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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10-22절. 사울과 아나니아의 만남
설교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오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다가 바로 그 예수쟁이들이 믿는 예수를 그가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참 기막힌 반전입니다.
그리고 굉장히 충격적인 회심 사건입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로부터 강렬한 빛을 받습니다.
그 빛 속에서 사울은 두 가지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입니다.
주여 누구십니까?
그때 두 번째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사울은 빛과 그 음성 앞에 꼬꾸라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일어났을 때는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 이끌려서 다메섹으로 갔는데, 다른 모습으로 가서 유다라고 하는 작은 집에 거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한 사람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를 만난 사울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치유하고, 양육할 한 사람을 준비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아나니아입니다.
10절.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there was a disciple at Damascus named Ananias; and the Lord said to him in a vision, "Ananias." And he said, "Here I am, Lord."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Ἦν δέ τις μαθητὴς ἐν Δαμασκῷ ὀνόματι Ἀνανίας,
there was now certain disciple in Damascus named Ananias
‘있더니’(Ἦν)는 미완료 과거로서(there was) 과거부터 계속 있었다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아나니아는 사탄의 도구였으나(행 5:1), 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하여, 병을 치료하고, 성령 충만하게 하고, 세례를 준 위대한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아나니아’란 말은 당시에 흔한 이름이었는데(행 5:1, 23:2), ‘하나니야’란 말의 단축형이고, 의미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는 뜻입니다.
본 절에서 아나니아를 ‘제자’라고 소개하고 있고, 사도행전 22장 12절에서 그를 ‘경건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어서, 아나니아는 헬라어를 사용하던 유대인 중에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예수님을 믿고, 유대인들이 많이 살던 다메섹에서 거주하던 성도였을 것입니다.
그는 나중에 다메섹의 주교가 되었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Baker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καὶ εἶπεν πρὸς αὐτὸν ἐν ὁράματι ὁ Κύριος
and said to him in vision the Lord,
직역하면 ‘주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말씀하셨다’는 뜻이니다.
‘환상’은 의식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in a condition that the person’s consciousness is opened)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시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확실히 말씀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Ἀνανία.
Ananias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ὁ δὲ εἶπεν, Ἰδοὺ, ἐγώ, Κύριε.
the and said, Behold, I (am), Lord
직역하면 “‘ 주여, 보소서, 내가 있나이다’라고 그가 말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도 했던 말입니다(삼상 3:4).
‘말했다’( 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말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아나니아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사울은 사도행전 22장 12절에서 자기가 어떻게 예수를 만나게 되었는지 간증하면서 아니니아를 언급하는 것을 볼 있습니다.
'그는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경건하고 정말 율법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에 대해서 한마디를 더합니다.
'이 사람은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아나니아는 유대인 공동체에 살고 있었던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유대인들 중에서도 칭찬과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아나니아를 중요하게 들어 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쓰시고 싶어 할 때, 쓰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또 한 가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환상과 비젼을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기도하고 있지 않은데 어떻게 환상이 보이겠습니까?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너무 바쁘고 너무 분주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 일 뿐만 아니라 교회 일에서도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부족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도 내 말만 아뢰고, 성령님의 감동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4. 참된 기도는 ‘주여 말씀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자세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나이다.
우리 당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나이다.
우리 제직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나이다.
우리 위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성령님의 감동을 기다려야 합니다.
정말 믿음은 내가 어떻게 행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5. 또 한 가지 아나니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는 태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생각에는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죽이는 살인마와 같았으나,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라고 하시니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의 내용에 따라서 순종하기도 하고 불순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자기 생각과 감정에 맞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고 성령 받게 하고 세례받게 했습니다.
여러분도 아나니아처럼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11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 Lord said to him, "Get up and go to the street called Straight, and inquire at the house of Judas for a man from Tarsus named Saul, for he is praying,
주께서 이르시되,
ὁ δὲ Κύριος πρὸς αὐτόν
the now Lord to him
‘이르시되’란 동사가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Ἀναστὰς, πορεύθητι ἐπὶ τὴν ῥύμην τὴν καλουμένην Εὐθεῖαν,
Having risen up, go into the street the being called Straight
‘일어나’( Ἀναστ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벌떡 일어나서’란 뜻입니다.
