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한 그릇에 담긴 시간
조윤진
프랑스의 전설적인 미식평론가 브리 아사바랭은 그의 저서 <미식 예찬>에 이렇게 썼다. "당신이 먹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동양에는 약식동원이라는 사상이 있고 제철 음식이 보약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결정한다고 한다. 먹는 콘텐츠가 넘치는 요즘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겠다.
조선의 삼대 비빔밥 중에 하나인 진주비빔밥을 '칠보 화반'이라고 한다. 일곱가지 보석이 올라 있는 꽃 같은 밥이라는 뜻이다. 이런 근사한 이름을 붙인 이유는 진주의 교방 문화 때문이다. 북에는 평양 기생, 남에는 진주 기생이라는 말이 있었듯이 진주에는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을 위해 연회 음식인 화려한 교방 음식이 발달했다고 한다. 비빔밥은 여러가지 재료들이 섞여서 화합과 배려를 알려주는 음식이다.
전주비빔밥만 먹어 보다 진주비빔밥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먹는 것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딸이 이벤트로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있다.
정갈하고 맛난, 제철 반상을 먹을 수 있는 진주 전통 향토 음식점으로 데려가 주었다. 진주의 비빔밥은 익힌 나물만 얹어 낸다. 생채 비빔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장이 열리는 읍내에 있었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엄마의 발걸음은 바지런해진다. 장으로 향하는 엄마의 빈 바구니에는 이미 많은 나물과 참기름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장터는 늘 분주했다. 말려서 바스락거리는 나물 더미, 갓 잡은 돼지와 소고기. 네모난 양철통에 담긴 뜨끈하고 촉감이 이상한 빨간색이 무섭게 보였던 선지, 소금에 절인 생선, 여러가지 과일들 그리고 시장통 한가운데를 가득 채운 사람 냄새와 웃음소리.
엄마는 예쁘고 연한 나물들을 골랐다. 시금치 한 줌, 도라지 한 줌, 고사리와 숙주 계란과 소고기, 그리고 이날만큼은 꼭 고소한 새 참기름을 한병 꺼냈다. 참기름 뚜껑을 열면 고소한 향이 집안 구석구석 스며들어,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비빔밥하는 날 임을 알았다. 비빔밥은 그저 밥 위에 나물과 고명을 얹은 음식이 아니었다. 엄마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나물들은 그 하나하나가 어릴 적 내 기억 속 풍경과 맞닿아 있었다. 읍내 한복판에 살았던 관계로 십 리를 넘어 오신 큰댁 식구들도, 장 보러 온 고모네 식구들에게 우리 집 앞마당 평상 위가 맛있는 식당이 되곤 했었다.
그들에게 따뜻한 밥 위에 나물과 고명을 풍성히 얹어 쑥쑥 비벼 내는 한 그릇은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자 따뜻하고 푸짐한 정이 넘치는 마음이였다.
큰 놋그릇에 따뜻한 밥을 담고 나물들을 색깔 맞추어 돌려 얹는다. 연녹색의 시금치 갈빛 고사리, 노릇한 계란지단, 하얀 숙주, 붉게 볶은 고기, 그 위에 춤추며 내려 앉은 참기름 방울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비벼야 제대로 맛이 난다며 젓가락을 넣어 비빌 때마다 나물의 숨이 사르르 죽고 참기름향은 밥 속에서 살아난다. 한 숟갈 입에 넣으면 담백한 숙주가 입안에서 속삭이고, 부드러운 고사리가 뒤를 잇는다. 짭짤하고 달콤한 맛의 고기를 씹다 보면 계란지단의 고운 결이 밥알과 함께 마지막을 부드럽게 마무리한다.
그 맛 속에는 장터의 소란스러움이 함께 비벼진다. 왁자지껄한 흥정 소리, 삶은 옥수수에서 피어오르는 김,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들.
그 속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던 엄마의 뒷모습, 그리고 장날에 활기찬 소리가 함께 되살아난다.
이제 나는 도시의 아파트에서 산다. 시장터가 아닌 마트 진열대에서 나물을 고르고 쿠팡에서 식재료를 시키고, 압력 밥솥에 밥을 한다. 하지만 가끔 오늘처럼 비빔밥 한 그릇을 앞에 두면 오래전 부엌문이 살짝 열리고, 김이 피어오르는 솥 앞에서 나물을 무치던 엄마가
" 얼른 와서 밥 비벼 먹어라."하시며 나를 따뜻한 시간 속으로 데려간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장터 한가운데 서 있다. 찬장 안에 참기름병이 반짝이고 잘 닦여 번질거리는 그릇 들과 함께 어린 날에 배고픔과 행복이 한꺼번에 내 안에 차오른다.
비빔밥의 맛은 단지 입안에서만이 아니라 그시절 엄마의 냄새와 함께 세월을 건너 가슴속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