본의 도움으로, 《논고》의 특정 부분이—똑같게 또는 유사하게—옮겨진 경우 해당 출처를 일기 기록 말미 괄호 속에 표기했다. 《논고》와 겹치는 기록의 번역은 책세상에서 출간된 이영철 선생님의 번역을 많이 참조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선생님의 번역을 온전히 옮긴 부분도 있다.
이 책에서는 또한 《비트겐슈타인의 유고》의 기록으로부터 비철학적인 일기를 선별하여 옮겨 실었음을 밝힌다. 비트겐슈타인이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연구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 부분들을 찾아 번역했다. 외국에서는 ‘비밀 노트’ 등의 제목으로 서책을 통해 소개된 경우가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 책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철학적인 기록이 내용 자체로서는 그 중요도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철학적 기록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는 큰 몫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첫 번째 전장노트, 101의 커버는 이미 그런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거기에는 자신이 전사했을 경우 그 노트가 보내져야 할 두 주소, 그의 누이가 있던 오스트리아 주소와 그의 스승 러셀의 영국 주소가 적혀 있었다. 두 번째 노트 102에는 러셀의 주소만 있고, 세 번째 노트에는 어떤 주소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결정적인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비트겐슈타인 삶의 철학이다. 일상적인 기록에서는 이미 그가 보는 삶의 의미가 표출되는데, 그것은 학문적으로 윤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가령 이 책의 마지막, 1917년 1월 10일의 기록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살에 관한 철학적 해명을 제시한다. 그것은 《논고》에서도 언급된 윤리학과 밀접히 연관된다. 자살에 대한 그의 사색(?)은 사실 지극히 일상적인, 전장에서의 절실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비트겐슈타인의 절친 핀센트D. Pinsent이다—비트겐슈타인은 일기에서 그를 데이비드라 명기한다. 비트겐슈타인은 후일 《논고》를 출판하며 자신의 책을 그에게 헌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1918년 핀센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러한 헌정을 결정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핀센트에 대한 깊은 우정 또는 사랑을 통해 전장에서 괴로움을 극복하며 철학 연구에 집중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그의 철학 기반이 되는 두 부분, 즉 전쟁에서 느낀 삶의 의미 그리고 절친에 대한 그리움이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 비철학적인 기록에서 직·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비트겐슈타인의 독특한 철학에 있다. 옮긴이는 그와 관련하여 이 책이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우선 첫 번째 관점은 《논고》의 적절한 해석과 관련되어 있다. 《논고》는 분량이 많지 않으며 그 문장도 겉보기에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논고》는 독자들에게—일반 독자뿐만 아리라 전문 연구자에게도—난해한 사상서로 알려져 있다. 그에 대한 학문적 해석은 매우 다양하며 때로는 서로 대립하기까지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1914년부터 1917년까지 전장의 기록은 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사유과정이 드러나므로, 《논고》 이해에 적극적인 보충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관점은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를 그 자체로 온전한 비트겐슈타인의 사유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일기에서 그의 사유는—비록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보다 생생히, 《논고》에서와 달리 보다 논증적으로 제시된다. 앞선 날짜에 기록된 사유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이 바로 다음 날 연이어 나오기도 한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는 그의 리드미컬한 사유에 접근하는 것은 매력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이에 따르는 몇 마디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옮긴이는 학위논문과 뒤따르는 몇몇 글들에서 《논고》의 사상을 반형이상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했었다. 단순히 말해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형이상학적인 사상, 가령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임을 언급하는데, 옮긴이는 그 말 그대로 읽는 것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그러한 형이상학적 주장의 거부 또는 비판을 제시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 그러한 언급을 했다고 보는 것이 옮긴이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옮긴이의 독자적인 주장이 아니며, 기존의 주장을 새로운 방법으로 논증하고자 함이 옮긴이 연구의 주된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옮긴이는 이 책에서 번역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일기 기록을 많은 부분 근거로 제시했다. 《논고》에는 언급되지 않은 일기의 부분에서 그 저작의 형이상학적 언급을 부정하는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고, 그를 통해 《논고》의 반형이상학적 해석에 많은 힘을 얻었었다. 그러한 관점이야말로 옮긴이가 보기에 유일하게 확고한 해석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반형이상학적 해석만이 유일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음을 느꼈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에는 형이상학에 반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거꾸로 오롯이 형이상학적 관점이 긍정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옮긴이는 앞선 연구들에서 《논고》를 중립적 입장이 아니라 반형이상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를 읽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또 《논고》가 아닌 《비트겐슈타인 철학일기》 그 자체를 중심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사상 이해에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반성했다.
옮긴이는 《논고》의 사상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비트겐슈타인의 전장일기를 나름대로 읽어 왔다. 자신 있게 번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아직 여물지 못한 옮긴이의 공부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대하는 독자님들께 송구스럽고 고맙다. 미숙한 연구자의 번역서 출간을 약속하신 책세상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 그리고 특히 편집장 김미정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번역 작업 말미에 원고를 읽고 교정 작업을 성심껏 도와준 아내 김혜민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의 공부에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께—두 분의 성함 공명자 그리고 변창환을 밝히고 싶다—사랑을 표하고 싶다.
2015년 초겨울 제주에서
변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