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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계획을 세울 때는 '용소리 법룡사 입구 → 법룡사 → 석이덤 → 부약산 → 830봉 → 보현산 시루봉 → 팔각정 → 절골삼거리 → 정각사 → 3층 석탑 → 정각리 노인정'의 11km, 5시간 코스를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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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普賢山]
높이: 1,126m
위치: 경북 영천시 화북면
대구 북동쪽 약 50km 되는 지점, 경북 영천시와 청송군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는 보현산은 둔중한 흙산으로 이뤄져 별 특징은 없으나 억새 군락을 이룬 주 능선은 고산다운 산세를 지니고 있다.
이산은 남쪽 정각동에서 바라보면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세라 하여 일명 모자산이라고도 하는데 상봉으로 불리는 최고봉은 현재 삼각점이 있는 1124.4m 봉이 아니라 그 북동쪽의 봉우리를 이루고, 상봉에서 동쪽 능선 3km 지점에 있는 826.5m 봉을 작은 보현산이라고 한다. - 한국의 산하
면봉산[眠峰山]
높이: 1,121m
위치: 경북 포항시 죽장면
포항시와 청송군 경계에 있는 면봉산은 포항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마주하고 있는 보현산과 두마리와 봉계리 사이에 있는 베틀봉이 면봉산을 가운데 두고 완만한 능선으로 연결된 산이다.
경북 청송군 현동면(縣東面) ·현서면(縣西面)과 포항시 죽장면(竹長面) 경계에 있는 산으로 남동쪽의 보현산(普賢山), 북동쪽의 베틀봉으로 주 능선이 이어진다. 낙동강 수계의 반변천(半邊川) 상류의 길안천(吉安川)이 북사면과 서사면에서, 금호강 지류 자호천(紫湖川)이 동사면에서 발원한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이웃한 보현산에 가리어져 있고 교통이 불편한 관계로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고 지역 산꾼들만 은밀히 즐기는 산이며 포항시 죽장면 오지마을인 두마리가 산행 들머리이며, 아직은 오염이 안 된 청정지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죽장면 방흥리에서 두마리까지 이어지는 청정계곡은 곳곳에 숨은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포항시 경계에서는 최고봉으로 정상에 올라서면 건너편 보현산 천문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을 제공한다. 특히, 정상 일대는 초지를 형성하고 있어 다소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며 보통은 고산마을인 두마리를 기점으로 베틀봉~면봉산 (또는 민봉산)을 연결 짓는 산행을 시도하게 된다. - 한국의 산하
2021년 12월 첫 주 산행은 안내산악회를 따라 천고지 산 중 하나인 경북 영천의 보현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처음 산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대중교통으로 당일 산행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연구해봤으나,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따라 산행 계획 '말머리'에 '산악회'라고 명기하고 뒤로 미뤄뒀었다. 그리고 천고지 산행이 끝을 향해 가자, 뒤로 미뤄뒀던 산이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보현산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대간 빼고 정맥이나, 지맥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우연한 기회에 해발 1,000m가 넘는 산 대부분이 어딘가에는 속해 있다는 걸 알고, 뚜렷이 계획을 세우지 못한 산이 어디에 소속해 있는지 파악했었다. 안내산악회에서 산행계획을 공지할 때 산 이름이 아니라, 정맥이나, 지맥 명으로 할 때를 대비해서다. 보현산은 어느 지맥에 속한 정도가 아니라, 보현지맥이라고 그 이름이 지맥 명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후 안내산악회가 주로 찾는 인증 대상에 속하지 않은 천고지 산들이 속한 지맥 산행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고, 지맥 산행 공지가 뜨면 재빨리 들어가 그 구간 중에 해당산이 있는가 확인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다녀온 천고지 산으로는 황병지맥의 상원산과 옥갑산[산행기], 각화지맥의 각화산과 왕두산[산행기], 등곡지맥 산행을 이용해 문수봉과 하설산[산행기], 수도지맥의 두무산과 오도산[산행기] 등이 있다(물론 앞으로 더 많아질 예정이다). 그리고 매주 맥 산행 팀이 출발하는 산악회에서 보현지맥 산행도 시작했으나, 목표한 산이 있는 구간은 아직 몇 주 더 기다려야 했고, 가성비 때문에 무박 산행을 많이 하는 팀이라 망설이던 중 가끔 오지 산행을 진행하는 산악회에서 11월 마지막 일요 산행으로 보현산에 오른다는 공지를 보고 바로 신청했었다. 44인승 버스로 진행했는데, 출발 이틀 전 취소자가 속출해 성원 미달로 산행이 취소돼 급하게 정선(동강) 백운산으로 변경했었다[산행기]. 다행인 건 같은 산악회에서 28인승 버스로 한 주 뒤 토요일 같은을 같이 공지했는데, 일요 보현산행이 공식 취소되기 전 토요 보현산행 자리가 없어지기 직전, 산악회 주인장에게 문자를 보내 토요 산행에 급하게 자리를 부탁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오르게 됐다.