‘하는’(불리는. καλουμένην)은 현재분사 수동태입니다(being called).
‘가라’(πορεύθητι)는 부정과거 명령형 수동태로서(go) 어서 가라고 단호하게 촉구하신 말씀입니다.
‘직가’(直街, Straight street)란 다메섹 도성의 시가지들이 모두 울퉁불퉁한데, 중앙에서 동서로 관통한 이 도로만이 직선으로 되어 있어서 붙여진 거리의 이름이고,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의 집은 이 직가의 동쪽 문인 동문(East Gate)의 북쪽 부근에 있었고, 지금도 그곳에 있고, 사울이 머물렀던 유다의 집도 그대로 있습니다. (Picturesque Palestine 2권, 175. NIV-SB. 1661).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καὶ ζήτησον ἐν οἰκίᾳ Ἰούδα Σαῦλον ὀνόματι Ταρσέα·
and seek in house of Judas Saul named, of Tarsus
‘찾으라’(ζήτησ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seek) 꼭 찾으라고 단호하게 명령한 말씀입니다.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ἰδοὺ, γὰρ προσεύχεται,
behold, for he is praying
직역하면,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뚜렷하게 분명히 보라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씀이고, ‘기도하는 중이니라’(προσεύχ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he is praying) 지금 계속 기도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때 사울이 기거하는 거리와 집과 기도하는 모습과 마음 상태 등을 모두 자세히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주님의 존전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시 139: 1-18)
1. 환상 중에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하신 명령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사울이 <직가>라는 거리의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 있는데, 기도 중이고 아나니아가 와서 자기에게 안수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인도하십니다.
2. 아나니아는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도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는 당황했습니다.
이것은 순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내용이 자기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12절.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has seen in a vision a man named Ananias come in and lay his hands on him, so that he might regain his sight."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보았느니라 하시거늘
καὶ εἶδεν ἄνδρα Ἀνανίαν ὀνόματι,
and he saw man Anania named,
‘보았느니라’(εἶδ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w) 확실히 본 것을 가리킵니다.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εἰσελθόντα καὶ ἐπιθέντα αὐτῷ χεῖρας,
having come and having put on him hands,
직역하면 ‘들어와서 그에게 손들을 얹으면서’란 뜻입니다.
‘들어와서’(εἰσελθόντα)와 ‘얹으면서’(ἐπιθέντα)는 둘 다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having put on) 확실하게 들어와서 분명히 손을 얹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보게 하는 것을
ὅπως ἀναβλέψῃ.
so that he might see again
직역하면 ‘그가 다시 보도록’이란 뜻입니다.
‘다시 보게 하는’(ἀναβλέψῃ)은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he might see again) 확실히 다시 보도록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는 환상을 아나니아만 본 것이 아니라, 사울도 보았습니다.
이처럼 성경적인 환상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상대적이고 쌍방적인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가 어떤 남자와 결혼하라는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는데, 막상 그 남자는 그런 환상을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일방적인 환상은 자기감정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참된 환상은 아닐 수 있습니다.
13절.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nanias answered, "Lord, I have heard from many about this man, how much harm he did to Your saints at Jerusalem;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ἀπεκρίθη δὲ Ἀνανίας,
answered now Anania,
‘대답하되’(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answered) 확실하게 대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Κύριε, ἤκουσα ἀπὸ πολλῶν περὶ τοῦ ἀνδρὸς τούτου,
Lord, I heard from many about the man this
‘듣사온즉’(ἤκουσα)은 부정과거로서(I heard) 분명하게 들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ὅσα κακὰ τοῖς ἁγίοις σου ἐποίησεν ἐν Ἱερουσαλήμ·
how many evils to the saints of You he did in Jerusalem
직역하면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많은 악을 행했다는 것을’이란 뜻입니다.
