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저도 한 잔 주세요 / 최종호
얼마 전에 예비 큰며느리 가족과 상견례를 했다. 장소는 우리가 잡았다.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다가 조용한 곳에서 수수하게 밥 한 끼 먹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아내에게 한식당에 예약하라고 했다. 그 곳은 양쪽 집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예전에 가 본 곳이다. 찾아보니 가격도 생각만큼 비싼 편이 아니라서 여러모로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상견례를 하루 앞두고 아내가 심하게 아팠다. 위통이라며 움켜쥐고 뒹굴기까지 했다. 과식하거나 잘 못 먹은 것도 아니고 새벽까지 아무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러니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가면 좋으련만!’ 빨리 가서 약을 지어오라기에 할 수 없이 다녀왔다. 길쭉한 비닐 팩의 한쪽을 자르고 하얀 액체를 쭉 짜서 먹더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가라앉는단다.
배가 아픈 이유는 담양의 주말 주택 앞집으로 김장하러 가기로 한 날인데 힘들게 일하면 얼굴이 부을 것 같더란다. 그런 모습으로 상견례하러 가는 것이 내키지 았았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걱정에 그리 된 것 같다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후에 주말 주택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중요한 약속인데 차질이 생기면 안 되니까 확인해 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더니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너무 기분 나쁘게 말해 그 식당에 가기 싫단다. 우리는 점심 메뉴로 예약했는데 너무 싼 것으로 했다고 한다. 아내는 어찌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큰 녀석이 와 있었다. 평소에는 금요일에 오는데 당직을 섰단다. 저녁을 먹으며 음식점 아주머니와 나눈 얘기를 들려주며 메뉴를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지 물었다. “어려운 자리라 많이 먹을 수도 없을 거잖아요. 굳이 비싼 음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는 말을 확인해주는 것 같았다. 그날따라 큰녀석이 대견해 보였다. 잠시 일었던 마음의 격랑은 평온을 되찾았다.
드디어 상견례하는 날, 아침을 먹고 나니 생각만큼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았다. 무슨 옷을 입고 갈 것인지 아내가 물어서 깨끗한 차림이면 될 것 같다고 했더니 정장을 입으란다. 그때부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무거나 입고 가려고 준비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장 대신에 점잖게 보이는 검은색 콤비를 입고 가기로 했다. 아내는 바지에 구김을 없애야 한다며 스타일러스에 넣어 작동시켰다.
큰녀석도 차려입느라 부산하기에 농담으로 “너 지수(예비 며느리 이름)에게 딸리는 거 있냐?” 했더니 웃고 만다. 시간이 다가오자 어떻게 자리를 앉고, 어떤 얘기를 나누어야 할지 걱정이 되었다. 또, 지켜야 할 예의도 있을 것 같았다.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자 조급해졌다. 인터넷에서 몇 가지 도움이 되는 내용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보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출발하기 전에 아들에게 신용카드를 주었다. 음식을 먹고 나서 센스있게 계산하라는 뜻에서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일찍 도착할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예약한 방은 입구에서 가까웠으며 아늑했다. 자개로 만든 공작 무늬의 병풍이 인상적이었다. 안쪽에서부터 나, 아내, 큰아들, 작은아들 순으로 앉았다. 사돈 가족이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큰아들에게 미리 술도 한 병 주문하라고 일러두었다. 긴장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데에는 윤활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일어섰다. 자연스럽게 큰아들에 이어 예비 며느리가 가족을 소개하고 모두 앉았다. 그런 후, 침묵이 흘렀다. “준비한 꽃바구니는 언제 주려고 그러냐?” 내 말에 모두 웃었다. 사전에 얘기해 두었는데 긴장해서 잊어버린 것이다. 아들은 안사돈에게, 예비 며느리는 아내에게 주었다. 그러고 나니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런 사이 종업원이 음식을 차렸다. “고급 음식점으로 초대할 것인데 너무 우리 생각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가깝고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바깥사돈은 과묵해서인지 주로 안사돈이 응대했다. 얘기가 진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분자술이 들어왔다. 우리 쪽은 모두 잔을 채웠지만 사돈 쪽은 조금씩 따랐다.
듣던 대로 그쪽은 전혀 술을 마시지 못했다. 나만 혼자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 싶어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그때 저쪽에서 “아버님, 저도 한 잔 주세요.”라고 한다. 예비 며느리에게 눈길이 쏠렸다. 안사돈이 “마시지도 못하면서, 귀까지 빨개졌잖아!”라고 해서 보았더니 전체적으로 얼굴이 불그레졌다.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분위기를 맞춰주려는 마음이 예뻤다.
이러저러한 화제로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덧 많이 흘렀다. “화려한 음식보다는 수수한 음식이 좋았습니다. 맛도 있지만, 양도 적당했어요.” 안사돈이 우리에게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은 아닌 듯했다. 기회가 닿으면 사돈끼리 해외 여행 가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상견례가 궁금했는데, 참고가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미혼인 예비 며느리 언니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염려는 많이 했지만 잘 진행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내도 아들도 같은 마음인 듯했다.
어렵고 조심스러운 자리를 벗어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으로 오다가 시내가 잘 보이는 풍경 좋은 찻집에서 오랜만에 아들 녀석들과 즐겁게 뒷얘기를 나누었다. 방을 나서며 며느리 될 아이가 작은아들에게 “이 신발이 도련님 것 맞아요?”라고 말했다기에 크게 웃었다. “ 큰일을 치르고 난 뒤라 그런지 커피 맛이 여느 때와 다르게 느껴졌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대견한 아드님에 예쁜 며느리가 잘 어울립니다.
곧 시아버지가 되시네요. 축하합니다.
교장 선생님!
드디어 아드님이 장가를 가는군요.
아버지 퇴직 전에 결혼을 해 주니 그조차 고마운 일이네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당연한 일이 요즘은 무조건 고맙더라고요.
축하드립니다.
심성 고운 며느님을 맞으셨어요.
그래도 술은 한 잔해야 되는데....아쉽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내 일인듯 실감납니다. 며느리가 잠옷파티하자고 해서 잠옷 사러 간다는 친구의 즐거운 푸념이 떠오릅니다. 선배님, 축하합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님이라는데 선생님 환한 미소가 그려집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자리에 선생님께서는 좋은 술을 준비하시면 되겠네요
예비 며느리의 한마디로
선생님의 좋은 자리가 만들어진 듯 합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