어쨌든 산악회가 공지한 산행 코스를 보면 정상에 천문대가 있다. 말인즉 정상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난 합천 오도산 정상에서 인증을 찍고 있을 때 KT 중계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끌고 올라온 자가용을 보며,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었으나, 한편 이래서 까만 소가 탁월한 조망을 지닌 산임에도 인증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현산도 마찬가지 아닐까? 언급은 없으나, 조망이 탁월하지 않을까? 그리고 천문대가 있다면 오지 중의 오지라는 건데. 애초 보현산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주변 산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는데, 산악회가 계획한 코스에는 면봉산이라는 생소한 산이 들어 있었다. 해서 찾아보니, 나름 산림청에서 인정하는 산 중 하나로, 생각지도 못한 산이 코스에 포함되어 이번 산행에 거는 기대가 배가 되었다(정상에 기상관측소가 있다는 건 과히 반가운 건 아니다). 그런데 一行二峰의 즐거운 기대를 가지고 산행 준비를 하는 과정에 확인한 기상예보에 의하면 당일 그 부근 산악지대는 구름이 많이 끼는 날씨라 조망이 어떨지 미지수에, 체감 온도가 영하 6도를 오르내리니, 그에 대비해야 한다. 와중에 아이젠을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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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역 출발이라 양재역 출발보다 20분 늦게 기상해, 컵라면과 오미자차에 사용할 뜨거운 물을 끓여 1ℓ 보온병에 넣는 거로 등산 준비를 마쳤다. 이후 아침을 먹고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6시 10분경 집을 나서, 불광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신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58분으로 산악회 버스 출발인 7시 10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역 구내에서 추위를 피할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비록 좀 춥더라도 신선한 공기가 좋아 바로 4번 출구로 나갔다. 산악회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 직전 삼거리에는 부지런한 등산객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양재역 12번 출구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을 지나 평소 내 전용석이나 다름없었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자리에 앉으려고 보니, 이미 다른 승객이 다 차지하고 있어 별수 없이 서서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등산객 사이에 앉아서 기다리기에는 버스 정류장만 한 장소가 없다는 소문 난 거 같은데…
추위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7시 6분에 관광버스 두 대가 교차로를 지나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두 대에 불과하다는 건 버스를 찾아 헤매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는 것에 고마운 일이나, 두 대 밖에 출발하지 못한다는 건 안내산악회 처지에서는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문제라 마냥 좋아할 것도 아니다. 어쨌든 두 대에 불과하나, 어느 게 내가 타야 하는 버스인지 확인해야 하는 수고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니라, 버스가 도착하기 전부터 카메라의 줌을 이용해 앞선 버스의 목적지를 살폈다. 물론 산악회 게시판에 차 번호 등을 공지하나, 밤새 바뀌는 경우가 많아 신뢰하지 않고, 앞창에 LED나 종이에 쓴 목적지로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 첫차 앞창에 '보현산'이라 쓴 게 보였다. 해서 보조 파우치와 패드, 카메라를 들고 첫 번째 차로 다가가 배낭은 버스 짐칸에 넣고 산악회 주인장과 인사 후 차에 탔다.
버스를 타, 배정된 좌석으로 가 보조 파우치를 앞주머니에 넣으며 의외의 시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앞 좌석에 달린 발 받침은 버스나 기차에 흔한데,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별도로 제작한 받침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고 편하다. 와중에 인솔 대장이 발 받침에 절대 신을 신고 발을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는 기사의 말을 전한다. 사실 보조 파우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버스 내에서 신고 있을 슬리퍼 보관인데, 그 역할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다. 좌석 사이가 조금만 더 넓었으면, 금상첨화였을 거라는, 더 편한 걸 찾는 생명체의 욕심도 생기고. 예정대로 7시 10분경 신사역을 출발한 버스는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운 후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렸고, 젊어 보이는 기사의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운전과 편하기 그지없는 좌석 시스템은 나도 모르게 잠이 들게 했다.
버스의 실내등이 켜져 눈을 떠보니, 차는 휴게소로 진입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15분으로 20분 정도를 주는 다른 산행보다 짧다. 오지는 오지인가보다! 그런데 '화서'휴게소? 처음인 거 같은데? 해서 등산방 산행기에서 '화서'로 검색해보니 최소 세 번은 왔던 곳이다. 주로 경북지역 산행 시 들린 곳! 치매를 걱정해야 하나? 볼일을 보고 춥기는 하나, 신선한 공기가 필요해 휴게소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른 관광버스 목적지를 보니, 해파랑길, 가야산, 영남알프스 재약산 등 다 인기 있는 산으로 오지를 가는 차는 내가 탄 버스가 유일했다. 버스가 출발하려면 아직 5분이나 남았으나, 신선한 공기고 뭐고 추위를 더 견디지 못해 버스에 타니, 의자에 산행 지도가 놓여있었다. 먼저 사진으로 한 장 남기고 산악회 게시판에 있는 것과 차이가 있나, 살폈으나 같았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휴게소에서 출발하자 늘 그렇듯이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보현산 천문대에서 면봉산으로 가는 중에 천문대로 올라가는 임도? 가 등산로와 나란히 가는데, 어디로 가도 문제될 건 없지만, 가능하면 등산로를 찾아가는 게 좋다는 게 주의의 전부였다. 굳이 더 하자면, 보현산에서 하산해 면봉산으로 오르는 1.2km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거 정도. 그거야 최근 올랐던 대부분 산이 一行二山이라 하루에 거의 다른 두 봉우리를 올라야 해서 잘 아는 바다. 3주 전 문수봉과 하설산[산행기], 2주 전 두무산과 오도산[산행기] 등으로 그때의 악몽이 남아있어, 사실 산행 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면봉산이 코스에 있다는 걸 알고, 등고선 지도로 코스의 높낮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감 시각은 11시경 들머리 도착을 기준으로, 소요 시간 5시간 50분으로 계산해 잠정 16시 50분으로 하고 최종 결정은 실제 들머리 도착 시각에 따라 다시 공지하겠다는 당연한 얘기로 끝냈다.