‘행했다’(ἐποίησεν)은 부정과거로서(he did) 확실하게 많은 악을 행한 것을 가리킵니다.
14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re he has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s to bind all who call on Your name."
여기서도---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καὶ ὧδε ἔχει ἐξουσίαν παρὰ τῶν ἀρχιερέων δῆσαι
and here he has authority from the chief priest to bind
직역하면 ‘그리고 여기에서도 대제사장으로부터 결박할 권한을 그가 가지고 있나이다’는 뜻입니다.
‘받았나이다’(ἔχει)는 현재형으로서(he has) 현재 가지고 있다는 뜻이므로, ‘가지고 있나이다’로 번역해야 옳습니다.
‘결박할’(δῆσ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ind) 무섭게 든든히 결박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때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가기를 심히 무서워하는 것은 토끼가 사자굴에 들어가기를 무서워하는 것과 같고, 마치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가기를 무서워했던 것과 같습니다(출 3:11).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πάντας τοὺς ἐπικαλουμένους τὸ ὄνομά σου.
all those calling on the name of You
‘부르는’(ἐπικαλουμένους)은 현재분사로서(calling) 현재 부르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1.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당황했습니다.
‘아니 다소사람 사울이라는 말입니까?’
그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려고 대제사장의 문서와 군사를 데리고 온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바로 그 사울이라는 사람말입니까?’
이런 아나니아의 반응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 것과 우리가 한정적으로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생각할 때, 죄가 많은 사람이라서 어떻게 천국 갈 수 있을까, 어떻게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살 수 있을까,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보시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시며, 잠잠히 사랑하고 계십니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가랴 2:8.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요한1서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마태복음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마태복음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 이런 핍박자 사울이 예수를 믿었다면 이 세상에 예수 못 믿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3. 가끔 성경에 보면 놀랄 일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보자기가 내려옵니다.
구약에서 말한 불결하고 부정한 동물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 먹어라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못 먹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 불 순종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못 먹습니다.”
“내가 거룩하다고 한 것을 네가 왜 못 먹느냐?”
하나님이 야단을 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그런 명령을 내리십니다.
4. <바울>은 아시아로 전도하러 갑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아시아로 전도하러 가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고 마게도니아로 가서 유럽으로 전도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방법을 어떤 때는 뒤집어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15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e Lord said to him, "Go, for he is a chosen instrument of Mine, to bear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kings and the sons of Israel;
주께서 이르시되,
εἶπεν δὲ πρὸς αὐτὸν ὁ Κύριος
said but to him the Lord
직역하면 ‘그러나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르시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가라.
Πορεύου,
go
‘가라’(Πορεύου)는 현재 명령형(go)으로서, 부정과거보다는 부드럽게 명령한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택한 나의 그릇이라
ὅτι σκεῦος ἐκλογῆς ἐστίν μοι οὗτος
for vessel of choice is of to Me this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에게 택한 그릇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στίν)는 현재형입니다(is).
‘선택의 그릇(σκεῦος ἐκλογῆς)을 택한 그릇(chosen vessel)로 번역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Bruce by L.Key. 281
죄인 괴수였던 사울을 위대한 하나님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나타나 있습니다.
이후로 사울은 살기등등했던 사람이 지극히 겸손하고 은혜에 감격한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자기의 의만 내세웠던 바리새인 랍비가 겸손히 기도하고, 주님의 긍휼과 은혜만을 의지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τοῦ βαστάσαι τὸ ὄνομά μου ἐνώπιον ἐθνῶν, τε καὶ βασιλέων, υἱῶν τε Ἰσραήλ·
to carry the name of Me before gentiles, both and kings, sons then of Israel
‘전하기 위하여’(βαστάσαι)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carry) 용감하게 전할 택한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한 것은 사도행전 13-28장에 나타나 있고, 임금들 앞에 전도한 것은 구브로 총독 앞에서(행 13:7), 아가야 총독 앞에서(행 16:12),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행 24:10, 25:6), 아그립바 왕 앞에서(행 26:1)와 마침내 로마 황제 앞에서(행 25:11-12, 28:19) 전도했습니다.
