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작오절이희지(作五絶以戲之)」 절구 5수를 지어 희롱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 소개하는 칠언절구(七言絶句) 「문자백 직경 공석 제공 방자진우위소 위문졸소협황거이반(聞子伯 直卿 公碩諸公 訪子眞于圍所 爲門卒所脅 惶遽而返)」 즉, ‘황망히 돌아갔단 말을 듣고, 절구 다섯 수를 지어 희롱하다’ 5수(首)는 조선전기 문신 용재(容齋) 이행(李荇 1478~1534)의 작품으로, 『용재집(容齋集) 제6권(卷之六) 해도록(海島錄)』에 수록되어 있다. 해도록은 정덕(正德) 병인년(1506년) 봄 2월, 거제도(巨濟島)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正德丙寅春二月 赴巨濟以後作). 이 작품은 짧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시는 작가가 유배(위리안치)되어 있는 삼엄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보러 왔다가 수문장에게 쫓겨난 친구들을 유쾌하고 재치 있는 어조로 놀리며(희롱하며) 우정을 나누는 유배 가사의 백미다.
서문에 적힌 대로 각 수의 마지막 글자(압운자)는 驚(경), 散(산), 一(일), 杯(배), 酒(주)로 맞추어져 있다. 이 5수(首)의 운목(통운)은 순서대로 ‘庚’, ‘翰’, ‘質’, ‘灰’, ‘有’이고 압운법(평측법)은 평기식, 평기식, 측기식, 측기식, 측기식 절구(絶句)다. 또 ‘경산일배주(驚散一杯酒)’ 이 말은 저자 이행(李荇) 선생이 "놀라서 흩어지느라 술 한 잔도 못 마셨네"라는 친구들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비유하기 위해 선생이 직접 조어(造語)하여 시의 주제이자 압운(押韻)으로 사용한 문구(驚散一杯酒)다. 한마디로 가시울타리 친 유배지(위리안치)라는 삼엄한 감시 속에서, 동료 유배객들이 문지기에게 쫓겨 도망친 것을 짓궂게 놀리며 유배지의 고달픔을 두터운 우정과 해학으로 달랜다는 내용이다.
○ 1506년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인해 거제도에서 귀양살이 했던 분은 대략 26명 정도다. 그중에 이행(李荇, 擇之)은 공석(公碩, 김세필), 홍대요(大曜, 홍언승), 홍언충(洪彦忠, 直頃), 홍언방(洪彦邦, 君美), 홍언국(洪彦國, 公佐), 자진(子眞, 최숙생), 이자백(子伯, 이윤李胤), 이강재(強哉, 이려李膂), 이공백(恭伯), 이자선(子善, 이전), 이원숙(元叔, 이육), 이수인(李守訒, 訒之), 이공신(公信), 권민수(權敏手, 叔達, 1466~1517), 이장곤(李長坤, 希剛), 이수성(李守誠, 誠之) 등이 가깝게 교분을 나누었다. 1506년 봄부터 가을까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즐긴 거제도의 장소가, 장평바닷가, 운문(문동)폭포, 소요동[상문동], 신청담(神淸潭, 문동폭포 웅덩이)과 매립전의 고현바닷가, 그리고 유자도[현 댓섬(竹島), 현재 유자섬(橘島)은 당시에는 소도(小島)], 주봉 계룡산, 구천동(삼거리)까지 함께 다니며 거제비경을 즐겼다. 거제고을 선비인 이악(李鶚, 斯立), 이맹전(李孟全), 이백완(李伯完)도 가끔씩 참석했으며, 또한 거제 관리 이수간(李守幹), 수위(守威), 수인(守訒), 수심(守諶) 형제들과도 시문을 교환했다. 이분들이 가장 자주 찾은 곳이 거제시 상문동 문동저수지에서 문동폭포까지 ‘소요동’이었다. 이로부터 당시 정치가 가장 암울한 시기였던 1506년 봄부터 가을까지, 거제도 상문동 ‘문동(운문)폭포와 소요동 일대’는 문화교섭(文化交涉)의 공간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문학 공간을 연출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시기의 교우였기에 이들 유배객 사이의 교분이 각별하여 이후 평생을 같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용재 이행 선생이 세 칸 띳집에서 살았고, 노복(종 아이)이 있었으며, 집주인은 궁핍한 할미였다. 고현 바닷가에 거주했던 금헌 이장곤은 보수 주인이 어부였다. 상문동의 용재 이행이나 고현동의 상재 최숙생도 말이 있었고 새로 구입하기도 했다. 배소에서 30리 떨어진 구천장으로 유배문인들과 함께 놀려 가신 사실을 돌이켜보면, 수월리의 십청헌 선생님도 말을 한필 소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평동의 우암 홍언충은 채소밭을 가꾸는 임무를 맡았으며, 용재 이행은 양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모두 데리고 온 노비가 맡아서 일을 했지, 유배객 본인이 일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당시 유배인을 감시하는 병졸이 각각 한 명씩 있었다. 또한 거제도는 변방이라, 이 당시 야간통행 금지가 있어 어둑하면 야경꾼이 소라나팔을 부르면서 그 시간을 알렸다. 새벽에는 통행 해제 시간에 맞추어 소라나팔을 불렀는데, 대부분 그 소리에 맞추어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다.