다시 버스는 불을 껐으나, 잘 만큼 잔 이후라 잠도 오지 않아, 기존에 보던 책을 이어서 읽었는데,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 유튜브와 번갈아 보다가 도저히 더는 읽을 수 없어 그 책은 버리고, 다른 책으로 바꿔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뀐 책에 집중해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버스가 덜컥거리는 도로를 달리고 있는 걸 느껴 창밖을 보니, 오지다! 시각은 10시 30분이 넘었고. 그리고 조금 있자, 버스의 실내등이 들어오고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들머리가 멀지 않았으니, 산행 준비를 하라고. 해서 그동안 ebook 역할을 한 패드의 전원을 끄고, 등산화를 신고 끈을 조인 다음 미니 스패츠를 착용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창밖을 보니 정상에 하얀 건물이 있는 봉우리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보현산 천문대다. 해서 달리는 버스 안이나,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옆자리의 등산객도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가깝고 낮다! 그걸 보고 일면 쉬운 산행일 거라 안도를 했으나, 다른 면에서는 눈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오지가 오지인 이유가 있을 거라는 불안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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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버스는 10시 58분경 들머리인 별빛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직진해서 계속 올라가면 보현산 천문대다. 천문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 ‘정각리’라는 이름보다는 '별빛마을'이라는 불리기를 좋아하는 거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고개를 들어보니, 긴 능선 위에 하얀 건물이 보인다. 보현산과 천문대다! 그리고 오른쪽 나뭇가지 사이로 또 다른 봉우리에 둥근 지붕을 가진 흰 건물이 보여 시야를 가리는 나뭇가지를 피한 후 살펴보니, 기상레이더다. 그러면 저기가 면봉산이라는 얘기다. 오늘 올라야 할 보현산, 면봉산이 이렇게 가까울 줄이야. 아니, 산악회 코스 설명에 의하면 전체 거리가 11km에 불과하니 당연한 건가? 대략적인 주변 산세 파악한 후, 10시 59분경 버스에서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저 위로 보이는 흰 건물 즉 천문대를 목표로 마을 내 도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자, 5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서낭으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에 정자가 이어 별 위에 서서 별을 들고 있는 아이의 동상이 있었다. 서낭에 인사하고 그 옆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 개울 옆으로 난 도로로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향해, 11시 5분에 오래된 절은 아닌 거 같은 보현사 옆을 지났다. 이후 5분 정도 더 올라가자 아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보현산 코스를 설명하는 지도가 서 있었다. 그리고 등산로는 개울을 건너는 다리로 이어졌는데, 그 다리를 건너자 길이 갈라졌다. 아래로 향하는 길목에 고려 시대 탑으로 알려진 '정각리 삼층석탑'이 향하고, 위의 길은 당연히 보현산으로 가는 등산로다. 사실 삼층석탑이 궁금했으나,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쉽지 않은 산으로 5시간 50분으로는 촉박할 수 있다고 몇 번 경고했던 게 생각나 탑은 버리고 바로 위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 서 있던 지도를 유심히 봤더라면, 석탑 쪽에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사진만 찍고 지도 자체는 건성으로 봐서 몰랐다.