16절.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 will show him how much he must suffer for My name's sake."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ἐγὼ γὰρ ὑποδείξω αὐτῷ, ὅσα δεῖ αὐτὸν, ὑπὲρ τοῦ ὀνόματός μου παθεῖν
I for I will show to him, how much it hooves him, for the name of Me to suffer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이 고난 받아야 하는 지를, 바로 내가 그에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고난받아야’(δεῖ---παθεῖν)에서 앞의 단어는 현재형으로서(it hooves)‘마땅히---해야 한다’는 뜻이고, 뒤의 단어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suffer) 무섭게 고난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보이리라’(ὑποδείξω)는 미래형입니다(I will show).
이 후에 사울(바울)이 당한 모진 고난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1. 주님의 말씀에 이해를 못하고 있는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두 번째는 ‘내 이름을 위하여 많은 고난을 겪을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사명을 주셔서 일하고 계십니다.
17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Ananias departed and entered the house, and after laying his hands on him said, "Brother Saul, the Lord Jesus, who appeared to you on the road by which you were coming, has sent me so that you may regain your sight and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Ἀπῆλθεν δὲ Ἀνανίας καὶ εἰσῆλθεν εἰς τὴν οἰκίαν,
went away then Ananias and entered the house
직역하면 ‘그리하여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떠나’(Ἀπῆλθεν)와 ‘들어가서’(εἰσῆλθεν)는 둘 다 부정과거로서(went away, entered) 단호하게 떠나서, 그 집에 쑥 들어간 것을 가리킵니다.
그에게 안수하여
καὶ ἐπιθεὶς ἐπ’ αὐτὸν τὰς χεῖρας,
and having laid on him the hands,
직역하면 ‘그리고 그에게 손들을 얹으면서’란 뜻입니다.
‘얹으면서’(ἐπι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laid) 단호하게 손을 얹은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되 형제 사울아
εἶπεν, Σαοὺλ ἀδελφέ,
he said, Saul brother
‘이르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he said) 분명하게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나를 보내어
ὁ Κύριος ἀπέσταλκέν με,
the Lord has sent me
‘보내어’(ἀπέσταλκέν)는 완료형으로서(has sent) 이미 보내신 것을 가리키고, 권한을 위임받는 대표자로서 보낸 것을 뜻합니다(to send as an authoritative representative).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Ἰησοῦς ὁ ὀφθείς σοι ἐν τῇ ὁδῷ ᾗ ἤρχου,
Jesus the (One) having been appeared to you in the road by which you were coming
직역하면 ‘네가 오던 길에서 너에게 나타나셨던 그 예수께서’란 의미입니다.
‘오는’(ἤρχου)은 미완료 과거로서(you were coming) 과거에 계속 오고 있던 것을 가리킵니다.
‘나타나셨던’(ὀφθεί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appeared) 과거에 확실히 확 나타나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에게 나타나신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고, 부활하신 주님이 실제로 사울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에 근거하여 바울은 자신의 사도성을 증언했습니다. (고전 9:1, 15:8)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ὅπως ἀναβλέψῃς καὶ πλησθῇ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that you may see again and you may be filled Spirit Holy
직역하면 ‘네가 다시 보도록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려고’란 뜻입니다.
‘다시 보게’(ἀναβλέψῃς)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may see again) 분명하게 보도록 하기 위해서란 뜻이고, ‘충만하게’(πλησθῇς)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you may be filled) 끝까지 완전히 충만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경우 사울은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1. 아나니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체하지 않고 사울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입니다.
“형제 사울아!”
