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0] 장영창(張泳暢) - 하늘 길은 슬프다 4. ‘더 웨이 어브 더 월드’와 ‘통일세계’와 ‘주간종교’의 출간 - 1
1 약 반년 동안에 걸쳐 번역을 마친 일본어의 번역 원고를 가지고 유효원 협회장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일본어판의 원리강론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2 그 후에 어떻게 된 사정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여하튼 유효원 협회장님과 나는 심한 질병으로 고통을 받기에 이르렀다.
3 즉, 유효원 협회장님은 원리 강의를 하다가도 이따금씩 헛소리를 하게 되어, 약물 치료를 해야만 하게 되었고, 나는 완전히 기력을 잃어버리고 병상에 누워, 매일같이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4 그러다가, 강경렬 권사님과 김희옥 권사님들의 간곡한 권유로 당시 삼각산에서 시작되었던, 이월성 장로님을 중심으로 한 삼각산 기도원을 찾아가 약 1주일 동안 기도하였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5 그래서, 계속 병상에 누워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던 중에, 문선명 선생님께서 제1차 세계 순회를 마치시고 귀국했을 때였다. 나는 선생님의 부름으로 쇠약할 대로 쇠약한 몸을 겨우 이끌고 교회로 올라갔다.
6 선생님께서는, “이제부터 영어로 하는 월간지를 출판해야 되겠어” 하고 말씀하신 끝에, 그 영어 월간지의 이름을 ‘더 웨이 어브 더 월드’(The Way of the World)라고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7 그리고, 최원복(崔元福) 선생님을 주간(主幹)으로 모시고, 내가 편집장이 되어 만 4년 동안 나는 그 책을 발간하는데 여념이 없는 동안에, 병고도 점점 사라지게 되어 여하튼 그것이 미국으로 옮겨져, 미국의 식구에 의해서 계속 출판될 때까지, 나는 그 책임을 다하였던 것이다.
8 사실은, 이 영어의 월간지가 미국으로 옮겨지기 이전에, 우리 통일교회의 출판사업에 하나의 큰 장애가 생겼다. 그것은 그동안에 신문형으로 출판되어 나왔던 “성화”가 문교부에 의해서 정간(停刊)을 받기에 이르렀던 일이었다.
9 그래서 우리는 하는 수 없이, “통일세계”라는 이름으로 새로 등록을 얻어, 월간지로 그것을 출간하게 되어 내가 초대의 편집장으로 그 책임을 맞게 되는 동시에, 협회 본부의 출판부장으로 취임을 했던 것이다.
10 그러는 동안에 나는 또 국제승공연합에서 발간하게 된 신문형의 월간지 “국제승공보”의 편집장까지 맡기에 이르렀는데, 사실상 그 실무는 황송문씨가 맡아 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