삼층석탑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올라가자 정각사가 나타났다. 이 절 또한 오래된 거 같지는 않고, 경북도 유적이라는 삼층석탑이 복구된 덕에 세워진 절인 거 같았다. 물론 보현사도. '법용사, 천문대, 시루봉' 등의 이정표를 지나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수원지인 계곡으로 접근하는 걸 막는 철책이 시작하고 있었고, 거기에 다양한 산악회의 리본이 달려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건 이번 산행에도 참고[기사]한 부산 '국제신문 근교 산 취재팀'의 리본이었다. 포장도로가 끝났다는 건 본격적인 등산로의 시작이라는 얘기인데, 경사가 심했고, 어느 오지나 그렇듯이 낙엽이 쌓여 오르기 대단히 힘들었다. 산행 들머리인 버스 정류장에서 등산 앱을 이용해 확인한 해발은 426m였다. 고로 700m가량 고도를 올려야 해 경사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안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나, 예상하지 못하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낙엽 때문에 죽죽 미끄러지는 등산로로 힘겹게 올라 11시 30분에 첫 번째 쉼터인 소나무 연리목에 도착했다. 다들, 연리목이 어딨어? 하며 찾는 분위기의 연리목이다! 어쨌든 연리목 소개 글에도 있듯이 그 핑계로 쉬어가는 거다! 사진 몇 장 찍으면 휴식 후 다시 산행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보다 더 경사가 심했다. 미끄러운 낙엽 길에서 도저히 두 발이 네 발을 당할 수 없고, 토끼몰이 당하는 게 싫어, 따라오는 등산객을 앞장세우고 연리목에서 20여 분을 올라가자 저 위로 능선이 보인다. 수원지 보호를 위한 철책까지 가는 길을 나란히 갔던 왼쪽의 능선을 보며, 저 위로 등산로가 있을 거 같은데, 왜, 이 길로 갈까 궁금했었는데, 그 능선 위의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11시 51분에 절골(능선) 갈림길에 도착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길이 삼층석탑 쪽에서 올라오는 거라는 깨닫는 순간, 삼층 석탑으로 가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런데 남은 길도 만만치 않았다. 고도를 많이 올린 거 같아, 등산 앱으로 확인했는데 800여 미터에 불과해 아직 300여 미터를 더 올려야 했다. 삼거리에서 그나마 경사가 좀 완화된 길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자 다시 절골(정각사) 삼거리가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 산악회 코스 설명 중 '전망 데크'라고 표기한 전망대가 있었다. 당연히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보현산이나 면봉산은 나뭇가지가 시야를 가렸고, 포항 쪽은 그나마 괜찮아 파노라마를 비롯해 사진 몇 장 남겼다. 이후 뒤따라온 등산객에게 전망대를 넘기고 다음 목표인 팔각정으로 향했다. 그런데, 전망대부터 다시 등산로가 차량은 몰라도 MTV 정도는 다닐 수 있는 임도 수준으로 바뀌었다. 추측건대, 차를 몰고 정상이나 다름없는 천문대까지 올라온 관광객이 걸어서 전망대까지 왕복하는 산책로가 아닐까? 더 나아가 정상 부근에 MTV 대여소가 있지 않을까? 아무리 봐도 차량이 다닌 흔적이 있는 게!
저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얀 구형의 건물을 감상하며, 분명 MTV가 다녔으리라 생각되는 등산로를 따라 17분, 1km가량 가자,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갈색 건물, 정자가 보였다. 팔각정이다! 이정표에는 수리봉(활공장)까지 0.3km라 표기되어 있으나, 30m의 오기로 보이는 건 바로 활공장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주 당연히 팔각정으로 올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중에 저기 남서쪽으로 보이는 게 팔공산인 거 같은데 시야가 흐려 확신할 수는 없었다. 흐린 날 최고의 조망처에 방문한 걸 한탄하며 팔각정 이 층에서 내려오며 보니, 계단에 눈이 쌓여있었다. 그럼 얼마 전 여기도 눈이 내렸다는 건데, 음지인 북사면이 걱정되며, 지난 문수봉과 하설산행 시[산행기]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에 대비해 아이젠을 가져왔으니 뭐.
팔각정에서 내려와 '천수누림길 데크로드'의 길을 보며,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데크를 따라가면 안 된다고 했던 거기가 여기라는 걸 알았다. 당연히 데크를 버리고 시루봉으로 올라가려다 시계를 보니 12시 25분으로 점심시간이다. 배도 고프고. 해서 ‘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하나, 그나마 편하게 앉아서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이 정자 외에 또 어디 있겠냐?’는 생각에 팔각정 아래층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먹거리를 꺼냈다. 그래 봐야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과 컵라면, 김치, 오미자청 정도지만. 먼저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붓고, 다음으로 오미자청을 뜨거운 물이 남아있는 보온병에 부어 차를 만들었다. 그리고 뜨거운 차를 보온병 뚜껑이자 컵에 담은 후 점심으로 김치와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이 따라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아 거의 나와 비슷한 먹거리를 꺼내 점심 준비를 한다. 차이라면 컵라면의 크기와 김밥 정도. 그렇게 점심을 먹은 후 그동안 식게 놓아둔 오미자차로 입가심 후 팔각정을 떠나 시루봉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계단을 조금 올라가자 가장 먼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보였다. 저 아래로 영천댐이 만든 저수지가 보인다. 여기서 뛰어내렸다가 저수지에 빠지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잠깐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왼쪽 구석에 작은 비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정상석보다 더 큰 검은 비석이 있어 뭔가하고 보니, 나같이 무식한 인간은 알아보기 힘든 한자만 잔뜩 있는 새천년 기념비란다. 양반의 고장이니 뭐, 그러려니! 기록을 위해 한 장의 사진으로 남기고, 그보다 중요한 인증을 찍기 위해 그 새천년 기념비 위에 카메라를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었다. 그런데 시루봉이자 활공장에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밑에서 애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처음에는 무언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여겼는데, 시루봉을 떠나 보현산 정상으로 가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잘 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추위에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완전 무장한 애가 아빠의 손을 잡고 ‘데크 로드’로 가고 있는 게 보였다. 결과적인 얘기지만, 천문대 주차장에는 10여 대의 자가용이 있었다. 그중 최소 몇 대는 별을 보기에는 이른 시간이니, 높은 곳에서 조망과 산책을 즐기기 위한 가족을 싣고 왔을 거다.