형제’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원수 사울이 아닙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도 변할 수 있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2. “형제 사울아, 네가 오는 길에 나타나신 그 예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나를 보내어 너를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하자,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안수와 성령의 임재 사건이 여러분에게도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기적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성령의 충만이 먼저 임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할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성령을 받게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0장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할 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에 있는 12명의 제자들도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장로교 합동측 옥한음 목사님도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18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mmediately there fell from his eyes something like scales, and he regained his sight, and he got up and was baptized;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καὶ εὐθέως ἀπέπεσαν αὐτοῦ ἀπὸ τῶν ὀφθαλμῶν ὡς λεπίδες,
and immediately fell off of him from the eyes like scales
‘벗어져’(ἀπέπεσαν)는 부정과거로서(fell off) 뚝 떨어져 나간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ποπίπτω)은 ‘떨어져 나가다’(fall away from, fall off)는 뜻입니다.
다시 보게 된지라.
ἀνέβλεψέν τε,
he regained his sight also
직역하면 ‘다시 그가 시력을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보게 된지라’(ἀνέβλεψέν)는 부정과거로서(he regained his sight) 갑자기 완전하게 시력을 회복한 것을 가리킵니다.
일어나 세례를 받고
καὶ ἀναστὰς, ἐβαπτίσθη,
and having risen up, he was baptized
‘일어나’(ἀναστ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단호하게 일어난 모습을 가리킵니다.
‘세례를 받고’(ἐβαπτί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he was baptized) 확실하게 세례 은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때 사울은 자신의 무지막지한 죄를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을 믿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1. 사울은 먼저 성령 세례를 받고, 그 후에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령 세례와 물세례가 같이 올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물세례가 먼저오고, 성령 세례가 뒤에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경우는 성령의 세례가 먼저 왔습니다.
2. <고넬료>의 경우에도 성령 세례가 먼저입니다.
‘고넬료가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물세례 줌을 금하리요’라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3. 물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번 성령 세례를 받았어도 늘 기도하고 말씀 순종하여 늘 성령 충만하도록 해야 합니다.
4. 성령의 세례가 바울에게 먼저 임했고 그 후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5. 그리고 일어나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서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건강해졌다는 말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19절.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took food and was strengthened. Now for several days he was with the disciples who were at Damascus,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καὶ λαβὼν τροφὴν, ἐνίσχυσεν.
and having taken food, he was strengthened
‘먹으매’(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단호하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강건하여지니라’(ἐνίσχ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was strengthened) 확실하게 완전히 강건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Ἐγένετο δὲ μετὰ τῶν ἐν Δαμασκῷ μαθητῶν ἡμέρας τινὰς,
he was now with the in Damascus disciples days some
직역하면, ‘그가 이제 다메섹에 며칠 있었다’는 뜻입니다.
‘있었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he was) 과거에 있었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20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immediately he began to proclaim Jesus in the synagogues, saying, "He is the Son of God."
즉시로 각 회당에서--- 전파하니
καὶ εὐθέως ἐν ταῖς συναγωγαῖς ἐκήρυσσεν τὸν Ἰησοῦν,
and immediately in the synagogues he began proclaiming the Jesus
직역하면 ‘그가 즉시로 회당들에서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전파하니’(ἐκήρυσσεν)는 미완료과거로서(he began proclaiming ) 전파하기 시작하여 계속 전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울이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규칙적인 습관이었습니다. (행 13:5, 14:1, 17:1-2, 18:4, 19, 19:8)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한 후로 곧 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내면서 예수 복음을 더욱 체계화했습니다( 갈 1:17).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that He he is the Son of he God
직역하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이란 뜻입니다.
‘그가’(οὗτός, H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되심(Christ’s deity and Messiahship)을 전했습니다.
