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 / 조영안
택배가 왔다. 친정아버지가 보내신 거다. 받자마자 전화했다. "뭘 이렇게 많이 보내셨는가요?" 며칠 전 돼지감자를 캤는데 보내 줄까 하셨다. 또 일거리를 찾아 나선 게 눈에 선하다. 혼자 지내시기 때문에 늘 걱정이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건강에만 신경 쓰라고 통화할 때마다 부탁한다. 상자를 열어 보니 말린 고사리와 돼지감자, 그리고 두릅이다. 꼼꼼한 성격을 말해주듯 좁은 곳에 빼곡히 정리되어 있다. 사이사이에는 신문지를 끼워 구분되어 있는 것이 마치 정돈의 달인 같다. 그리고 역시 메모지가 들어 있다. '고사리는 제사 때 쓰고, 두릅은 조금 피었으니까 튀김을 해 먹어'라고 쓰여 있다. 돼지감자는 썰어서 바짝 말려 뻥튀기에 살짝 튀겨 물에 우리면 구수하고 좋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언제부턴가 엄마의 빈자리를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가끔 채워 주신다. 텃밭에서 가꾼 마늘, 양파며 갖가지 제철 채소를 보내 주는데, 받을 때마다 엄마의 정을 대신 느낀다. 아버지 성격은 좀 특별하고 유별나다. 갖가지 담금주를 만들어 놓았다가 친정 나들이 때마다 사위한테 한 병씩 건넨다. 나도 40대에 담금주와 발효액 세계에 빠져 열심히 활동했다. 그때 아버지도 이미 같은 취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친정집 아래채 창고에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위에는 뚜껑 대신 하얀 천을 덮고 고무줄로 묶어 놓았다. 나보다 더 체계적으로 발효액을 관리한다.
회원들과 공유하고 공부하는 나와는 달리, 아버지는 관련된 책을 사서 정보를 얻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골에서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유별나게 보였다. 하지만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 발효액을 주변에 자주 선물했다. 입소문이 나서 알음알음 주문도 들어오고 배우는 사람도 늘어났다. 그 무렵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서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관심을 완전히 끊지는 않은 모양이다. 소일거리로 짬짬이 하신단다.
아버지의 나이는 87세다. 아직도 운전대를 잡는다. 자식들이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아직이다. 1년마다 갱신하는데 그때는 보건소에서 치매 여부도 검사한다. 용케도 통과하는 게 신기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 면회를 가는 것도 철저하게 지킨다. 엄마가 쓰러지기 전까지는 새로 집을 짓고, 마당에 작은 정원도 꾸몄다. 엄마는 논밭에서 일을 끝내고 오면, 거실에 벌렁 누우며 “내 집이 최고다, 여기가 천국이다.”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아버지는 더 마음 아파하셨다. 오손도손 함께 살리라 했던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해 당신이 끝까지 집에서 보살피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을 놓고 말았다. 제일 문제는 화장실 가는 것이었다. 혼자 하기에는 벅찼다. 결국 요양 병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그곳에 가신 지도 벌써 8년째다. 처음에는 엄마를 그런 데로 보내는 아버지가 미웠다. 힘들지만 함께 살면서 좀 더 보살펴 주기를 바랐다. 큰 남동생도 원망스러웠다. 단 한 달만이라도 모시다 보냈으면 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렸다. 딸도 자식이지만 시어머니가 계시기에 내 형편도 녹록지 않았다. 요양 병원에 가신 엄마는 모든 게 빠르게 나빠졌다.
한 병실에 다섯 명의 환자를 혼자서 돌보는 간병인은 소홀한 점이 많았다. 걸어서 들어간 엄마는 차츰 휠체어에 의지했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힘들었다. 아버지가 일주일에 세 번쯤 다니면서 복도에서 걷기 운동을 시켰다. 그런데 자주 오는 아버지를 감시자로 여기며 간병인이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아버지의 발길이 끊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아예 걷지를 못하게 되었다. 결국 그곳에서 나와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요양원으로 옮겼다.
요양원은 작고 아담했다. 입소자들도 제한하여 많지 않다. 그래서 관리가 잘 되었다. 엄마는 서서히 회복되었다. 면회를 갈 적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소녀 같다. 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없는 순수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지나간 기억이나,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 이름도 안다. 어렴풋이나마 가족들 생일도 기억한다. 그만큼 마음도 평화롭게 느껴진다.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그 말도 무색하리만큼 좋아졌다. 비록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하고 힘이 된다. '엄마'라고 부르면 서로 쳐다보고, 두 손도 마주 잡을 수 있어 좋다.
내 엄마의 마지막 집은 요양원이다. 아늑하고 조용하다. 들판과 산기슭을 마주하고 있어 공기가 맑고 경치도 좋다. 비록 천국으로 여겼던 새집에서 부부가 함께 살지는 못하지만, 적지 않은 연세에도 아직은 엄마를 돌봐 주는 아버지가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창밖에서 들리는 세찬 빗소리에 내 마음이 더 서글프져서, 그리움에 젖게 한다.