● **「자백(子伯), 직경(直卿), 공석(公碩) 등 여러분이,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곳으로 자진(子眞)을 찾아왔다가 문을 지키는 병졸로부터 협박을 받고 황망히 돌아갔단 말을 듣고, 절구 다섯 수를 지어 희롱하였다(聞子伯 直卿 公碩諸公 訪子眞于圍所 爲門卒所脅 惶遽而返 作五絶以戲之)」** -경산일배주(驚散一杯酒)로 운(韻)을 삼았다(用驚散一杯酒 爲韻)- / 이행(李荇 1478~1534)
客滿中堂酒滿甁 손님은 객실에 가득하고 술은 병에 가득해
興酣談笑各崢嶸 흥이 나면 담소 나누며 저마다 기개 드높았겠지.
老兵醉後聊調戱 늙은 병졸이 취한 김에 애오라지 으름장을 놓았더니
自是傷弓謾易驚 본래 화살에 맞았던 새(상궁지조)들이라 부질없이 쉬이 놀라 달아났구려.
靑山雨罷海風微 청산에 비가 개고 바닷바람 미약할 제,
屋上提壺自相喚 지붕 위에서 제호새(새 이름)는 서로를 소리 높여 부르네.
主人未醉客猶醒 주인은 취하지 않고 손님들도 정신 말짱한데
一叫還如飛鳥散 (늙은 병졸의) 한 번 고함에 나는 새처럼 흩어져 버렸네.
靑眼且留堂上賓 반가운 눈길로 마땅히 마루 위의 손님을 머물게 해야 하거늘
白醪爲餉門前卒 흰 막걸리를 문 앞의 병졸에게 대접해야 하다니.
本欲結歡翻被猜 환심을 사렸다가 되레 의심을 받았으니
人間此事固非一 인간 세상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고말고.
-이날 문을 지키는 병졸에게 술을 주었다.(是日 饋門卒酒)-
興盡諸公走馬廻 흥이 다하기도 전에 그대들은 말을 달려 돌아갔으니
主人有酒與誰開 주인에게 술이 있은들 이제 누구와 함께 마실거나
世間兒輩君休較 세상의 소인배를 그대 아랑곳하지 말라
他日重期擧百杯 훗날 우리 다시 만나 백 잔의 술을 들기를 기약하세.
溪上松陰深復深 시냇가에 솔 그늘은 깊고도 또 깊은데
杖藜日日雲爲友 청려장 지팡이 짚고 날마다 구름을 벗 삼네.
守門老卒曾莫呵 문 지키는 늙은 병졸아, 제발 좀 꾸짖지 말라.
但願有客兼有酒 그저 손님이 있고 술 있기를 바랄 뿐일세.
[주1] 자백(子伯) : 이윤(李胤 1462~?)의 자(字), 호는 쌍매당(雙梅堂)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대사간, 부제학 등을 지냈으며 1498년(연산군 4) 사간원대사간으로 재임 중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거제에 유배당하였다.
[주2] 직경(直卿) :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의 자(字), 호는 우암(寓菴)으로,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문장이 매우 뛰어났던 인물이다. 이행과 특히 깊은 시문(詩文)을 주고받았다.
[주3] 공석(公碩) : 김세필(金世弼 1473~1533)의 자(字), 호는 십청헌(十淸軒)으로, 훗날 기묘명현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강직한 문신이다.
[주4] 자진(子眞) : 수문장에게 협박당해 격리되어 있던 방의 주인이다. 최숙생(崔淑生 1457~1520)의 자(字), 호는 상재(尙齋)이며, 이 시기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어 있었다.
[주5] 늙은 …… 놀라더라 : 문을 지키는 병졸에게 술을 먹여 꼬여서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병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던 듯하다. 활에 다쳤다는 것은 상궁지조(傷弓之鳥), 즉 화살을 맞은 적이 있는 새를 뜻하는 말로, 크게 우환을 겪은 적이 있어 잘 놀라는 사람을 비유하는 데 쓰인다. 여기서는 상대가 병졸이고 의심이 많으므로 차용한 것이다.