들머리인 정각리로 진입하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머리를 들었을 때 보였던 능선 위에 있는 흰 건물을 보며 모든 정보를 취합해 봤을 때 천문대가 맞는데, 천문대 하면 떠오르는 둥근 지붕이 아닌 사각형의 건물이라 긴가민가했다. 시루봉을 떠나 보현산 정상으로 가며 보니, 건물이 생각보다 많았고, 그중에 천문대 하면 떠오르는 둥근 지붕의 건물도 있었으나, 정상 부근에는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크고 높은 상앗빛의 사각형 건물이 있었다. 당연히 아래에서 보면 이 건물만 보인다. 그러니 헷갈릴 수밖에. 그 건물 옆이 보현산 정상이다. 당연히 정상에는 나보단 큰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었고, 거대한 DSLR든 산꾼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일단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긴 후, 인증을 부탁할 상황이라 아니라,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고, 다음 등산객을 위해 빠르게 정상석을 떠나 옆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오른쪽의 시루봉을 비롯 앞에 보이는 전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정상석 뒤로 난 길을 따라 다음 목표인 면봉산으로 향했다. 그 시각이 12시 55분이다.
정상석 뒤로 난 등산로는 천문대로 올라오는 도로와 나란히 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등산로는 능선 위로 천문대길은 바로 그 아래로 갈지자를 그리며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정각1리이자 '별빛마을'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 길로 가면 다시 능선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분위기상 올라오는 길을 찾기 쉽지 않아 보였다. 해서 인솔 대장이 이번 코스를 설명할 때 임도를 따라가도 되나, 정상 부근에 있는 등산로가 찾기 쉽지는 않으나 그걸 찾아서 가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문제는 팔각정 계단에 있는 눈을 보고 걱정했었는데, 예상대로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눈과 낙엽의 지옥! 다행히 산악회의 정보에는 없는 '삼계봉'까지는 능선의 기복이 심하지 않아, 비록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크게 위험할 건 없었다.
등산로를 따라 7분가량 가자, 갑자기 철책이 나타났다. 주차장이다. 철책을 넘어 굳이 주차장으로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해 철책을 따라 난 수로 난간을 조심스럽게 밝고 주차장 구역을 벗어나자 거대한 철책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철문 안(? 밖?)에는 건물이 있었고, 그 앞에서 등산객이 추위에 떨며 서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철문을 통과해 건물의 용도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접근해 보니 출입문에 '아마추어무선연맹'의 '재난통신중계소'라는 명패가 달려 있었다. 햄(HAM/먹는 거 말고)이다! 그럼 안테나는?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문선 통신탑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안테나가 있었다. 5G 중계탑과 햄의 안테나라!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사진으로 남기고 건물을 지나가는데, 그 앞에 있던 등산객이 뭐라고 얘기하는데 처음에 듣지 못해 "예?"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다시 큰 소리로 "소주 한잔하시겠습니까?" 한다. 해서 고개를 흔들어 거절의 표시를 한 후 "천천히 드시고 오십시오!"라고 답을 하고 갈 길로 갔다.
1시 4분에 햄의 '재난통신중계소'를 떠나 아래로 보이는 천문대 길이 어디까지 같이 하는지 궁금해하며, 12분, 800m가량 가자, 갑자기 등산 앱이 음성으로 봉우리에 도착했다고 알려준다. 산악회 코스에는 없는 봉우리다. 해서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해보니 "삼계봉"이다. 삼계? 무슨 의미일까? 닭? 그런데 삼계봉 정상에 도착해, 정상석은 기대도 안 했으나, 산꾼이 만들어 매단 정상 표지는 있을 거로 생각했으나, 없었다. 대신 '기룡지맥 분기점'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보현지맥, 팔공지맥에 이은 기룡지맥? 도대체 대한민국 아니, 남한에는 몇 개의 지맥이 있을까? 어쨌든 분기점에는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고, 문제의 기룡지맥으로 향하는 쪽으로는 표지가 없었다. 이정표에는 '면봉산 임도종점 0.60km'라는 표지가 있었는데, 산악회 코스 설명의 '밤티재'다. 600m 아래가 고개라는 건데, 당연히 직벽 600m는 아니지만, 경사가 급하면 내려가는 길도 쉽지 않고, 면봉산으로 올라가야 할 고도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얘기고, 반대로 완경사면 모든 게 쉬워, 완경사이기를 빌며 밤티재로 하산을 시작했다.
