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겸어업 (願兼於業)과 세계광선유포 실현을 위한 사명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10.09 조회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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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원겸어업 (願兼於業)과 세계광선유포 실현을 위한 사명
※ 원겸어업 (願兼於業)
‘원해서 업을 겸하다’라고 읽음.
본래 수행의 공덕에 의해 안락한 경애에 태어날 수 있으나 고뇌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원하여 악세에 태어나 불법을 홍통하는 것.
중국의 묘락 대사(妙樂大師, 711∼782)의 《법화문구기(法華文句記)》에 있는 말씀.
어서말씀 전체 중에 원겸어업 (願兼於業)에 대한 언급은 아래 어서말씀이 유일함.
우리들은 원래 묘각의 산의 팔부능선에 금줄로 경계를 정해놓은 곳의 최정상에서 제불.보살들과 함께 상락아정의 바람에 산들거리며 오락쾌락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오탁악세에 찌들어 고통받고 있는 민중을 구제하기 위해 말법 광선유포 때에 스스로 원하여 지구촌의 평화낙토와 일체중생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인 입정안국의 세계광선유포를 말법만년진미래제에 걸쳐서 실현해가기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지용보살들이자 부처님들입니다.
오직 우리들이 이런 자각과 대확신에 섰을 때 앞으로의 펼쳐질 지구촌의 리셋 등의 모든 것이 달려있기에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되어 남묘호렌게쿄 창제근본으로 본인묘의 즉신성불의 신심을 실천해가야 하는 선각자들이자 사명자들인 것입니다.
"황송하게도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 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어서 1570쪽) 말씀처럼..
"우리들이 거주(居住)하고 일승(一乘)을 수행(修行)하는 곳은 어느 곳일지라도 상적광(常寂光)의 도읍(都邑)으로 될 것이로다. 우리들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로 되는 사람은 한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천축(天竺)의 영산(靈山)을 보고 본유(本有)의 적광토(寂光土)로 주야(晝夜)로 왕복(往復)할 것이니 기쁨은 말할 수 없도다, 말할 수 없도다."(어서 1343쪽) 말씀처럼..
그렇게되면 자연히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바로 이곳이 묘각의 산이 되고, 불국토이자 상적광토가 되고 24시간 내내 환희 중의 대환희의 금강불괴의 불계의 즐겁고 행복하고도 위대한 삶을 영위해갈 수 있는 곳 즉 국토세간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마음만이 중요(重要)하니라.
아무리 니치렌(日蓮)이 기원(祈願)을 한다 해도 불신(不信)한다면, 젖은 부싯깃을 대고 부시를 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더욱 면려(勉勵)하여 강성(强盛)하게 신력(信力)을 다 내도록 하시라."(1192쪽)
《 본문어서 》
원겸어업(願兼於業)이라 하여·짓고 싶지 않은 죄(罪)이지만 부모(父母) 등이 지옥(地獄)에 떨어져 대고(大苦)를 받고 있음을 보고 그 모습대로 업(業)을 만들어 원(願)해서 지옥(地獄)에 떨어져 고통을 받는데, 같은 고통을 받는 것을 기뻐함과 같음이라. 나도 또한 이와 같으니, 당시(當時)의 책고(責苦)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미래(未來)에 떨어져야 할 악도(惡道)를 벗어나리라 생각하니 기쁘니라.
단(但) 세간(世間)의 의심(疑心)도 그렇거니와 자심(自心)도 의심(疑心)하는 것은 어찌하여 천(天)이 도우시지 않느뇨. 제천(諸天) 등(等)의 수호신(守護神)은 불전(佛前)의 어서언(御誓言)이 있어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에게는·원숭이일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라고 말한다면 조속(早速)히 불전(佛前)의 서언(誓言)을 다해야 하리라 생각하거늘 그렇지 않음은 이 몸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아닌 것일까, 이 의문(疑問)은 이 서(書)의 간심(肝心)이요, 일기(一期)의 대사(大事)이므로 곳곳에 이것을 쓰고 그 위에 의문(疑問)을 강하게 해서 답(答)을 마련하리라.
계찰(季札)이라 하는 자(者)는 마음의 약속(約束)을 어기지 않으려고, 왕(王)의 중보(重寶)인 검(劒)을 서군(徐君)의 묘(墓)에 걸었고, 왕수(王壽)라 하는 이는 냇물을 마시고 금(金)으로 만든 돈을 물에 던졌으며·공윤(公胤)이라 하는 이는 배를 가르고 주군(主君)의 간(肝)을 넣었으니, 이들은 현인(賢人)이며 은혜(恩惠)를 갚은 것이니라. 하물며 사리불(舍利弗)·가섭(迦葉) 등(等)의 대성(大聖)은 이백오십계(二百五十戒)·삼천(三千)의 위의(威儀) 하나도 빠짐없고, 견사(見思)를 끊고 삼계(三界)를 떠나 버린 성인(聖人)이로다. 범제(梵帝)·제천(諸天)의 도사(導師)이고·일체중생(一切衆生)의 안목(眼目)이니라. 그런데 사십여년(四十餘年) 동안·영불성불(永不成佛)이라고 퇴박하여 버려져 있었는데, 법화경(法華經)이라는 불사(不死)의 양약(良藥)을 먹고 볶은 씨앗이 싹트고 깨진 돌이 합치며·고목(枯木)에 꽃피고 열매가 맺듯이 부처가 된다고 허락받아 아직 팔상(八相)을 나타내지 않았으니 어찌 이 경(經)의 중은(重恩)을 갚지 않을소냐. 만약 보답하지 않는다면 그들 현인(賢人)보다도 못하여 부지은(不知恩)의 축생(畜生)이니라.
개목초( 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0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