[주6] 한 번……흩어져 갔다니 : 문을 지키는 병졸이 고함을 쳐서 찾아온 손들을 내쫓았던 것이다.
[주7] 문 ……뿐일세 : 이 편은 용재 자신의 적소(謫所) 생활을 노래하였다. 즉 자신의 문을 지키는 병졸은 손님이 찾아오고 술자리가 벌어지기를 바랄 뿐이라는 것이다.
○ 내용인즉, 먼저 ①창작 배경인 위리안치와 우정에 대해 살펴보자.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유배형 중에서도 죄인을 가시 울타리 안에 가두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다. 외부인과의 접촉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러나 당시 거제도에선 죄인의 집(배소)의 문 앞에 탱자나무 두어 그루를 심어 위리안치 죄인임을 알리는 정도였고 유배인의 활동 반경도 거제현 관내는 모두 허용되었다. 이에 이행이 잠시 외출한 틈에, 이행의 절친한 벗들(자백, 직경, 공석)은 위험을 무릅쓰고 유배지까지 찾아왔으나, 문을 지키던 노병의 협박과 호통에 겁을 먹고 허둥지둥 도망치듯 돌아갔다. 이행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우울해하기보다는 벗들을 "화살에 놀란 새(傷弓之鳥)"에 비유하며 유쾌하게 놀리는 시를 지어 보낸 것이다. ②시상의 전개와 반전을 살펴보면, [1~2수]에선, 친구들이 올 때 품었을 당당한 기개를 묘사한 뒤, 졸개의 호통 한 번에 날아가는 새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모습을 희화화하여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3수]에선, 삼엄한 현실을 풍자했다. 정작 반가운 친구들은 쫓겨나고, 문을 지키는 졸개에게 들키지 않으려(혹은 달래려고) 뇌물로 술을 대접해야 했던 아이러니한 상황을 노래했다. [4~5수]에선, 아쉬움을 뒤로하고 훗날을 기약한다. 졸개들의 무례함에 마음 상하지 말라고 벗들을 위로하며, 자신은 외로운 유배지에서 그저 '벗과 술'이 함께하는 소박한 즐거움을 누릴 날을 기다리겠다는 다짐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 다음은 「작오절이희지(作五絶以戲之)」 5수(首)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다.
[제1수] ‘驚’ 운(韻)에선, 친구들이 자진의 유배지 문 앞에 가득 모여 호기롭게 담소를 나누다가, 문지기 졸병이 한마디 호통을 치자 모두가 깜짝 놀라 흔적도 없이 도망쳐 버린 모습을 풍자했다.
[제2수] ‘散’ 운(韻)에선, 호랑이 굴(유배지)을 두드려 보려던 호기롭던 기세는 어디 가고, 문지기의 위협에 겁을 먹고 새 떼나 나비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난 친구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묘사했다.
[제3수] ‘一’ 운(韻)에선, 방 안의 귀한 손님(자진)을 두고 문앞의 졸병 때문에 돌아서야 했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사실 문지기에게 술 한 잔 건네며 달랬으면 좋았을 텐데 인간 세상의 일이란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탄식을 담았다.
[제4수] ‘杯’ 운(韻)에선, 어쨌든 멀리서 벗을 찾아 섬까지 온 의리는 가상하나, 문턱도 넘지 못하고 도망쳤으니 자진의 방안에 있던 술잔과 등불만 쓸쓸히 남겨두게 되었다며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제5수] ‘酒’ 운(韻)에선, 비록 문지기의 협박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술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이 시를 읽으며 서로 술잔을 기울이는 마음으로 유배의 시름을 웃어넘기자는 위로로 끝을 맺었다.
○ 한편 이 시는 유배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선비로서의 여유와 의연함을 잃지 않고, 문학적 재치(운자를 활용한 유희)를 통해 삼엄한 감시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풍류와 끈끈한 우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작품들은 제목에 나타난 대로 "친구들이 위리안치(가시울타리가 처진 유배지)된 동료 자진(子眞)을 찾아갔다가 문지기 군사(문卒)에게 협박을 당해 허겁지겁 도망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 상황을 유쾌하고 재치 있게 놀리며 위로한 시다. 각 수의 마지막 자를 ‘驚(놀랄 경), 散(흩어질 산), 一(한 일), 杯(잔 배), 酒(술 주)’라는 글자로 운(韻)을 달아 유배지의 삭막한 현실을 해학으로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