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용서
1995.01.03. 김준호 선생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용서를 주셨다. 이렇게 번역 했어요. 사랑의 용서 그러면 옛날 번역은 아주 문장이 좋아. 아주 철학적이고 고상하고 위엄이 있어요. 그런데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요. 알면서도 몰라요. 공동번역 성경이 가장 알기 쉬우면서도 거기도 어려워요. 공동번역 성경을 보면 1장 17절.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가 하니 모세에게서는 율법을 받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은총과 진리를 받았다고 그랬어요. 알 것 같지요? 은총과 진리를, 그럼 바다에 줬다. 하늘이 줬다. 어디가 하늘인지 알아야지? 바다가 어느 바다인지 알아야지 주소가 없어요. 막연해요. 그런데 현대어 성경에 풀어서 쓰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용서를 주셨다.
그러면 이공님이 예수님의 사랑을 체득했단 말이에요. 참사랑 참 사랑은 사랑의 용서에요. 은총과 진리도 좋지만 은총과 진리란 말은 아주 문장이 좋아요. 그러나 실감이 없어요. 이공님은 예수한테 배운 사랑인데 용서를 준 것이지요. 부인이 탈선했어도 탈선이 없어요. 대신 우셨고 대신 슬펐지 정죄가 없어요. 그것이 사랑의 용서지요. 은총과 진리가 뭐에요? 사랑의 용서. 따라 읽으십시오. ‘모세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용서를 주셨다. 요한복음 1장 17절 말씀.’다시 한 번. ‘모세는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용서를 주셨다. 요한복음 1장 17절 말씀.’
그럼 인제 우리 연례로 이렇게 모임을 갖지요? 몇 년 동안 제가 왜 마지막 시간을 한 시간 하는 고 하니요. 장로님이 풀어 말씀하시기를 열 번 도 더하셨습니다. 30년 전에는 말씀 들으면 모두 공포심이 일어나가지고 벌벌 떨어요. 법을 말씀하시니까, 오늘 아침 말씀 보면 상당히 완전히 풀어주셨지만 그래도 떠난 자매 얼굴을 보니까 완전히 파래요. 공포심을 갖고 떠나요. 아무리 복음 복음해도 본인이 아무런 체험이 없는 것 같아요. 또 무서운 소리해요. 그래 떠날 때 서러움을 갖고 떠나요. 안정이 안 되어요, 율법을 짊어지고 가요. 아무리 복음이라고 풀어주시지만 본인이 체득이 없으니까 불안하다고 떠나거든요. 그럼 왜 그러느냐? 받은 것이 은총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장로님은 뼈를 세워줘요. 저는 살을 붙여요. 그리 한 시간씩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한 시간 말을 듣고 갈 때 풀어진다는 거예요. 그걸 제가 눈치 챘어요. 그래 말 할 줄 모르지만 한 시간 말하는 거예요. 그럼 장로님 말씀은 절대 진리지요. 뼈니까 뼈대를 세웠으니까 살을 붙여야지 생명이 붙어야 하니까.
그래 이공님이 법을 세울 때는 부인이 벌벌 떨었지요. 그런데 말년에 사랑을 완성해요. 부인이 타락했다고 정죄한적 없어요. 이건 절대 내 잘못이다. 자기를 쳐 복종시켰지요. 그래 용납하시고 그 부인을 안아드리고 사랑을 완성했다 말씀입니다. 그것이 동광원의 씨지요. 동광원의 못자리란 말입니다. 사랑의 완성, 그 요절은 요한복음 1장 17절 같이 밝은 요절이 없지요. 그런 뜻으로 그렇게 지금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모일 때마다 이 선생님 살아계실 때도 유 영모 선생님 오시고 현 동완 선생님 오시고 유 선생 말씀하시고 현 선생님 이야기 하시고 그렇게 살았던 이 전통이지요. 또 이 선생님 말씀하시고, 유 선생님이 지은 진달래 있지요? 그걸 우리가 기념하는 뜻에서 한번 부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