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복수는 용서?
어제(2019. 6.22.토) 친구 딸 결혼이 있어 서울에 다녀왔다. 예식장이 잠실의 루터회관 3층이라 촌놈이 처음으로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바로 코밑에서 올려다봤다. 높긴 높더라!
결혼식 마친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
나: 며칠 전 마누라가 갑작스럽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당신을 용서하겠어요. 당신이 그 동안 나에게 잘못했던 것, 섭섭하게 했던 것... 모든 것을요.”
친구 A: 할렐루야 ∼ 너, 죄 용서 받았구나. 축하한다.
나: 나는 감동을 깊이 받는 한편, ‘왜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가’ 궁금하기도 해서 물었지.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요? 교회에서 권사가 되더니 은혜 받았나? 왜 갑자기 나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소?” 마누라가 뭐라고 대답했게? 이것이 오늘의 퀴즈!
B: 기도 응답을 받은 건가?
나: 땡!
C: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으니 나도 그대를 용서합니다.
나: 땡!
D: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 땡!
E: 이제 늙어서 화낼 힘도 없어진 건가?
C: 나는 용서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을 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ㅋㅋㅋ
나: 땡땡땡! 아무도 정답을 못 맞췄으니 내가 답을 알려주지. 마누라 왈 ‘최고의 복수는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친구 모두: 크하하하하하하
나: 내가 이 말을 듣고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E: 술 한 잔 해야지.
C: 시편 어디선가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얹는다는 표현을 본 것 같은데... ㅎㅎ
나: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버스 타고 상경 중에 우연히 본 분당 근처의 어느 교회 건물에 바로 그 글귀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야. 고속도로 변이라 버스 속에서 아주 잘 보이더라고.

D: 상대방은 나와 싸우려고 하는데 내가 용서를 해버리면 상대방은 더 이상 나와 싸울 수 없게 되니 복수가 되는 건가?
나: 글쎄...... 보자마자 버스 속에서 웃음보가 터지는 거야. 안 그래도 지루하고 심심하던 차에 웬 코메디인가 하면서 너무 감사했지.
A: 뭐가 그렇게 우스워?
나: 너희들도 내 말 듣고 다 웃었잖아. 최고의 복수는 용서다! 복수는 원수에게 되갚아주는 거지. 그러니까 그 말은 ‘원수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그 중 단연 최고가 용서’라는 거잖아. 용서를 복수의 한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 그게 과연 예수의 뜻일까?
B: 복수하고 싶은 사람들아,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하고 그냥 용서하며 사랑하며 살아라, 이런 뜻 아닐까?
나: 물론 신도들에게 용서를 권면하는 뜻에서 그런 말을 했겠지. 그런데 그 이유가 이상하잖아. ‘최고의 복수는 용서입니다!’ 그건 ‘용서’를 너무 욕되게 하는 거야.
E: 듣고 보니 그렇군. 복수하는 마음으로 용서한다면 그건 전형적인 double binding이네.
나: 맞아. 그래서 아내와의 대화를 상상해 본 거야. 아내가 나를 용서했는데 그 목적이 ‘최고의 복수’라면 과연 내가 기쁠 수 있을까? 오히려 섬뜩하겠지. ‘차라리 나를 계속 미워해주시오.’라고 부탁하겠지. 그러니까 용서를 말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최고의 사랑은 용서입니다!
<참고>
double binding: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동시에 두 가지의 모순된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듣는 사람은 당황하여 어느 측면의 메시지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어떠한 반응을 하여도 적합한 반응이 될 수 없는 의사소통의 형태. 연구에 의하면, 이런 말을 자주 들으면 조현병(정신분열증)에 걸릴 위험이 높다. ‘이중 속박’ 또는 ‘이중 구속’으로 번역된다.
(2019. 6.23.)
(경남대 김원중)
첫댓글 교수님 안녕하세요. 교육학과 12학번 김시영입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곧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왔다가 이 글을 읽고 또 많은 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정말 사랑과 그에 반하는 -의 감정들이(예를 들면 복수를 해야겠다는 마음과 같은 것들) 종잇장 한 장 차이라는 걸 느낍니다. 오히려 복수와 같은 -의 감정의 전제에는 늘 사랑과 같은 +의 감정이 기반한다는 것이 참 의아하기도 하고, 여러생각이 드는 밤입니다.
종종 카페에 접속하여 교수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머지않아 뵙고 건강한 모습으로 뵐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반갑네. 시간 될 때 얼굴 한 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