밤티재로 향하는 길은 전형적인 오지의 낙엽 쌓인 급경사로 사실 정상에서 밤티재까지 거리로는 600m, 시간으로는 13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심리적으로는 거의 6km의 거리에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처럼 느껴지는 지옥의 길이었다. 물론 엉덩방아도 수시로 찧어, 중간에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를 주어 지팡이로 삼아 내려가야 했다. 그렇게 내려가자 저 앞에 임도가 보였다. 그 시각이 1시 23분으로 정상에서 6분 거리다. 그리고 1시 30분에 밤티재 갈림길에 도착했다. 기분상으로는 대단히 많이 내려온 거 같아 등산 앱의 고도를 확인해보니 해발 824m다. 삼계봉이 1,000m에서 조금 모자랐으니, 170여 미터를 내려온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앞에 있는 면봉산도 그만큼만 올라가면 되는 게 아니라, 고도를 거의 300m 정도 올려야 하지만, 애초 예상 500m대에 비하면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밤티재에서 면봉산으로 향하는 길은 돌로 쌓은 계단으로 시작했고, 그 밑에는 산악회에서 종이로 표지를 만들어 바닥에 돌로 눌러 놓았다. 여기서 계단으로 올라 면봉산으로 가면 A 코스,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B 코스다. 둘의 차이는 해발 1,121m의 봉우리 하나를 우회하고, 거리상으로는 2km가량 짧다는 거 정도. 삼계봉에서 밤티재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지겟작대기 지팡이를 계단 한쪽에 세워두고 계단으로 올라 면봉산으로 향한 시각이 1시 30분이다. 올려야 할 고도는 300여 미터에 이르나 경사는 완만해 처음 예상보다는 쉽게 오르는데, 왼쪽으로 갈지자를 그리며 올라가는 포장도로가 보인다. 정상에 기상관측소가 있으니, 당연한데, 다만, 중간에 그 도로와 만나지 않기를 빌었다. 그런데 아무리 완경사라도 경사를 오르는 건 쉽지 않아 헐떡이며 올라가다가, 아랫배가 더부룩해 등산로에서 벗어난 으슥한 곳으로 가 땅을 파고 볼일을 보고 다시 파낸 흙으로 잘 덮은 후 등산로로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면봉산 정상으로 향하다가, 2시 9분에 전망대에 도착했다. 물론 내 기준!
바위 전망대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니, 동쪽으로는 낙동정맥과 그 너머 동해가, 남쪽으로는 보현산에서 뻗어가는 보현지맥이, 그리고 뒤로는 면봉산 정상의 기상관측 레이더가 보였다. 전망대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밑으로 지나가던 거대한 DSLR을 든 작가가 그 모습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포즈를 취해보라고 해 자세를 잡고 사진 몇 장 찍기는 했는데, 어떻게 주고받을지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이후 전망대를 지나친 작가를 비롯한 세 명의 얘기가 들려 본의 아니게 듣게 됐는데, 예상도 못 한 정상석이 바로 뒤에 있었다. 그리고 그걸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는 소리가 들렸다. 해서 그들이 인증을 다 찍고 가기를 기다리며 바위 위에서 주변을 계속 둘러보고 있는데, 또 놀라운 소리가 들렸다. 위에 정상석이 하나 더 있다는 거다. 바로 뒤에 있는 건 '포항시'에서 세운 거고 위에 이는 건 '청송군'에서 세운 거라고. 접경지대 봉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라 놀랍지는 않고, 다만, 면봉산 정상이 접경지대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첫 번째 정상석으로 향했는데, 그들 셋은 아직 그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기상레이더 위로는 구름이 흘러가고 있어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그들이 가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떠난 후 돌을 주워 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카메라를 둔 후 타이머를 이용해 포항시에서 세운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거대한 축구공 모양의 기상레이더를 바라보며 정상으로 향해 2시 20분에 도착했다. 애초 목표가 2시 10분이었는데, 10분 늦었다. 정상에는 앞선 세 명이 아래에서와같이 인증을 찍고 있어, 그들이 다 철수할 때까지 주변 경치를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청송 쪽 정상석 사진을 찍은 후 막 도착한 등산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할 일 다 한 후 2시 25분경 정상에서 떠나, 2시 31분에 ‘월매봉’ 삼거리를 지나자, 우려하던 길이 나타났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지는 낙엽 쌓인 급경사에 눈까지, 물론 낙엽 아래는 언 땅! 차라리 그 길이 몇백 미터만 돼도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겠는데, 고작 4~5m에 불과하고 다시 양지로 접어들면 눈도 얼음도 없는 낙엽 쌓인 급경사 그리고 다시 언 땅의 반복! 아주 돌아버리는 상황이다. 물론 서너 번 엉덩방아를 찧었고 와중에 상처를 입지 않게 오른손을 급하게 뻗는 바람에 손에 주어진 충격은 등산이 끝나고 버스에 타서도 계속됐을 정도다. 다행히 가죽장갑을 끼고 있어 상처가 나지는 않았지만. 낙엽과 눈, 언 땅의 지옥을 지나자,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한 산책로 수준의 길로 바뀌었다. 그리고 채석장으로 보이는 곳과 그 옆에 아는 사람은 면봉산과 연계 산행을 한다는 배틀봉이 있다. 이 글을 쓰며 확인한 바에 따르면 채석장이라 생각했던 곳은 풍력발전단지 개발 공사 중으로 능선을 깎고 있는 현장이다.