21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ll those hearing him continued to be amazed, and were saying, "Is this not he who in Jerusalem destroyed those who called on this name, and who had come here for the purpose of bringing them bound before the chief priests?"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ἐξίσταντο δὲ πάντες οἱ ἀκούοντες καὶ ἔλεγον
were amazed then all those hearing and were saying
‘듣는’(ἀκούοντες)은 현재분사로서(hearing) 현재 듣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놀라’(ἐξίσταν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were amazed) 계속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하되’(ἔλεγον)도 미완료 과거로서(were saying)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Οὐχ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πορθήσας εἰς Ἱερουσαλὴμ τοὺς ἐπικαλουμένους τὸ ὄνομα τοῦτο,
not this is the (one) having destroyed in Jerusalem those calling the name this
‘부르는’(ἐπικαλουμένους)은 현재분사로서(calling) 부르고 있는 것을 가리키고, ‘멸하던’(πορθήσας)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estroyed) 과거에 처참하게 멸하던 모습을 가리킵니다.
여기 온 것도
καὶ ὧδε εἰς τοῦτο ἐληλύθει,
and here for this he had come
직역하면 ‘그리고 이것 때문에 그가 여기에 왔다’는 뜻입니다.
‘왔다’(ἐληλύθει)는 대과거(pluperfect)로서 바울이 전도하기 이전에 다메섹에 온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ἵνα δεδεμένους, αὐτοὺς ἀγάγῃ ἐπὶ τοὺς ἀρχιερεῖς;
that having bound, them he might bring to the chief priest
직역하면, ‘결박하여, 그가 그들을 대제사장에게 데려가려고’(여기에 왔다)는 뜻입니다.
‘결박하여’(δεδεμένους)는 완료 분사이고(having bound), ‘끌어가고자’(ἀγάγ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he might bring) 단호하게 끌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사울의 첫번째 변화는 그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하든, 밥을 먹든,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언제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합니다.
22절.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Saul kept increasing in strength and confounding the Jews who lived at Damascus by proving that this Jesus is the Christ.
사울은 힘을 더 얻어
Σαῦλος δὲ μᾶλλον ἐνεδυναμοῦτο
Saul but all the more was empowered
직역하면 ‘그러나 사울은 더 점점 더 힘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힘을 얻었다’(ἐνεδυναμοῦ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empowered) 계속 더 힘을 얻은 것(continual increase of strength)을 가리킵니다.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καὶ συνέχυννεν Ἰουδαίους τοὺς κατοικοῦντας ἐν Δαμασκῷ,
and kept confused Jews the dwelling in Damascus
‘사는’(κατοικοῦντας)는 현재분사로서(dwelling) 살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당혹하게 하니라’(συνέχυννεν)는 미완료 과거로서(kept confused) 계속 당혹하게 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συγχέω)은 ‘혼란스럽게 하다, 당혹스럽게 만들다’(confuse, bewilder, throw into confusion)는 뜻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συμβιβάζων ὅτι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Χριστός.
proving that this is the Christ
직역하면 ‘이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란 뜻입니다.
‘증언하여’(συμβιβάζων)는 현재분사로서(proving) 계속 증언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증언하다’는 말은 구약의 예언적인 성경들을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비교하면서 증언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used here of putting the prophetic Scriptures alongside their fulfillment). Bruce by Linguistic Key
뒤의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1. 사울은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더욱 힘을 얻었습니다.
즉 처음 예수 믿었을 때 성령 세례를 받았는데, 그 후에 전도할 때 더욱 성령의 힘을 얻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혼자서 은혜받을 때도 힘을 얻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교사로 구역장으로 찬양대원으로 봉사할 때 더욱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온 사울이 180도 변하여 자기가 예수 믿는 사람에게 안수를 받고,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자기가 예수님을 전파하니, 다메섹이 사는 불신 유대인들이 당황했습니다.
‘아니 저 사울이 예수쟁이들을 잡아 죽이려고 왔는데, 거꾸로 사울 자기가 예수쟁이가 되다니, 이런 배신자가 있느냐?’
그래서 유대인들은 민족의 배신자인 사울을 죽이려고 공모했습니다.
실로 사울(바울)은 세계만방에 예수님을 전하면서,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스데반 같은 사람이 전도할 것을 자기가 막았으니, 자기는 빚진 자가 되어 세계만방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일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울처럼 변화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욱 성령 충만하시고, 기쁨이 넘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