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화 글로벌 하우스 8회 (2~9화) 룸메이트는 주인 하기 나름!
좋은 친구들과 살고 싶다면 면접을 보자
처음에는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을 거절하기 힘들고 요령도 없어 무조건 먼저 오는 사람에게 방을 내주었다. 하지만 처음 온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란 법은 없다. 만약 룸메이트를 구하는 게시물에 연락을 많이 받았다면 여유를 가지고 모두 만나본 후 결정하는 것이 좋다. 많이 만나보면 어떤 사람이 좋은지 저절로 알게 되니까. 좋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냐 이상한 사람과 끔찍한 시간을 보내느냐를 정해야 하니 이런 결정은 신중할수록 좋다.
사실 나는 끔찍한 경험까지는 아니어도 좋지 못한 경험이 자주 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스트레스도 상당해 일과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던 적도 있다. 처음 봤을 때 이상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았다든지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든지 아무튼 좋은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면접은 많이 볼수록 좋다.
집에 대한 규칙을 정해두고 설명해 주자.
함께 살게 된 친구에게는 같이 살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을 알려준다. 예를 들면 세탁기는 저녁 10시 이후에 사용하지 않는다든지, 욕실이 하나밖에 없다면 샤워는 시간 여유가 있는 저녁때 하고 출근 시간은 피한다든지, 쓰레기는 어떻게 분리해서 버리는지를 미리 알려줘야 한다.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쓰레기봉투를 사용하지 않아서 이웃에게 주의를 들었던 적이 종종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냉장고나 싱크대 수납장은 칸을 나눠 서로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공용 공간은 공평하게 함께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냉장고와 싱크대 서랍, 수납장, 욕실의 붙박이 칸 등 모든 칸에 색깔별로 스티커를 붙여 각자의 공간으로 나누어 사용했다.
글로벌 하우스 8회 (3~1화) 호주의 팝 싱어와 말레이시아 공주님
호주에 살고 있던 존이 어떻게 내게 메일을 보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지우고도 한참 지났을 때인데 말이다. 존의 메일에는 한국에 대한 자료를 찾다 우연히 내 메일을 알게 됐고, 그래서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가수라며 자신의 홈페이지 주소를 메일에 적어 보냈는데, 접속해 보니 화려한 가수 활동 사진과 맛보기 음악 등이 있었다. 음악은 별로였지만 왠지 목소리는 진짜 유명한 가수 같다며 아그네스와 함께 호들갑을 떨었다.
"노래가 좀 웃기지만 그래도 멋있다. 우리 이 사람한테 연락해 볼까?"
이렇게 해서 휴(사람 이름)가 나간 방에는 호주의 팝 싱어와 그의 여자 친구가 들어오게 되었다. 존은 여자 친구 마틸다와 함께 커다란 옷 가방과 전기기타를 짊어지고 우리 집에 왔다. 그리고 하루 2만 원씩 일주일에 14만 원을 주고 우리집에 머물기로 했다.
존의 여자 친구 마틸다는 말레이시아인으로 상당히 수다스러웠고, 묻지도 않은 자기들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려주었다. 둘은 호주 시드니에서 언더그라운드 밴드 활동을 하면서 2집 앨범을 냈으며 음반 홍보차 선택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했다. 그들이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록 또는 발라드풍의 존의 노래가 서양보다는 동양인에게 더 인기가 있을 것 같아서라나.
가수라고 해서 대단한 인물일 줄 알았는데 솔직히 그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매니저도 없고, 특별한 홍보 계획도 없었다. 게다가 무작정 한국에서 홍보를 하겠다는 그들의 모습이 약간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한 가수가 아니면 어떤가. 좋은 룸메이트면 그만이지.