절묘하게 생긴 고목과 소나무를 사진으로 남기며 유유자적 날머리를 향해 가고 있는데, 갑자기 등산로가 급경사 벌목용 차량이 다닐 거 같은 도로로 바뀌었다. 급경사고 쌓인 낙엽이 활엽수가 아니라, 침엽수라는 차이가 있었으나, 자본주의가 만든 길과 사람이 다녀 만들어진 길의 차이 덕분에 별 부담 없이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길 끝에 포장도로가 보였다. 직진은 배틀봉, 좌와 우는 마을, 고개다. 곰내재! 그 시각이 3시 6분이고, 고도는 734m다. 많이 내려온 거 같은데 아니라는 얘기고, 마감까지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남았다는 얘기다. 해서 배틀봉을 다녀올까도 생각해봤으나, 왕복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포기하고 혹시 마을에 식당은 아니라도 가게는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포장도로를 따라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는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 속한 고개 중 하나라, 고도 또한 만만치 않으니, 그 아래 마을까지의 경사야 당연히 급하다. 그 경사가 급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발뒤꿈치에 가해지는 충격이 무릎까지 전해지는 정도라, 가능하면 도로 옆 흙길로 가려고 노력하며 내려가면서도 주변을 관찰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고도가 높아서인지 주변의 밭 비슷한 곳에는 대부분 표고버섯을 기르고 있었다. 와중에 꽤 넓은 밭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도 표고를 기리고 있었으나, 한쪽 구석에 불과하고, 그 넓은 밭의 대부분에는 열을 맞춰 놓여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거리가 멀어 육안으로는 정체를 확인할 수 없어 카메라 줌렌즈를 활용해 살펴봤다. 태양광 패널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땅바닥에 설치한 패널은 듣도 보도 못했다. 왜? 라는 궁금증을 갖고, 날머리를 향해 전진해 마침내 마을이 보는 곳에 이르렀다. 그 시각이 3시 23분으로 마감 시각보다 1시간 30분가량 빠르다.
마을을 통과해 거의 마을 입구에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마을 회관을 향해 내려가다가, '태양광 설치사업, 결사반대' 플래카드를 보고, 응? 했다. 아무래도 위에서 봤던 태양광 패널과 관련이 있는 거 같은데, 뭘까? 당장 이유는 알 수 없고, 귀가해서 알아보리라 생각하고 계속 내려가, 사과 과수원을 지나, 3시 34분에 마을회관에 도착했으나, 버스가 안 보인다. 대장의 마을회관이 아니며 조금 더 밑으로 내려와 있을 거라는 사전 공지가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아니 이 정도 크기의 마을에 가게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술 마시고 싶을 때는 어떡하냐? 읍내에서 마시면 집에 올 방법이 없지 않냐? 그렇다고 집에 쟁여 두고 마시냐? 그래서 시골에 젊은이가 없는 거다!’라고 술집이 없는 것에 분노해 별 잡생각을 다 하며 내려가 마침내 저 아래 공터에 서 있는 버스를 발견했다. 그 시각이 3시 36분으로 산행 마감까지는 1시간 14분을 남겨두고 사실상의 산행이 끝났다.
3
버스가 기다리는 공터로 가기 위해서는 서낭까지 간 후 돌아 내려가야 하는데, 그 길목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간이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이미 등산객이 점령해 한쪽에서는 라면을 끓이고, 다른 쪽에서는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산에서 가졌던, '왜, 점심을 먹고 있는 등산객이 없지?'라는 궁금증이 해소됐다. 추위에 떨며 시간에 맞춰 점심을 먹기보다는 빨리 내려와 날머리에서 따뜻하게! 물론 먹거리와 조리도구는 버스 짐칸에. 당연히 산에 메고 갈 게 없으니 배낭도 가볍고. 와중에 이번 산행의 홍일점이라 인솔 대장을 비롯한 모두를 놀라게 한 산꾼은 바람막이도 없는 서낭 옆 의자에서 라면을 끓여 먹은 후 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감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고, 버스로 가봐야 시동이 꺼져 춥기는 마찬가지라, 여성 산꾼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귤과 뜨거운 오미자차로 허기를 달래며 주위를 살폈다.
꽤 큰 마을이라 곳곳에 길이 있는데, 서낭에서 바로 위로 향하는 길도 있고, 그 입구에 빈 술병이 쌓여 있는 가게가 있는데, 분위기로 보면 문을 연 거 같지 않았다. 해서 확인해 볼 생각도 않고, 뜨거운 차만 마시고 있다가, 4시간 넘어 이제는 차에 시동을 걸겠지라는 생각으로 버스로 가서 자리에 앉았으나, 차를 정말 아끼는 기사는 시동 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나마 바람은 막아주는 게 어디냐는 생각을 하면 창밖을 보고 있는데, 그 가게 방향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보였다. '아니, 저기도 길이 있었나? 혹시 저위에 다른 가게가?' 등 이런저런 추측을 하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슬슬 승객이 탑승을 시작하자 대장과 몇몇이 승객이 인원점검을 하기 시작하더니, 대장이 ‘배틀봉’으로 간 사람은 다 내려왔는지 묻는다. 거기에 대해 뒤에서 다 왔다는 답변이 들리는, 순간 ‘아, 가게 쪽에서 내려오던 사람이 배틀봉에서 내려오는 거였다!’는 생각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해서 바로 지도로 확인했다. 있었다! 배틀봉에서 곰내재로 돌아가지 않고, 마을로 바로 내려오는 길이. 이제 와 확인해봐야 소용없지만.
