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가 헛걱정이기를 / 최종호
작은녀석이 다시 집으로 들어온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고시원으로 간 지 4개월 만이다. 중소 병원에서 1년간 방사선사로 근무하다가 힘든 일에 비해 보수가 너무 적은 것이 불만이어서 그만두었다. 한 달에 몇 번은 야간에도 근무하며, 남들이 쉬는 토요일에 나가는 것도 마뜩하지 않게 생각했다. 늘 진중한 데다 한번 마음먹으면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한데 이번에는 내 사정에 따라 준 것이어서 조금 미안하다. 그렇지 않으면 임대 아파트 계약금을 날릴 판이었다. 2년 전에는 수중에는 돈이 많지 않더라도 이율이 낮아서인지 그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높아진 이율 때문에 정반대다. 내년 2월에 입주가 예정되어 있는데 걱정되어 전화해 보니 명의 변경은 가능하단다. 그런데 입주를 포기하면 계약자가 중도금 대출 이자까지 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 집은 큰녀석이 결혼하면 신혼살림을 꾸리도록 할 참이었다. 그런데 작년 2월, 갑작스럽게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처음에는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던 녀석이 직장 동료들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 중에는 분양받은 이가 몇 명 있었던가 보다. 견본 주택을 보고 나서 생각이 굳어졌다. 무엇보다 이 아파트는 비교적 분양가도 낮고 출퇴근하기에도 좋은 곳에 들어선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로 임대 아파트가 걱정되어 복덕방에 내놓았으나 물어보는 이가 없었다. 생각 끝에 작은녀석으로 명의를 변경하면 쉽게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청년에게 낮은 이율로 전세 자금을 대출해 준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질이 생겼다. 일정한 소득이 없으면 안 된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직장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주말, 검색하더니 동네 가까운 곳 두 군데나 모집 광고가 났다. 자격증이 있으면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는가 보다.
엊그제는 지원서를 낸 병원에서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서니 “두 군데나 면접하고 왔어요.”라고 해서 놀랐다. 그러면서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한 곳은 비교적 큰 병원이라 안정적이기는 하나 힘든 일이 많을 것 같고 보수는 적다. 다른 곳은 개인 병원이라 폐업하면 그만둘 수밖에 없지만 업무도 적고 보수는 상대적으로 많단다. 당연히 후자 쪽이 좋겠다고 했더니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의 성향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면접하면서 병원 쪽의 관계자와 월 보수액을 협상했다고 해서 대견스러웠다. 우리 세대는 연봉 협상이라는 말이 낯설기도 하지만 돈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녀석이 선택한 그 병원은 내가 여러 번 갔던 곳이기도 하다. 의사에게 “우리 아버지가 몇 번 다녔던 병원입니다.”라고 했더니 진료 검색을 하더란다. 그 횟수가 많은 것을 보고 의사는 물론 작은녀석도 놀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골절되거나 손가락과 무릎이 아팠을 때도 여러 번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녀석의 방에는 조금 전 고시원에서 가져다 놓은 이삿짐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공부는 계속하겠다고는 하나 걱정이다. 아무래도 시험 준비에만 전념할 때보다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을 이해하고 내 결정에 따라 주어 고마우나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져 훗날 이런 염려가 기우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