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워킹맘
아이가 소풍을 간다고 운을 떼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소장님! 두 시간만 어떻게 안 될까요?"
엄마 동행 없는 유치원 첫 소풍이 얼마나 마음에 걸렸을까?
허락이 안 될 줄 알면 말도 꺼내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대뜸 "좀 늦어도 괜찮으니 얼른 갔다 와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무실 문을 황급히 닫고 나서는 워킹맘,
경리 주임의 뒷모습이 어찌 그리 짠하던지.
2. 설한풍을 견디는 힘
한 가족처럼 지내던 직원들과 갑자기 헤어진다는 건 고향을 등진다는 아픔, 다음으로 큰 아픔이었다.
신규 입사 시에는 첫 월급 받아 점심 한 끼 쏘는, 누구든 이직 시에는 남은 직원이 갹출하여
회식으로 동료애를 나누는, 사무실 불문율이 있었는데
내가 막상 10년, 직을 마감하고 천 리 객지로 떠난다고 첫 운을 뗐더니 금세 직원들의 눈시울이.....
직원들의 근면 성실 화합이 없었으면 이 난파선 같은 대단지 10년을 어떻게 견뎠겠는가?
정말 고맙다고. 절대로 갹출하지 말라고. 내가 쏠 테니,
마지막 회식 후 직원들, 특히 나를 옆에서 도와주었던 경리 서무의 눈자위가 붉어진 걸 먼발치에서 보았....
내가 살아오면서 받은 선물 중 가장 값진 선물,
20여 직원들이 깜짝 이벤트를 하듯 내 어깨에 걸쳐주던 파카,
이 파카를 애지중지 지금껏 객지 설한풍을 견디고 있다.
3. 의형제
오산시 지부에서 발행하는 문예지에 독자 투고 산문 당선작이 실렸는데
당선작 주인공의 사연인즉슨, 정년퇴임, 머나먼 이향, 이향으로 마음 둘 곳 없는 방황과 우울-
글의 행간에 묻어나는 절절한 갈등과 아픔, 몇 해 전 나의 애환이 주마등처럼 판박이로 떠올라 또 눈물.
아내의 눈이 둥그레지며 "무슨 일 있어요?" 묻길래 "아무것도 아녀."
"무슨 사람이 그렇게 여려요?" 그렇게 생각거나 말거나.
난 그다음 주말을 맞아 당선작 주인공의 전번을 시 지부를 통해 수소문하고
어렵게 조우하여 생면부지끼리 점심을 들고 커피숍에 마주 앉았는데
눈시울을 붉히며 얼마나 고마워 머리를 조아리던지,
나는 광주, 그는 전주, 그리하여 주자 돌림 객짓밥 의형제가 되었다는…
첫댓글 마음 따뜻하신 것이 보이는군요.
사랑과 인연이란 따뜻한 곳에서 뿌리 내리는 것이기에.........
지산동 <시인의 집> 동문수학하던 많은 문우님들이 못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