4시 25분경 공식 마감 시각보다 25분이 이르나, 3명을 제외한 모든 승객이 탑승한 상태라 버스는 이미 시동을 걸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인솔 대장은 그 3명에게 어디에 있는지 확인 전화를 했고, 대장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가게에서 한잔하는 중으로 바로 가겠다고 했다는 거다. 문이 닫힌 줄 알고 확인하지 않은 자신을 꾸짖었으나, 술을 마시지 말라는 면봉산신의 뜻이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후 그들 세 명이 도착하자 버스는 예정보다 20분 정도 이른 4시 30분경 서울을 향해 출발하긴 전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산행에 관해 총평했다관해 총평을 했다. 물론 '무사히 시간 내 도착해서 고맙다!'는 상투적인 사례 이후 이번 산행에 여성 등산객 한 명뿐이었다는 얘기를 다시 하고, 대장도 산행 전에는 몰랐는데, 중학교 2학년생이 아빠를 따라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팔각정 부근에서 봤던 어린 친구가 중학생이라는 걸 알았다. 당시만 해도 어려 보이는데, 잘못 봤나 했었다. 그리고 2014년 당시 중학교 2년이었던 아들과 같이 올랐던 지리산이 떠올랐다. 대장의 총평이 끝나자, 대부분 등산객은 추위에 떨다가 따뜻한 버스에 취해 바로 잠이 들었다. 물론 나도. 그리고 휴게소에서 잠이 깨어 식당으로 달려가 10분 내에 가장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어묵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휴식이 끝나고 속리산 휴게소를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실내등이 꺼진 후에는 핸드폰 사용을 중지해 달라는 승객의 요청이었었다며, 가능하면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아니, 그럼 잠이 안 오는 사람은 거의 두 시간을 멍청이 앉아 있으라는 얘기냐고 발광할까 하다가 참았다. 사용 중지가 아니라 자제하라니, 자제가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버스가 출발하고 불이 꺼진 후 주변을 둘러보니 잠을 자는 승객은 50%가 되지 않고, 서너 명은 불빛이 새지 않게 조심하며 폰을 잠깐 사용(군대에서 취침 시간에 모포 뒤집어쓰고 책 읽었던 게 떠올랐다) 후 핸드폰을 껐다. 그리고 자지 않는 절반이 넘는 승객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속리산 휴게소를 떠나 승객이 처음 하차한 신갈 간이정류장까지 그 누구도 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같은 등산객으로서 피곤한 동료를 배려해 폰 사용을 자제하며 조용히 기다려 예상보다 빠른 8시 34분에 출발지인 신사역에 도착했다.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 피곤해서 집까지 걸어갈 상태가 아니라 녹번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기로 하고 지하철 앱에 알람을 설정했다. 그리고 만원이라 빈자리가 없는 열차에서 책을 보기 시작했다. 혼잡한 열차 안에서 정신없이 책을 보다가, 알람에 패드를 주머니에 넣고, 도착하기를 기다려 내렸다. 그 시각이 9시 15분으로 생각보다 빠르다. 버스를 타기 위해 출구로 나가자 지난번에 없었던 붕어빵 포장마차가 있어, 지난 동강 산행 시[산행기] 품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유심히 관찰한바,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포장마차와는 달랐다. 고로 역에서부터 은평구청까지 붕어를 잡을 수 있는 곳은 두 개다! 여기서 사서 정류장까지 들고 갈 이유가 없어, 빈손으로 정류장으로 가 포장마차로 갔다. 그런데 재료가 떨어져 영업이 끝났다는 주인장의 말에 좌절! 장사가 잘되니 다행이기는 한데. 처자식 간식은?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버스에 타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정류장 앞, 편의점에서 하산주용 빨갱이 두 병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하는 거로 이번 보현산, 면봉산 천고지 산행을 마감했다.
산악회 계획 A 코스인 "정각1리 → 삼층석탑 삼거리 → 정각사 → 연리목 → 절골 삼거리 → 전망데크 → 팔각정 → 시루봉(활공장) → 천문대 → 보현산 → 천문대 주차장 → 삼계봉(기룡지맥 분기점) → 밤티재 → 면봉산 → 기상관측소 → 월매봉 삼거리 → 곰내재 → 두마리 → 마을회관 → 주차장"의 12.43km(트랭글), 4시간 39분 코스의 오지이자 지맥 산행이었다. 이동 4시간 23분 휴식 16분!
포항 앞바다 및 팔공산 조망처로 최고였으나, 날이 흐려 제대로 보지 못해 아쉬운 산행이었다. 그런 와중에 남으로 뻗어 나가는 낙동정맥 너머로 어슴푸레 보이는 동해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지임에도 들머리와 날머리가 거의 중턱이라 예상보다는 쉬운 산행이었다. 아, 그래서 오지인가?
보현산 정상에는 천문대가, 면봉산 정상에는 기상관측소가 자리 잡고 있어, 두 산 모두 정상까지 차량 통행이 가능해 전반적으로 등산로는 양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