우리 집에 짐을 푼 다음 날부터 그들은 매니저를 구하러 다녔다. 하지만 저녁에는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와 다툴 때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 오기 전 두 사람은 말레이시아나 태국, 필리핀 등 휴양지의 별 다섯 개짜리 고급 호텔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며 틈틈이 음반 홍보를 할 계획이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한국 호텔에서는 인건비가 싼 동남아 가수나 동유럽 가수들을 고용하는 데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져 예전처럼 라이브 무대를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운영하는 회사가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중요한 사항들만 결제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근해서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집에서 인터넷으로 일하는 날이 더 많았다. 집에서 빈둥거리거나 만화책 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시간에 마틸다와 존을 도와주기로 했다. 우선 특기를 살려 인터넷으로 라이브 가수를 구하는 업체를 찾아 전화를 하고, 면접을 볼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었다. 영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학원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어느 날 동대문 쇼핑을 다녀온 그들이 내게 물었다.
“새봄, 밀리오레와 두타 앞에 있는 야외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을까?”
나도 가끔 동대문에서 아마추어 가수나 댄서들이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라 공연 기획 담당자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얼마간의 무대 임대비를 내면 공연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존과 마틸다에게 무대 임대비를 내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명동과 종로의 야외 공연장을 알아보았더니 마침 명동에서 공연장을 무료로 빌려주겠다며 앨범을 가져오라고 했다.
존이 공연을 하기로 한 날 우리는 함께 명동 밀리오레에 가서 사회자와 인사를 했다.
“멀리 호주에서 날아온 핸섬 가이 존 앤드류스의 공연이 6시부터 시작되겠습니다.”
사회자가 미리 방송을 해주었고, 거리를 지나던 젊은이들이 하나둘 무대 근처로 모이기 시작했다. 존은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기타를 만지고 있었고 마틸다와 나는 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을 구경하며 신기해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의 타이틀곡 ‘Don’t worry’가 명동 거리에 울려 퍼졌다. 그날은 존이 입고 다니던 촌스러운 잠바를 벗기고 남동생이 입던 짙은 파란색 더플코트를 입혀주었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그는 몇 곡의 노래를 라이브로 열창했고, 무대 앞의 젊은 관객들은 손을 흔들며 분위기를 맞춰주었다. 심지어 몇몇 여고생은 “오빠!”를 외치기도 했다. 마틸다와 나는 사진을 찍으며 흐뭇해했고, 곧 아그네스도 동참해서 존의 공연을 감상했다.
사실 존의 공연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마틸다의 진짜 꿈은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평상시의 활발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남모르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무대 공포증.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그녀는, 혼자 있을 때는 노래를 곧잘 불렀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도저히 노래 부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관객 앞에서 열창하는 존을 늘 부러워했다. 내가 보기에 그녀가 존과 사귀는 이유 중에는 존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노래할 수 있는 노하우를 자기에게 전수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내가 보기에 존은 남들 앞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관심이 많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마틸타는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날 우리는 명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존의 공연을 축하했다. 존과 마틸다에게도 긴장된 하루였겠지만 나 또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가수의 매니저를 해보리라고는 꿈도 꿔본 적이 없었으니까.
“새봄, 우리의 매니저가 돼줘.”
다음 날 존은 나에게 정식으로 제안했다. 좋은 공연이나 직업을 소개시켜 주면 매니저 비로 수익의 20퍼센트를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재미있을 것 같아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찾아보고 영화 음반 회사나 게임 음반 회사 등의 매니저에게 존을 소개해 주었다. 피아노 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틸다에게는 바에서 피아노 칠 수 있는 일을 소개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를 연결해 주어도 그 일을 오래하지 못했다.
너무나 자유분방하고 자기중심적인 예술가들이라 그런지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그래서 오래 일을 하지 못했다. 결국 나도 그들을 도와주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참을성이 없고 이랬다저랬다 변덕이 심한 존은, 사람들의 말을 오랫동안 경청하지 못했고 조금만 주위에서 대우해 주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자존심이 높아졌다가 조금만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세상 끝날 것처럼 걱정을 했기에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