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륵, 미세한 소리가 났다. 외출복 차림의 한 여자가 아파트 정원수들 사이로 가볍게 스며들고 있다. 약간의 의문과 호기심 섞인 눈길이 여인을 따라잡은 지점엔 하아, 완전 딴 세상이 클로즈업된다. 샛노랗게 웃는 개나리며 튀밥처럼 하얀 벚꽃들로 꽃 사태가 난 정원 속이다. 그녀는 아마 키 큰 나무들 사이에서 아롱다롱 순짓하는 꽃들의 유혹에 도저히 무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토하듯 화르르 풀어낸 꽃 무리 속으로 뛰어들더니 어느새 활짝 핀 얼굴을 휴대폰으로 요리조리 찍어 댄다. 나이를 먹었어도 천생 꽃잎 같은 여인, 만일 꽃이 없는 봄이라면 어쩔 뻔했을까.
아파트의 다른 여자가 그 장면을 바라보며 서 있다. 봄빛이 만들어내는 몽환경에 젖었는지, 잊었던 자신을 만나기라도 하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미소까지 띤 채다. 강마른 세상을 위로하는 조물주의 배려 같고, 삶의 감탄사 같기도 한 꽃 봄 아닌가. 단 한 번 생의 환희처럼 피워내는 절절한 꽃 빛과 꽃을 찾아드는 사람의 마음 색 까지 눈부시게 고운 순간이 또한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아파트 틈새 정원에 만개한 봄꽃들로 회색 빌딩 숲도 제법 그럴싸하다. 무엇에건 오래되면 길드는 법이라, 한 뼘의 마당도 없이 반듯한 방들로 채워진 실내에 살다 보니 집이란 의례 이런 것이라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라고 노래하던 곳은 동요 속 아득한 추억의 동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약삭빠르게 민첩한 사람들과 궁합이 맞는 편리한 주거 공간이 아파트이긴 하다. 빗자루로 마당 쓸어야 할 일, 부엌과 장독대로 종종걸음치는 일, 허리가 아프도록 손빨래하는 벅찬 가사 노동도 없다. 그러면서 흙먼지 일어날 일도 없으니 청결해서 좋다. 문 하나만 잠그면 외출도 편해져 본래부터 아파트 체질인가 싶은 아파트 주민이다. 스마트한 마트에서 새침하게 간추려진 푸성귀에 길들었고 인사말도 군더더기가 없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로 분명하고 깔끔해 보이는 아파트 동네 여자들, 든든하고 안락한 방을 향해 여태 얼마나 달려왔던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다들 집과 방은 비워 둔 채 왜 문밖으로 떠도는 걸까.
아파트의 여자, 요즘 자신의 방들에 회의가 인다. 날마다 분주한 발자국, 소리를 내면서도 가슴속엔 황량한 들판에 이는 바람인 양 공허한 소리만 들리기 때문이다. 방이란 어떤 곳인가 지친 삶을 보듬어 주는 가장 편안한 휴식의 장소인 동시에 따뜻함이고, 아름다움이며, 인생이다. 세상에 없는 병원도 약국도 그 안엔 있기에 건강한 일상의 원천이다. 그런 방을 얻기 위해 시간에 쫓기고 지식에 매달리고 사람에 시달리며 쫓고 쫓기는 짓은 할 만큼 하였다. 그 덕에 여기까지 왔으니 지금쯤은 어느 모로나 안착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사 어디에나 ‘예측 불허’라는 함정이 있어왔다. 가지런히 정돈된 방에서의 여유도 잠시, 걷잡을 수 없는 허탈감과 몸을 휘감는 한기는 웬일이며 서둘러 방을 벗어나려는 아이러니엔 스스로도 어찌 황당하고 심산하지 않으리.
자신이 선택했다고 믿었던 방들이건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혹 무엇에 의해 떠밀려서거나 어쩔 수 없는 사회의 물살에 합류한 것들이 아니었나. 여겨지는 거다. 몸을 의탁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이든, 정서를 순화시키는 방이든, 어디에도 들앉지 못해 동동거리는 마음을 보면, 자신만의 오롯한 방 한 칸을 들여놓지 못했거나 아직 찾지 못함일 수도 있겠다.
방의 가치는 넉넉한 규모나 그럴싸한 모양새에 있지는 않을 테다. 잘 비치된 물건들로 보여 주기 위함은 더욱 아니다. 풍성한 온기로 말마다 몸과 마음을 담음에 있다. 오래전 식구들이 복작대던 따스한 방에 대한 기억과 식어 있는 아파트 방들의 표정을 보아도 그렇다. 방에서 얻는 훈기와 감동이 예전과 다름을 알게 된 여자. 바야흐로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었나 보다. 숨차게 달려온 생이 깔끔한 붙박이 가구들 곁에 기대앉은 방은 허탈과 무력, 나른한 권태가 찐득하게 기생하는 온상으로 추락하고 있다.
한철 부푼 꿈으로, 또 한철 타는 열정으로, 붉으락푸르락 고온 다습했던 날들을 건너와 집 하나를 마련한 여자들. 이제 더 이상의 드라마는 없다며 일도 사람도 사랑도 귀찮아 거울도 안 보는 여자가 될까 봐, 마침내 사는 일조차 귀찮아 질까 봐, 방 안에 머물기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작은 풀씨 하나 품지 못한 마음속에 가꾸어야 할 방은 어떤 것인지 딱히 알 수도 없어, 혼란스런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날, 이 심란한 상황을 단숨에 정리하듯 지인이 말했다.
“20년 젊게 살면 된다.”
단호하고 자신에 찬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혔고, 얼씨구나 맞장구를 쳤다. 한데 이를 어쩌랴. 그 방책이라는 각종 건강 기능 식품 샘풀들 앞에서 피지직, 환상이 부서져 내리며 기운이 빠지던 여자. 그런 자신이 한심하여도 그마저 금방 잊어버리는 여자. 그러다가 오늘처럼 화창한 날엔 우연히 마주친 한 컷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며, 찬연한 꽃 봄이 서러워 눈물이 글썽하는 여자. 여문 사람은 보드라운 햇살 내린다고 단비가 적신다고 제 속내 보이진 않는다는데, 아무래도 철들지 못할 성싶은 창밖의 여자들임에, 틀림없다.
이런 중에 붙들고 있는 희망이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나 이길을 따라 쭈욱 가서 / 이 길의 첫 무늬가 보일락 말락 한 / 그렇게 아득한 끄트머리쯤의 집을 세내어 살고 싶네.”라고 노래한 시인의 시구(時句)를 외며, 언젠가는 고단한 마음을 내려 앉힐 방 한 칸을 들여놓기 위해 다시 길을 가고 있다는 것. 혼란스런 한 계절을 통과하는 중이라는 것. 그러니 철없음을 그다지 탓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라.
오늘도 창밖 세상을 넘보는 나에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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